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익한 책을 한 권 만났다. 전문 교정자 김정선 씨가 쓴 『동사의 맛』이라는 책인데, 제목이 주는 기대감대로 우리말 동사의 깊고 진한 ‘맛’을 맛보고 즐기는 기회가 되었다. 알다시피 동사는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다. 우리말로는 ‘움직씨’라고도 하는데, 확실히 동사라는 말보다 이쪽이 와 닿는 정도가 크다. 마찬가지로 타동사를 ‘남움직씨’, 자동사를 ‘제움직씨’, 완전 동사를 ‘갖은움직씨’, 본동사를 ‘으뜸움직씨’, 보조 동사를 ‘도움움직씨’라고 부르면 그 의미가 더 확연해진다. 움직임에 대한 우리말 고유의 섬세한 묘사가 단어 자체에 고스란히 녹아든 탓이다.
이 책을 읽고 뜻하지 않게도 사람이 할 수 있는 동작이 되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가름하다, 감치다, 깁다, 공글리다, 궁굴리다, 까부르다, 다그다, 도리다, 바루다, 빻다, 뻗대다, 에다, 에돌다, 우짖다, 지피다, 호리다, 후리다…. 평소 의식하지 않는 사소한 동작에도 이렇게 합당한 말이 따라붙는다. 아주 생소한 말도 입으로 여러 번 되뇌다 보면 자연스레 그 움직임이 연상되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생명체이니까 그렇다. 언어는 그 본질에 복무할 따름이다.
삶에서 멀어지는 움직임과 움직씨
듣기 좋고 말하기 좋은 말들이지만, 우리 입으로 그리 자주 내뱉는 말은 아닌 듯 하다. 더 쉬운 말로 대체된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를 따져보자. 어쩌면 우리 몸이 그 움직임을 그만큼 잊었기 때문은 아닐까. 현대인이 살면서 옷 솔을 감치고, 바닥을 공글리고, 나무를 도리거나 후릴 일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과거에는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거나 못하게 되자, 그 말들도 자연히 의미를 잃고 사그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 말들을 다시 일상 무대에 세우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그런 움직임을 행해야 한다고 말할 건 아니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우리 행위가 빗은 부산물일 뿐이다. 이 시점에서 정말 복원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말들이 아니라 그 말들의 연원이 된 움직임이여야 하지 않을까. 처음 말이 만들어졌을 때처럼, 몸을 움직이면 움직씨도 마땅히 따라오게 된다. 말이 풍부해지고 나면, 그 말들로 꾸며질 우리 삶도 그만큼 풍부해질 터이다.
현대인이 유달리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바쁜 와중에도 이런저런 운동과 소소한 취미 생활에 부지런히 몰두하는 것도 현대인의 모습이다. 다만 운신의 폭이 과거에 비해 아주 좁은 것뿐이다. 무엇보다 과거에는 꼭 해야 할 일을 지금은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장작을 패거나 옷을 짓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기술과 문명 발전이 전부 이룩한 성과다. 하지만 때로는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일부러 함으로써 더 행복해지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무엇보다 움직이는 생명체이니까 움직임으로써 살아 있음을 더욱 실감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 살아 있다는 실감은 정서적 충만함의 원인이 되는데, 주로 행복은 그런 데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같은 사람은 오로지 더 나은 삶을 위해 월든 호숫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집 이외에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과 음식도 대부분 자급자족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일이지만, 그때도 소로의 이러한 삶의 방식은 문명에 반하는 혁명으로 간주됐다. 소로의 혁명 실험은 2년 2개월하고도 이틀에 그쳤지만, 이후 많은 이들이 소로가 했던 방식에 따라 손과 몸을 움직이며 살았다. 모리스 미첼, 리처드 그레그,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같은 이들이 소로 못지않은 소박한 삶의 예찬자가 되었다. 지금 소개할 윌리엄 코퍼스웨이트도 그런 바로 삶을 살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삶을 살았으므로, 꾸며줄 말들도 아주 많다.
