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 - 웨이보 인싸 @하오선생의 마음치유 트윗 32
안정병원 하오선생 지음, 김소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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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병을 치료해주는 사람이지. 근데 치료는 약으로만 하는 게 아니야, 마음을 써야지. 최고의 인싸력을 보유한 정신과 의사 하오 선생. 남다른 쾌활함과 독보적인 유머 감각으로 환자들의 마음을 사르르 녹게 만들고 치료하는 데 정말 많은 재능을 보이고 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하오 선생님의 환자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현대인들에게는 너무나 흔한, 하지만 아직도 인식이 좋지 않은 정신병원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을 엮은 <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 


정신 질환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나는 것처럼 우리 몸이 아픈 것일 뿐이죠.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런 정신과 의사는 독보적이었다. 특이하다고 해야 할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진지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무척 밝고 환하다. 정신 질환은 마음의 감기라고 생각할 만큼 나름 오픈 마인드라 생각했는데, 이것 역시 편견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대로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었다. ‘아는 것’이 치료의 기초이자 시작입니다. 지금부터 알아 가면 되니까. 유쾌한 하오 선생님과 그의 엄청난 일상들을 통해서. 


‘영혼의 감기’는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하고 심지어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자폐증, 강박증, 우울증, 히스테리성 발작, 불면증, 폐소공포증, 안면실인증, 노인성 우울증, 조현병 등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마음의 감기’들과 ‘영혼의 감기’들을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사뭇 진지하게 다가간 하오 선생님. 환자를 긍정적인 쪽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기도 하지만, 환자를 잃고 느끼는 낙심과 좌절이라는 감정까지 솔직하게 표현해 사회적인 인식으로 아직까지 나약함의 증거로 여겨지는 정신 질환들과 정신병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환자들의 병적인 정서, 행위에 대한 무시와 오해는 병세를 더욱 악화시킨다. 그러니 어쭙잖은 충고는 던져버리고 그냥 함께 있어 주는 게 어떨까. 


우리는 신이 한 입 베어 문 사과처럼 누구나 결점을 갖고 있다. 만약 그 결점이 비교적 크다면, 그것은 신이 특히나 그 사람의 향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에서 가장 인상적이고도 책을 관통하는 문장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함 없이 위의 문장을 선택할 것이다. 정신 질환, 그리고 정신과 의사와 관련된 책이라기엔 너무나도 귀엽다 느꼈던 표지가 이 문장들로 설명되었다. 정신 질환은 나약함이나 끈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고, 정신 병원에 가는 것은 부끄럽고 창피한 게 아니다. 혹 누군가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단지 너는 보통 사람에 비해 좀 더 향기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단지 그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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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투에고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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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에세이가 엄청난 인기를 끈 이후 서점에서 그런 종류의 책들을 찾아봤다. 그림이 많고 글이 짧아서 책 읽을 시간조차 없는 사람들이 왜 아르테와의 합작을 찾는지 알 것 같았다. 디즈니 캐릭터들 이후에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라이언, 어피치, 네오 이후 네 번째로 나온 주인공은 바로 무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단무지’ 할 때 그 무지라고.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라이언과 어피치보다 무지를 더 먼저 읽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제목이 좋았고, 공감 갔기 때문이었다. 일단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그만두면 돼. 이런 말들이 참 좋았으니까.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해졌어. 키워드는 ‘나’였다. 나를 위로해주는 말, 토닥여주고 용기 주는 말들이 가득했다. 내 인생의 주인공 자리에 나를,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힘차게 첫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연습시켜주는 책이랄까. 누군가는 뻔하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당연하고도 명백한 사실을 우리가 계속 잊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책이 넘쳐나지만 하나같이 공감 받고 사랑받는 게 아닐까 싶다. 아마 우리 사회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위로와 용기였을 거야. 나로 살기 위한 용기. 


