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사건이 발생한지가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시간의 힘이 뇌의 망각을 재촉하고 있을 쯤에 몽환화라는 책이 내 눈에 띄었다. 분홍색의 꽃 그림이 들어있는 책 표지의 현란함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몽환화’, 환상속에 피는 꽃. 과연 무슨 내용일까, 하고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이 소설은 사회파 추리소설로서 사회적 이슈를 소설화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숨을 쉬는 박자에 맞춰 글자 하나하나가 제각각 꿈틀거렸다.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아키야마 가와 가모 가의 두 집안에서 벌어지는 의뭉스러운 사건들이 도입부에서부터 장식하고 있다.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무차별 살인사건, 리노의 사촌인 나오토의 자살과 할아버지 슈지의 의문의 타살. 이러한 죽음이 초반부터 독자에게 긴장감을 안겨주었고 관심을 끌었다. 작가의 숨겨진 의도가 피부에 와 닿았다. 심장 박동소리가 두근두근 점점 빨라졌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가모 가의 소타와 아키야마 가의 리노, 그리고 형사 하야세다. 나오토의 자살보다 리노 할아버지의 애지중지한 노란 나팔꽃이 핀 화분이 단초가 되었다. 없어진 화분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이 노란 꽃을 들러 싼 정체모를 사건들이 있음을 초기부터 암시하고 있다.

 

작가는 노란 나팔꽃을 매개체로 이야기를 긴박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10년만의 쓴 작가의 필력이 느껴진다. 미사여구 없이 깔끔한 화자들의 대화, 플롯 간 사건의 전개구성이 짜임새가 있다. 사건의 전개가 중반부로 갈수록, 주인공들은 거미가 먹이를 점점 궁지로 몰듯이 수사망이 좁혀갔다. 그것은 바로 마성의 식물인 돌연변이 꽃, ‘노란 나팔 꽃과 관련이 있었다. 주인공들은 양파를 한 꺼풀 한 꺼풀 벗기듯이 비밀을 하나둘씩 파헤쳐갔다. 노란 나팔꽃에 얽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 주인공 소타와 리노, 하야세는 거침없이 사건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속도와 긴장감이 점점 증폭되어 최고조에 이르렀다. 작가의 화법이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글의 생동감이 넘쳤다.

 

작가는 노란 꽃의 비밀을 꼭꼭 숨긴 채 독자에게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마치 미로 속에 갇힌 물방아개비가 길을 헤매듯이 사건의 실마리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궁금해서 읽는 속도를 더 재촉했다. 책의 후반부로 가야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끝가지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한 작가의 배려일까. 드디어 모든 비밀을 간직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몽환화는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식물의 총칭을 의미한다. , 앞서 발생한 의문의 죽음들은 이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몽환화 씨앗을 먹고 저지른 사건으로 밝혀진다. 환각상태에서 자살을 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해 타인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이 금단의 꽃인 몽환화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끝가지 비밀을 지켜온 아키야마 가와 가모 가의 두 집안의 내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요스케와 다카미. 과연 그들은 무엇을 지켜내려 했을까.

 

두 집안의 내력은 옛날부터 노란 나팔꽃의 사연과 엮여 있었다. 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노란 꽃의 비밀을 끝가지 지켜내는 것이 그들의 책무였다. 마지막에 다카미는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고, 죽음까지 몰고 간 노란 나팔꽃의 씨앗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누군가 감시를 계속 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씨앗의 유출을 막기 위해 다카미 자신이 계속 그 일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맨 마직막장에 소타도 이 사건을 통한 교훈을 하나 얻는다. ‘가령 처리장이 생겨 거기에 묻어둔 방사능 수준이 안전한 수치로 내려가기까지 수만 년이나 걸리지, 실질적으로 이 나라는 이제 원자력발전에서 도망칠 수 없어하면서 그의 전공이었던 원자력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을 폐기하는 것이 유지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더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카미가 말했던 그 세상의 빚을 소타 자신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이다. 다카미가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듯, 소타도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상실감을 맛보았던 원자력발전에 대한 생각을 고쳐서, 아버지와 형이 그랬던 것처럼 의무와 책임감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소설에는 작가의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을 통해 잊고 있던 2011년에 발생한 원전사고에 대한 경각심과 책임의식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몽환화의 주인공들이 말하는 책임의식과 원전사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다. 이 부분이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핵심이다. 무책임, 리더십의 부재로 점철된 세월호 참사. 벌써 세월호 참사가 잊어지고 있다. 분명, 한국 사회도 반 문명주의에 빠져있는 것이다. 배우거나 깨우치려는 생각을 아예 포기해 버렸다. 남의 탓이 아닌 나의 탓으로, 남이 아닌 내가 책임지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산고의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이 고통의 질곡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성심껏 다해서 책임지는 사회, 더 바람직한,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소설이 우리 한국사회에도 경종을 울리기를 바란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박진감이 있었다. 사건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 다행이다. 한꺼번에 맥이 풀렸다.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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