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너는 얼굴과 목소리를 맞바꾸며말한다, 끝까지 닿을 수 없는 수평선 그것이 나를 감았다고아름다운 것그것이 나를 죽였다고, 끝까지 아픈 것(‘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 P25
우주는 춥고 어둡겠지 아무것도 안을 수 없는 그곳이너무 차갑고 캄캄해서거기서 바라보면, 인간은 불덩이일지도 몰라아직 꺼지지 않은 마음을 생활이라는 아궁이에 담고서 벌겋게 식어가는 것거기 물 한 바가지를 퍼부은 것이 슬픔일 것이다 흰연기를 뿜으며일순간 모든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격렬하게 어두워지는 것, 어느 날 샛문이 열리고지친 얼굴의 누군가가먼지 골목에 뿌린 물에 젖어서, 무심코 지나가던 자가그 슬픔의 주인이 되는 것무심코 흘러가던 별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미래 중독‘) - P85
사람들은 배 위를 떠난 적 없다(‘목항‘) - P131
돌을 쥔다, 마음이 다 건너갈 때까지물컹해질 때까지 벌겋게 뛸 때까지이 도시엔,밤을 뭉쳐 돌을 만드는 시간이 있고, 쥐고 있으면슬픔을 빼앗긴다(‘광주‘) - P142
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도 오랫동안 나는 너를 만나지 못했다,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도 오랫동안 나는 태어나지 않았다(‘포인트 니모‘) - P168
그래서 작가는 필연적으로 균열을 내는 사람이다. - P45
생의 의지가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세상의 어른들은 혁명과 사랑, 이 두 가지를가장 어리석고 께름칙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다. 전쟁전에도 전쟁 중에도 우리는 그런 줄로만 믿었으나, 패전 후 우리는 세상의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이건 그들이 말하는 것과 반대쪽에 진정한 살 길이 있는 것 같았고, 혁명도 사랑도 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달콤한 일이며, 너무 좋은 것이다 보니 심술궂은 어른들이 우리에게 포도가 시다며 거짓을 가르친 게 틀림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나는 확신하련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 P109
죽어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산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 그건 몹시 추하고 피비린내 나는, 추접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새끼를 빼고 구멍을 파는 뱀의 모습을, 나는 다다미 위에서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내가 끝내 단념하지 못하는 게 있다. 천박해 보인들 상관없어.나는 살아남아 마음먹은 일을 이루기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련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나의 로맨티시즘과 감상 따위는 점차 사라지고 어쩐지 나 자신이 방심할 수 없는 교활한 생물로 변해 가는 기분이었다. - P119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떡해서든 끝까지 살아야만 한다면, 이 사람들이 끝까지 살기 위한 이런 모습도 미워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아아, 이 얼마나 버겁고 아슬아슬 숨이 넘어가는 대사업인가! - P136
산다는 것은 실패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여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무척 희망적이다.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즐기고 싶어졌다.윤리와 사상 공부를 했을 때 봤던 반가운 철학자들을 실제 삶의 윤리에 적용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웃겼다! 실존주의 파트에서도 웃음이 터질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