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있었던 존재들 - 경찰관 원도가 현장에서 수집한 생애 사전
원도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월
평점 :
경찰관 원도가 현장에서 수집한 생애 사전.
사사롭다, 고개, 단속, 강, 부패, 숙취, 비상, 묻다, 신고, 자리, 극단, 짬밥, 출구, 만원, 부끄럽다, 맞추다
책은 16개 단어를 모티브로 한 16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같은 단어도 사전을 들여다보면 뜻이 제각기 다른 것처럼, 다양한 단어의 의미를 우리네 삶의 모습에 비유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로서 겪은 말도 안되는 일들이 단지 경찰관의 사사로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원도 작가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은 한겨레신문에서였다. 종이 신문 한쪽에서 만난 그의 글은 따뜻하고 치열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매번 신문을 받아보며 기다려지던 글이었다. 그 글들이 모여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직업인으로서, 더군다나 경찰관으로서 꾸준한 저술작업을 하는 작가의 모습에 독자로서 반갑고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본인이 ‘길게 쓴 사직서’라는 아픈 표현처럼 작가가 마주하는 현실 세계의 처절함이 글이라는 방편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직업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거나, 일을 통해 대단한 성취를 해내거나, 그도 아니면 편한 업무 수행을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찰을 대입하면 셋 중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신고 접수 후, 출동한 경찰차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구석에 세우라는 항의를 받고, 번호를 누르고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에서 경찰의 출입을 반기지 않는다. 소장의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중, 중앙선의 실선에서 유턴하여 손님을 태우던 택시를 단속하며 듣던 말.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잘 접은 고지서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읊조리는 기사의 한 마디에 스스로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의 처절한 삶과 죽음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자살로 처리된 변사자의 수는 1만 2,727명이다. 하루에 34.8명꼴로 자살한다는 말이다. 믿을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죽다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음을 원하다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사회적으로 논의가 부족하다니. 특정 종류의 동물이 집단 폐사할 경우 전국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하는데, 단일한 종류의 동물이 타의도 아닌 자의로 우후죽순 죽어나가는데 비상사태가 아니라니. 우리나라는전쟁 중인지도 모른다. 매일매일을 사는 게 전쟁이다. 이들을 ‘변사자’ 대신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지 못한 ‘전사자’로 부르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p174
같은 사회를 살면서도 통계자료나 기사로만 접하던 공간이, 작가에게는 현장 수습, 감식, 뒷처리를 하는 현장이다. 내 사전의 단어와 그의 단어가 같은 의미가 아닐 것이다. 글을 통해 다른 삶이 존재함을 아는 것, 그 삶의 주인공인 사람을 상상할 수 있는 것. 거기서부터 사회적 연결의 실마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중심에 있는 저자 원도의 존재가 참으로 소중하다. 그래서 그의 글이 사직서가 아니기를, 멀리서나마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