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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상처 입고 소외된 개인의 운명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파고들어왔다. 『지평』 또한 작가가 일생을 걸어온 이 주제의 변주인 작품이며, 이 작품에서도 모디아노의 “기억의 예술”은 진가를 발휘한다. 2010년 출간된 『지평』은 모디아노 소설들의 특성을 견지하고 있으면서도 기존 작들과 차별성을 띤 놀라운 작품이다. 모디아노 작품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이 작품에서도 파리가 소설의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며, 작가의 음악적인 문체, 독특한 상상력, 복잡 미묘한 세계관이 특징적으로 잘 드러난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은터라 더욱 더 기대되는 작품이다.




『정복자들』의 등장인물에게 있어 인생이란 부조리한 것이지만 무의미한(무의미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정복자들』은 가린이란 한 인물에게 점차 접근하여 그의 사고방식과 세계관 변화의 추이를 따라가는 일종의 탐정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말로 자신이 청년 시절 경험한 식민 체제, 격동기 중국의 국민당 활동 등 날것의 경험을 자본 삼아 인간의 존재 방식과 존엄성의 보존이라는 무겁고 철학적인 문제를 손에 잡힐 듯 현실적으로 전달한다.

부조리할지라도 인생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총 대신 펜을 든 행동하는 지성 앙드레 말로의 인생관이 오롯이 드러난 역작이다.







오코너는 인간 실존의 모순과 부조리, 허위와 위선을 해학적인 언어로 그려 냄으로써 극적인 재미를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과 독자들로 하여금 강렬한 구원의 순간을 체험하게 했다. 요컨대 신을 향한 믿음을 잃은 현대사회에서 기만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은 그러한 일상이 너무도 견고하기에, 무자비한 폭력이나 예기치 못한 죽음과 같은 매우 기이하고도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삶의 실체―진실과 대면하게 되고, 그리하여 성숙한 자기 인식의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초월적인 신의 신비를 깨닫게 된다고 여겼다.





스쳐지나간 한 존재에 대한 세밀한 기록
1960년대 파리 오데옹 사거리의 카페 ‘르 콩데’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거리의 모습처럼 카페가 가죽제품 전문점으로 변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의 기억과 회환은 자신의 세계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젊음’이라 불리는 카페 ‘르 콩데’는 공허한 삶 속에서 정점을 찾기 위해 모여든 보헤미안들의 안식처이다. 그들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 보헤미안의 젊음을 구현하거나 잃어버린 젊음의 향수 안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변함없이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잠시 램프 주위를 맴도는 나방들을 망각으로부터 구해주려고” 하듯 그림자뿐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기억나지 않는 과거와 살아가야 할 미래 사이에서"

뉴욕 센트럴 파크, 아침 여덟 시. 파리경찰청 강력계 팀장 알리스와 재즈 피아니스트 가브리엘은 각각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묶인 상태로 공원의 숲속 벤치에서 잠을 깬다.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이로 한 번도 만난 기억이 없다. 전날 저녁 알리스는 친구들과 파리의 샹젤리제에서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차를 세워둔 주차장까지 걸어간 게 생각나지만 이후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가브리엘은 전날 더블린의 재즈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두 사람은 어쩌다가 그토록 황당하고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기욤 뮈소의 새 스릴러 소설 <센트럴파크>다. 등장인물들이 '형사' 또는 '범인'이라는 고전적 설정에 치우치기보다는 인간의 고뇌와 심리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생동감 넘치는 입체적 인물로 그리고 있는 게 특징이다. 기억을 맞추어가며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다 보면 스릴러적 반전과 함께 캐릭터들의 사연에 감추어진 드라마도 함께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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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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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자유와 고독의 위험한 결탁이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노인이 기억을 상실하면서 현재와 과거라는 혼돈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는 평생 살인에 대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왔다. 살인에 대한 희열 말이다. 그 결과로 고독이 주어진 것이다. 그는 자유와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다. 냉철한 성격을 지닌 사이코패스이지만 인과응보의 결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 고통조차 분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벌로 고독이라는 외로움과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어버린다. 그 딸조차 망상속의 산물이지만 자기의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겪는다. 오히려 기억을 상실하면서 고통의 무게가 가중되었다. 아버지까지 죽인 살인마가 딸에 대한 집착이란 웬 말인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왜 이런 인물을 창조했을까.

