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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통과한 용기 - 길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
러셀 무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2월
평점 :
#두란노 #서평 #십자가 #용기 #러셀무어 #엘리야
원제: The Courage to Stand
나는 엘리야의 이야기를 읽을때마다 드는 의문점이 한가지 있었다.
왜 엘리야는 그렇게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고도 두려워 했을까? 그렇게 일으킨 기적을 가지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도 됬었을텐데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였던 엘리야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야의 이야기는 840:1 로 붙은 이야기가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오히려 이세벨에게 쫓기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그의 하이라이트는 시작되는 것 같다.
엘리야는 자신을 죽이겠다는 이세베르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광야로 도망간다. 성경에 보면 브엘세바까지 갔다고 나와있는데 거의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망갔다는 성경의 표현으로 이해하면 된다.
당당했던 엘리야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가 얼마나 무서워 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렇게 강력하게 경험한 그는 다시 하나님에게 원망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이방 제사장들과 싸워서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더 어려워보이고 더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같고 우리는 그렇게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고 하나님의 임재의 척도로 삼는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늘 설교를 하는 입장이라 오늘 현시대점에서 다시한번 저절로 적용을 하게 되었다.
바로 엘리야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때의 우리의 모습이 저렇게 엘리야의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품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용기라는 부분에서 우리는 복음과 잘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그 동안 이방 제사장 앞에 나아가서, 혹은 세상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하고 있따.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은 십자가의 영광에 이르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용기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우리 문화의 그림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엘리야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까지 제대로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궁극적으로 이른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영광에 이르러야 한다. 이 부분을 놓치면 엘리야의 용기를 잘못 알고서 우리에게 진짜 용기가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 p32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더욱 더 궁금해질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사서 읽으면 더욱 더 깊게 와닿게 읽을 수 있다. 필자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다 긋고 싶어서 밑줄을 긋지 못했다. 설교자로써 매번 인사이트와 묵상을 하는 사람으로써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으로써 계속해서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이름이 "용기" 이기때문에 더욱 더 내 이름을 걸고 살아가야할 용기가 어떤것인지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었다.. ㅎㅎ
하나님께서는 방황하는 엘리야에게 자극적인 용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책의 저자는 두려워해야 하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수 많은 두려움 즉 수치심/ 깨어짐/ 약함/ 외로움/ 불의/ 실패 라는 두려움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이것이다. 엘리야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바로 십자가를 붙드는 용기이다. 우리가 불안함과 두려움을 십자가 앞에서 가지는 이유는 그 실패의 십자가가 부활의 십자가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아야 하는 것이 온전해지기 위한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느냐 이다. 자기보호로 이끄는가, 아니면 믿음으로 이끄는가? 후자이ㅡ 경우만 용기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엘리야의 이야기를 사회진화론의 시각에서 보면 엘리야는 겁쟁이고 아합과 이세벨은 용감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엘리야는 두려움에 빠져 도망친 사람이었고, 아합과 이세벨은 단호하고 과감한 행동을 취한 사람들이었다." - 77p
이러한 이야기를 보면서 결국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은 사람도 작고 연약하고 불안속에 있는 사람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야 이야기는 두 가지의 생각을 가져다 주었다. 늘 알고 있지만 먼저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 안에 갇혀계신 강력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교환의 대상이거나 우리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함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강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원해야 한다. 두번째는 우리의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잘되는 순간이 아니라, 절망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이 우리의 인생의 하이라이트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순간에 우리의 감정과 관계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