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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의 감각 - 의식의 본질에 관한 과학철학적 탐구 ㅣ Philos 시리즈 26
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박제윤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2월
평점 :
“완전히 꿰뚫었다”
“의식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매우 쉽게 접근하는 오픈 사이언스!”
라는 책 표지의 극찬의 글은 내게 좌절로 다가왔다고 솔직히 밝히고 시작해야겠다.
엄청난 부를 얻는 대신 주관적 느낌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겉으로는 멀쩡하겠지만 느낌을 갖지 않는다면 나는 죽은 것과 같을 것이다. 좀비와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의식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상황을 제시한다. 그렇다. 의식은 중요하다. 내가 나라고 느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의식은 경험이다.
그리고 경험은 내가 세계에 대해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모든 경험은 의식적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저자는 여러 뇌과학 연구 결과를 통해 아니라고 말한다. 호모사피엔스와 다른 포유류의 행동적, 생리적, 해부학적, 발달적, 유전적 유사성을 고려해 보면 인간만큼 풍부하지는 않지만, 모든 포유류가 소리와 광경, 삶의 고통과 즐거움을 경험한다는 것을 의심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또한 가추추론을 통해 무척추동물 또한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이전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온갖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개체들과 소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꿀벌도 얼굴을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안겨준다.
개인적으로 대단한 감동을 받은 ‘나의 문어선생님’이라는 다큐가 떠올랐다. 놀이를 즐기고, 인간을 환대하고 위로하는 바닷 속 문어.
그러니 인간이 윤리적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나머지 자연 세계는 인류의 목적에 부합하는 한에서만 가치를 부여한다는 생각, 즉 서구 문화와 전통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신념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는 인공지능은 어떠한가?
저자는 컴퓨터는 경험할 수 없고 디지털 코드는 느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간의 세계에서 고통받는 존재들에 대한 지식이 증가할수록 법적 보호를 받을 생물의 범위를 확대하는 법률이 필요함을 피력한다. 새로운 인류학, 새로운 도덕규범이 필요한 시점이다.
치밀한 과학적 논증의 방법으로 실천을 이끌어내는 뛰어난 철학서임에 분명하다.
의식은 관념적 차원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참된 본성을 파악하기 위한 탐구에 일생을 바치는 저자와 같은 학자가 있기에 이론이 정립되고 설명의 근거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진보한다.
책은 표지부터 감각을 끌어내는 독특한 질감을 느끼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아르케의 필로스시리즈는 내 지적 수준이 좀더 높여야겠다는 도전의식과 안타까움을 함께 자아낸다. 과학과 결합된 의식 탐구의 매력이 넘치는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는 좀더 이론에 다가갈 수 있기를,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