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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 - 착한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9월
평점 :
- 영악하게 대화하자-
‘도를 도라고 내뱉는 순간 말로 표현된 도는 원래 의도했던 도와는 다른 것이 된다.’ 언어의 부정확성, 언어의 한계를 이처럼 잘 표현한 말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언어의 부적절함을 놓고 오래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의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한 말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런 언어를 왜 사용해야 한단 말인가? 대화 기법을 익히면 나의 의사를 잘 표현할 수 있는가? 듣는 사람의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뜻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는가, 등등. 불완전한 언어라는 도구로 뜻을 주고받으려는 인간의 모습이 나에겐 우스꽝스럽게 여겨졌었다.
후쿠다 가즈야의 대화술은 ‘타인과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다. 그는 특별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다. 바로 어른들이다. 여기서 ‘어른’이라 함은 언어 전달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고,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과 거기 관련된 화자와 청자들의 천변만화 다양함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그 상황이라는 것이 호의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련되며 아름답고 성숙한 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책의 독자들이다.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은 후쿠다 가즈야의 <악의 연애술>, <악녀의 미식술>과 함께 ‘악의 시리즈’ 중의 하나다. 대화를 잘 하고자 이 책을 드는 순간, 독자는 악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선'과 ‘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상대방이나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식이 없는 것을 순진무구함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대화에서 이런 의미의 선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은 그는 대화에서의 순진무구를 자신을 지키는 편리한 변명거리일 뿐이라고 경멸한다. 반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고, 대화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 대화를 어떻게 연출해야할지, 등등 세심한 관찰과 배려를 고민하는 용의주도함, 인위적인 노력을 그는 ‘악’이라고 표현한다. 긴장감이 없는 언어는 생명이 없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여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언어 상황과 언어 양상 - 아부, 험담, 거짓, 경어, 침묵, 긴장, 등 - 에 대한 반성적 재해석이 담겨 있다. 우리는 아부를 뻔뻔하고 얄팍한 처세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는 아부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아부가 미움 받는 이유를 파헤치고, 설득력있는 아부를 위해 어떻게 아부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아부는 대화의 미묘한 어려움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대화의 상징이다. 그리고 온갖 잡귀가 창궐한 세상에서 활기차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언어 기술이다. 이런 식으로 험담에 대해서, 거짓말에 대해, 경어에 대해 요리조리 뒤집어가며 살핀다.
‘이런 책은 이제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들었는데, 대화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파헤침과 영악함 뒤에 니체나, 발타자르 그라시안에게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따스함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한 손에 잡히는 이 책의 사이즈도 아주 흡족했고, 특히 후쿠다 가즈야와 하나가 된 듯한 매끈한 번역이 저자의 음성으로 직접 강연을 듣는 듯했다. 좀 더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대화로 원하는 것을 세련되게 얻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악의 대화술>이란 원제목이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이란 제목보다 더 저자가 의도한 내용을 잘 전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