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갇힌 소년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로이스 로리 지음, 최지현 옮김 / F(에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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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내게 새끼고양이를 주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그 소년이 궁금하다. 1910년, 가을 무렵이었다. 여덟 살 캐티 대처는 의사 아버지를 두어 유복한 가정에서 살고 있었다. 1910년, 가을. 또 다른 소녀 페기 스톨츠는 열다섯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조금 특별한 동생을 떠나 가정부 일을 하게 됐다. 바로 대처 가에서. 새 가정부 페기를 만나기 위해 아버지와 동행한 여덟 살 캐티는 마차가 떠날 무렵, 스톨츠의 창문에서 한 남자 아이를 보게 된다. 조금은 특별했던 그 소년을. 소년의 이름은 제이콥 스톨츠. 이제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가 바로 그 소년 이야기다. 


제이콥 말이야. 제이콥이 머리에 이상이 있다고 그랬잖아. 캐티는 제이콥이 부러웠다. 신발 신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나, 동물들을 돌보고 늘 함께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게. 우연히 대처 가족의 마구간에서 말들과 함께 있는 소년을 발견한 캐티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소년과 비밀스런 만남을 통해 우정을 쌓는다. 그리고 알게 된 제이콥의 특별한 재능. 제이콥은 동물들과 특별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 제이콥은 동물들을 돌보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 거야. 


그때 제이콥은 열네 살이었다. 1911년이었다. 표현하는 방법은 서툴렀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통했던 소년. 동물들을 사랑했고 어떻게 대하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았던 소년. 그런데 1911년, 비가 내리던 10월의 어느 날. 제이콥이 흔적을 감춘다. 그와 함께 아주 작고 소중한 것 역시도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온 마을은 발칵 뒤집히게 되는데, 제이콥이 숨어 있을 만한 장소를 아는 사람은 캐티 뿐이었다. 캐티와 제이콥의 특별한, 그리고 비밀스런 우정의 끝에는 과연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을까. 


로이스 로리의 The Silent Boy가 <침묵에 갇힌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소년 제이콥과 그런 소년을 바라보는 부자 소녀의 우정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면 딱 좋겠다. 작가의 대표작인 <기억 전달자>를 포함한 다른 책에서도 보이는 큰 특징 중 하나는 언제나 어리고 순수한 아이가 화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침묵에 갇힌 소년>. 


제이콥의 머릿속에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 몇 장을 읽으면 금세 침묵하고 있는 소년이 제이콥이라는 것과, 그가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차별을 받고 손가락질 받는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캐티는 제이콥을 신의 손길이 닿은 소년으로 보았고, 소년의 다름을 틀렸다고 하지 않고 특별한 그대로 봐주었다. 순수하게 친구가 되고 싶은 캐티의 진심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캐티의 손길을 피하지 않은 제이콥의 모습은 참 애틋했다. 그 순간 이후로 서로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미리 알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제이콥을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는 에필로그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사라졌다는 제이콥 스톨츠라는 이름과 그와 관련된 기록처럼 소년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열네 살이던 1911년 이후, 제이콥 스톨츠와 그 기록은 <침묵에 갇힌 소년>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가 존재했으며, 동물을 사랑했고, 소년을 어사일럼에 갇히게 만든 사건과 증거까지 모두. 얇고 가벼워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던, 오히려 제이콥과 침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침묵에 갇힌 소년>. 


<침묵에 갇힌 소년>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그 침묵이 어쩌면 어사일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소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어사일럼에 들어가게 된 이후 그는 정말로 세상을 향해 침묵하게 되었으니. 결국 제이콥을 침묵시켰던 것은, 침묵에 갇히도록 만든 것은 제이콥 본인이나 그의 질병이 아니라 세상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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