내 손으로 만드는 삶
내가 중점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소박한 삶’이 아니다. ‘유르트 디자인’도, ‘사회 변화’도 아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모두 중요한 것이어서 내 시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핵심은 아니다. 내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사람들을 ‘격려’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추구하고, 실험하고, 계획하고, 창조하고, 꿈꾸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서로를 격려해준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핸드메이드 라이프』,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 돌베개), 14쪽

윌리엄 코퍼스웨이트는 미국 메인 주 숲 속에서, 저급화된 물질문명에 반대하며 40여 년간 자급자족하는 생활방식으로 소박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또 그는 오늘날 실생활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대안 기술, 풍속, 디자인을 찾아 세계 각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 자신이 소박한 삶의 실천가이면서, 앞으로 소박한 삶을 살아갈 이들을 위해 사회적·문화적 기반을 다지려 노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소박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삶의 태도에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윌리엄 코퍼스웨이트는 오늘날의 관점을 빌리자면 종합예술인이라 부를 만하다. 그는 우선 천생 교육자이자 농부였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주거공간인 ‘유르트’에 매료되어 북미에 유르트 디자인과 건축술을 도입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배우고 익힌 수공예로 각종 일상용품을 직접 만드는 장인이자, 자신의 소박한 일상을 꼼꼼히 기록한 작가이기도 했다. 뭐든 직접 해야 하는 자급자족의 생활방식이 그를 종합예술인으로 만든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소박한 도구들을 직접 만드는 일을 가장 즐겼다. 숲 속 생활에 필수 도구라 할 수 있는 손도끼를 직접 만들며, 그는 자신의 방식이 사회를 이롭게 하리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광폭 손도끼를 직접 만들어본 경험은 나에게 여러모로 소중한 것이었다. 먼저 이 일은 내내 신나는 모험이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연장이 모양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에서 부터 남들이 만들어주던 것을 내가 직접 디자인하는 것, 그리고 결국에는 내 연장을 직접 만드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그랬다. (…) 이런 과정은 우리가 얼마나 여러 방면에서 모험을 즐길 수 있는지 실증해주고 있다. 서민적인 도구들에 대한 개념을 확립해 나가는 동안 디자인하는 즐거움, 손을 쓰는 즐거움, 마음을 쏟아 일하는 즐거움을 두루두루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경험이 나에게 가져다준 또 하나의 가치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장벽을 부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여 모든 사람을 위한 근사한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 이런 경험으로 미루어 우리가 계속해서 모색하면서 서로를 도와주다보면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열악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 같은 책, 66~67쪽
『핸드메이드 라이프』는 윌리엄 코퍼스웨이트가 평생의 과제로 삼았던 사회 디자인, 아름다움, 일과 밥벌이, 교육과 양육, 비폭력, 돈, 소박함, 평생 작업이라는 여덟 가지 주제를 통해 그가 바람직하다고 믿은 삶의 모습을 성찰한 책이다. 그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자기 손으로 만들면서, 산업주의 문화에 중독되어 잊고 지내던 '손으로 만드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운다. 이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도 정확히 그러하거니와, 그가 추구한 삶의 방식에 ‘내 손으로 만드는 삶’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잘 어울릴 법하다.
공들인 수제품에는 비싼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에 가격을 매길 수야 없겠지만, 레디메이드 인생과 핸드메이드 인생 중 어느 쪽이 더 값진 가를 따진다면, 결과는 명백하지 않을까?
Do it Yourself!
코퍼스웨이트 역시 이 방면에서는 소로 못지않게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삶의 방식을 따르고 추앙한다고 해서 금방 그와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추구하자면 소로나 코퍼스웨이트 같은 훌륭한 스승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함께 배우고 협력할 동료 역시 필요하다. 너무 완벽한 사람보다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열정만은 충만한 사람이라면 더없이 좋겠다.
