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야곱 DNA - 축복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이중적 욕망
김기현 지음 / 죠이선교회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방금 이 책을 손에서 내려 놓았다. 야곱과 그 험악한 세월을 함께 살아온 것 같이 고단하다. 다 읽고 보니 이 책은 창세기 주해서에서 야곱 부분을 떼어놓은 것 같은 내용이다. 창세기 25장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하는 부분부터 35장 야곱이 생을 마감하는 곳까지 성경의 전개와 함께 그 모든 구절 안에서 살펴볼 수 있는 모든 내용을 백과사전처럼 총 망라한 듯한 글이다. 설교를 준비할 때 무궁무진하게 참고 할 수 있겠다. 어느 한 시각도 놓치지 않으려는 저자의 치밀함이 느껴질 정도로 다각적인 분석과 해석이 마른 자리 풀도 나지 않는다는 최씨 고집처럼 조금은 숨막히게 했다. 특히 전반부는 야곱이란 사람을 놓고 예리한 수술용 나이프와 집게로 하나 하나 헤집는 것 같아 글이 흐른다기보다는 형체도 없이 쪼개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제목의 강렬한 의미가 기대감을 잠식하였고, 계속 읽다보니 제목이 전반부 어느 한 부분을 강하게 잡고 있어서 야곱의 생과 함께 점점 무르 익어가는 후반부의 내용을 아우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또한 저자가 학문적 서적과 영어권 서적을 많이 접해서인지 결론을 대 단락마다 미리 밝혀서 학문 서적이나 노트 필기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이 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서 기대감, 흥미를 빼앗아가고 수동적 독서를 하게 했다. 책에서 시종일관 언급되는 이중성이라는 말을 모두 빼어내고 독자들이 읽어가면서 이런 이중적인 것들이 있구나 캐 낼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었더라면 독자들이 더 달려들어 이 책을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 여러 인물들이 있는데 야곱은 좀 더 특이하다. 성경의 인물들은 뭔가 하나님한테 택함 받을만한 뭔가가 있는데 야곱은 도통 그런 인물이 아니다. 실은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 일생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게 하셨던 것 같다. ‘내 안의 야곱  DNA’라는 제목 안에도 예의 이중성이 들어있다. 첫째, 야곱에 대한 경멸이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둘째, 그런데 그 야곱이 바로 내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외삼촌 라반 밑에서 라반을 겪으면서 야곱이 보게 된 자신의 모습이다. 그 깨달음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버러지 같은 야곱의 인생을 호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기 때문이다. 내가 야곱같은 인생임을 깨달으면서 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후련함이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우리는 다시 껄끄러운 에서를 만나야 하고 세겜에서의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 또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은 ‘야곱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듯, 내 하나님이 야곱같은 또 다른 놈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즉 야곱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또 다른 야곱, 또 다른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야곱이란 인물의 힘, 하나님이 야곱을 성경에 기록한 의도이리라. 


이런 일들은 장자 에서대신 장자권의 축복을 받은 자신과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해 손을 엇갈려 축복한 야곱의 깨달음과 함께 한다. 성경에서 순서가 뒤바뀌는 일의 의미를 저자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아버지 이삭이 장자 에서를 축복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나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게 하셨다. 내가 장손 에브라임을 축복하려 할지라도 하나님이 므낫세를 장자로 축복하실지 모르고 또 므낫세를 축복하려해도 에브라임이 축복받을지도 모른다. 축복은 하나님의 뜻과 선택에 달려있고 그것은 한 번 정해져서 변함없이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은혜를 줄지라도 그 은혜가 먼저 된 자가 나중될 수도 있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될 수도 있으니 어느 누구도 나의 은혜를 받았다고 방심하거나 방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의중이 담겨있는 것이다. 


나는 야곱에게서 이중적 욕망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철저히 육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인생이 서서히 빛을 발하게 된 것은 완전히 육적인 야곱의 인생을 휩싸고 돌며 함께 하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리라. 다만 한 가지 야곱은 축복이 필요한 인생임을 알았고, 그 축복을 하나님께 구할 생각을 했던 것이 가장 큰 축복이며 은혜였으리라. 꼭 야곱같다 생각되는 목사님을 보았다. 목사님인데 철저히 야곱같은. 그런데 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보며 의아하고 호기심이 생겼었다. 철저히 육적인 분이어서 그를 통해 기대를 갖게 되는 사람들의 범주가 넓었다. 그리고 철저히 육적이어서 그 인생을 인도하며 빚어가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나도 어설픈 가식을 하나 둘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내 안에 야곱 DNA가 있음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내 위에 빛나며 세상으로 보냄받은 나의 사명-또 다른 야곱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도 감당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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