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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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는 구호가 이렇게 생경하게 느껴질지 몰랐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는 ‘분노’의 수사학으로 이야기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새삼 그게 진정한 분노였는지 되돌아 보게 하였다. 프랑스에서만 판매부수 200만 부를 돌파하며 ‘분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스테판 에셀『분노하라』에 대한 이야기다.

분노는 오롯이 스테판 에셀,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그는 나치시절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했었는데, 물론 동기는 파시스트와 비시정부에 대한 분노였다. 작전 중에 체포된 그는 나치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전쟁이 끝난 후엔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1948년 유엔 세계 인권 선언문 초안 작성에도 참여했다. 퇴직 후에도 그는 사회운동가로서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그리고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나이에 이제 때가 되었다는 듯이 세상에 그 자신의 육성을 울린 것이다. 바로 ‘분노하라!’라고.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사실 이 책은 채 100페이지가 안 되고, 그나마 저자 자신의 글은 30여 쪽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그의 인터뷰와 추천사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다른 유사한 책이 전하지 못하는 참여와 동기부여의 힘이 있다. 그건 전적으로 스테판 에셀의 육성이 지닌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분노할 일을 넘겨버리지 말라.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여,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되라. (…) 어느 누구라도 인간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가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는 그의 말은 어떤 이론서도 전해주지 못하는 감동이 있다. 사람은 대개 이런 가슴을 울리는 한마디로 변하고, 움직인다.

한동안 ‘분노’가 우리 사회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쉽게 체념한다. 분노가 통하지 않았던 사회적 경험은 오히려 무기력과 무관심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번 숨을 고른 셈 치고, 다시 한 번 분노할 때가 온 듯하다. 그러나 그 분노는 폭력과 분열을 낳는 것이 아니라 현실 참여에 대한 창조적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어야 한다. 다시 한 번 스테판 에셀의 말을 빌리건대,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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