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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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착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끔찍한 짓을 저지를 때도 있다. 그해 초에 벌어진 ‘그 일’이 그러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쇠락한 작은 마을 베어타운에게 있어서 삶의 유일한 낙이자 희망은 아이스하키 팀이었다. 그런데 그해 초에 ‘그 일’이 일어났을 때, 하키에 죽고 하키에 사는 베어타운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대로 일이 흘러가도록 몰아붙였다. 자신들이 사랑하고 애정 하는 베어타운이라는 마을과 하키를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 아래, 또 다른 폭력을 가했다. 하키 팀의 에이스 선수가 코치의 딸을 성폭행한 ‘그 일’의 진상을 알게 된 이후에도 말이다. 사람들은 항상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을 선택하게 되어 있으니.


이곳에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저지르는 끔찍한 잘못은 대부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이후, 가해자인 하키 선수가 성폭행을 했다는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는 아무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고 베어타운을 떠났다. 베어타운의 괜찮은 하키 선수들은 거의 다 이웃 마을이자 라이벌인 헤드로 팀을 옮겼다. 후원사는 더 이상 베어타운 하키팀을 후원하지 않게 됐고, 베어타운 하키팀의 오랜 역사는 그렇게 막을 내리는 것 같았다. 하키에 죽고 하키에 사는 ‘하죽하사’ 베어타운 사람들의 분노는 피해자인 마야에게 향했다. 사과하는 대신 말이다. 부인하는 쪽이, ‘별개의 사건’이라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쪽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입만 다물고 있었어도 그들의 유일한 삶의 낙이자 보람이었던 베어타운 하키팀은 건재했을 테니까. 


그렇게 없어지려고 하는 베어타운 하키팀에 정치인이 개입한다. 베어타운 하키팀을 지키기 위해서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정치’와 의탁, 혹은 배척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페테르. 돈이나 정치로 매수할 수 없는 아이스하키 팀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페테르였지만, 베어타운 하키팀이 연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탁뿐. 이미 사형선고가 내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선수도 실력도 없는 팀으로 전략해버린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팀을 지키기 위해 페테르는 희생을 감수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이상을 위해 어느 정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어떤 적들을 상대해야 할까? 권력을 차지하려면. 승리를 차지하려면.


베어타운 하키팀은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한 에이스 벤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다시 혼란과 혼돈에 빠진다. 다수에 속해 있었다가 소수자가 되어버린 벤이. 자신의 삶의 일부라고 여겨졌던 하키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도 고민할 만큼 베어타운은 벤이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은 어느새 ‘감사해하며’ 받아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벤이는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시선은 벤이에게 주홍 글씨로 새겨져 어딜 가든지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다 벤이는 ‘그 일’ 이후로 베어타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마야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나는 피해자가 아니에요. 나는 생존자예요.


진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마을과 함께 무너졌다. 우리가 모든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말을 하기는 쉽겠지만 당신이라고 다르게 대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겁에 질리다 보면, 한쪽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를 받다 보면, 뭘 희생해야 하는지 알다 보면 그렇게 된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우리와 당신들>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소설 속 세상에서나마 선이 이기고 악이 벌을 받는 구도를 원했지만,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정말 매정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베어타운은 무너졌고, 하키팀도 패배했다. 벤이와 마야는 따돌림과 무시를 당했고, 그들을 향한 욕설은 끔찍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의 반만큼이라도 가해자가 겪었다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았더라면, 벤이와 마야의 이야기는 이토록 눈물 나게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베어타운 사람들을 정죄했다. 이들의 편에 서지 못하고, 사과는 못할망정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베어타운 사람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읽은 걸까. 그렇게 베어타운 사람들을 욕하고 정죄하고 그들도 한패라고 소리치는 나도, 베어타운 사람들 입장에선 ‘당신들’에 속하는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사람들의 말이 옳았다. 만약 내 주위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의 주위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베어타운 사람들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베어타운>에서부터 계속 등장하는 겨울 스포츠인 하키는 정말 단순한 스포츠다. 하키 스틱을 들고 퍽을 드리블해 상대방의 골대에 퍽을 많이 넣으면 이긴다. 이렇게 단순한 스포츠와 대조돼 베어타운과 베어타운 사람들은 더욱더 복잡하고 조잡해 보였다. 아니, 그들은 복잡과 엉망 그 자체였다. 정치인이 사람들을 이간질해 자신의 이득만 챙기려고 하는 것도, 그런 정치인들에게 번번이 속는 사람들의 모습도, 스포츠 이외의 것까지 경기장에 가지고 들어가 아이스하키를 망가뜨리고 성인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의 삶을 짓밟으려 하는 모습도. 무모할 정도로 서로를 위하고, 또 바보 같을 정도로 이기적인, 종잡을 수 없는, 그런데 묘하게 현실 세계가 반영된 듯한 <우리와 당신들>. 그렇기 때문에 더 놓을 수 없었던 이 책.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쓰레기를 벗겨내고 애초에 그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들만 남기면 단순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다들 스틱 하나씩 들고, 골문 두 개를 두고. 두 팀으로 나눠서.


궁극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우리와 당신들>에 등장하지 않는다. 100% 선하고 100% 악한 사람이 없다. 누구 하나 미워하거나 누구 하나를 싫어할 수 없다. 누구 하나를 정죄하고 누구 하나를 원망할 수 없다. 아마 프레드릭 배크만이 만들어 낸 인물들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어타운을 싫어할 수가 없었다. 이기적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하는 것이 있었고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베어타운. 희생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베어타운은 곧 쓰러질 것 같이 유약하지만 쓰러지지는 않는다. 조그마한 불씨가 살아 있으니까. 우리와 당신들, 모두가 함께일 때 그 불씨는 타오를 테니까. 내일도 우리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눈이 부시도록.


억지로 해피엔딩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지 않아서 좋다. 현실적이라 좋다. 이런 작가를 알고 있어서 좋다. 명작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베어타운이라는 가상의 마을을 통해 대통합을 이끌어내서 좋다. <우리와 당신들>이 좋은 이유는 한도 끝도 없다. 마을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비춰보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무모하고 고집도 세지만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성실함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베어타운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무언가를 지켜보자. 혼자라면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우리’의 곁에는 언제나 ‘당신들’이 존재하고, ‘당신’ 곁에는 언제나 ‘우리’가 함께한다는 걸 기억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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