라로통가(남태평양의 섬)에서 사는 게 끔찍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우리가 찾으려 했던 것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즐겁게 살고 싶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으로 뭘 찾으려는 건지 우리도 몰랐다는 게 문제였다. 로스앤젤레스 탓으로 돌렸던 우리의 문제들은 고스란히 우리를 따라 라로통가 행 비행기에 올랐다. 알고 보니, 우리가 문제였다. 그건 지상낙원으로 떠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 『내 손 사용법』 (마크 프라우언펠더 / 반비), 23~24쪽
마크 프라우언펠더는 IT 전문 칼럼리스트이자 블로거이다. 아마도 ‘내 손으로 만드는 삶’과는 가장 거리가 먼 부류에 속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한 때 잘나가던 그였지만 IT버블이 꺼지면서 본격적으로 대안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을 시작한 건 좋았지만 구체적인 방안 없이 미국을 떠나 남태평양의 섬 라로통가로 날아갔다. 소로가 갑자기 월든 호숫가로 떠났듯이 말이다. 하지만 마크 프라우언펠더는 소로와 달리 무참히 실패했다. 그와 그의 가족은 불과 넉 달 반 만에 폐렴과 기관지염과 기생충과 사회적 고립에 만신창이가 되어 미국으로 되돌아 왔다. 하지만 프라우언펠더는 이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DIY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DIY가 더 단순한 삶, 더 생태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는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삼기로 한다.
아마추어 모험을 처음 시작했을 때 DIY 친구들은 실수가 필연적이라면서, 실수하더라도 의기소침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충고를 귀담아들으면서도 얼마나 많은 실수가 발생할지에 대해서는 무참할 정도로 과소평가했다. 나는 손을 대는 족족 망치기 일쑤였다. 프로젝트의 종류에 상관없이, 아무리 작고 간단한 경우라고 실수가 빗발쳤다. (…) 이틀에 걸쳐 선반을 다는 동안 속출한 실수담이라면 밤새도록 늘어놓을 수 있지만, 더 해봐야 망신살만 뻗칠 뿐이다. 그래도 달아놓은 선반은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지만 않는다면.
이제는 실수를 저지르는 데 워낙 익숙해진 나머지 더 이상 의기소침하지도 않는다. 가끔은 실수를 통해야 더 나은 방법이 도출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게다가 실수를 한다는 건 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 같은 책, 297~298쪽
프라우언펠더는 <메이크>라는 잡지에 투고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DIY 전문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술을 전수 받는다. 그리고 일상에서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부분부터 조금씩 DIY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라로통가에서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말이다. 그는 우선 텃밭을 가꾸었고, 닭집을 만들어 닭을 키웠다. 즐겨 마시던 커피를 정성 들여 직접 뽑았고, 기타를 만들어 연주하기도 했다. 개중에서 양봉은 가장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는 여러 번 실패했지만, 그걸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도 더는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프라우언펠더는 손수 닭을 키우고 나무 숟가락을 조각하고 기타를 만들며 손에 굳은살이 박이는 게 쇼핑몰에 다녀오는 것보다 훨씬 큰 보람과 즐거움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DIY는 ‘Do it Yourself’의 줄임말이다. ‘네 스스로 만들어라’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말 자체에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담겼다. 다만 오늘날에는 DIY라는 문구가 상품 홍보에 주로 쓰이면서, 그저 반제품을 조립하는 수준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소모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말이다. 프라우언펠더는 DIY의 핵심은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라고 말한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제삼자가 봤을 때 DIY는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DIY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재료와 공구를 정하고, 어떻게 만들지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은 시간 낭비나 헛수고가 아닌 그 자체로 소중한 작품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뭐라도 직접 만들어 본 사람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집을 짓기 위해 집을 짓다
사실 나는 집을 지은 적이 있다. 담쟁이덩굴과 일일초가 우거진 뒷마당에 자리한 방 하나짜리 초소형 단층집으로 거의 다 재활용 자재를 썼다. 그래도 문도 하나 있고 창문도 네 개나 된다. 게다가 기적이라 할 정도의 뾰족지붕이라 방안에서 서서 걸어 다닐 수도 있다. (…) 그 집이 대단한 업적이라도 되는 듯했다. 사실 나에겐 그랬다. 그건 내가 지은 집이었다. 단 하나뿐인. (…)
나는 중서부의 한 도시에서 1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온 해 봄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여러 달 책임 있는 자리에서 차분하고 사려 깊게, 그리고 대부분의 낮 시간을 실내에서 산 뒤라 활동하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현관에서 내 연장들을 들고 때리고 두드려서 단순하고 유용한 물건, 이를테면 책꽂이나 탁자를 만드는 대신 집을 짓기 시작했다.
