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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카이퍼 전통과 삶의 체계로서의 기독교 신앙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지음, 이종인 옮김 / IVP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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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읽으며, 그리고 칼빈 신학을 공부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번째는 그의 통합적 사고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신학들을 통합하여 성령으로 묶는 부분들이 신기했고, 그러한 부분들을 기독교 강요의 책에서 성경 본문으로 풀이하려는 시도가 좋았던것 같다.

두번째는 칼빈주의자들의 아이러니함이었다. 칼빈이 의도한 신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칼빈이 정해놓은 신학을 따라간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분명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고쳐져야 할텐데 그것이 율법이 되어져서 내려온 느낌이었다.

이러한 흐름으로써 나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카이퍼는 새롭게 개혁을 시도한 사람으로써 공부하고 배워야할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책에서 나는 "아파르트헤이트" 사건에 대해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mHTEK1mvQk

이 영상 시리즈를 보면서 배경지식을 쌓고 읽었는데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시리즈 물)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현대성에 대한 분석과 현대성에 대한 걱정이다. 거대 담론의 폭력을 고발하면서도 해체주의의 소비자 지상주의를 고발하고 있다.

어느 기사에서 AI가 설교를 하게 되면 더 좋은것이 아닌 사람들이 듣고싶은 말만 들려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좋지 않을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는데, 이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카이퍼의 고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이것을 잘 뽑아낸 크레이그 바르톨로뮤는 참 정리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또한 책 가운데에서 통합적 사고를 많이 살펴볼 수 있었고, 그의 서문에 제자도에 대한것이 많이 마음에 와닿았다.

"제자도는 항상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들 안에서 살아내는 것으로, 이런 맥락들 안에서 특정한 도전들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 제자도를 성실히 살아내는 삶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도래를 어떻게 볼 것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사회 윤리와 개인구원의 통합을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카이퍼는 예수님의 성육신에서 다양한 영역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왜냐하면 성육신이야 말로 바로 분리를 허물어낸, 막힌담을 허물어낸 답이기 때문이다. 쾌락주의도 금욕주의도 규탄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전적주권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카이퍼의 책을 읽으면 그가 "세계관"을 전제로하며 그것을 강조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놓지 않았으면 하는점이 있다. 바로 한명의 삶에서의 제자를 만들어내려는 마음이다. 우리가 연구하는것, 그리고 우리가 고민하고 알아가는 모든 지식들이 신앙을 요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카이퍼는 지시을 추구하는 것에 있는 즐거움을 인정하지만, 그 목표는 발견하는 것이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사실, 카이퍼에게 학문은 언제나 섬기는 것이어야 하며, 진리를 탐색함으로써 봉사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교회의 기반인 칼빈전통의 신앙과, 통합적 신앙, 그리고 이 신앙을 하나님 앞에서 삶에서 치열하게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1독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왕을 위하여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신실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지, 성공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카이퍼 전통이 도움을 주는 한, 그것은 활기를 되찾고 표현되고 발전시켜야 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처럼, 굶주린 세상을 먹이기 위해 거듭해서 부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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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엔데믹 교회 세움 프로세스
소강석.이재훈 지음 / 쿰란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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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가운데에서 많은 교회들은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다.

그 가운데에서 새에덴교회는 메디컬 처치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것 같다.

특히 이재훈 의료강도사와 함께 세워나가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는것 같다.

이 책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1부에서는 코로나 팬데믹때 교회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역사적으로 팬데믹 시대때 어떻게 대처를 해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탈종교화 현상

현재에서는 코로나 상황에서 소강석 목사는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전염병 시기에는 정부의 권력이 강화되고 종교의 힘은 축소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정부가 반드시 예배를 간섭할 것이다."(35)

그러면서 한스 큉의 말을 인용한다. 그의 은퇴 연설에서 <탈종교화 현상>을 이야기한다.

"21세기, 즉 미래로 갈수록 현대인은 기존 교회에 대해서는 저항하고 거부감을 갖는 경향을 많이 보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신심과 종교적 욕구 또한 영성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질 것이다."(37)

  • 현재 제도적인 교회에 크리스천 조차 많은 거부감과 비판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현상의 전조 증상이 바로 '가나안' 교인 이었을 것이다.

