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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폭력 - 운명이라는 환영 ㅣ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2
아마티아 센 지음, 김지현.이상환 옮김 / 바이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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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화와 편견을 경계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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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철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저자가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편견을 깨뜨린다.
저자는 정체성으로 인간사회를 해석하는 관점을 독보적인 정체성관(觀)과 다원적인 정체성관(觀)으로 구분한다. 독보적인 정체성관은 여러 정체성(종교, 문화, 지역, 인종 등)을 보유한 사람을 특정 정체성으로만 해석한다. 중국인은 어떻고, 여자는 어떻고, 기독교인은 어떻고 하는 것들이 모두 독보적인 정체성관이다. 독보적인 정체성관의 가장 큰 특징은 구획화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 짓는다. 독보적인 정체성관이 사상으로 나타난 게 전체주의, 민족주의다. 독보적인 정체성관은 차별과 폭력의 정당화 수단이 된다. 아리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상업 계층민을 반동분자라며 학살한 사회주의 국가 모두 독보적인 정체성관으로 다른 이를 구분하면서 벌어진 비극이다. 변증법 논리처럼 독보적인 정체성관은 또 다른 독보적인 정체성관을 낳는다. 차별된 사람들은 보호기제로 똑같은 독보적인 정체성관을 형성한다. 그리고 똑같은 폭력을 야기한다. 일본 민족주의에 반발해 등장한 우리나라 민족주의, 서구의 차별에 반발해 등장한 범아시아주의가 대표적 사례다.
저자는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비판하면서, 문명, 문화, 종교와 국가 등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명확히 구분되기 힘들고, 단일 정체성으로 개인과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는 과도하게 정체성에 집착한 공동체주의와 정체성이 주는 영향력을 무시한 개인주의, 양쪽에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특정 정체성으로 한 인간을 단정 지을 수 없으며, 동시에 정체성이 그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거다. 기독교를 예로 들면, 기독교 내에서도 예수교와 감리교 등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존재하는데, 이들을 한 데 묶어 일반화하기 어렵다. 또한,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경상도 출신, 서울대 학생 등 다양한 정체성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기독교인이라는 특성으로만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단일 정체성으로 구분 짓기에 너무나 다양하고 개성 있는 존재다. 인간은 여러 정체성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다원적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 다원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평화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다원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이성'을 강조한다. 편견으로 색안경을 끼고 있는 인간 해석을 벗기 위해서는 객관화할 수 있는 이성 능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우리는 끊임없이 일반화의 유혹에 빠진다. 복잡한 인간 사회를 편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적이면서 시사적인 저자의 결론은 '포용'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 짓지 말고,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정체성 중 특정 정체성만으로 색안경을 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는 거다. 다원적이고 다양한 사람이 모인 사회가 건강하듯, 다원적이고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도 건강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