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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ㅣ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서평)
편지에 나타난 정약용
19기 문혜영
각 단락 응집력있게
인용구절을 한 단락에 서네개 넣어놓고
그걸근거로 정약용됨됨이 하나를 잡는다
정약용이 정성을 쏟은 것으로 본론을 나열한다
강약중간약으로 순서 재배치한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삶이란 그 무엇엔가에, 그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역시나 옥고를 치른 전우익 선생님이 1989년 11월 4일 스님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옥중이라는 상황은 그 동안 무심코 지나쳤으나 가장 절실했던 것들을 떠올리기에 죽음 다음으로 절대적 고독의 상황임에 틀림없다. 바울, 신영복 그리고 정약용에게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익숙한 것들로부터 단절된 궁핍의 시기에 떠오르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리라. 정약용의 편지에서 그가 여전히 정성을 쏟는 것들, 사람들을 엿볼 수 있었다.
35편의 편지가 두 아들 앞으로 쓴 편지이다. 13 편이 둘째 형님 앞으로, 그리고 9편이 그의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는 두 아들을 사랑했을까? 요즘 자녀들이라면 그의 자녀에 대한 편지가 사랑으로 가득하다고 평하지 않을 것 같다. 그의 편지에는 많은 부분이 당부와 가르침이기때문이다. 그 역시 많은 아버지들처럼 가문을 이을, 그것도 청족은 아니더라도 청귀(p39)를 지닌 집안으로 당당히 살아남길 바랐다. 아들들이 독서와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꾸준히 독려한 것은 아마 사랑보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페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사촌, 육촌까지 이르는 자신의 가문이 학술로 명망을 얻어 이어지길 바랐다. 조카 학초가 죽음으로써 그가 가장 아끼는 <주역사전>과 <상례사전> 두 책의 오묘한 뜻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이 어려워지자 그는 못내 아쉬워했다(P38).
그러나 그는 자녀양육에 섬세하였다. 둘째 아들을 칭찬할 때도 늘 형을 먼저 세웠다. '네 동생 학유의 재주는 너에 비하며 조금 부족한 것 같다. 그런데 금년 여름 고시와 운이 안 달린 부를 짓게 했더니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그런데 너는 본래 네 동생에 비해 재주가 조금 낫고 어렸을 때 독서한 것도 동생에 비해 대강 갖추어졌으니 이제라도 용맹스럽게 뜻을 세워 분연히 향학열을 돋운다면 서른이 넘기 전에 응당 대학자로서 이름을 얻을 것이다.' 이런 식이다.
그는 학문과 사람됨의 근간인 효제, 그리고 실생활에 균형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두 아들과 그들의 사촌 5,6명에게도 같은 것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효와 제에 그 근본을 두고 경사와 예악, 병농과 의약의 이치를 투철하게 알게 해주는 일이다.' 천륜, 부모 형제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지 말라고 당부하고, 시를 쓰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이 되고, 대도를 마음에 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독서를 권하면서도 과일, 채소 약초를 재배하도록 권하고, 책을 쓰라 독려하면서도 그 책의 내용이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삶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책으로 남기도록 권하고 권한다. 양계를 한다는 학유에게 단지 양계를 통해 이를 취할 생각만 하지 말고, 농서를 읽으며 이런 저런 양육방법도 시험해보고, 또 닭의 정경을 잘 살펴 시를 짓기도 권하니 참으로 그에게는 학문과 실생활이 구분이 없다.
그가 정조를 사랑하였으나, 그는 상명하복의 기계적 복종을 경계한다. 임금의 총애가 아닌 존경을 받는 신하, 임금의 신뢰를 받으나 마냥 임금을 기쁘게만 하는 첩과 같은 신하가 아니라, 때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상이 알려지게 하는 벼슬아치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자신의 벼슬살이에 대한 반성이지만, 여전히 어려움에 처할 수 있음에도 학자로서의 강직함을 포기하지 않는 기개를 보여 준다.
바울과 정약용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에게서는 옥중에 있는 처지를 한탄하거나 자포자기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그곳에서조차 무엇이든 살리고 보존하려 쉬지 않고 노력한다. 그들에게서 삶에 대한 강한 애착과 희망을 본다. 무엇엔가 정성을 쏟는 사람이라야 진정 삶을 살았다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