2부에서는 한국교회가 코로나를 맞이하면서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지 현실상황이 어떤 지 설명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 이다. 교회의 사회적 역기능과 마이처치 신드롬, 교회의 감수성의 부재이다.

교회는 진정성을 잃어버렸다. 왜 진정성을 잃어버렸는가? 일부교회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방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를 해석하는 눈에도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배타를 뛰어넘는 포월이어야 할것이다. 그 부분은 없어서 아쉬웠다.

단테의 신곡의 "베아트리체"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기위해서 교회가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일까. 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어쩌면 지금의 사회에 베아트리체가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이처치 신드롬은 세상을 바라보지 못함이다. 이것은 일부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전체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수님의 복음이 얼마나 수단화가 되었고 그들의 얼마나 큰 성이 되었는가. 세상의 포로된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부에서는 한국교회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이 세계에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는지 이야기한다.

1) 영적인 태만

2) 내부 충돌과 총질_ 인포데믹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총질하는 '냉장고 언어'를 버려야 한다. 자신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남의 가슴도 따뜻하게 하는 '화덕 언어'를 취해야 한다."(63) 우리의 목적은 공멸이 아니라 세움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생존형 교회에서 생존형 교회로_ 목양에서 경영적 리더십으로

"왜 하나님은 예배를 싫어하신다고 하셨을까. 이유는 딱 하나다. 그들의 제사가 하나님을 향한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65)

감각보다는 마음이 아닐까. 그 마음이 타성화와 매너리즘에 빠지게 한것 같다.

4) 분열을 대물림한 정치형 목회자들

5) 탈종교화 현상

6) 교회 세대의 궤멸

이유는 너무나도 보편적이며 타당하다. 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앞의 내용들과 충돌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느껴졌다. 특히나 예화적인 측면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6가지의 이유는 다른의미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4부 에서는 대안과 새에덴교회가 행동한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토포필리아"가 되도록 심어주는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용어는 그럴듯하고 어려워보이지만 사랑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가 있는 교회에서도 생각하면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한 가지 고민을 하게 된것은 수용성과 주장을 가지는 것에 대한 구분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언어의 네이밍을 참 잘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자의 사역적 패러다임은 잘 모르겠지만 사역적 컨텐츠는 상황에 맞게 다시 금 새롭게 재탄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포스트 코로나를 엔데믹 처치라고 명명하면서 그가 품은 비전?은 의료목회상담이었다. 즉 메디컬 처치라고 명명한다.

이것을 비판만 할것이 아니라, 우리또한 교회가 희망이라면 새로운 대안에 대해서 신학적 근거와 '위드성도케어'의 이름명명이다. 사실 내용은 대단할 것이 없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 세대에 마케팅이 중요해진 시점에서, 올바른 신학에 대한 구체적 마케팅은 배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궁금점은 어디교회에서나 있는 일하는 사람만 일하는 구조는 아닌가하는 의문점이다.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만들어갈지가 궁금했다. 또한 메디컬 처치라는 이름은 결국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섬기는 것일 텐데 그분들이 어떻게 시간을 내며 어떠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지 궁금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소통과 공감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받기는 원하면서 내가 원하는 소통인지, 내가 원했던 공감인지 돌아보아야 할것이다.

공공의 영역에서 겹치는 부분과 함께 소통과 토론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 생각하는 소통과, 나만 생각하는 공감과 수용은 결국 자기동일성으로 환원될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변화는 타자를 만날때 바뀐다. 이처럼 교회도 교회안의 니즈만 보는것이 아닌 타자성을 마주할때에야 변할 것이다.

*위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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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적 중재신학
오승성 지음 / 부크크(bookk)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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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도라면 꼭 읽어야하는 필수적인 책
저자의 혜안과 지혜가 지평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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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세계 - 구약학자가 풀어낸
김경열 지음 / 두란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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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열, 성막의 세계 

 

#두란노 #성막 #성막의세계 #김경열 #서평

 

처음 성경을 공부할때 어려웠던 부분이 출애굽기 성막을 짓는 부분이었다. 