그냥 내 마음대로 살아야겠다. 그게 가장 나다운 거니까. 그게 바로 일인칭으로 사는 거니까. 관계에 얽매여 피로한 상황을 벗어나고 난 뒤에 책을 접했더니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말들은 대부분 ‘나’에 관한 것이었다. 제일 중요한 이 사실을 잊고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다른 것들도 물론 좋고 훌륭하겠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단 사실을 잊지는 않았으면. 나라도 날 아끼자는 말은 이제 너무 식상하다. 나를 아껴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나는 나니까, 날 소중하게 여기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이걸 너무 늦게 깨닫지 않았으면. 아직 잘 모르겠다면 무지와 함께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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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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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놀아? 왜 안 해? 왜 안 가?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살아? 왜냐면…… 나는 네가 아니잖아. 하고 싶은 것 없는 백수 박지우.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기 자리 찾아 떠나는데, 방 안에 콕 박혀 인스타그램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의 신세는 처량하기만 하다. 해외여행을 떠난 친구의 사진을 보고 나서 충동적으로 결재 버튼을 눌렀다. 제법 깨끗해 보이고, 무엇보다 한 달 살기에 저렴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원더랜드를 향하여. 최선을 다해 구경하고 신선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열과 성을 다해 찍은 사진을 차근차근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할 것이다. 보여줄 것이다. 진짜 느끼는 여행. 삶의 현장을 체험하는 특별한 여행을 하고 있노라고 하는 결심과 함께. 


누군가는 고복희를 괴팍한 여자라고 정의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단지 고복희는 ‘정확한’ 루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괴팍한 사람, ‘정확한’ 루틴 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은 아마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일 것이다. 오베가 저절로 생각나는 여자, 고복희. 그는 한국인이 잘 찾는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민박 같은 호텔 원더랜드를 경영하고 있다. 타협하지 않고 무뚝뚝한 성격 탓에 한인들과 부딪히기 일쑤고, 재정난은 당연한 일순처럼 찾아왔다. 하나뿐인 직원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최근 유행을 끈다는 한 달 살기를 공략하게 된 고복희와 원더랜드. 맘에는 들지 않았는데, 그렇게 한 달 살기 손님이 찾아왔다. 백수 박지우가. 


이제 뭘 하지. 한국이나 여기나 똑같다. 뭣 좀 해보려고 하면 실패다. 행동 하나하나 실수투성이다. 바보같이 시간만 흘러보내고 있다. 바닥 언저리를 맴도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정말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았다. 앙코르와트를 꿈꾸면서 왔는데, 원더랜드와는 버스로 일곱 시간 떨어진 곳이었다. 안 그래도 떨어져 있는 자존감은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울해하는 박지우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 고복희. 징징거리는 사람을 상대하거나 위로하는 건 고복희가 질색하는 거였지만, 이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신세대 박지우에게 눈길이 갔다. 고복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건지, 박지우는 그렇게 고복희가 굳게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포함해 고복희의 주변을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과거의 그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고복희는 세계와 다시금 마주했다. 


저도 노력하거든요? 제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요. 근데 다들 저만큼은 한단 말이에요. 모두가 빡세게 살아서 제가 빡세게 사는 건 티도 안 나요.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땐 죽도록 하는 사람들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신세대 박지우의 말에 공감을 했다.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은 경쟁의 연속이고 잠깐 숨 돌릴까 하다가도 도태될까 두려워 앞만 보고 달린다. 경주마처럼. 절대 공평하지 않은 세계를 우리는 우리 나름의 방법대로 살아간다. 고복희에게 있어서 그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장영수였다. 정반대였지만 서로의 삶에 색을 칠해줬던 두 사람, 마치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와 소냐가 그랬던 것처럼. 예고 없이 침투해온 남자는 멋대로 사라졌다. 오베 곁을 떠난 소냐처럼 장영수도 고복희의 곁을 떠났다. 사라졌다. 완벽하게. 