 

주인공인 김 병수는 치매 증상이 있는 70세 고독한 노인이다. 30년간 살인을 꾸준히 해오다가 25년 전에 은퇴한 연쇄살인범이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김 병수가 또 다른 살인마로부터 자기 딸을 구해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다르다. 김 병수는 딸의 결혼 상대가 살인마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김 병수 본인의 살인 의지를 은연중에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딸을 가상의 인물로 만들어서 피해자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인물 설정이 살인에 대한 쾌락을 맛보려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또한 이 소설은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한다. 깊이 생각할수록 여백에 많은 질문과 해답이 들어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문장은 길지 않지만 생각 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체가 책 전반에 걸쳐 듬성듬성 나타난다. 대충 쓴 것 같지만 작가의 처절한 사투가 여백에서 꿈틀거림을 느낀다. 이러한 여백과 절제된 언어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책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주인공의 치매증상이 소설 속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것도 뒤에서 알게 되지만 말이다. 중간 중간에 이러한 치매 증상을 복선으로 깔아놓아서 오히려 독자들에게 혼선을 일으키게 한다. 읽다보면 필름이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독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망각의 덧을 놓은 셈이다. 그나마 결론 이 하나의 정점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그것은 바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살인범의 기억 망상이었다. 이렇게 대혼란의 서막이 내리지만 왠지 개운치가 않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결론이 명쾌하지 않게 끝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전이가 된다. 독자들도 함께 기억망상 속에 갇혀 있게 한다. 작가와 주인공, 독자들의 눈높이가 같아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시각으로 썼기 때문에 한번 정독을 해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작가가 함정을 파 놓고 독자들이 덧에 걸리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은 내 소설이다.’라고 하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는 기억 상실이라는 매개체로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것이다. 기억 상실로 인해 과거에 저지른 만행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은 공평했다. 당연히 죄의 대한 벌을 받아야 하지 않은가. ‘죄와 벌에서도 살인에 대한 동기를 합리화시킴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죽어도 마땅한 인간이기 때문에 죽였다는 논리이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이다. 끝내는 사랑의 힘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복되지만 죄에 대한 결과는 피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와는 다르다. 자신의 죄를 뉘우칠 시간이 없다. 뉘우치려면 이미 했어야 했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기억 상실이라는 무거운 벌을 받고 있기 때문에 반성할 기회조차 없어진 게다. 무서운 것은 악이 아니고 시간이라고 한 게 이해가 된다.

 

우리도 시간의 망각 속에 살고 있다. 잊고 싶은 것은 빨리 잊어버리고,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은 추억만 남기고 싶어 한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나쁜 기억은 빨리 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지 않는다. 신은 그런 능력까지 사람한테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 속에 있는 세포가 살아나서 괴롭히는 것은 말로만 들어도 끔직하다. 그런 끔직한 필름이 재생되지 않음을 감사해야 한다. 그 증상이 크지 않기 때문에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게다. 주인공이 겪은 기억의 망각과 평범한 사람의 그것과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김 병수는 괴로움조차 모르는 시간의 함정에 갇혀 있다. 하지만 이런 반전을 노리는 게 아닐까. 그는 지능적으로 시간의 함정에 스스로 빠진 것일 수도 있다. 사이코패스는 긍정적인 성격의 보유자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는 오히려 치매라는 병의 힘을 빌려 현재의 상황에서 탈출을 노렸을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이런 상황까지 극복하고도 남을 인간 아닌가.