당시 나는 성경을 텍스트로 외울 때였는데 이 문자들이 도무지 머리속에서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경을 텍스트 하나하나 본 덕분에 어떻게 짓는 지는 대충 감을 잡으며 그림도 그리면서 공부를 했었다. 

 

저자 김경열 박사는 레위기 신학과 해석에서 처음 접했다. 레위기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있었고, 후에 드라마 레위기라는 책에서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레위기 스터디를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레위기의 모체가 되는 성막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특별히 이 책은 그림과 여러 상세 설명들이 들어갔다.

내용을 보면서 주석이 그림화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걸 참고해서 성경공부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출애굽기 25장부터 차근차근 한절씩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함께 읽으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기에 좋다는 뜻이다. 

드라마 레위기 처럼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려고 했지만 주제 자체가 다가올 수 있는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어려우리라 생각이 되어진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평신도 보다는 목회자그룹에게 적합해 보인다. 성경을 모르는 목회자들이 이 내용을 가지고 깊이공부할 수 있다면 이 저자의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만 충분한 기초 뼈대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이 되어진다.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이라는 책과 [성막이된 하늘성전]을 함께 읽기에 아주 좋은 책같다.

 

이 책에서는 상세히 다루는 만큼 성막의 전체구도 -> 성막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들 -> 재료 -> 법궤 -> 진설상-> 등잔대-> 향단-> 관유와 향-> 회막의 덮개-> 널판벽 -> 휘장막-> 번제단 -> 울타리 -> 물두멍 -> 의복 

 까지 성막에 관련된 모든 주제들을 망라했다. 

 

성막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 이유가 이 책에 나온다. 특별히 이것은 오늘날과의 의미도 연관이 되는데 내용은 책에서 140가지로 그림 설명을 하니 꼭 보면 좋겠다. 나는 의미에 집중하고자 한다.

저자가 통찰한 의미는 크게 세 가지정도 나온다.

이 책에서 성막에 대한 부분들을 상세하게 그림과 같이 다루면서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1. 성막이 지어진 목적 자체가 피난민들의 천막 예배당이었다. (9) 즉 약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2.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성막을 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건물보다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 

  3. 그러므로 성전 기물의 가치와 역할들은 큰 의미는 없다.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함에만 연관이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에게 큰 의미부여가 있으며 오늘날 우리는 대제사장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 그리고 논쟁이 되거나 궁금할만한 것들을 따로 부록으로 모아서 다루기도 했다.

단일 회막론과 두 회막론

법궤 안에 세 품목? 향단이 왜 지성소에?

법궤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우림과 둠밈에 대하여

대제사장의 발목에 밧줄이 묶였는가?

성막 운반법과 시설 관리

진설상의 떡이 일주일 동안 따뜻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보면 성막에 대한 원어적, 문화적 방법론을 통해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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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기독교 역사 - 악당인가 성자인가, 회복을 위해 마주해야 할 역사 속 기독교
존 딕슨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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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되돌아 볼때 우리는 주로 역사의 보고싶은 면만 보고싶어하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많은 크리스찬은 기독교의 역사의 앞에서 아무말을 하지 못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이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넘어진 역사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에게도 이 기독교의 쓰라린 부분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어졌을때 무엇때문에 넘어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어떤 점들이 넘어지게 하는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어떤 마음 이셨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는것처럼 우리가 기독교 역사가운데에 실패한 역사와 어두운 역사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오늘날 우리는 다시한번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은 사실 기독교 역사에서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십자군 전쟁부터 다루고 있다. 십자군 전쟁은 우리는 흔히 기독교와는 무관하고 욕심있는 사람들이 저지른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십자군 원정에 관한 일차 자료를 읽다보면, 그곳에 표현된 강력한 종교적 동기 및 목표와 맞닥뜨리게 된다." (32)

그들은 사제들이었고 그들의 신앙에 의하여 표현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정말 신앙의 마음으로 회개와 연합이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교회의 연합을 꿈꾸게 하였다.

그래서 그 사제들은 마가복음 8장에 자기를 부인하라는 이야기를 전쟁에 참여하는데에 그 명분을 사용했다.