나는 앞으로도 계속 원더랜드를 운영할 겁니다. 한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고복희. 그들은 심지어 고복희의 원더랜드를 없애고 그 자리에 새로 교회를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터가 탐났던 그들은 때론 협박, 때론 대화를 통해 고복희를 회유하러 들었지만 그는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니까 가능했던 거다. 손님 몇 없는 민박 같은 호텔을 고복희는 왜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걸까. 고향을 지키기 위해 정부에 맞서 싸우다 대법원이 정부의 편을 들어주자 그대로 무너진 남편 장영수를 생각했던 건지도. 군산 앞바다와 함께, 군산의 갯벌과 함께 무너진 남편을.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힘들어도 꾸역꾸역 살아왔던 기성세대 고복희와, 앞으로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이야기하는 신세대 박지우의 케미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띠지에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이라는 문구가 달려 있어서 애초에 오베와 비교하며 읽기 시작했다. 일단 등장인물들이 주로 한국인이고 캄보디아의 한인 사회가 배경이었기 때문에 좀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것도, 의롭지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도 비슷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론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것에는 의문을 품게 된다. 고복희가 왜 원더랜드에 집착하고 사람들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을 만큼 집중하는지에 대해 납득하는 데 아쉬웠기 때문이다. 원더랜드가 고복희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건지는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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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인생을 위한 고전, 개정판 명역고전 시리즈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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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그리고 공자. 수없이 많이 들어 익숙한 제목과 이름이지만 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 유명세로 따지자면 한 번쯤은 읽어봤을 법도 한데. ‘논어’와‘공자’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위압감,  역사책에서많이본기억과, 한자로되어있기때문에이해하기어려울거라는생각으로지레겁먹었기때문이아닐까. 하지만 평소처럼 가장 좋아하는 책이자 대표적인 서양 고전인<오만과 편견>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서양 고전은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왜 동양의 고전은 읽지 않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 그래서 굳게 결심하고<논어>를 읽게 됐다. 우리 선조들이 사랑했고, 과거에는 필수로 읽어야 했을 정도로 중요했던 인생을 위한 고전, <논어>를. 


의로운 일을 보고서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깜짝 놀랐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엮은 책이라는 것과 공자의 말씀을 기록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짧았고 단도직입적이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남이 알아줄 만하도록 되는 것을 추구하라. 완전 명언 파티였다. 공자와 그 제자들이 살았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였지만, 여전히 공자의 말씀은 유효하다는 것을 깊이 체감했다. 아직까지도 통용되고 있는 구절도 있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을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무엇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같은.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말로만 접해봤던 공자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왜 세계 3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바로 깨달았다. 많은 제자들을 두었고 권력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마당에 그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솔직하기까지 했다. 공자는 지혜로웠고, 예를 갖출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무척 겸손했다. 나는 젊어서 비천하였으므로 다방면의 비루한 일에 능한 것이다. 공자와<논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순간이다. 


공자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발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그때 사람들과 현재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는듯하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배웠는데, 오늘날 배우는 자들은 남의 인정을 받으려고 배운다. 이 말에서 뜨끔한 과거 사람들과 현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공자의 때에도‘오늘날 배우는 자’들의 태도가 그랬다면, 도대체‘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얼마나 옛날 사람인 것일까? 논어를 읽고 실천한다면 훨씬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공자께서는 근거 없는 억측을 하지 않으셨고, 반드시 하겠다는 게 없으셨으며, 고집을 부리지 않으셨고, 나만이 옳다고 하지도 않으셨다. 옛말에 틀린 게 하나 없다고, 공자와 그의<논어>를 더 많이 접했더라면 세상은 얼마나 더 살기 좋아졌을까. 왜 꼭 읽어야 하는 필수 고전이며, 우리나라의 정약용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논어>를 읽고 배웠는지 체감했다. 오히려 서양의 다른 고전보다 우리의 삶과 문화에 더 밀접한 관계가 있어 큰 도움을 줄 텐데, 한자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어려울 것 같아 지레 겁먹고 읽을 엄두조차 내지 않았던 과거의 내가 참 바보스럽다. 더 빨리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나간 일은 탓하지 않는다는<논어>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후회하는 대신 이 책을 꼭 권하기로 했다. 한자 몰라도 읽는 데 문제없다. 주석이 끝내주게 잘 달려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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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갇힌 소년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로이스 로리 지음, 최지현 옮김 / F(에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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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내게 새끼고양이를 주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그 소년이 궁금하다. 1910년, 가을 무렵이었다. 여덟 살 캐티 대처는 의사 아버지를 두어 유복한 가정에서 살고 있었다. 1910년, 가을. 또 다른 소녀 페기 스톨츠는 열다섯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조금 특별한 동생을 떠나 가정부 일을 하게 됐다. 바로 대처 가에서. 새 가정부 페기를 만나기 위해 아버지와 동행한 여덟 살 캐티는 마차가 떠날 무렵, 스톨츠의 창문에서 한 남자 아이를 보게 된다. 조금은 특별했던 그 소년을. 소년의 이름은 제이콥 스톨츠. 이제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가 바로 그 소년 이야기다. 


