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에는 저마다 합당한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부엌 싱크대나 선반에 어울리고, 신발은 신발장에 들어가 있을 때 가장 보기 좋다. 옷을 위한 합당한 공간은 소파나 의자 등받이가 아닌 옷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때때로 게으름은 물건에 합당한 장소가 어딘지 착각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책도 집에서 합당한 공간을 찾지 못해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는 물건의 대표격이다. 물론 책을 위한 공간이라면 책장이라는 훌륭한 장소가 있지만, 왠지 이 책장 역시 자신에게 합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거실 구석이나 창고 용도의 방에 덩그러니 놓여 있곤 한다. 제 갈 곳을 찾지 못한 물건들이 전부 이 책장 몫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책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데 골머리를 앓곤 하는데, 이 경우는 책이 너무 많아서 벌어지는 문제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나. 마음이 아프다고 느끼면서도.” 요시다 다쿠로의 노래 한 소절이 지금 내 마음에 절절히 와 닿는다. 마음이 아픈 것은 나의 장서 상태 때문이다. 책이 늘어도 너무 늘었다. 책장에 꽂아둔 책과 거의 같은 양의 책이 계단에서 복도, 책장 앞, 책상 주변까지 쏟아져 쌓일 대로 쌓였다. 덕분에 몸을 슬쩍 움직이는 일조차 여간 고역이 아니다. 바닥에 흐트러진 책과 책 사이 좁다란 공간에 한쪽 발을 비집고 들어서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겨우 앞으로 나간다 해도 쌓아올린 책의 탑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 장서의 괴로움(오카자키 다케시 / 정은문고)

 














아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은 책이 제 공간을 갖지 못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아무렇게나 쌓아둔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집이 무너져버렸거나, 무너지기 직전인 사례가 책에 잇달아 소개된다. 물론 목조건물이 많은 일본의 상황임을 감안해야겠지만, 2층 바닥에 쌓은 책의 무게 때문에 바닥이 꺼져 1층으로 쏟아져 내리는 대목에선,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애서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더 크고 튼튼한 집으로 이사하거나, 장서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대개는 현실적인 이유로 후자를 택하게 될 텐데, 다케시 역시 적당한 장서량은 5백 권이라 결론 내린다. 그래서 이 책 후반부의 내용은 수많은 장서를 어떻게 처분하고 줄일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는데, 책 제목인 장서의 괴로움장서가의 괴로움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다.


책에 공간이 중요한 것은, 책이 지닌 독특한 물성 때문이다. 흔히 책이라고 하면 책 자체보다는 그 내용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어떤 책에 대한 서평이 쓰인다면, 주로 저자와 책의 내용에 대해 말하지, 제본 상태나 무게, 질감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책의 그러한 물성을 무시하는 이들은 결코 없으리라 생각한다. 어떨 때는 책의 물성을 내용보다 더 신성 시 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건 애서가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공유되는 비밀이기도 하다. 체면 때문에 겉으로는 책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책을 읽지 않고 애지중지하여 고이 모셔두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을 터이다. 이런 연유로, 책 이야기를 하면서 책을 위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그게 꼭 서재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의 서재가 아닌 곳에서 더 많은 책들과 만나기 마련이다.

 

 

특별한 가게, 서점

 

서재를 제외하고, 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간이 바로 서점일 게다. 특히 과거에는 책이라면 이곳을 거치지 않고서는 세상에 나올 수 없을 만큼 불가결한 장소였다. 인터넷 판매가 대중화되면서 그런 독보적인 지위는 거의 잃었지만, 서점이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서점은 책이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인 셈인데, 책이 그냥 상품이 아닌 이유로 서점 역시 그냥 가게라 할 수는 없다. 책이라는 특별한 물건을 파는 곳이고, 그래서 서점은 특별한 장소가 된다.

 

백화점에 들어가 한 30분쯤 새 재킷을 입어보기도 하고 그 옷을 걸친 채 막 돌아다녀보라. 다음 주 수요일에는 다시 그곳에 가서 옷을 살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같은 행동을 되풀이해보라. 피자집에 들어가 혹시 피자 한 조각을 맛볼 수 있는지도 물어보라. () 가게 주인이 값도 치르지 않고 먹어 치우는 나 같은 손님을 과연 용서할까?

