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ㅣ 평화 발자국 10
김성희 글.그림 / 보리 / 2012년 4월
평점 :
삼성전자는 ‘또 하나의 가족’이란 광고캠페인을 1997년부터 십 년 넘게 진행한 바 있다. 미디어를 통한 삼성광고의 노출빈도를 생각했을 때, 십여 년 동안 반복되었던 이 ‘학습’의 영향을 그냥 흔한 기업 광고로 무시할 수는 없다. 실상 삼성은 우리의 가족이었던 적이 없음에도, ‘또 하나의 가족’이란 말을 들으면 우리는 곧장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는가. 백 보 양보하더라도, 무노조 경영을 자랑으로 삼는 대기업을 가족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자. 삼성이 ‘가족’을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로 삼은 것엔 오히려 그런 배경이 바탕이 된 것 아닐까? 바로 가족적인 그 무엇이 삼성에 없으며, 그걸 감추고자 십여 년을 사람들 머릿속에 ‘삼성=가족’이라는 공식을 집어넣은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러니 삼성 반도체 공정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원인모를 병에 걸려 사망하는 일이 생겨도, 삼성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진짜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평작인 『먼지 없는 방』은 그런 현실을 고발하는 책이다. 일종의 ‘르포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주로 삼성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민웅 씨와 부인 정애정 씨의 사연을 다룬다. 전반부는 정애정 씨와 황민웅 씨가 ‘꿈에 그리던 직장’ 삼성에 입사하여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는 모습을, 후반부는 황민웅 씨 사망 이후 산재 여부를 놓고 사측과 투쟁하는 모습을 다룬다. 전반부에서 반도체 공정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반도체 노동자의 소식이란 주로 소송 관련 내용이었다. 맥락 없이 그저 사측과 개인의 소송분쟁으로만 소비되기도 했다. 적어도 이 책은 르포로서,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한편으로 반도체 노동자들 사이에 불치병이 발병하게 된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 책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은 ‘먼지 없는 방’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화학물질을 사용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청정 산업’으로 포장하였다. 비록 그 화학물질이 반도체 칩엔 청정했을지 몰라도, 인간인 노동자에겐 그렇지 않았음을,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불치병에 의해 사망한 56명 노동자의 사연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여전히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산재 신청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먼지 없는 방』은 김수박의 『사람 냄새』와 함께 ‘삼성 백혈병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세트로 출간되었다. 두 권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접근 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함께 보면 삼성과 반도체 노동자를 둘러싼 여러 층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 작품은 만화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주류 언론이 다루기 껄끄러워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한다. 이는 현실에 대한 기록이자,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것을 오늘날의 르포 문학이라 부를 만하다.
- 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