"오늘날 기독교 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제자들이 그분의 대의를 위해 죽음까지 각오하고 기꺼이 핍박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 말씀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대의를 위해 '싸워야'한다는 뜻이 아님은 틀림없다. 그러나 11세기 프랑스에서......가장 좋아하는 해석은....그리스도의 적들에 맞서 싸우는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35)

그러나 본문을 막상 살펴보면 그러한 본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그분의 가르침의 중심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따라서 이러한 상황때에 맞이해야하는 태도를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을 비추어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원수 사랑하심'을 본다. 하나님은 자격없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대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70)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타인을 죽게하는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죽으심을 통해서 원수사랑을 드러냄을 보아야한다. 우리는 희생보다는 생존을 택하고 있고, 원수 사랑보다는 원수 대적을 택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죽으심으로 확증이 되었다...(롬 5:8)

나의 사랑은 상대를 위한 희생과 죽음이 있나...? ..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내 말이 맞다는 생각이 한켠에 있었따. 이 맞는 말을 들어주지 않았음에 서운했고.. 사랑은 희생과 죽음에 직결되어 있는데, 내 사랑이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한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유산을 나는 다시금 나의 의로 돌리려고 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5-36)

요즘 계속해서 그런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 계속해서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고 있는가? 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 애통과 위로

이사야서에는 "애통(슬픈)"하는 사람들을 "위로함"에 대한 구절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연결이 된다. 이것은 우리 삶에 주기적으로 슬픔을 주는것이 아니라 이사야 61:8 에 보면 무언가 하나님께서 조치를 취해주시기를 바라는 요청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부도덕을 볼 때 보이기를 기대하셨던 반응은 '슬픔'이다....심판을 일삼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도덕적 가난함을 먼저 보고 그 이후에야 다른 이들의 "도둑질과 모든 악한 짓"을 슬퍼하는 겸손한 비애다." (89)

#자선

기독교가 국가가 되면서 부자가 성직자가 되는것이 힘들어졌다. 그리고 부자와 성직자는 구별이되고 자선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부유한 시민들은 국가의 문제를 챙겨야 하고, 기독교인들은 가난한 자들을 계속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150)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목에 큰 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눅 17:2)

이 책에서는 계속해서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잘 못한 것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기독교에서 벗어난 세속주의의 영향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균형있는 시각으로 보기를 요청하고 있다.

"교회를 욕하는 것이 현대의 회의론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예술 형식이 되었다. 세속 사회는 자신이 인류 공통의 증오와 폭력에 참여한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종교재판소의 사악함은 제대로 꾸짖지만 계몽주의의 "덕스러운 공포"는 못본 체한다. 인류를 갈라놓는 종교의 힘의 전형으로 북 아일랜드 분쟁을 제시하지만 그 사건이 모든 사람안에 도사리고 있는 부족주의에 관해 실제로 말하는 마에는 주목하지 못한다." (472)

그렇다 우리는 주목된것만 보는 시야가 있지 양쪽을 균형있게 바라보는 시각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속에는 누구나 다 들보가 있다.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먼저 잘 바라보자.

그리고 어떤 의인도 하나님 앞에 미치는 모든 의 앞에서는 우리는 죄인이며 차별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의 복음앞에서 알게되는 것은 우리의 타락한 자아를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덜 심판하는 자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자기를 깨끗하게 생각하고 가지려는 성향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바라보지 못하고 지나가고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할때에 우리는 담대하게 정죄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도 나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을 했었던것 같다.

"우리 인류를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 모두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더 잘 인정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뿐이다."(474)

#결론_ 서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사랑에 속해 있으면서도 나의 정체성을 부인했던 모습을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이 행동이 과연 맞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는 부인하지만 기독교라는 가치는 누구나 쓰고있다는 사실이다.(참고 톰홀랜드의 도미니언, 앤드루 리의 책)

"대부분이 아직도 고통을 가하는 것 보다 고통을 겪는 것이 고상한 일임을 당연하게 여기는 주된 이유다. 이것이 대체로 우리가 모든 인간의 목숨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도덕과 윤리 면에서, 내가 그리스도인도 로마인도 아니고 철저히 기독교인임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479)

#두란노 #존딕슨 #벌거벗은기독교역사 #서평 #기독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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