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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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바로 그 12월의 어느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이었을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만원 퇴근 버스를 탄 우리의 주인공 로리에게 단숨에 몰입했다. 아주 뻔한 전개였지만 만족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로리의 마음에도, 그리고 내 마음에도 약간의 뻔함을 허락할 여유는 있었다. 답답한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눈에 들어온 한 남자가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똑바로 만난다. 눈을 돌릴 수가 없다. 갑자기, 그리고 난데없이, 이 버스에서 내려야 할 것만 같다. 이상한 충동에 휩싸여 있을 때 남자와 눈이 마주친 로리. 이건 쌍방이다. 분명 이 순간 그에게도 같은 벼락이 내리치는 게 보인다. 쌍방이 확실한 운명적인 사랑의 스파크가 튀었고, 당연하게도 버스 안의 로리를 향해 달려가는 창밖의 남자. 많은 사람 틈을 비집고 들어가 로리 앞에 서서 사랑을 고백하는 건 이제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응? 잠깐만. 남자가 타기 전에 버스가 출발했다! 오 이런. 


생각했던 완벽한 로맨스 소설 시나리오에서 약간 벗어나 당황스러웠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여주인공은 로리가 분명해 보였기에 나는 무척 매력적이라고 묘사된 로리의 절친 세라에게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로리와 첫눈에 반해버린 그 버스남은 우연히 로리와 마주칠 것이고, 그렇다면 둘은 그렇게 행복하게 될 거니까. 그런데 버스남을 일 년 내내 찾았지만 찾지 못했을 때, 로리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버스남은 운명처럼 로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세라의 멋진 남자친구로. 세라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로리. 결국 로리는 침묵을 택하고, 마음은 매번 매 순간 타올랐지만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방법으로 택한 여행에서 멋진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로리. 그렇게 로리와 버스남의 인연은 정리되는 듯했으나.. 둘 사이에 튄 스파크는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리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바람직하지도 못했다. 친구를 기만하는 것도 아니고. 한때 로리와 버스남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렸던 사람으로서 로리와 버스남이 세라를 대하는 태도는 도저히 좋게 보아줄 수 없었다. 그 이후부터는 전혀 공감하거나 몰입할 수 없었다. 세라 앞에서 떳떳하지도 못할 거면서 택한 무책임한 행동 이후로, 아무것도 모르는 세라를 대신해 내가 로리와 버스남에게 화를 냈다. 그들은 12월의 어느 날, 서로 첫눈에 반하던 그 순간에 즉각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데 후회를 했다. 물론 그랬더라면 그들의 인생뿐 아니라 많은 등장인물들의 삶 역시 바뀌었겠지만, 현재의 사랑보다 미련이 더 컸던 나머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행동은 옳지 않음이 분명해 보인다. 


12월의 어느 날,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와 시작된 가볍고 보편적인 로맨스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위선적이었고 공감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던 책 <12월의 어느 날>. 기대가 제법 컸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감도 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작가는 결국 로리와 버스남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조지 실버의 사랑 이야기 자체가 보통의 타이밍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아 더 설득력이 있다. 스물두 번째 생일날 실수로 발을 밟은 남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니. 로리와 버스남의 이야기보다는 조지 실버 작가의 연애담이 더 궁금해지는 12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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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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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다. 명문대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했고, 교수이자 번역가이기도 하며, 독립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나는 돈 따위에 관심을 갖는 속물이 아니다. 나는 내 지위와 우아한 태도에 신경을 쓴다. 문학에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이 언제든 마음 편하게 상담할 수 있고, 나를 신뢰하고, 그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예를 들면 박세영이라든가, 박세영, 아니면 박세영 같은……. 글쓰기에 재능을 보이는 박세영, 막 자신의 날개를 펼치려고 하는 어린 나비에게, 나는 무거운 돌을 올려뒀다. 그렇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이코패스다.


