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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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놀아? 왜 안 해? 왜 안 가?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살아? 왜냐면…… 나는 네가 아니잖아. 하고 싶은 것 없는 백수 박지우.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기 자리 찾아 떠나는데, 방 안에 콕 박혀 인스타그램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의 신세는 처량하기만 하다. 해외여행을 떠난 친구의 사진을 보고 나서 충동적으로 결재 버튼을 눌렀다. 제법 깨끗해 보이고, 무엇보다 한 달 살기에 저렴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원더랜드를 향하여. 최선을 다해 구경하고 신선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열과 성을 다해 찍은 사진을 차근차근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할 것이다. 보여줄 것이다. 진짜 느끼는 여행. 삶의 현장을 체험하는 특별한 여행을 하고 있노라고 하는 결심과 함께. 


누군가는 고복희를 괴팍한 여자라고 정의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단지 고복희는 ‘정확한’ 루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괴팍한 사람, ‘정확한’ 루틴 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은 아마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일 것이다. 오베가 저절로 생각나는 여자, 고복희. 그는 한국인이 잘 찾는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민박 같은 호텔 원더랜드를 경영하고 있다. 타협하지 않고 무뚝뚝한 성격 탓에 한인들과 부딪히기 일쑤고, 재정난은 당연한 일순처럼 찾아왔다. 하나뿐인 직원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최근 유행을 끈다는 한 달 살기를 공략하게 된 고복희와 원더랜드. 맘에는 들지 않았는데, 그렇게 한 달 살기 손님이 찾아왔다. 백수 박지우가. 


이제 뭘 하지. 한국이나 여기나 똑같다. 뭣 좀 해보려고 하면 실패다. 행동 하나하나 실수투성이다. 바보같이 시간만 흘러보내고 있다. 바닥 언저리를 맴도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정말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았다. 앙코르와트를 꿈꾸면서 왔는데, 원더랜드와는 버스로 일곱 시간 떨어진 곳이었다. 안 그래도 떨어져 있는 자존감은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울해하는 박지우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 고복희. 징징거리는 사람을 상대하거나 위로하는 건 고복희가 질색하는 거였지만, 이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신세대 박지우에게 눈길이 갔다. 고복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건지, 박지우는 그렇게 고복희가 굳게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포함해 고복희의 주변을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과거의 그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고복희는 세계와 다시금 마주했다. 


저도 노력하거든요? 제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요. 근데 다들 저만큼은 한단 말이에요. 모두가 빡세게 살아서 제가 빡세게 사는 건 티도 안 나요.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땐 죽도록 하는 사람들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신세대 박지우의 말에 공감을 했다.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은 경쟁의 연속이고 잠깐 숨 돌릴까 하다가도 도태될까 두려워 앞만 보고 달린다. 경주마처럼. 절대 공평하지 않은 세계를 우리는 우리 나름의 방법대로 살아간다. 고복희에게 있어서 그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장영수였다. 정반대였지만 서로의 삶에 색을 칠해줬던 두 사람, 마치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와 소냐가 그랬던 것처럼. 예고 없이 침투해온 남자는 멋대로 사라졌다. 오베 곁을 떠난 소냐처럼 장영수도 고복희의 곁을 떠났다. 사라졌다. 완벽하게. 


나는 앞으로도 계속 원더랜드를 운영할 겁니다. 한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고복희. 그들은 심지어 고복희의 원더랜드를 없애고 그 자리에 새로 교회를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터가 탐났던 그들은 때론 협박, 때론 대화를 통해 고복희를 회유하러 들었지만 그는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니까 가능했던 거다. 손님 몇 없는 민박 같은 호텔을 고복희는 왜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걸까. 고향을 지키기 위해 정부에 맞서 싸우다 대법원이 정부의 편을 들어주자 그대로 무너진 남편 장영수를 생각했던 건지도. 군산 앞바다와 함께, 군산의 갯벌과 함께 무너진 남편을.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힘들어도 꾸역꾸역 살아왔던 기성세대 고복희와, 앞으로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이야기하는 신세대 박지우의 케미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띠지에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이라는 문구가 달려 있어서 애초에 오베와 비교하며 읽기 시작했다. 일단 등장인물들이 주로 한국인이고 캄보디아의 한인 사회가 배경이었기 때문에 좀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것도, 의롭지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도 비슷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론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것에는 의문을 품게 된다. 고복희가 왜 원더랜드에 집착하고 사람들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을 만큼 집중하는지에 대해 납득하는 데 아쉬웠기 때문이다. 원더랜드가 고복희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건지는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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