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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정석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언젠가 해 보고 싶은 일 중 하나가
바로 번역이었다.
그래서 궁금했고, 도대체 번역에도 정석이 있을까?라는
궁금증까지 더해져서 커다란 물음표를 안고 펼쳐 든 <번역의 정석>
출판 편집이이자 작가이자 번역가인 이정서의 번역에 대한 확고한 생각를 우선 짚고 넘어가자.
"번역에 답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떠한 문장이고 작가는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썼고, 번역은 그 의미를 정확히 짚어 내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들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앞뒤, 혹은 전체를 두고 보면 한 단어 한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 번역의 정석, 이정서, 223쪽 -"
'번역에도 수학 문제처럼 답이 있다'란 그의 의중이
<번역의 정석>이란 제목에 담겨 있다.
번역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시작된 그의 분투기이기도 한
<번역의 정석>
우리가 생각해 온 번역은 번역이라기 보다는 의역에 가까운 것이었고,
이정서는 원래 작가가 쓴 문장의 서술 구조까지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번역이란 문장을 해체해서 단어를 새로 조합해
전혀 다른 문장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조사 하나만으로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것이 한국어인 것처럼,
다른 언어 역시 아주 작은 부분에서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기존의 번역계에 돌을 하나 던진 덕분에 작가는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의역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태도에 대한 반성과 발전을 바라는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 사태에 대해서는 안타까우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지지부진하고 진흙탕 속에 빠진 것 같은 이런 사태를 보며
이렇게 같은 언어인 우리말에 대한 해석도 천차만별인데
번역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실 <번역의 정석>을 닫으며
처음 안고 시작했던 물음표는 그 크기만 더 커졌다.
작가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적합한 단어를 골라
일관된 흐름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 번역이란 그의 기본적인 입장에는 동의하는 바이나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100% 그대로를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카뮈의 이방인,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는
번역가라는 필터를 거쳐 나온 번역서이기에 날것 그대로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번역가 000의 이방인이고, 위대한 개츠비이고, 노인과 바다이고, 어린왕자인 것이다.
(사실 어떤 작품이든 읽고 나면 읽은 사람의 그러니까 자기 자신만의 작품으로
남고 기억되기에 최종적으로는 작가도, 번역가도 아닌 나의 작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외국 작품을 그 언어로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순수하게 독자로, 그러니까 외국어를 모르는 독자로 작품과 만난다면
이정서의 이방인, 이정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이정서의 노인과 바다를, 이정서의 어린왕자를
고를 것이다.
그 이유는 그만큼 번역에 임하는 그의 진지한 자세와 노력하는 태도가
내가 작가여도 부탁하고 싶을 정도니까 말이다.
책을 덮으며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번역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번역의 정석>.
내 글이 아닌 타인의 글을 대하는 일이기에
'나'를 벗고 시작해야 하는 가장 겸손한 일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며
겸손한 번역가가 더 많아져 원래 작품과
99.999...%의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번역서를 만나는 일이 흔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