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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정
조너선 프랜즌 지음, 김시현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이 책의 결말은 희망의 말로 끝난다.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표현한 이 짧은 문장이 해탈의 경지를 느끼게끔 해준다. 소설을 읽고 나서 한참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동의 여운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터. 그것이 소설이 주는 강력한 힘임을 다시 한 번 깨달게 해준다.
하지만 어머니인 이니드의 마지막 말에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그녀가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은 것은 어떤 것일까. 첫 번째 가정은 가부장적인 남편인 알프레드가 죽음으로써 생기는 해방감일 수도 있고, 두 번째 가정은 고난을 극복한 자녀들이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아가는 것을 본 후의 안도감일 수도 있다. 마지막은 살고 있던 집이라든가, 남편의 연금으로 인한 안정적인 경제적 뒷받침이 큰 작용을 한 듯하다. 어찌됐든 그녀가 부러운 건 사실이다. 아니 부럽기보다는 과거보다 미래를 향한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 책은 저자가 긴 세월 동안 –8년 동안이나- 퇴고를 거쳐 완성된 작품인지라 밀도가 굉장히 높고 잘 읽혀지지가 않는다. 특히 과한 비유법을 사용한 게 눈에 띄었고 이것이 흠이라면 흠이겠다. 그것이 읽는 독자에게 의미전달이 어렵게 하는 역할을 초래했다. (무슨 의미인지 한참 생각해야 되는 문장들이 많이 보였다. 지적인 내용도 많았지만.)
반면에 한 가족의 삶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엮었기 때문에, 그 방대함(하나의 장이 하나의 소설이 될 만큼)에 놀랐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책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꿰뚫는 장치– 저자의 의도는 과히 대가의 솜씨라고 할 만하다. 단지 끝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게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독자들에게 그들의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지를 궁금증으로 남겨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게 소설의 본질에 더 충실한 끝맺음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저자의 세밀한 묘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알프레드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벽에 똥칠하는 장면은 –사실 이 책에서는 똥과 대화를 나눈다.- 세밀함도 세밀함이지만 소설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특히 이 소설은 현대인들의 감정에 많이 맞닿아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알프레드), 치매라는 병에 걸려 병과의 사투를 벌이는 장면 그리고 가정적인 – 지고지순한 – 어머니의 모습(이니드)과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고부갈등, 그 속에서 숨을 죽일 수밖에 없는 남자(개리)의 가련함을 보고 있노라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모습은 다 같구나 하는 통찰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부모의 단점이 자식들에게 대물림이 되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나에게도 반성을 하게끔 만들었다. 부부싸움을 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겠다, 는 생각 (싸우지 않을 수는 없기에, 아이들이 있을 때는 눈치를 봐야 하지 않을까.)을 하게 했다.
결국 어머니의 바람대로 가족이 크리스마스 때 한 자리에 모이기는 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가족 간의 유대감이 많이 결여된 상태에서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바람을 자기주장만 하다가 화목한 크리스마스의 식사는 초라하고 썰렁해지고 만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측은지심과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 그리고 자식들 간에 그나마 남아있던 우정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들도 명절 때 많은 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잘 나가고, 어떤 이는 못 나가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오지 않는 식구들을 볼 때, 나도 언젠가 저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숙연함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니드의 바람이 통해서일까, 중간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아쉽다고 했는데 그건 소설론으로써 말한 것이고, 이렇게나마 마지막 장을 긍정과 희망으로 넘치게 한 것은 신의 한수라고 본다. 상상보다는 실체가 더 좋아 보이는 까닭이다. 감동적인 드라마를 오랫동안 본 느낌이 들어 울컥도 했지만, 이 두꺼운 책을 읽었다는 통쾌함도 맛보게 해준 뜨거운 소설이었다. 가슴 뭉클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