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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위한 복음
서창희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5월
평점 :
[서평] 친구를 위한 복음- 서창희
by. 김용기
생명의 말씀사
“고민 속에서 예수님을 찾게 하는 책”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읽었을 때는 가볍게 예수님 전도하는 책 인가? 라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한 번 펼치는 순간 그 생각은 달라졌고 앉은 자리에서 집중해서 쭉 하고 계속해서 빨려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보면 참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고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고, 메여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지점을 저자는 참 잘 꼬집어주면서 그러한 부분들을 예수님에게 연결시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고민들의 지점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예외가 아니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의 인간 삶의 문제들은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문화와 틀은 바뀌지만 그 속에서의 내용들은 똑같은데 저자는 시대의 흐름속에서 다시한번 우리의 삶을 복음앞에 재조명시켜 줍니다.
또한 이 책은 사실 비 그리스도인 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너무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이러한 점들에서 간과하거나 생각하거나 그렇게 알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줄 수 있지만, 믿는 사람에게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돈, 직장, 희노애락, 사랑, 자존감, 인생, 그리고 신앙생활까지 넓은 영역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 가볍지도 않으면서 그 내용을 쉽게 잘 풀어서 적용과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전달할 때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결과만을 전해주려고 합니다. 전혀 타인들에게 공감이 되지 않지요. 사실 이러한 점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다가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죽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욜로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쁨을 위해서 살았는데 기쁨을 노력하기 위해서 도달한 순간 기쁨을 누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저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 “죽음 이후는 없고 죽으면 다 끝일 뿐이야” 라고 외치는 그 사람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이야기하고 관계 맺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그 갈망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서 C.S 루이스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우리가 태어날 때 어떤 욕구를 느낀다면 그것을 채워줄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추구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이 세상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도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세상에서 우리가 또한 속해 있음을 말합니다. 즉 현재를 즐기라고 이야기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을 이기고 싶은 열망 젊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그냥 온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죠. 흥미롭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계속되는 삶이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넘어서신 존재,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도 그 삶이 가능하다는 거죠.”
#자존감
그리고는 이제 저자는 ‘나’ 자신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자존감에 대해서 다룹니다. 우리의 낮은 자존감들 그리고 너무 높은 우리의 교만들을 이야기 하죠.
저자는 이러한 시작을 저자는 대상을 통해 우리를 높이는 우리의 모든 공통점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대상을 통해 자기를 높이고 있네요.”
저는 이 책의 추천도서를 언급하면서 적는 부분도 솔직하고 좋았습니다. <불안한 현대사회-찰스 테일러>의 책을 이야기하고 왜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이 인기가 있는지 등등을 이야기 합니다. 결국에는 사람들은 나 자신을 위하고 있지만, 오히려 나 자신을 위하기 힘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이끕니다. 항상 사람들은 높은 대상을 연결 시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즉 우리는 “가치 있는 대상을 갖지 못하면 삶도 의미가 없다”는 문화의 전제에 빠져버린 것이죠.(52쪽)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티니> :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하지만 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가치(희생 구원 용서)로 돌아왔다. 저항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56쪽)
(이 책의 제목이 흥미 롭다: 사람의 숨결이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허무해지는 순간에 바람이 된다는 제목을 통해서 그래서 안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대상에 의존하는 우리가 왜 절대적인 대상을 얻지 못하게 될까 라고 질문하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존재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라면, 특별한 어떤 대상을 가지고 있지 못해도 삶을 계속 살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그분의 나를 향한 계획이라면, 나는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이 세상의 특별한 대상을 가지고 있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아니, 더 긍정적으로 말해볼까요? ‘특별한 대상을 얻지 못하게 하신 것’에도 의미가 있다면 어떨까요?”(60쪽)
#사랑
대상에 대해서 우리의 자존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사랑에 관련하여 우리의 자존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의 글을 인용하며 ‘내가 나를’ 사랑하는 함정에 빠져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내가 자존감이 낮으면 나에게 만족을 못하게 되고 그 만족을 못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내 사람이 될 때 다시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남이 나를 사랑해줘도, 아무리 무언가를 이루어도 행복하지가 못하다는 말인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내가 내 자신에게 느끼는’ 만족감이 아니니까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나’에 있습니다. 아무리 남이 뭐라고 해도 ‘나는’ ‘내 자신에게’ 만족을 못하겠다는 뜻입니다. 왜 내가 나를 더 사랑하려 할 때 오히려 우울해지고 행복할 수 없을까요?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려면 둘 중 하나의 길을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나를 만들거나, 더 낮은 나를 만들어야 하거든요.(71쪽) 그러면서 그 기준이 자신을 높여주는 것 같으나 그 기준에 도달하면 다시 자기가 낮아보인다고 말합니다.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잘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이제 십자가에 연결합니다. “의심 없이 편안하게 사랑받는 길이 십자가에 있습니다. 나 대신 십자가에서 아파하신 예수님이,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가치 있게 높이실 것입니다. 나의 기준,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물밀 듯 흘러들어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84쪽) 이러한 길에 예수님의 사랑을 갈망 가운데에 느껴질 것 같습니다.
