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도 전기 1 - 회색의 마녀 로도스도 전기 1
미즈노 료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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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의 시초를 만나다


 로도스도 전기가 한정판으로 새롭게 재단장했다. 이 책은 판매용이 아닌 가제본으로, 로도스도 전기 한정판 공식 출판 전 번역 오류 등을 사전 확인하기 위한 책이다. 표지와 제본 방식만 다를 뿐, 내용은 본편과 동일하다. 이전 번역서에서 악명을 떨치던 발번역이 많이 교정됐다. 책이나 글자 크기는 일반 판타지 소설의 규격과 동일하다. 일반 판타지 소설처럼 빠르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호기심 가득한 청년과 미녀 엘프가 로도스라는 섬에서 벌이는 모험 이야기인 로도스도 전기는 우리나라 판타지의 시조인 <드래곤 라자>까지 영향을 준 동아시아 판타지 소설의 시조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 세계관을 모티브로 우리나라 양판소의 근간이 된 책이다. 특히, 귀여운 요정 엘프가 아닌, 현재 소설과 게임에서 묘사되는 팔방미인 미녀형 엘프의 시초가 이 책이다. 역사가 상당히 깊은 책이다. 이 책을 기점으로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가 번영했다고 보면 된다. 오랜 역사가 말해주듯, <마법전사 리우이>, <신로도스도 전기> 등 후속작이 많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는데, 미녀 엘프 여주인공 덕에 일반인에게 소설 로도스도 전기보다 애니메이션 로도스도 전기가 더 유명하다.


 평소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판타지 소설의 역사를 체험한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더 재미있을 거다. 비록, 가제본이지만, 로도스도 전기 팬에게는 이 책도 소장의 대상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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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폭력 - 운명이라는 환영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2
아마티아 센 지음, 김지현.이상환 옮김 / 바이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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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와 편견을 경계하라


 경제철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저자가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편견을 깨뜨린다. 


 저자는 정체성으로 인간사회를 해석하는 관점을 독보적인 정체성관(觀)과 다원적인 정체성관(觀)으로 구분한다. 독보적인 정체성관은 여러 정체성(종교, 문화, 지역, 인종 등)을 보유한 사람을 특정 정체성으로만 해석한다. 중국인은 어떻고, 여자는 어떻고, 기독교인은 어떻고 하는 것들이 모두 독보적인 정체성관이다. 독보적인 정체성관의 가장 큰 특징은 구획화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 짓는다. 독보적인 정체성관이 사상으로 나타난 게 전체주의, 민족주의다. 독보적인 정체성관은 차별과 폭력의 정당화 수단이 된다. 아리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상업 계층민을 반동분자라며 학살한 사회주의 국가 모두 독보적인 정체성관으로 다른 이를 구분하면서 벌어진 비극이다. 변증법 논리처럼 독보적인 정체성관은 또 다른 독보적인 정체성관을 낳는다. 차별된 사람들은 보호기제로 똑같은 독보적인 정체성관을 형성한다. 그리고 똑같은 폭력을 야기한다. 일본 민족주의에 반발해 등장한 우리나라 민족주의, 서구의 차별에 반발해 등장한 범아시아주의가 대표적 사례다.


 저자는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비판하면서, 문명, 문화, 종교와 국가 등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명확히 구분되기 힘들고, 단일 정체성으로 개인과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는 과도하게 정체성에 집착한 공동체주의와 정체성이 주는 영향력을 무시한 개인주의, 양쪽에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특정 정체성으로 한 인간을 단정 지을 수 없으며, 동시에 정체성이 그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거다. 기독교를 예로 들면, 기독교 내에서도 예수교와 감리교 등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존재하는데, 이들을 한 데 묶어 일반화하기 어렵다. 또한,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경상도 출신, 서울대 학생 등 다양한 정체성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기독교인이라는 특성으로만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단일 정체성으로 구분 짓기에 너무나 다양하고 개성 있는 존재다. 인간은 여러 정체성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다원적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 다원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평화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다원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이성'을 강조한다. 편견으로 색안경을 끼고 있는 인간 해석을 벗기 위해서는 객관화할 수 있는 이성 능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우리는 끊임없이 일반화의 유혹에 빠진다. 복잡한 인간 사회를 편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적이면서 시사적인 저자의 결론은 '포용'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 짓지 말고,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정체성 중 특정 정체성만으로 색안경을 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는 거다. 다원적이고 다양한 사람이 모인 사회가 건강하듯, 다원적이고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도 건강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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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심리학 -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잡고 싶다면
라라 E. 필딩 지음, 이지민 옮김 / 메이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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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히 나를 바라볼 용기


 방황하는 현대인의 지침이 되는 책이다.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의 모든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을수록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다. 저자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겉으로만 드러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봤자 도돌이표만 반복할 뿐이라고 한다. 저자는 자기 객관화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한다. 겉으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내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며, 내적 성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란 사람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에 상처를 받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자아확립이 필요하다는 거다.


 저자는 자기혐오에서 빠져나와 담담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불안, 초조, 집착 등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감정을 통제하려고 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면 통제 불가능한 감정도 어느새 가라앉고 조절할 수 있다는 거다. 차분하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금의 감정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는 거다. 통제하기 힘든 감정이 들 때마다 의도적으로 한 발 떨어져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듯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저자는 꾸준한 노력과 습관이 필수라고 이야기한다.


