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말한다
이창건 지음 / 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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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일초 교장으로 퇴임하시고,

(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셨던

이창건 승훈 베드로 선생님의 시집을 읽습니다.

반갑게도 젊은 선생님의 얼굴에 가득 찬 미소가 정겹습니다.

사인 체도 편안 그 자체입니다.



향기롭고 슬픈 밥

점심시간에 나는 집으로 오곤 했다

외할머니는 먹을 것도 없는데

뭐 하러 오느냐며 하시다가

부엌으로 들어가

찬물 한 그릇을 떠다 주시곤 했다

나는 물을 국처럼 마시고 학교 뒷산으로 달려가

아카시 꽃을 한 움큼씩 따

밥처럼 먹었다

어린 날, 목이 메도록 먹고 또 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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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자란 선생님의 어느 한나절 같은

그림이 그려지는

'향기롭고 슬픈 밥'은 가난하지만 인정 넘치는 가족이 있어

희망을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슬픔 속에 아카시 산뜻한 향기가 숨어 있지요.

눈물이 터지는 시들이 연이어 나타나서 가슴이 아립니다.



오래된 기차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넓은 들을 지나

평생 얼마나 많은 역을 달려왔을까

구부러지고 휘어진

바람 앞에서

눈비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보아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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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서울역, 용산역, 행신역... 목포역, 광주역...)

기차가 들어오는 순간, 기차가 떠나는 순간은 눈물로 설명됩니다.

엄마, 아버지, 친구, 연인, 친지, 지인들을 기다리는 기차역이

떠올라 눈시울이 젖어듭니다.

시인의 마음이 참으로 따스하게 가슴을 지나가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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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연못

(중략)

네 마음

고요한 연못 속에// 반짝이는// 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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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별 여러 개씩 간직하고 있을

외롭고 초라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에 충분하지요.

내 마음속 별들이 잘 있는지 가끔 확인해 보고 싶네요.


봄 햇살, 새봄 -봄에 읽는 봄 시들이 참 좋아요.


82편의 시가 모여있는 <<오늘이 말한다>>는

순식간에 읽히는 차분하고 몰입이 강한 시들이 많습니다.

향기, 봄, 선한, 하느님의 친절하고 따스함이 깃든 시들이

마음을 토닥여주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선생님이 제게 들려주신 메뉴가 떠오릅니다.

"내가 글쎄 전복을 버터에 구웠지 뭐야."

"우와, 얼마나 맛있을까요? 잘하셨어요."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전복 버터구이처럼

오래오래 음미하며 천천히 되새김하고 싶은

철학적인 동시 같은 시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눈물이 반짝이는 시집입니다.




신지영(아동문학평론가)과 등단 42년 차 선생님이 주고받은 인터뷰를 읽다 보니

선생님의 문학정신과 삶이 그대로 다가옵니다.

세월호, 반지하 참사에 대한 시처럼 상처받고 외로운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어야 하는 연민과 측은지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다 함께 따뜻하게 살아야 해요."

일흔 살 아동문학가 하느님의 포도밭을 가꾸는 농부 이창건 선생님이 전하는

봄날 같은 시집입니다.


거울//그래, 웃는 거다/ 활짝 웃는 거다//거울에 비친 / 일그러진 내 허상에서 빠져나와// 깔깔깔 웃는 거다//슬픈 얼굴은 지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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