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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평점 :
안개 낀 새벽, 자전거를 타고 좁은 논길을 따라 출근을 한다. 고개를 들어 안개 속에 가려있는 산의 능선을 응시한다. 새벽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고요하게 들린다. 산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상상만 해봐도 가슴이 마구 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더욱이 밀 향기를 맡으며 시작하는 시골 빵집의 하루,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내가 그리며 바라던 삶이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찌든 도시의 삶에 싫증이 났다. 자연스레 평화로운 시골의 삶이 그리워졌다. 자본주의 병폐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살고 있는 현실의 삶이 싫었다. 아니 벗어나고 싶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다리가 휘청휘청 거릴 정도다. 비효율적인 무한경쟁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숨이 막혔다. 하루하루의 삶이 무의미했다. 월요일이 되면 월요병에 시달리곤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자신감 있는 모습이 좋았다. 그 당당함이 부러웠다. 삶의 본질을 천연효모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자기의 길을 찾은 것이다. 제 1부, 부패하지 않는 경제에서는 저자가 효모빵집을 한 동기와 시골빵집의 마르크스 강의를 통해 자본주의의 대안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현재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지. 자본가와 노동자는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인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정체와 이윤이란 무엇인지. 기술혁신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런 자본주의 모순을 작가의 경험치를 반영해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진정성이 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기보다는 타인(자본가)의 배를 더 불리게 한다. 이 체제에서는 희망보다는 실망과 좌절이 더 크게 느껴진다.
과연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실망과 좌절만 안겨주는가. 작가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토대로 자본주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효모의 발효 원리를 적용시켜 어려운 자본론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냈다. ‘부패하지 않는 빵’과 ‘부패하지 않는 돈’을 같은 이치, 같은 눈높이에서 비교하고 있다. 이스트처럼 인공적으로 배양된 균을 사용하면 부패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결과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이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들어 낸다. 부패하지 않는 돈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돈은 자본주의의 경제 안에서 이윤을 낳는다. 또한 금융을 매개로 하여 신용을 창조하고 그 결과로 이자가 점점 불어난다. 자연계의 법칙에서 물질은 언젠가 없어지기 마련인데 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본만 더 커지고 부자연스러운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이것이 돈(자본)의 모순이고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해답은 자연법칙에 순응하면 된다. 효모를 발효시키듯이 돈을 부패시키면 된다. 효모나 돈도 자연에 맡겨보자는 것이다. 눈사람처럼 자본을 계속 키울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가면 된다. 균이 했던 것처럼 사람이나 지역도 부패하는 경제를 통해 우리 안의 있는 잠재력을 일깨워야 한다. 잠자고 있는 잠재력을 깨워 삶의 본질을 되찾아 보자. 그렇게 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스스로 개척하며 나아가면 된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방법을 제 2부, 부패하는 경제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균을 통한 발효와 부패의 경제’, ‘참다운 시골살이의 순환’, ‘착취하지 않는 경영형태’를 통해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자본주의의 대안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균을 발효시키는 최적의 방법은 자연 재배한 식물을 사용하고 천연 균을 자연의 상태에서 배양하는 것이다. 물도 그 지역 물이 좋고, 밀도 그 지역에서 나는 밀이 좋다고 한다. 그 지역에서 나는 물과 밀로 자연 그대로 균을 발효시켜 빵을 만들 때, 우리의 먹거리로 최상의 상품이 된다고 한다. 균이 좋아하는 환경에서, 공기 속에 흩어져 있는 생명력 있는 균이 내려와 자연 배양하는 것이 최상급 효모를 만드는 길이다. 시골에서의 경제 순환이란 마을기업을 활성화하여 그 지역의 허브 역할을 하게 하면 해결된다. 빵집은 허브의 역할을 수행하는 최적의 장소를 제공한다. 동네에 있는 복덕방이나 복지관처럼 빵으로 지역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게 한다. 그 지역 사람들이 빵집으로 모여들면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활동들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착취하지 않는 경영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면 노동력의 가치도 내려간다. 이러한 반복이 계속 되면 상품과 노동력의 가치가 계속 하락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품과 노동력의 가치를 올리는 길밖에는 없다.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직원들의 복지에 신경을 써 자본 중심이 아닌 사람중심의 사회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하던 사회주의는 어떤가. 그 또한 망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모든 역사적인 사회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몰락할 것이지만, 몰락의 주된 이유는 경제 위기와 공황이 심각해지면서 사회의 물적 ,인적 자원이 점점 더 낭비된다는 점과, 이 과정에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투쟁이 격렬해진다는 점에 있다. 특히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생산능력이 모든 주민들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데도, 일부 거대 자본가들이 모든 이익을 독점하기 때문에 주민들 대부분이 억압과 궁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항이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이게 자본주의의 현실임은 인정하자. 자본주의가 되었건, 사회주의가 되었건, 권력의 이면에 있는 기득권자의 횡포와 권력자의 욕심과 타락이 문제다. 권력을 잡은 자가 이것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평화와 자유가 올 것이다. 현실과 이념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한 탓에 영원한 숙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념의 논쟁에서 벗어나서 진실한 삶, 삶의 본질은 누구나 찾기를 갈망하고 있다. 작가는 삶의 본질을 효모의 부패하는 과정을 통해 은유법으로 성공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패하지 않는 빵에서 부패하는 빵으로, 부패하지 않는 자본주의 경제를 부패하는 경제로,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경험으로 터득한 자본주의의 대안적인 삶을 몸소 실천하며, 자연법칙에 순응하며 사는 삶,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이 책을 통해 나의 꿈도 바꿨다. 평소에 빵을 즐겨먹는다. 빵집을 운영해보고 싶은 시절도 있었다. 효모로 발효 시킨 빵이라. 건강에도 좋은 빵, 여기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효모빵집, 근사하지 않은가. 시골에서 효모빵집을 운영하며 글쓰기를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아직 효모와 빵에 대해서 배울게 많다. 이 책을 통해서 자본론과 글쓰기, 빵집, 이 세 가지 개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생각대로 모든 사물이 움직인다고 한다. 생각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은가.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