서점은 다르다.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와 느긋함은 거기서 파는 상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책은 느림을 동반한다. 시간을 요한다. 글을 쓰는 일, 책을 펴내는 일, 읽는 일이란 죄 늘어지는 일이다. () 게다가 책을 구입한 뒤에도 그걸 읽는 독자는 며칠이나 몇 주, 때로는 몇 달에 걸쳐 한 자리에 눌러 앉아 몇 시간씩을 보낼 작정을 해야 한다.

- 노란 불빛의 서점(루이스 버즈비 / 문학동네)

 














서점에서 10, 이후 출판사 직원으로 7년을 일 했고, 지금은 작가가 된 루이스 버즈비가 쓴 노란 불빛의 서점중 한 대목이다. 서점이 다른 어떤 가게와도 구별되는 특별한 장소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서점에 관한 다양한 경험담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랫동안 서점 직원 일을 하면서 그는 많은 서점이 개점하고 폐점하는 걸 지켜봤고, 출판사 외판원이 되어 고객(서점 주인과 독자)과 만나면서 자연스레 자기 안에 이야깃거리를 담게 된 것이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독자도, 맹목적인 탐서주의자도 아닌, 책과 더불어 십수 년을 살아온 이의 경험과 애정에서 비롯된 말들이니 귀 기울여 들을 만한 대목이 많다.


그의 말마따나 서점이 다른 어떤 가게와도 구별되는 이유는, 거기서 파는 상품인 책에서 비롯된다. 책은 만드는 데도 많은 시간이 들지만, 구입하기 위해 살펴보는 데도 많은 시간이 들고, 구입 한 이후에도 사용에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다. 책의 고유한 시간성이 책이 놓인 공간까지 지배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결국 애서가들이 서점이라는 공간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도,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가능한데, 때로는 애정이 지나쳐 루이스 버즈비처럼 서점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도 더러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을 애정만으로 한다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더욱이 서점은 현대의 대표적인 사양 산업이다 보니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다.

 

소액의 퇴직금으로 시작할 수 있는 서점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퇴직금이 없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큰일이겠지만, 10년이고 20년이고 서점에 다닌 사람들이 작은 서점 하나 가질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계속해서 서점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런 사람들이 시작하는 서점이 만약 전국에 1천 곳 정도 생긴다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재미있잖아요. 제가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해보지 않으면 바뀌는 게 없지 않을까요?”

() 정열을 버리지 못하고 시작하게 된 작은 책방. 그런 서점이 전국에 1천 곳 생긴다면 세상은 바뀔 수도 있다. 그녀가 말한 이상이 기분 좋은 울림을 남겼다.

- 서점은 죽지 않는다(이시바시 다케후미 / 시대의창)

 














이 책은 개인 서점을 운영하거나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찾아가 인터뷰한 모음집이다. 서점에 관한 거개의 책들이 서점이라는 공간 자체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서점 보다는 그 공간을 창출해낸 이들의 말과 생각에 주목한다. 서점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그걸 만들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건데, 이 역시 옳은 전략처럼 보인다. 우리 눈에 서가의 형태나 책이 진열된 방식에 특별한 의도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책을 분야 별로 구분해서 신간은 눈에 잘 띄는 곳에 놓는 정도가 아닐까 싶지만, 생각보다 서가 진열에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는다. 한 서점주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데, 그 도중에 시선을 잡아끌 포인트가 될 만한 책을 꼽기도 하고, 일부러 팔고 싶은 책과 팔리지 않을 책을 함께 꽂아서 고객이 비교해 보게끔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그냥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 사이에 다리가 필요한데, 서점과 서점원이 그 역할을 해낸다. “기본적으로 책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 만약 모르면 창피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역 주민들에 대한 서점의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작은 도시 돗토리에서 서점을 운영 중인 나라 도시유키의 말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서점 장인들은 저마다 책에 대한 이상을 하나쯤 갖고 있다. 서점 운영이 이상 없이는 버티기 일이기도 하다. 인터넷 서점과 대형 서점에 대항하기 위해 이들이 내세우는 전략을 보면, 그 이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보인다. 체인서점에서 16년을 일하고 출판사에 취직했으나 채 1년도 안 되어 관두고 자신의 서점을 개업한 하라다 마유미는 책의 외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의 내용을 다루는 것은 다른 매체나 전문가가 더 잘할 수 있으니, 서점은 서점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책의 외형(제본 상태, 감촉, 무게,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서점의 마지막 생존 전략이다. “제본한 책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서점은 앞으로 정말 몇 집밖에 살아남지 못할 테고, 남아야 할 필요조차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처럼, 책의 물성이 가장 돋보이는 곳이 바로 서점 아니던가. 책의 물성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서점은 곧 사라질 공간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남기도 한다.

