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휴대하는 전화기’라는 뜻의 휴대폰을, 우리는 언젠가부터 ‘스마트폰’이라고 부른다. 스마트폰이란 물론 ‘똑똑한 전화기’를 의미한다. 휴대하는 전화기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단순한 휴대성이었다면, 똑똑한 전화기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휴대성은 기본이고, 카메라 기능과 인터넷 서핑, 게임, 전자책,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일정관리와 메모 기능… 이 모든 ‘똑똑한’ 기능을 우리가 과연 필요로 했는가 의문이 들지만, 이제는 편리함 때문이라도 스마트폰의 사용을 멈추기란 불가능하다. 그만큼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도 절대 적지 않다. 그런 징후는 너무도 쉽게 발견된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짧은 시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작고 똑똑한 기계장치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며, 친구와 함께있는 자리에서조차 SNS의 또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수없이 본다. 사람들은 그저 한가한 시간에 즐기는 심심풀이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겠지만, 이는 명백하게 기술 발전이 우리 삶의 구조 자체를 바꿔놓은 사례라 할 만하다. 그것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스마트폰의 사례와 같은 사회 변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천착해온 학자다. 그가 제시한 ‘유동하는 근대(액체 근대)’라는 개념은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제도·풍속·도덕이 해체되고 유동성과 불확실성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가 도래했음을 경고한다. 그저 변화가 빠르다는 말로 설명되지 않을 만큼 “어제 주목을 끌던 물건과 사건이 오늘은 주목받지 못하고, 또 오늘 우리에게 흥미를 끄는 물건과 사건도 내일이면 관심 밖의 것이 된다. 우리가 꿈꾸는 것들과 무서워하는 것들, 심지어는 희망을 품는 이유와 염려하는 이유조차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러니 사회는 고정된 형태가 없는 액체 상태와도 같은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노학자의 눈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이탈리아의 여성 주간지 <여성을 위한 라 레푸블리카>에 2년간 연재했던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을 엮은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유동하는 근대란 불확실성의 시대를 일컫는다. 바우만은 불확실성을 일으키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징후들, 이를테면 SNS, 쇼핑, 유행, 인스턴트 섹스, 질병, 종교에 중독된 현대인에 대해 우려 섞인 진단을 내놓는다. 특히 SNS에 중독된 사람들이 고독을 잃어버린, 그래서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을 잃어버린 것은 큰 비극이라 말한다. 고독에 관한 이런 통찰은 유동하는 근대에 저항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타인과의 ‘제대로 된’ 의사소통(즉, 고독에서 비롯된 의사소통)이라고 주장하는 이 책의 결론과도 연결된다.


일상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비관적인 태도로 현대인의 삶을 진단하려는 바우만의 시도는 여타 사회학과는 달리 삶에 더욱 밀착된 느낌을 준다. 주류 사회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SNS나 쇼핑 중독 등 현대인이 앓고 있는 질병이 그리 긴급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기보단 현대 사회의 어떤 부산물로 본다. 하지만 바우만은 그 질병들을 유동하는 시대의 본질적인 폐단으로 진단함으로써 오히려 개개인의 반항과, 반항이 조합된 혁명의 가능성을 활개 펴준다. 그러니 이것이 현대인을 위한 노학자의 애정어린 비평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인간 행위자와 공동체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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