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신학 (월간) : 1년 정기구독
두란노서원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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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 있을때는 동역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이 교회 저 교회의 소식들을 듣고 요즘에 이슈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 공유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또한 학교에서 받는 교육과 함께 사역을 만들어가며 사회에 대하여 토론하고 신학적인 논의 가운데에 계속해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다. 그래서 그런 시선에서 목회현장에 있는 목회자들을 바라보았을때 참 답답하고 왜 그리 꽉 막혔는지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 아니라 그냥 현실에 주저앉는 영성으로 보일때가 많다.


열심히 있는 목회자들은 소통하려고하고 현실에 주저앉지 않으려고하고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며 뒤떨어지지 않으려고하지만 목회를 하다가 이리저리 바빠서 치이다 보면 그러지 못할 때가 많고 도태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교회일을 위한 일을 만들게 되고 실용적인 것만 찾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교회에만 있는 목사나, 학교에만 있는 교수 둘다 가지기 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목회의 자리는 고독한 자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립되어 목회를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럴때에 목회와 신학의 이야기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목회를 어떻게 하는지 롤 모델을 삼아서 진행하고 참고할 수 있다.



특별히 이번 2월호에는 MZ를 품는 목회라는 시리즈로 나오게 되었다. 흔히 1980년부터 2000년대생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필자도 다음세대를 계속해서 섬기고 있는 입장에서서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많았고 많은 부분들을 생각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이전의 교회에서 계속 구독하고 있었기에 2년정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참 도움을 많이 얻었다. 그래서 좀 규모가 되는 교회라면 교회차원에서 구매해서 함께 보고 공유하게 하는것도 좋은시간 같고 다른교회에 지원하는것도 좋은 방법 같다.



목회와 신학의 구성은


1) 목회


2) 신학


3) 이슈와 진단


4) 북리뷰


로 되어 있다. 그래서 목회적인 실질적인 인사이트와 쏙쏙 알려주는 신학 그리고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바탕으로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 다른 교회의 이슈들까지 정리를 해주면서 다루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뿐인가 드라마나, 대선같은 이슈같은 문제들도 쏙쏙 다루고 있다. 한달 내내 계속해서 곱씹으면서 읽으면 사유와 패러다임이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될 것 같다. 그리고 북리뷰가 있는데 실질적이고 당장 쉽고 필요한 책만 읽는 지금 한달에 한권 어떤책을 읽어야 할지도 정해주고 있다. 정말 좋은 구성이라고 할수있다.



그리고 여기서 빠질 수 없는 부록이 있는데 바로 그 말씀이다. <그 말씀> 부록책은 달마다 성경 한권의 몇가지 포인트를 잡아서 원문과 깊이 분석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읽으면서 성경책에 꾸준히 기록해놓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특별히 목회자라면 추천한다. 목회자의 영성과 지성관리와 도태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좋은 매거진이다.



#신명기 #신학 #목회 #신학과목회 #두란노



- 이 글은 두란노에서 책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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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것이 아니다 -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속한다는 것의 의미
앨런 노블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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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세속 #나의것 #서평 #나는나의것이아니다 #앨런노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살아간다고, 그리고 내 삶의 자유는 내가 만들고 내가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할때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우리는 많이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앨런 노블의 글을 읽으면서 결코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그리고 내가 삶의 주인이라는 것이 좋은것 만은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 앨런 노블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말하면서 글을 서술하고 있다. 앨런 노블은 그의 글의 시작을 주인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과 끝도 누가 주인인가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결론은 하나님에게 속하는 즉, 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갈때 우리는 참자유를 얻는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목적 있는 삶을 사는것, 내 정체성을 정의 하는 것, 의미 있는 사건들을 해석하는 것, 내 가치를 선택하는 것, 내가 어디에 속할지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 (15)

"우리는 각자 독립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면서도 그 정체성을 우리는 인정받는 데서는 남들에게 의존한다." (51)

