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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가끔 궁금해진다. 진정한 사랑이란 있는 것인가. 그것도 부부간의 사랑에서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이 퇴색되고 책임과 정만 남는다. 자녀에 대한 책임감과 부부간의 애틋한 정만 남는다. 이것은 억눌리는 형태로 폭발을 할 때가 있다. 부부싸움 말이다. 죽일 듯이 싸우면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다’, 라는 말을 상기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 넘어간다. 이 또한 시간의 힘이 약이라고 하면서. 나도 결혼한 지 16년이 지났다. 많은 세월을 아내와 함께 보냈지만 부부싸움을 할 때면 진짜 남과 같다. 아니 남보다 더할 때가 있다. 무서움을 느끼기까지 한다. 우린 서로 사랑을 하는 것인가. 아니 사랑의 흔적이라도 있는 것인가. 의심스럽다.
한편의 감동적인 영화는 나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더하여 몰입을 하게하고 내면의 응어리 진 부분을 밖으로 방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표현 말이다. 내 속에 침잠하고 있는 감정을 밖으로 배출하는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한 개인이 품고 있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내면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속에 있는 비밀을 다 털어놓는 느낌이 어떨까. 폭로하는 수준이다. 단지, 묵직한 주제인 진정한 사랑과 도발적인 섹스가 선을 넘나들면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야기 시킨 것은 이 소설의 흠이라 할 수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차이라 할까.
‘가벼움’이란 것은 너무 선정적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인기를 의식한 탓인지 섹스에 대한 디테일한 부분이 오히려 반감을 사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보다 더 노골적인 성의 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포르노 수준이다. 책에도 영화처럼 ‘19금’이라는 표시를 해야 하지 않을까. 독자의 대상이 어른뿐만이 아님을 작가도 인지하여야 한다. 작가의 말을 직접 들어 보고 싶다. 그 이유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렸던 부분은 개인의 사생활을, 그것도 여자의 비밀을 작가의 필치로 세밀하게 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면의 심리 묘사는 압권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옆에서 누가 나에게 귀에 대고 속사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은 평범하면서 남보다 모자람이 없는 한 주부의 탈선을 다루고 있다. 나이도 그다지 많지 않은 32세. 경제적으로 안정을 주는 든든한 남편과 두 자녀의 엄마, 그리고 기자로서 일을 하고 있는 열정적인 캐리어 우먼. 무엇이 그녀를 우울증에 빠지게 한 것인가. 10년이라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지나온 나날의 회의와 매너리즘, 반복되는 일상의 무력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상실감. 이런 것이 밤이 되면 불면증과 함께 그녀에게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누구나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주인공처럼 탈선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까지지 주인공처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그런 유혹에 흔들릴 때가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과감한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무엇이 옳은지도 잊은 채로. 무모한 용기가 대단하다.
그 무모한 용기 뒤에 순간적인 일탈이 숨어 있다. 순간적인 일탈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불륜을 또 다른 남자에 대한 사랑이라고 오해한다. 뒤 늦게 후회를 하고 수렁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 상처만 남겨 놓았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술이나 마약을 하지만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동반하는 결과를 낳는 것처럼. 그녀의 남편은 아량이 넓어 아내의 불륜을 묻어두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사람이다. 그것이 어떻게 없었던 것처럼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과거의 사랑을 되찾으려 신혼 때 묵었던 장소에 가지만 곧 후회를 하고 돌아온다. 이미 남편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생긴 게 틀림없다.
과연 이 부부는 사랑으로 이를 덮을 수 있을까. 결과는 말없이, 두 사람의 사랑으로 이를 극복한다. 매개체는 패러글라이딩이었다. 처음 해보는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그녀 본연의 모습을 깨닫는다. 하늘을 날면서 신비한 경험, ‘영원’을 경험한 후 ‘내 마음이 우주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에 대한 사랑이 그 무엇보다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하니 실마리가 풀린 것이다. 영혼을 씻어내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감사의 마음이 생겨났다. 힘이 생겼다. 우울증에 빠지게 한 원인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었다. 그녀를 괴롭힌 외로움, 밤의 공포, 변화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이 그대로일 거라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또 다른 도전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해답을 얻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즉, 부부의 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예상 밖의 모습을 계속 보여 주어야 한다. 과거와 현실을 계속 이어주는 끈은 사랑이다. 변화된 모습까지 사랑하게 하려면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라는 말을 깨달으면서 소소한 가족의 품으로,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진정한 사랑이란 ‘내게 도움이 필요할 때 그런 사실을 두려움 없이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부부간의 대화에도 해당한다. 부부간의 대화가 쉽지 않다. 서로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 주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부담이 된다. 단지 위안이 되는 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다. 내 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자기한테 그런 것을 왜 말을 하느냐, 자기도 잘 모르겠다, 하는 식으로 대받아 친다. 이러니 힘든 일이 생기면 함구하는 쪽이 오히려 속편할 때가 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 않은가. 서로 다가가야 한다. 서로간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이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옆에서 내 말을 들어 주는 것이고, 위기가 오면 함께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이 책을 통해서 사랑의 정의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부부의 사랑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