 

주인공 김 병수는 살인을 객관화 시키고 있다. 또한 살인 동기가 쾌락에서 필요로 바뀌었다.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서, 필요에 의해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살인 계획을 세웠다. 목적이 바뀌면서 인간의 모습을 되찾고 있는 게다. 이렇게 사이코패스에서 평범하고 나이든 노인으로 변모하면서 나약해진 모습을 보인다. 죽음이 다가오면 누구나 마음이 약해지고 인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쾌락에서 필요, 또 다시 후회로 오는 게 인생의 법칙인 것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후회를 한들 이미 배는 떠나버렸다. 자유와 고독은 한 배를 탈 수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쾌락이라는 자유를 얻은 대가로 고독이 밀려온 것이다. 자유와 고독의 위험한 결탁으로 끝내 후회만 남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김 병수는 영원한 시간이라는 감방에 갇혀 퇴역한 살인마로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 선은 선으로 되돌아오고 악은 악으로 돌아온다는 진리. 이 책을 통해서 선과 악에 대해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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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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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가끔 궁금해진다. 진정한 사랑이란 있는 것인가. 그것도 부부간의 사랑에서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이 퇴색되고 책임과 정만 남는다. 자녀에 대한 책임감과 부부간의 애틋한 정만 남는다. 이것은 억눌리는 형태로 폭발을 할 때가 있다. 부부싸움 말이다. 죽일 듯이 싸우면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다’, 라는 말을 상기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 넘어간다. 이 또한 시간의 힘이 약이라고 하면서. 나도 결혼한 지 16년이 지났다. 많은 세월을 아내와 함께 보냈지만 부부싸움을 할 때면 진짜 남과 같다. 아니 남보다 더할 때가 있다. 무서움을 느끼기까지 한다. 우린 서로 사랑을 하는 것인가. 아니 사랑의 흔적이라도 있는 것인가. 의심스럽다.

 

한편의 감동적인 영화는 나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더하여 몰입을 하게하고 내면의 응어리 진 부분을 밖으로 방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표현 말이다. 내 속에 침잠하고 있는 감정을 밖으로 배출하는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한 개인이 품고 있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내면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속에 있는 비밀을 다 털어놓는 느낌이 어떨까. 폭로하는 수준이다. 단지, 묵직한 주제인 진정한 사랑과 도발적인 섹스가 선을 넘나들면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야기 시킨 것은 이 소설의 흠이라 할 수 있다. ‘무거움가벼움의 차이라 할까.

 

가벼움이란 것은 너무 선정적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인기를 의식한 탓인지 섹스에 대한 디테일한 부분이 오히려 반감을 사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보다 더 노골적인 성의 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포르노 수준이다. 책에도 영화처럼 ‘19이라는 표시를 해야 하지 않을까. 독자의 대상이 어른뿐만이 아님을 작가도 인지하여야 한다. 작가의 말을 직접 들어 보고 싶다. 그 이유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렸던 부분은 개인의 사생활을, 그것도 여자의 비밀을 작가의 필치로 세밀하게 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면의 심리 묘사는 압권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옆에서 누가 나에게 귀에 대고 속사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은 평범하면서 남보다 모자람이 없는 한 주부의 탈선을 다루고 있다. 나이도 그다지 많지 않은 32. 경제적으로 안정을 주는 든든한 남편과 두 자녀의 엄마, 그리고 기자로서 일을 하고 있는 열정적인 캐리어 우먼. 무엇이 그녀를 우울증에 빠지게 한 것인가. 10년이라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지나온 나날의 회의와 매너리즘, 반복되는 일상의 무력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상실감. 이런 것이 밤이 되면 불면증과 함께 그녀에게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누구나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주인공처럼 탈선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까지지 주인공처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그런 유혹에 흔들릴 때가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과감한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무엇이 옳은지도 잊은 채로. 무모한 용기가 대단하다.