우리는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다. 그러한 것에는 외적인정이 있고 자율에 있고 인정에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각자 만들어가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게 아니라 결국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살아가려고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자면 내 삶의 주인은 나이지만 결국에는 우리는 남들에게 이끌려 살아간다는 것으로 이해 될 수 있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다. 각자의 주인인 이 세계가 서로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살아가는 아이러니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내 삶의 주체는 내가 아니다. 연약한 모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주체인척하면서 남들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려고 할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주체를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관념과 소속의 짐에서 해방시킬이가 존재한다....인간은 단순하지 않고, 사회도 단순하지 않다. 다만 내가 나의 것이고 나에게 속했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자시 소속의 책임을 느낀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속한 도다른 존재가 있다. 그분 앞에서 살면 자기 소속의 견딜 수 없는 짐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다른 존재 말이다.(69)

한계 없는 자유는 우리를 오히려 옭아매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속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이 개인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면서 사회에게 끌려가는 책임을 "자기 소속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게 속하는 이 공동체를 넘어 또 우리가 속함을 깨닫지 못함을 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분은 바로 하나님 이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을 저자는 다양한 사회적 관점을 인용하고 있다. (저자가 보수적으로 보면서도 다양한 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주로 세속신학과 세속철학에 관련한 철학자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저자들의 통찰에 비추어 볼때 저자는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시도보다 세상의 한계와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많이 관찰하려고 했던것 같다. 그러한 점에는 칭찬하고 싶다. 그리고 자끄 엘륄의 글을 많이 인용하는데 그의 글을 보기를 추천한다. 그의 글은 사회를 분석하는 기독교 관점에서 탁월하다.

그러한 점에서 그의 시선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사실 글을 읽으면서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속함이 존재론적으로는 변화함을 알겠는데, 그 존재론적 변화가 우리의 삶에서 어떠한 지표로 살아가야 함을 잘 몰랐는데, 그의 글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사유의 깊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가난한가. 가난하지 않은가를 알 수 있는 지표이다.

우리의 존재의 양식은 공허한가? 형식이 제공되었는가? 그리스도에게 속해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하나의 모델을 좇아가는 삶이 아니라, 새 양식을 그리고 새 모형을, 새아담이신 한분 되신 진리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우리의 존재가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삶은 어디에 속하였는가?

"자기 소속의 약속이 거짓이라는 것과 하나님께 의존 하는 것이 좋은 것임을 밝히는 것이 도시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297)

당신이 삶이 속한 그 속함이 당신을 결정하고 그것이 당신의 정체성이 되고 그 정체성이 당신의 삶을 이끌 것이다.

이 세상의 한계를 알고싶은 사람

우리의 존재에 대해 궁금한 사람

존재론적 양식에 우리의 인생과 삶에 고찰을하고싶은사람

그리스도를 믿는 삶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지금도 삶의 자리에서 고민하며 이리저리 헤메이고 있는 모든 영혼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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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킬까 - 바벨론 세상, 믿음의 분투
알리스테어 벡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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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바벨론 #믿음 #세상 #두란노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제목을 보자마자 정말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 내용중 하나였다. 사실 이러한 세상에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세상일 것이다. 그것은 예전에도 그랬고 이후로도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을 보고 믿음과 세상의 사이에서 좀 처럼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오늘날의 시대를 바벨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진단한 것 같다. 그가 진단한 한국교회는 바벨론 포로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러한 면에서 오늘 이 책은 바벨론포로 가운데에서 다니엘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위기에 순간에 많은 진실이 드러난다."

그렇다 위기의 순간에는 많은 진실이 드러난다. 아마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과연 유다의 젊은이들이 그곳에 가서 믿음을 지킬수는 있을까? 라고 말이다. 그리고 많은 질문들을 던졌을 것이다. 과연 하나님이 지금 이순간에도 함께하고 계신것인가?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하고 계신가 라고 말이다.