제이콥 말이야. 제이콥이 머리에 이상이 있다고 그랬잖아. 캐티는 제이콥이 부러웠다. 신발 신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나, 동물들을 돌보고 늘 함께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게. 우연히 대처 가족의 마구간에서 말들과 함께 있는 소년을 발견한 캐티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소년과 비밀스런 만남을 통해 우정을 쌓는다. 그리고 알게 된 제이콥의 특별한 재능. 제이콥은 동물들과 특별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 제이콥은 동물들을 돌보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 거야. 


그때 제이콥은 열네 살이었다. 1911년이었다. 표현하는 방법은 서툴렀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통했던 소년. 동물들을 사랑했고 어떻게 대하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았던 소년. 그런데 1911년, 비가 내리던 10월의 어느 날. 제이콥이 흔적을 감춘다. 그와 함께 아주 작고 소중한 것 역시도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온 마을은 발칵 뒤집히게 되는데, 제이콥이 숨어 있을 만한 장소를 아는 사람은 캐티 뿐이었다. 캐티와 제이콥의 특별한, 그리고 비밀스런 우정의 끝에는 과연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을까. 


로이스 로리의 The Silent Boy가 <침묵에 갇힌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소년 제이콥과 그런 소년을 바라보는 부자 소녀의 우정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면 딱 좋겠다. 작가의 대표작인 <기억 전달자>를 포함한 다른 책에서도 보이는 큰 특징 중 하나는 언제나 어리고 순수한 아이가 화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침묵에 갇힌 소년>. 


제이콥의 머릿속에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 몇 장을 읽으면 금세 침묵하고 있는 소년이 제이콥이라는 것과, 그가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차별을 받고 손가락질 받는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캐티는 제이콥을 신의 손길이 닿은 소년으로 보았고, 소년의 다름을 틀렸다고 하지 않고 특별한 그대로 봐주었다. 순수하게 친구가 되고 싶은 캐티의 진심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캐티의 손길을 피하지 않은 제이콥의 모습은 참 애틋했다. 그 순간 이후로 서로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미리 알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제이콥을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는 에필로그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사라졌다는 제이콥 스톨츠라는 이름과 그와 관련된 기록처럼 소년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열네 살이던 1911년 이후, 제이콥 스톨츠와 그 기록은 <침묵에 갇힌 소년>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가 존재했으며, 동물을 사랑했고, 소년을 어사일럼에 갇히게 만든 사건과 증거까지 모두. 얇고 가벼워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던, 오히려 제이콥과 침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침묵에 갇힌 소년>. 


<침묵에 갇힌 소년>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그 침묵이 어쩌면 어사일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소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어사일럼에 들어가게 된 이후 그는 정말로 세상을 향해 침묵하게 되었으니. 결국 제이콥을 침묵시켰던 것은, 침묵에 갇히도록 만든 것은 제이콥 본인이나 그의 질병이 아니라 세상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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