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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 밥상 내 얼굴 ㅣ 푸른사상 동시선 44
박해경 지음 / 푸른사상 / 2018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레 밥상 내 얼굴』/ 박해경 / 푸른사상
저녁을 준비하면서『두레 밥상 내 얼굴』을 다시 읽는다. 밥이 뜸 들이는 동안 달걀찜이 익는 고소한 냄새에 배가 고파진다. 이제 곧, 우리 집 밥상에도 얼굴들이 모일 것이다.
동시를 읽는데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회탈처럼 늘 웃는 눈이 먼저 나타나고 높고 낮음이 분명한 울산 사투리가 매력적인 모습이 웃게 한다. 그런 시인이 차려 놓은 밥상은 대가족용이다. 고모, 작은 아버지, 큰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앉아계신다. 외갓집 식구들도 빼놓지 않았고 또 다른 이웃들도 초대했다.
소재가 다양하고 경상도 사투리의 투박하면서도 밝은 톤이 읽는 즐거움을 준다.
가족들이 모여 앉은 식탁이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때로는 엄마 아빠가 연속극 ‘돈꽃’으로도 싸운다. 서로 의견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함께 보았다는 것이 화목한 가족임을 일깨워준다. 연속극을 보면서 티격태격하는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다툼이 웃음 짓게 한다.
엄마 아빠 꽃을 보며 싸운다//적당히 있으면 /좋겠다는 아빠//무슨 바보 같은 소리/많아서 처치 곤란했으면/좋겠다는 엄마 //김칫국부터 마시며/엄마 아빠의 /신경전은 팽팽/끊어질 듯하다.//향기도 없이/ 혼자 떠들고 있는/ 텔레비전 연속극 돈꽃.//
- <돈꽃> 전문-
동시집 주인공들은 부유하고 편안하고 세련된 구성원들이 아니다. 뒤처지고 못난 친척들도 있고 외롭게 지내다 병이 든 돌보아 할 가족의 걱정거리들이 들어있다.
혼자 지내던 /외할아버지가 쓰러졌다// <중략>외할아버지가 깨어나자/엄마는 까만 눈물을 흘렸다./힘들어도 견디다/마음이 타 버린/엄마가 흘리는 눈물은/까맣다는 걸 알았다//
- <엄마 눈물은 까맣다> 중에서 -
어떤 이유로 혼자 사시는 걸까? 혼자의 삶이 결국은 병을 몰고 온 것은 아닐까? 아픈 외할아버지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읽는 것만으로 마음이 슬퍼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엄마의 눈물이 까맣다는 표현은 그대로 다가온다.
늦가을 호박 보며/시집 못 간 고모라고/놀리는 우리 할아버지// 혼자 남을/할아버지 생각에//호박처럼//퉁퉁 붓도록 우는 고모//
- <호박> 전문 -
할아버지는 고모가 시집가는 걸 바라고, 고모는 혼자 남겨질 할아버지 걱정에 울고, 문제해결이 간단할 것 같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은 현실이다.
고모가 할아버지를 덜 걱정하고 할아버지는 고모가 좋은 사람 만나 화목한 가정의 일원이 되기를 상상해 본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행복한 미래가 펼쳐지기를 바란다.
취업한 고모/할아버지께 전화한다//“아버지 저 드디어 취업했어요/ 오랫동안 걱정 많이 하셨죠?/첫 월급 받으면 빨간 내복 사 드릴게요.”//“고맙다, 정말 잘했구나.”//손전화기를 타고 들리는/울먹이는 할아버지 목소리//
- <정말 잘했구나!> 전문 -
취업에 성공한 고모의 전화를 받고 울먹이는 할아버지는 빨간 내복을 받으면 펑펑 눈물 흘릴지도 모르겠다. 취업한 고모가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힘든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기를 응원한다. 기쁜 일들을 나누면서 할아버지의 행복지수가 올라가기를 바란다.
2018년은 제주 4․ 3항쟁 70주년이 되는 해였다. 푸른 아동청소년 문학회 세미나에서 제주 4․ 3항쟁 공부를 하고 후기를 쓰느라 가슴이 먹먹했던 시간을 보냈다.
-제주 4․ 3항쟁 추모시- 부제가 있는 가족이야기들 중 가장 확산된 범위의 아픈 역사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웃들의 이야기 시에 시선이 머문다. 시간이 흘러도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한 가족들에게 작은 토닥거림이 전해져온다.
너와 나의 가족들이 더불어 행복해야 밝은 세상이 될 것이다.
멀리 바닷가에서 들리는/총소리에/흙 가득 묻은/흰 고무신 그대로 신고/어디론가 뛰어나가던 하르방/돌아서서 손 흔들며/“강생아 집 잘 지키고 있어라/일찍 돌아와 밥 줄게.”/약속해 놓고/돌아오지 않아요//강생이는/붉게 지는 노을 바라보며/바람에 실려 오는/비릿한 냄새에/하얗게 피어나던/감귤꽃은 돌아오지 않을/하르방 손길/그리워하다 시들었어요.//
-<감귤꽃> 전문 -
조금씩 닮은 모습의 식구들이 모여서 엄마 밥상으로 집 밥을 먹는 장면처럼 따스한 동시를 읽는 동안 오늘을 열심히 살아낸 가족들이 모였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새로 지은 밥 위에 생선살을 올려주고 달걀찜을 듬뿍 떠서 내미는 밥상위의 힘으로 거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닮아 있어 정겹고 비슷한 성격이라 짜증나기도 한 가족의 얼굴과 행동들도 한 번쯤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