 

산토리니 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캐나다인과 미국인 친구가 20대에 시작하였다는 이 서점은 처음에는 그들이 직접 만든 침대와 책장뿐이었다고 한다. 기후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이 나무판자와 해변에서 주워 온 돌들로 조금씩 그들의 취향대로 꾸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밧줄로 만든 계단은 천장 가까이에 있는 침대로 올라갈 때 쓴다. ‘철학의 탑이라는 이름의, 철학서만 꽂아둔 가느다란 책장이 좁은 가게 안에 높게 솟아 있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시미즈 레이나 / 학산문화사)

 












산토리니 섬 북쪽 끝에 위치한 서점, ‘아틀란티스 북스를 소개하는 한 대목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은 세계 각지의 서점을 여행하며 소개하는데, 무엇보다 서점이 빗어내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다. 다만 이 아름다움이 지나쳐, 열악한 서점 환경에서 익숙한 우리로서는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저 먼나라의 이야기로 치부하지는 말자. 자연과 시간과 사람이 함께 빗어낸 이 아름다운 유산을 거저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이 서점을 아름답게 만드는지 보고 배울 여지가 있다.

 

공공의 도서관

 

애서가들이라고 해서 책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 같지는 않다. 그 방식을 여기서 다 나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한 가지 물음으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엿볼 수 있다. “서점과 도서관 중 무엇을 좋아합니까?” 이 질문은 그러니까, 서점을 좋아하는 것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것이 책을 사랑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라는 걸 전제하는 말이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이렇다. 서점은 책을 사는 공간이고,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공간인데, 책을 사는 것과 빌리는 것이 또 다르다는 말이다. 사는 것이 책의 소유를 전제하는 행동이라면, 빌리는 것은 거기 담긴 내용을 섭렵하려는 데 더 방점 찍는 행위다. 서점과 도서관이 서로 다른 역사와 분위기를 갖게 된 것도 두 행위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가지 의외인 점은, 책을 구입하는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다는 점이다. 서적 수집이 취미였다는 마키아벨리의 아버지가 평생 수집한 책은 겨우 40권 정도였다고 한다. 과거에 책은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제품이었던 데다가, 희귀하기까지 했다. 장서의 괴로움은 근대의 산물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도서관을 필요로 했다.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보관하여 이를 사람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거기 담긴 지식을 전파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류가 도서관에게 남긴 지상과제였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단순히 불멸성만을 목표로 설립된 것은 아니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과거에 기록된 것, 또한 기록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 기록들은 미래의 기록에 참조되고, 끝없이 이어지는 독서와 해석은 다시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독서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책을 무한정 보관하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책을 읽는 사람들의 작업장을 지향했다.

- 밤의 도서관(알베르토 망구엘 / 세종서적)

 













독서의 역사(알베르토 망구엘 / 세종서적)를 통해 책과 독서의 역사를 일별한 바 있는 알베르토 망구엘의 또 다른 역작이다. 밤의 도서관은 도서관의 역사를 더듬는 시도라 요약할 수 있다. 어느 한 가지로 정의 내리기 힘든 도서관을 역할을 신화’, ‘공간’, ‘일터’, ‘생존’, ‘망각등의 열쇠말로 도서관이 문화사에 미친 영향을 짚어 본다.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면 주변에 있는 것들의 윤곽이 보이면서 조금씩 눈앞이 밝아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낯선 세계로 떨어져 눈앞이 캄캄한 때, 도서관이 바로 서서히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망구엘의 생각이다.

