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
제랄드 브로네르 지음, 김수진 옮김 / 책세상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johnpotter04/222221153389

 | 우리는 왜 선동에 휘둘리는가? |  |
|
사람을 선동과 유사과학, 그리고 사이비종교에 빠지게 하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다. 프랑스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예시로 그것이 어떻게 선동이고 유사과학인지 증명해간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라는 격언처럼, 선동이라는 걸 증명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선동의 메커니즘을 일반화해서 설명하지 않고, 특정 사건이 선동이라는 걸 증명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선동에 휘말리는지 보인다.
우리나라에 생소한 여러 프랑스 시사가 책을 어렵게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 있었던 여러 논란과 상당히 유사한 상황이 많아 공감하는 부분도 많다. 프랑스 시사를 통해 우리나라 시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 선동의 기제, 편향 |  |
|
저자는 인지 편향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인다. 대표적인 인지 편향은 '확증 편향'이다. 사실로 믿고 싶은 것을 증명하는 근거만 수용하는 편향이다.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근거는 여러 이유를 들며 거부한다. 확증 편향은 한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반증은 거부했지만, 참이라는 근거는 지속해서 쌓여가기 때문이다. 한번 사이비종교에 빠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이유가 확증 편향이다.
인간은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 인과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마주하면, 문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쪼개서 보려고 한다. 쪼개진 조건을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들을 종합한다. 결국, 특정 조건에서만 참인 문제를 모든 조건에서 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반화의 오류, 맹인모상(盲人摸象; 장님 코끼리 만지기)으로 알려진 '분할 편향'은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저자는 인지 시장의 경쟁이 집단으로 인지 편향을 확산시키고 강화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신문사나 방송사의 무분별한 경쟁이 사회를 바보로 만든다는 거다. 정보를 먼저 전달할수록 큰 이익을 얻는 인지 시장의 경쟁 체계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잘못된 정보를 무분별하게 확산시킨다. 확산된 정보는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근거가 된다. 잘못된 정보가 참이라고 여기저기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풍기 괴담을 생각해보자.
막힌 댐이 터지듯, 한번 확산된 정보는 바로잡기 힘들다. 진실을 아는 사람의 목소리는 매스컴과 SNS를 통해 전파되는 쓰나미에 묻힌다. 바로 잡으려는 전문가는 음모론과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는데 필요한 노력과 비용이 그렇게 함으로 얻게되는 이익보다 적기 때문에 침묵하게 된다. 반대로, 음모론으로 이익을 얻는 선동자의 목소리는 강해진다. 진실을 전달하기보다 선동을 계속 부추기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외부효과', '특수 이익집단의 역설'이라고 한다.
 | 어떻게 바로 잡을까? |  |
|
저자는 교육을 통한 사회의 '체계적인 비판적 사고 능력' 강화가 해답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이 지적 능력을 함양한다고 인지 편향에 벗어나는 게 아니다. 지식의 전달에만 중점을 둘 게 아니라,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교육해야 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체계'란, 과학적 접근 방식을 의미한다. 저자는 과학적 접근 방식을 갖춘 비판적 사고만이 인지 편향을 벗어날 수 있다며, 단순히 비판적 사고 능력만을 키우면 안 된다고 한다. 과학적 접근 방식을 갖추지 못한 비판적 사고는 지적 허무주의와 인지 편향에 빠지기 쉽다는 거다. 쉽게 말해, 사회 구성원이 합리적인 이성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다.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체계적인 비판적 사고'도 완전히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기계처럼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만 모든 순간을 판단할 수 없다. 완벽히 모든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실을 알려주는 반론을 매번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최대한 과학적 접근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민주 사회 구성원에게 필요한 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