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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평점 :
서평은 한계가 분명한 글이다. '서적에 대한 비평과 평가'라는 목적성이 분명한데다가, 서평이 발표되는 매체의 특성이 서평을 신작에 대한 소갯글 정도로 제약하는 풍토도 있다. 이른바 '주례사 서평'이 탄생한 것도 그런 배경이 한몫한다. 그렇다고 서평이란 글이 의미 없지 않다. 일간지 귀퉁이의 짤막한 신간 소개에 비하면, 적어도 서평은 읽는 이로 하여금 해당 서평 책을 직접 읽고 싶게끔 하는 어떤 '마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서평은 한계가 분명한 글인 만큼, 어떤 내용으로 그 한계가 채워지느냐가 중요해진다. 따라서 서평에도 '고수'가 있기 마련이다. 비록 인터넷의 발전은 서평 쓰기의 문텩을 대폭 낮추긴 했지만, 서평의 고수임을 자처할 수 있는 이들은 얼마 안 된다. 『 한 권의 책』의 저자인 최성일은 아마도 그 고수 중 일인자가 아닐까 싶다.
최성일은 『출판저녈』을 시작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서평을 전문으로 썼던 출판 평론가다. 십여년간 서평을 전문적으로 쓰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한 덕분에, 그 내공이 쌓이고 쌓여서 국내외 218명 사상가의 주요저작을 일별하는,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전5권)』이라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 서평 모음집인 『한 권의 책』은 다소 밋밋한 것도 같다. 하지만 서평이야말로 저자의 본령인 만큼, 이 책엔 저자의 본색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성일의 서평은 책을 비판하는 데 있어서 거침없다. 장성익은 발문에서 저자를 이렇게 평했다. "그는 입장과 관점이 분명한 사람이었고, 그것을 글에서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 그것이 가지는 일종의 위험부담을 익히 알고 있을 터인데도, 책을 대하는 그의 그런 태도는 한결같앗다." 그런 저자의 비평의식은 책 속에서 쉽게 발견된다. 이를테면, 천정환의 『근대의 책읽기』에 대한 서평을 살펴보면, "이 책의 실증이 그리 탄탄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빈곤한 자료로 무리한 추론을 감행해 해석의 과잉을 빚기도 한다"고 비판한 대목이 있다. 논리와 합리에 기반한 그의 비판은, 독자로서 전혀 불편하지 않다. 평자로서 저자가 지닌 미덕이다.
저자 최성일은 마흔넷의 이른 나이에 뇌종양으로 별세했다. 그게 올해 7월의 일이다. 『한 권의 책』이 그의 유고작인 셈인데, 그런 이유로 이 책의 서문은 저자가 아닌 그의 아내가 썼다. 아내의 글엔 "책을 볼 때는 적어도 손을 씻고 봐야 한다"고 말했던 저자의 독서관을 비롯한 생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평의 교본과도 같은 이 책을 읽으며 독자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저자의 인간적 모습을 아내의 글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은 고 최성일이 쓴 책이지만, 그의 아내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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