- 『휘파람 부는 사람』 (메리 올리버 / 마음산책), 「집짓기」, 20~22쪽
메리 올리버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동부의 항구도시인 프로빈스타운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이다. 메리 올리버의 시는 주로 자연과의 교감이 주는 경이와 기쁨을 단순하고 빛나는 언어로 노래한다. 어떤 동료 시인은 그녀를 소로와 비교하여, 소로가 ‘눈보라 관찰자’라면, 올리버는 ‘습지 관찰자’이자 ‘자연 세계에 대한 포기할 줄 모르는 안내자’라고 일컬었다.
메리 올리버가 살고 있는 프로빈스타운은 역사적으로는 청교도들의 은신처였고, 지금은 비주류 작가와 성적소수자들의 안식처로 변모했다. 미국 최동단에 위치한 코드곶 만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곳으로, 미국의 동쪽 끝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을 벗 삼은 시인에겐 너무나 안성맞춤인 땅이었다.
시인은 언어를 다루는 마술사이긴 하지만, 대체로 몸을 쓰는 데는 그리 능숙하지 않다. 시인 스스로 인정하듯, 목공 작업을 즐기긴 했지만 뭔가를 완벽하게 만들어낸 적이 없었고, 아주 잘 만든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재주가 아닌 열정이었다. 산책하며 시를 쓰는 것만으로 몸이 만족할 수 없을 때면,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였다. ‘톱날과 망치질, 작은 비명 소리와 함께 완벽한 보금자리를 향해 회전하며 들어가는 나사’들로 말이다.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열심히, 헌신적으로 ,결연히 일했으며 베이고 긁히면서도 즐거웠다. 작업은 천천히 진행되었다. 지붕 공사가 이어졌고 적삼목 지붕널이 얹혔다. 나는 시인이었지만 잠시 생각과 공식적인 언어의 베틀에서 벗어나 이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즉흥적이었고 몰입 상태였으며 행복했다. 나는 늘 생긴 대로 살아가다가 또 다른 모습이 되고 싶기도 하다.
- 같은 책, 28쪽
짧은 수필인 「집짓기」는 현재 우리나라에 출간된 두 권의 메리 올리버 수필집 중 『휘파람 부는 사람』에 실린 글이다. 그녀가 집을 직접 지었던 경험을 담아서 짧게 쓴 글이다. 늘 자연과 교감하는 언어와 소박한 삶을 예찬하는 그녀의 글 중에서, 유독 몸을 쓰는 즐거움을 찬양하고 있어 눈에 띈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 집을 잘 활용하고 있을까? 아니다. 시인은 그 작은 집을 거의 쓰지 않고 내버려 뒀다. 왜냐하면 그 집은 그저 짓기 위해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집을 지은 다음에는 그 집 문지방을 넘어 떠나버렸다. 이미 자연이라는 거대한 궁전에 살고 있는 시인으로서 집은 그리 중요한 공간이 아니다. 시인에게 집짓기란 처음부터 집을 짓기 위한 행위 자체였고, 더없이 즐겁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역시 소박한 삶의 또 다른 경지는 아닐는지.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살 수 없는 생명체다. 우리는 서고, 앉고, 걷고, 뛴다. 손은 어떤가? 펴고, 굽히고, 누르고, 당긴다. 각각의 움직임이 제때 쓰임으로써 우리는 생명을 잇는다. 최소한만 움직여도 물론 살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진 몸이 한껏 움직일 때, 몸은 제 몫을 다했다는 기쁨을 느낀다. 몸이 기쁘면 마음도 기쁘다.
삶의 태도는 다양하다 하겠다. 어떤 태도가 더 낫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떤 이들의 삶은 그 자체가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의 실증일 때가 있다. 그런 삶에 대해서는 토를 달기 어렵고 그저 경탄하게 된다. 보통 사람에겐 불가능한 삶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손과 발이 있으니 적어도 시도는 해볼 수 있다. 시인인 메리 올리버가 뾰족 지붕의 집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음을 기억하자. “나는 늘 생긴 대로 살아가다가 또 다른 모습이 되고 싶기도 하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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