-또한 사람과의 사랑이 그리고 나에게 최고의 여자를 만난다고 해도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야곱의 레아와 라헬의 이야기를 하는데, 저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듯 합니다. “너는 라헬만 있다면 삶이 다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네가 감정적으로 끌리는 그 사람이 너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생각, 그 잘못된 집착, 나는 너의 그것에 개입 하길 원한다. 라헬이 널 채울 수 없다.” 하나님은 야곱의 그 집착에 다가오고 계셨던 것입니다.’(96쪽)
그러면서 이야기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삶은, 사랑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내 인생이 행복해지고 안전해질 수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는 것이죠. “이런 남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난 행복할 거야”, “이 여자를 놓치면 끝이야”라고 믿으면서 사랑이 내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수단이 된다면 사랑하는 상대의 반응이나 상황에 따라 내 삶도 위험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점점 상대에게 내어주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더 완벽하고 어려운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끌리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껏 사랑을 추구한다면 사랑은 반드시 여러분을 실망시킬 것입니다.(99쪽)
<죽음의 부정- 어니스트 베커>: ‘사랑의 대상은 자기영광을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찾게 된다......인간은 의존하는 대상에게 구속된다. 만약 당신의 대상이 당신의 –전부- 라면, 그 안에 있는 어떤 결점이든지 당신에게 중대한 위협이 된다.(99쪽)
이 외에도 저자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용기를 얻는 법 , 상처와 회복 그리고 클라이 막스로 부활신앙을 마지막으로 언급하면서 복음을 직접적으로 이끌어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나름 논리정연하고 저자의 인문학의 접근과 다양한 삶의 접근들이 복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느낄 때 참 좋았습니다.
삶의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친구를 위한 복음이라는 책은 예수님을 의지하며 해결할 수 있는 사이다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인생의 의미
-처음에는 어려운 현실에 대한 해답으로 즐거움을 찾아다니면서 살면 되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즐겁게만 살다가 간다고 말하기엔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즐거웠다고만 말하기엔 인생의 고민이 너무 많고, 좋은 경험이었고 이제 헤어져도 미련 없다고 말하기엔 이제껏 쌓아온 관계들이 정말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그저 즐거웠다’고 치부하기엔 삶의 여러 순간들이 의미의 완성을 바라고 있는 것이죠.
성경은 결코 의미의 무게, 의미의 가격을 후려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삶의 의미는 싸구려가 아니에요.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에 대해 애통한 자가 정직한 자이고, 애통한 자가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115쪽)
#용기
예수님을 만날 때에만 내 삶에 진정한 용기가 생길 수 있어요.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사랑받고 싶은 그 마음을 꾹 참고 용기를 내는 차원이 아닙니다. 별 볼 일 없고, 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죽음의 십자가에 몸을 던져 나를 사랑하신 분, 용기 내신 분이 있음을 알기에 우리가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용기가 필요하시다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스펙이나 외모를 따라가다가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마시길 바라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데 근거 없이 쥐어짜낸 용기로 “나는 소중하다!”고 외치실 필요도 없어요. 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몸을 던져 영원히 사랑하신, 그분만을 다시 기억해내면 돼요. 그분이 여러분의 삶을 죽을 때까지 붙드실 겁니다. 그분 안에 내 삶의 용기가 있습니다. (147-148쪽)
#상처(어려움)과 회복
- 나쁜 기억을 철저하게 잊지 않겠다는 사람을 만나보신 적 있지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그런데 계속 들어보신 적 있나요? 만날 때마다 똑같은 얘기입니다. 나쁜 기억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억이 삶의 전체가 되면 다른 삶이 전부 마비됩니다.
이분들은 이 슬픔에서 나오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난 누구인가요? 부모님이 이혼한 사람입니다. 난 누구인가요? 어렸을 때 왕따를 당한 사람입니다. 난 누구인가요? 평생을 가난으로 고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기억을 해결하고 보상받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기억에 대한 보상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은 건강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157쪽)
#부활 신앙
성경은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삶의 끝에서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일이 일어난다고 약속하고 있어요. 그것이 바로 영원히 사는 삶, 죽음을 이기는 삶, 부활이지요. 왜 요즘 사람들은 점점 “어벤져스”와 같은 슈퍼히어로물, SF물을 좋아하는 걸까요? 현실을 넘어선 세계가 진실로 존재했으면 하는 갈망이 인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지의 제왕』을 쓴 J. R. R. 톨킨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사람들이 판타지에 열광하는 이유를 기독교가 잘 설명해준다고 말했어요.(174쪽)
저자는 똑똑합니다. 인문학에도 관심이 있고 사회에도 적당히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삶과 인문학을 연결시키며 복음의 시너지를 극대화 시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저자의 에세이 같은 고민이 닮긴 이 글은 깊이 생각하게 하며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본 책은 '생명의 말씀사'에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