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johnpotter04/222189708245

폐지 줍는 노인이 마주한 빈곤


 대한민국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인 폐지 줍는 노인의 빈곤을 깊게 살펴본다. 노인들이 겪은 이야기를 풀고, 그와 관련된 현 복지 체계와 대응 방안을 평론한다. 저자가 노인들과 인터뷰하며 얻은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백미다.


 리어카 끄는 노인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편견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통계와 수치에서 보이지 않는 빈곤을 마주한다. 생활에 필요한 소득은 전혀 없지만 행정상 재산이 잡혀있어 기초생활수급에서 제외된 노인법적으로 부양할 가족이 존재해 지역 복지 사업에 제외되지만 가족에게 외면받는 노인 등 복지 사각지대가 이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노인 기초연금만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없고 취업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위험하고 고되면서 소득은 적은 폐지와 재활용품 수거로 몰리는 노인들을 만난다. 


 노인들이 재활용품과 폐지를 줍는 시간은 심야, 강력 범죄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 간 치열한 경쟁은 상황을 더욱 심화한다. 완력이 강한 남성 노인에게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 노인이 폐지를 빼앗기고 외진 골목으로 내몰린다. 길 양쪽의 폐지와 재활용품을 다른 노인이 채가기 전에 수거하려고 무단횡단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모아둔 폐지를 독점하는 대가로 주차장을 청소해야 하는 등 비공식적인 노동행위가 발생하기까지 한다. 문제는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폐지를 모아도 받는 돈은 법정 최저시급에 한참 못 미친다는 점이다.


복지 사각지대, 리어카 끄는 노인


 노인들이 원하는 건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안정적인 소득과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여가 활동이다. 경로당은 노인들이 모여 외로움을 해소하는 사교의 장이자, 여가 활동 장소다. 뚜렷한 소득 원천이 없는 노인들은 경로당의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폐지를 줍는다. 핵심은 소득이다.


 저자는 폐지 줍는 노인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사회'를 지목한다. 직접적인 원인은 재산 또는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가난과 노화로 인한 노동력 감퇴이지만, 노인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양질의 일자리나 복지 제도의 부재가 그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거다.


 현재 국민연금과 노인 기초연금만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걸 지적하며, 노인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본 소득을 보장하거나, 정년 이후에도 경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 제도가 확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노인은 계속 길거리로 내몰릴 것이라는 거다. 저자는 2020년 현재 추진 중인 '노인 일자리 사업'이 폐지 수거를 대체하는 데 기여하는 건 사실이지만,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일시적인 방편이고, 대부분의 수혜자가 경로당에 집중돼 경로당에서 소외된 노인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노인이라는 잉여 노동력의 활용 방안을 마련하여 노인과 사회가 공존할 방법을 찾는 건 좋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라는 전제가 필수임을 강조한다.



 노인이 왜 폐지·재활용 수거로 몰리게 됐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평소 리어카를 대신 끌어본 적은 많지만,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사적인 질문이 실례이기도 하고,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름의 소득이 있기에 하시는 거라며 합리화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그건 단순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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