 

그 무모한 용기 뒤에 순간적인 일탈이 숨어 있다. 순간적인 일탈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불륜을 또 다른 남자에 대한 사랑이라고 오해한다. 뒤 늦게 후회를 하고 수렁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 상처만 남겨 놓았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술이나 마약을 하지만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동반하는 결과를 낳는 것처럼. 그녀의 남편은 아량이 넓어 아내의 불륜을 묻어두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사람이다. 그것이 어떻게 없었던 것처럼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과거의 사랑을 되찾으려 신혼 때 묵었던 장소에 가지만 곧 후회를 하고 돌아온다. 이미 남편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생긴 게 틀림없다.

 

과연 이 부부는 사랑으로 이를 덮을 수 있을까. 결과는 말없이, 두 사람의 사랑으로 이를 극복한다. 매개체는 패러글라이딩이었다. 처음 해보는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그녀 본연의 모습을 깨닫는다. 하늘을 날면서 신비한 경험, ‘영원을 경험한 후 내 마음이 우주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에 대한 사랑이 그 무엇보다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하니 실마리가 풀린 것이다. 영혼을 씻어내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감사의 마음이 생겨났다. 힘이 생겼다. 우울증에 빠지게 한 원인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었다. 그녀를 괴롭힌 외로움, 밤의 공포, 변화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이 그대로일 거라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또 다른 도전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해답을 얻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 부부의 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예상 밖의 모습을 계속 보여 주어야 한다. 과거와 현실을 계속 이어주는 끈은 사랑이다. 변화된 모습까지 사랑하게 하려면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라는 말을 깨달으면서 소소한 가족의 품으로,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진정한 사랑이란 내게 도움이 필요할 때 그런 사실을 두려움 없이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부부간의 대화에도 해당한다. 부부간의 대화가 쉽지 않다. 서로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 주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부담이 된다. 단지 위안이 되는 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다. 내 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자기한테 그런 것을 왜 말을 하느냐, 자기도 잘 모르겠다, 하는 식으로 대받아 친다. 이러니 힘든 일이 생기면 함구하는 쪽이 오히려 속편할 때가 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 않은가. 서로 다가가야 한다. 서로간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이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옆에서 내 말을 들어 주는 것이고, 위기가 오면 함께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이 책을 통해서 사랑의 정의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부부의 사랑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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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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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숨겨진 진실

 