단편 소설과 산문을 쓰는 데 재능을 보인 아이에게, 시에서 천재적인 면모를 보았노라고 거짓말하며 독일 시집을 건넸다. 당연한 수순인 양, 여린 나비는 무거운 돌을 감당하지 못했고, 날개가 찢어져 추락했다. 이것도 버티지 못하면서 무슨 문학을 하겠다는 거니. 나는 나비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행복할 뿐이다. 막 날아다니려는 아이를 짓밟는 데 성공했으니. 하나의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그것을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실험이 필요할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뛴다는 식인종인 ‘나’. 뒤처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뛰는 현대인들과 겹쳐 보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게 풍자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는 거였다. 자신을 식인종이라 부르는 이 여자를 나는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럴까? ‘나’는 사이코패스일까? 남을 짓밟고 망가뜨리는 데서 희열을 느끼고, 자신이 그런 존재임을 꽁꽁 숨기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주도면밀함까지 갖췄다. 이 여자, 대체 뭐야? 


왜 너는 나한테 존재하지도 않는 죄책감들을 선사하는지, 왜 아무 죄도 없는 나를 그런 죄인의 세계로 몰고 가는지. 왜 나는 자꾸만 자학하게 되는지. 어린 시절, ‘마녀’를 목격했다. ‘마녀’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 보통의 주인공이라면 그런 ‘마녀’를 알아본 뒤, 눌린 사람들을 구해주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랬더라면 독자들에게 익숙한 또 하나의 성장소설이 되었을지도. 그런데 작가는 흑화 된 주인공을 그렸다. ‘마녀’가 했던 모든 행동들을 하나씩 따라 했다. 그리고 모든 싸움에서 승리했다. 이따금씩 자신의 실체를 들킨 적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나’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바라보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건 완벽 범죄에 가까웠다. 너는 스스로가 저지른 범죄의 흔적들을 나한테 선물처럼 줬어. 나는 너의 쓰레기통이 되었지. 주변에 쓰레기통들을 만들면서. 


너는 완전 제로야. 완전히 텅 빈……. 이제는 알아. 너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어. 너의 실체를……. ‘난해하다’ 이 책을 완벽하게 설명해 줄 단어였다. 난해했다. 뭐라 정의하기 참 어려웠다. 작가가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뭐라고?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나름의 교훈은, 사탕발림에 익숙한, 아직 냉정한 현실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지 않을까. 인생은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인생은 그 무엇으로도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대로 막을 내리는 이 소설. 다 읽었는데도 뭔지 모르겠는 이 느낌만이 이 책을 읽었다는 걸 증명하길 바라는 걸까?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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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너보다 나를 더 사랑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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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삶의 이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너보다 나를 우선순위에 두게 되면 이기적이라고 하더라. 이기적이라는 게 나쁜 줄로만 알아서, 어린 마음에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나는 누구에게든지 친절하게 대했고 불편해도 참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서서히 망가지더라. 고맙다는 말 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더라. 참는 게 모든 일의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착하다는 말이 칭찬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지금부터라도 작가 하다가 말하는 네오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너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로. 


몰랐다. 네오가 쇼핑을 좋아한다는 것도, 트레이드 마크인 단발머리가 ‘가발’이라는 것도.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좋아해서 이따금씩 카카오프렌즈샵 매장도 찾아가고, 매일 쓰는 카카오톡에서도 마주하는 대표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데, 왜 난 몰랐을까. (근데 생각해보니 네오가 고양이라는 것도 카카오프렌즈와 아르테 합작인 이 에세이 시리즈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됐으니 딱히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서툰 위로보다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말들이었다. 내가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건 어떤 것인지 그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져 땅을 뚫고 들어가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큰 소리 내어 말해주고 싶다. 나조차 내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날에도 나는 여전히 괜찮다는 걸 아는 것, 이게 바로 나를 진짜로 사랑하는 나의 모습이라고, 지금 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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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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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나에게서 오직 진실만을 듣게 될 것입니다. 억울하게 재판에 회부되어 변론할 기회를 가진 소크라테스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모함만 하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꿋꿋이 신께 받은 사명을 순종했다며 말한 소크라테스.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 것이 아니며, 고발당한 죄목들과 자신은 아무 관계가 없음을 여러 차례 입증했지만 소크라테스에게 언도된 것은 사형이었다. 추방형과 사형,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순간이 되자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택한다. 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비겁함을 피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다. 불합리와 불의, 불법은 언제나 존재했다. 소크라테스의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소크라테스를 거짓된 말로 고발한 이들을 욕하기보다는, 우선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순간의 편안함을 위해 내 양심을 버리지는 않았는지. 불의에 눈 감고 부조리와 타협하지는 않았는지.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우리가 마땅히 신경을 써야 할 사려 깊고 분별력 있는 사람들은 이 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믿어줄 거라고. 