뿌리 깊은 나무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선 겉으로 드러난 줄기보다 몇 배는 길고 튼튼한 뿌리가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대기만성(大器晩成)이다. 세상을 바꾼 위인들은 일찍 재능을 피운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가 뒤늦게 재능을 발휘했다.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반성하면서 내면이 성숙해졌기에 큰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위인들은 재산이 많거나 외모가 출중하지 않더라도 여유가 있다.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행동한다. 내적 성숙이 겉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지만, 예상의 자기 실현 효과(Self-fulfilling)처럼 겉으로 당당하게 행동하는 게 실제로 내적 성숙으로 이끄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속으로 걱정되고 불안하더라도 겉으로는 자신감 있는 '척'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몸이 먼저 움직여야 정신도 따라온다는 거다.


 자신감이 있든, 자신감이 있는 척이든, 당당히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단점이 있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 단점과 상처를 드러낸다고 손가락질할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해맑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용기야말로 내적 성숙,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첫걸음이다. 우리 모두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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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 인간은 어떻게 미지의 세상을 탐색하고 방랑하는가
마이클 본드 지음, 홍경탁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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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인지와 인간


 뛰어난 공간 인지력을 향해 진화한 인간을 보여준다. 뇌과학부터 심리학까지 '공간 인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았다. 온갖 전문용어가 넘쳐난다. 요점보다 사례를 위주로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설명하는 저자의 스토리텔링은 머리 아프게 한다. 읽기 편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뇌도 근육처럼 훈련하면 성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택시 기사다. 길을 외워야 하는 택시 기사의 직업 특성으로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가 다른 일반인에 비해 성장했다. 신입 택시 기사를 추적 관찰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신입 때와 비교해 해마가 발달한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기억력과 사고력 등 여타 지능이 모자란다고 탓하지 말라며, 충분히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인생을 하나의 길 찾기로 비유하면서, 우울증을 앓는 이유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의 명확한 목표를 찾고 현재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길을 헤맨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게 아니라,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두려움에 맞서 냉철히 주변을 살피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거다.


 뇌과학이든, 심리학이든, 요점은 적극적으로 길 찾기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거다. 새로운 길을 찾아가면서 우연을 마주치거나 평소 놓쳤던 사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핸드폰 GPS를 내려놓고 길을 찾아갈수록 해마가 발달하면서 우울증과 알츠하이머 등 각종 정신질환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한 번쯤은 저자의 말처럼 느긋하게 기계가 아닌 우리 육감에 맡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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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마다 겐지 지음, 김석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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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 해설


 주자학과 양명학을 해설한다. 각 철학자의 삶은 어떠했고, 그의 사상은 무엇인지 깊게 사유한다. 주자학과 양명학이 중국 정치사상과 현대 동양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제목만 보고 주자학과 양명학을 쉽게 풀어쓴 교양서로 생각했다간 큰코다친다. 전문용어가 넘쳐나기 때문에 일반인이 교양으로 쉬이 읽을만한 책은 아니다. 중국 역사와 사상, 그리고 유교와 관련된 풍부한 지식이 없다면, 이 책은 두통을 선사할 거다.


이기론(理氣論), 주자학과 양명학


 유학자들은 세상의 작동 원리인 이(理)와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인 기(氣)로 세상이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과학 물리 법칙이 '이'라면,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물질은 '기'다. 이(理)는 그 자체로 구현될 수 없으며, 항상 기(氣)와 결합해야만 현실화된다는 특성이 있다. 이런 이기론 해석하는 방법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은 대립한다. 


 주자학은 이기론에서 성즉리(性卽理)를 도출한다. 사람의 마음(心)에서 본성(性)과 감정(情)을 분리했다. 사람의 마음과 본성, 그리고 감정은 서로 각기 다르며 별개로 존재하는 것으로 봤다. 중요한 건 이(理)인 본성이다. 본성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본성을 모른다는 거다. 따라서, 격물치지(格物致知), 모든 사물에 이(理)가 존재하기에 끊임없이 본질을 연구해야 한다. 주자학에서는 행동보다 앎이 우선(선지후행;先知後行)이다. 행동으로 나서기 전에 이치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거다. 쉽게 말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거다.


 주자학의 가르침대로 격물치지를 하면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비판하면서, 양명학은 이기론에서 심즉리(心卽理)를 도출한다. 주자학과 다르게 사람의 마음에 본성과 감정이 있다는 거다. 우리 마음이 곧 이(理)이므로, 세상의 모든 게 자기 자신 안에 있다. 따라서, 고민하지 말고 행동으로 나서라고 이야기한다. 양명학에서는 앎과 행동이 하나다(지행합일; 知行合一). 행동으로 나서야 아는 거다. 쉽게 말해, 세상 완벽한 건 없으니 과감히 나서라는 거다.


 우리나라는 주자학의 나라였다. 송시열, 이황, 이이 모두 뼛속까지 주자학자다. 주자학에서 중요한 격물치지는 행동이 없다. 즉, 책상에 앉아서 종일 철학 공부만 했다는 이야기다. 생산성이라곤, 실용성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런 이들이 기득권이 되어 국가 중요 중대사를 결정했다. 왜 잘나가던 조선이 쇠퇴했는지 대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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