작년 버킷리스트에 우리나라 역사 심도 있게 공부하기가 한 칸을 차지할 만큼 역사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역사에 대한 흥미와 매력을 느낀다. 이유는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며 알아가는 묘한 수수께끼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파면 팔수록 빠져드는 인간사의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권력의 정점인 왕을 중심으로 갈등과 대립이 펼쳐지고, 심지어는 죽고 죽이는 궁중사는 과히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목숨을 내놓고 다툼을 벌이는 정쟁과 권력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 과연 권력이란 무엇인가. 왜 자기의 파멸을 직감하고서도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권력 앞에 스스로 무너지는 수많은 정치가들. 그들은 무엇을 쫓고 있는가. 달콤한 꿀에 유혹되어 결국에 죽음을 맞이하는 벌처럼 권력의 속성도 이와 같다. 권력의 유혹에 많은 사람들이 현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권력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처럼 권력 앞에서는 두 개의 태양이 동시에 뜰 수 없는 것이다. 권력은 비인간적이고 몽매주의에 빠지게 한다. 이 책은 사도세자가 정쟁의 제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사도세자의 광기와 반역의 죄로 영조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결론짓는다. 이 내용을 보고 처음에는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부모가 공조하여 자기의 아들을 죽인 것이다. 친모인 선희궁이 광기어린 아들을 죽여야한다고 영조에게 간언을 한 것이다. 파렴치한 권력의 현실과 비장한 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도세자는 광기로 인한 자살미수와 살인, 거기에다 반역까지 앞뒤 안 가리고 만행을 저지르다 죽음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역사 속 인물들과 마주할 때 그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그들의 입장이 되어본다.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진퇴양란이다. 그렇다고 아들을 죽인 것은 권력의 야만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색이 깊어지면서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이입이 쉽게 되었다. 역사속의 인물들이 현실에서 꿈틀거려 살아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했다. 소설보다 더 흥미로웠다. 사건의 소용돌이에서 실마리를 찾는 추리소설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1, ‘사도세자의 어른들에서는 세자가 성장하면서 궁중에 있는 어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것은 당연하다. 폐쇄된 궁궐 안에서 생활이란 어떠했을까. 왕실의 법도를 지키며 갑갑하고 단조로운 일상이었을 것이다. 세자도 이러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영조를 비롯해서 인원왕후, 정성왕후, 선희궁에 이르기까지, 사도세자는 그들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갈등까지 그대로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왕실의 준엄함과 영조의 엄격함이 어린 세자에겐 크나큰 성격장애로 이어지게 했다. 광기의 서막을 초래한 원인이었다. 2, ‘생장과 교육에서 세자는 왕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부왕인 영조의 질책을 많이 받았다. 대리청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어린 세자의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 했지만 그 때마다 칭찬보다는 질책이 난무했고, 세자는 이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자립심이 부족한 세자에게 당연한 결과였다. 세자는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 예술가적 소질이 있었다. 국정실습보다는 노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영조는 자기기준에 맞춰 더 엄하게 왕의 길을 가르쳤다. 여기에 더하여 조선시대의 반사회적 교육과 비자주적 교육이 문제였다. 세자 스스로 자존감을 키울 수 없는 교육환경이었다.

 

3, ‘광증의 전개에서는 영조실록이나 한중록에 실려 있듯이 세자의 광증은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본인의 자살시도를 비롯해서 100여명의 내인을 죽이고 자기의 후궁까지 죽인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 가학증까지 더해졌고 죽기직전에는 생모 선희궁과 부왕인 영조까지 살해하려 했다. 광기와 권력의 합작품이 아닐 수 없다. 4, ‘죽음과 사후에서 영조는 결국 아들을 8일 동안 뒤주에 갇히게 해서 죽음으로 몰았다. 죽음으로 가는 길은 초라했다. 대리청정을 한 권력자의 최후의 모습이 고작 이런 모습이었단 말인가. 결국 세자는 광기로 인한 반역죄로 죽었지만 아들을 죽인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사람인 이상 괴롭고 후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조는 세자를 죽인 후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의기양양하게 환궁했다. 여기에 권력의 냉혹함과 두 얼굴이 숨겨져 있다. 더욱이 영조는 자신의 잘못을 신하 탓으로 돌리는 책임회피까지 했다. 신하들의 모함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한 것이다. 5, ‘정조의 길에서는 정조 또한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을 죽였다. 권력의 중심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려 했다. 정조는 만인지상의 임금이 되었지만 그 대가로 많은 목숨을 땅속에 묻어야 했다.

 

숙종, 영조, 정조의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시기였다. 특히, 영조와 정조는 자신들의 출신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군주들이었다. 비록 누구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했지만 그들 자신은 불행했을 것이다. 권력의 함정에 빠져 권력의 무상함을 맛보았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유혹 속에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쉽지는 않다. 누구나 권력을 잡으면 쉽게 놓지 못한다. 권력의 최종 종착지는 권력의 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시도조차 않는 것이 상책이다. 비록 권력을 잡았다 해도 내려놓을 때를 잘 살펴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 대처 방법이다.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권력의 덧에 걸리지 않도록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 때문에 나누지 않는 권력은 항상 외롭고 위태롭다. 아무리 맛있는 먹잇감이 있어도 권력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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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년 축하합니다. 저렴한 가격과 당일배송과 메일로 전송되는 책관련 정보가 가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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