<소크라테스의 변명>. 참 많이, 자주 들어본 책이지만 읽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세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던 재판 과정, 형이 집행되기 이전부터 나눴던 동료들과의 대화,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죽음까지. 그의 죽음을 생각하며 나누는 소크라테스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크라테스의 변명>. 억울하게 재판에 회부되었고 유죄 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며 참 많이 놀랐다. 사후 세계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삶에 미련을 보이지 않는 태도도 놀라웠다. 죽음을 앞두고도 사람들과 삶, 죽음, 영혼 등 가볍지 않은 주제로 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렇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으며 처음 하게 된 생각 중 하나는 제목을 잘못 지었다는 거였다. 소크라테스는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된 것이기에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함’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변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잘못한 것이 없기에 변명할 게 없다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변명이란 단어의 또 다른 뜻.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힘’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등장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데아, 삶, 죽음, 영혼불멸 등을 다루며 사리를 밝히는 중이었던 거였다. 그런 의미의 변명이라면야, 질문을 통해 논리의 오류를 찾아내는 소크라테스와 제격이었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변명은 추상적인 한 개념을 철학자들이 대화를 통해 어떻게 정의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철학자들의 끊임없는 대화와 그 과정이 궁금하다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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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처방전 - 내 마음이 가장 어려운 당신을 위한 1:1 그림 치유
김선현 지음 / 블랙피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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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내 심리를 알 수 있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자존감이 낮은 당신, 지금 현재 불안한 당신, 마음속이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을 느끼는 당신, 모든 것에 무기력함을 느끼는 당신을 위한 책이 여기에 있다. 특정한 한 그림에 내 눈길이 머무는 이유는 그 그림이 내 현재 감정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당신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내 감정을 되돌아보고 나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을 마련하라는 의미에서 이 책을 추천한다. 미술 치료계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김선현 교수의 신작 <그림 처방전>을!


일단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내용이나 그림을 보며 아쉬웠던 게 아니라, 순전히 책 편집에 있어서 아쉬움을 느꼈다. 그림이 크게 한 면을 다 차지하도록 인쇄돼 있어서 감상하는 데에는 참 좋았다. 하지만 모든 그림이 제각기 다른 위치에 놓여 각자의 장을 이루는 인트로 느낌이다 보니 어느 그림에 눈이 가는지 알기 위해서는 책장을 계속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책에 삽입된 모든 그림들을 한데 모은 뒤 작게 편집해서 인쇄하고 이중 당신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는 그림이 무엇인지 보고 해당 페이지로 이동하라는 안내 문구가 있는 구성이 훨씬 더 나을 뻔했다. 몇 장만 추가하면 더 유익한 <그림 처방전>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두 번째로 느낀 것은 모두 다 부질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감정을 다 조금씩 느끼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인간은 모순 덩어리이다 보니 언급된 대부분의 감정과 상황에 놓여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오류라고 하기엔 뭐 하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았으나 내 심리와 상황을 간파하지 못한 그림들도 더러 있었다. 아무래도 그림은 순전히 '취향' 차이이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깊이 있는 처방을 생각하기보다는 그림과 심리를 이렇게 연관 지어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림으로 심리치료하는 것은 이런 식이구나 하고 맛보기로 여기고 접근한다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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