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기도였다.”


첫 문장이 강렬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 하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내내 붙어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또래보다 성숙하고 강단 있으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던 멋있는 아이. 어느 날, 자기와 함께 갈 데가 있다며 데려간 곳은 작은 교회였다. 교회라고 하기 전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작고 초라한 공간. 예배가 시작되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분위기가 고조되고 여기 저기서 방언이 터지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친구마저 몸을 앞뒤로 흔들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내뱉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이 낯설고 두려웠던 기억.


기억 둘.

졸업을 앞두고 있던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자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처럼 얼굴도 볼 겸 찾아간 곳은 다단계 이불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하루종일 강연을 듣게 하고 구호를 외치고 곧 세상을 전복할 것 같은(그들은 다단계 판매의 피라미드를 통해 자본주의 유통망에 구멍을 내고 결국은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했다.) 희망찬 얼굴을 하고는 나를 허름한 자취방으로 데리고 갔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공간이었다. 정상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그들은 예전엔 꽤나 알아주던, 논리로 무장된 사람들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작가인 어맨다 몬텔은 유년기를 극단적인 컬트 공동체에서 보내다 탈출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컬트, 특히 컬트 언어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컬트 집단에 들어가는 이유, 그곳에 남는 이유, 거칠고 이해할 수 없는 섬뜩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컬트적 언어를 통해 설명한다.


첫째. 사람들이 스스로 특별하고 인정받는다고 느끼게 만든다. 러브바밍. ‘딸깍’하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하고 집단에 가입하게 된다. 


러브바밍: 상대를 깊이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처럼 연기함으로써 친밀감에 대한 환상을 빚어내는 기술. 상대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고 그의 꿈을 이해하는 척하며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둘째, 우리vs 저들 이분법: 이 집단, 이 운동에 참여한 ‘우리’와 그렇지 못한 ‘저들’을 구분해 심리적 분열을 일으키는 기술로 우리와 저들을 구분함으로써 구성원들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한다. 


셋째, 사고 차단 클리셰: ‘어쩔 수 없지’ ‘남자애들이 원래 그렇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처럼 비판적인 사고를 억제해서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만드는 기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잡한 사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안정감을 느끼고 안심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비롯해 인민사원, 사이언톨로지 등의 사이비 종교, 다단계 마케팅 회사, 피트니스 산업 등에서 일어나는 컬티시 언어를 광범위하게 설명한다. 


진정한 해답은 바로 말에 있다. 전달하는 것, 기존 단어를 교묘하게 재정의하는 것(혹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부터 강력한 완곡어법, 비밀 암호, 개명, 유행어, 성가와 만트라, ‘방언이 터지는 것’, 강요된 침묵, 심지어 해시태그까지, 컬트는 언어라는 핵심 수단을 통해 다양한 수준으로 영향을 미친다. 착취를 일삼는 영성 구루는 이점을 잘 알고 있다. 피라미드 설계자, 정치인, 스타트업 CEO, 온라인 음모론자, 트레이너, 심지어 SNS 인플루언서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는 매일같이 ‘컬트 언어’를 듣고 거기에 휩쓸린다.p24


‘인간은 외로움 앞에 맥을 못 춘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생존을 위해 긴밀한 집단을 만들어 생활하던 고대 인류 이래로 사람들은 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집단에 이끌렸다. 진화 측면의 장점 이외에도, 공동체는 우리가 행복이라는 미스터리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p35


친구가 “유튜브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아.”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매일 매 시간 타킷 광고와 맞춤형 피드를 통해 우리를 토끼굴로 내려보내는 알고리즘. 그만큼 강력한 ‘컬트 지도자’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적당히 신중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논리적 사고나 감정적 직감을 포기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고립된 코뮨에서든 억압적인 스타트업 직장에서든 사기꾼 인스타그램 구루 앞에서든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눈을 반짝이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p319


결국 ‘그곳’에 가게 되고, 있게 되고, 자발적인 추종자가 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간은 혼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적인 존재. 그러니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것, 그곳에서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는 자연스러운 욕망을 이용하는 극단적인 컬트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컬트를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의 논리와 기준을 갖고, 한 곳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여러 곳의 컬트에 속함으로써 현실에 발을 딛고 컬티시 생활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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