 

밤이면 내 눈과 손은 일상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깔끔한 선반에서 두서없이 움직이며 무질서를 회복한다. 어떤 책을 보다가 갑자기 다른 책을 떠올리며, 다른 문화와 다른 세계를 잇는 관련성을 찾아낸다. () 아침의 도서관이 세상의 질서를 엄격하게 지키고 이를 또한 당연히 바라는 공간이라면, 밤의 도서관은 세상의 본질로 흥미진진한 혼란을 즐기는 듯하다.

- 같은 책

 

도서관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알 수 있듯이, 최초의 도서관은 기록 보관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도서관과 서점이 가장 대비되는 지점이 바로 이 공공성에 있다. 물론 공공성 자체는 책의 근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에, 서점도 상업공간이기 이전에 책의 보급이라는 공공의 목적에 일부 부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도서관과 만날 때 공공성이 극대화 된다는 걸 부정하기는 힘들다. 이런 특성은 자본주의의 논리가 지배적인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뚝심을 발휘한다. 상업 공간인 서점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점점 쇠퇴해 가는 반면, 도서관은 공공기관으로서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물론 도서관이라고 공공성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공공성의 가치는 선언으로 그치지 않았다. 문을 연 뒤 눈에 보이는 실체로 다가온 도서관의 시간과 공간은 우리 가슴을 뛰게 했던 도서관의 정신이 고스란히 삶 속에 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책의 힘, 책 읽는 사람들의 힘, 책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공간의 힘, 그 모든 것이 소소한 일상의 삶터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서 자발성, 다양성, 일상성같이 현실을 변화시킬 원리들을 만났고, 북돋움이라는 덕목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책을 나누는 일은 꿈을 나누는 일이었다.

-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박영숙 / 알마)















사립 도서관인 느티나무도서관을 16년째 운영하고 있는 박영숙 관장이 내놓은 책,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의 한 대목이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사립 도서관이면서 공공성을 최고의 기치로 내건 것이 독특하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왜 느티나무도서관이 공공성을 견지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는지 금방 깨닫게 된다. 공공도서관은 이미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공공성을 위협받을 일이 거의 없다. 적은 운영비가 걸림돌이긴 하겠지만, 공공도서관이라는 정체성을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사립 도서관이 공공성을 잃는다면, 이미 도서관이라 부르기 힘들어진다.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지는 않겠습니다에는 사립 도서관의 그러한 고민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다. 거의 동일한 시기에 나온 꿈꿀 권리(박영숙 / 알마) 역시 박영숙 관장이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만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사연이 담겨 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도서관의 주된 이용자인 학교밖청소년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인턴십과 마이크로 크레딧(미소금융)을 운영 중이다. 이 두 권의 책은, 진정한 공공 도서관의 모습은 바로 이래야 한다는 장엄한 선언처럼 들린다.

 

장서의 괴로움으로 이 글을 시작하긴 했지만, 책을 위한 합당한 공간을 찾는 일이 과연 그리 어려울까 싶다. 무심코 눈길이 닿는 곳에, 어렵지 않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에 바로 책이 놓였으면 좋겠다. 다만 서점과 도서관은 전문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많은 장인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서점과 도서관을 위대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책에 관해 여러모로 부족한 우리가 곧잘 신세 지게 되는 장소. 그곳에 가면 책이 뭔지 조금은 알게 된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장소인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삶이 그 곳에서 비롯된다. 제 갈 곳을 찾지 못한 책이 바닥을 뒹굴다 발에 차인들 무어 그리 대수일까. 바로 거기가 책과 나를 위한 공간인 것을


다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손 가득 들고 온 이 책들을 놓을 공간이, 조금은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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