이 당시에도 세상의 세계관 전쟁을 하고 있었다. "저들을 끌고 와서 우리의 탁월한 프로그램을 통해 반강제, 혹은 필요시 강제로 교육을 시키면 세상에 관한 저들의 생각을 충분히 바꿔놓을 수 있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문화와 문학과 학무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름도 바꾸었다.

그때에 다니엘이 했던 결정은 "뜻을 정하는 것" 이었다. 그렇다 사실 다니엘이 뜻을 정하는것은 그들이 설정해놓은 모든 세계관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신의 최소한의 기준은 정했던 것이다. 이 포인트가 중요한것 같다.

세상속에 살면서도 세상이 저지르는 필요악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정해놓은 선을 끝까지 넘지 않을 수 있었다.

"중요한 사실을 놓치지 말라. 그들은 구원을 받을줄 몰랐다...능력이 있는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해주실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순종하는것... 그것이 믿음이다."

오늘날 우리는 믿음을 가지기에 내가 예상하는 그렇게 해줄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믿음을 구한다. 사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다. 대가를 치루어야 함에도 믿는것 그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그것을 망각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룰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진리이기에 그것을 감수하고 믿는것. 그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순종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심지어 우리는 순종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순종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실용주의는 순종의 적이다. 더 합리적이고 유익하게 보이는 것에 따라 결정을 내리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 우리 문화의 우상들을 숭배하게 된다. 무엇이 가장 적절한지, 무엇이 사람들의 심기를 가장 건드리지 않는지, 무엇이 편안한지에 따라 삶을 살면 성경에서 실제로 말하는 제자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86)

거꾸로 말하면 우리는 대가가 없어도 믿는것이다.

#말하는 법을 배우는것. 그리고 역할을 깨닫는것.

우리는 다니엘이 말하는것처럼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할것같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룬 신앙 성장은 대부분 성공과 웃음이 아닌 실망과 어려움, 눈물 속에서 이루어졌다 전도를 잘할 필요가 없다. 전도의 성공 여부는 당신 몫이 아니다. 복음 전도에서 가장 큰 자유는, 우리의 역할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 찾아온다. 

그렇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우리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을 종종망각하곤 한다. 우리 인간이 가진 연약함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중심에는 바로 교만이 있기 때문이고 나 중심적인 사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살아가기 힘든시대이다. 더 고도화 되고 있다. 하지만 다니엘도 7장에서 번민하였음은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또한 말할것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다니엘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그날 까지 힘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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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문장들 - 깨어 있는 지성, 실천하는 삶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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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지성, 실천하는 삶 

#CS루이스 #두란노 #문장들

C. S. 루이스의 문장들
C. S. 루이스의 문장들
저자
C. S. 루이스
출판
두란노서원
발매
2021.12.22.

좋은 문장은 한 문장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하며 많은 묵상을 하게 한다. 

바로 루이스의 문장들이 그러한 책이다. 

그리고 좋은 문장들을 분류하여 모아놨다면 파편적인 문장들이 아니라 하나의 좋은 재료들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조직신학을 공부했기때문에 루이스의 문장들이 나에게는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누구든지 궁금한 주체나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면 찾아서 읽는 한 문장이 아주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신학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하나의 개념들을 루이스의 은유적인 문장들 속에서 이해를 하게된다.

그런의미에서 그의 문장들은 어려운 개념도 쉽게 설명하며 깊이 있게 설명하는 문장가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언어를 구체적이며 쉽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의 한문장씩이라던지, 삶에서 경험하면서 와닿은 주제로 찾아가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가지의 책들에서 주제별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루이스의 문장들 중에서도 명언들만 골라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 책은 한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종종 인사이트를 주는 책이 될 것 같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부. 인간의 본성The Nature of Man

1. 인간, 하나님의 형상 

2. 타락한 인간 

3. 위로할 길 없는 그리움 

4. 자유로운 자아 

5. 어린아이처럼 

2부. 도덕 세계The Moral World

1. 도道 

2. 실재 

3. 위계질서 

4. 대상의 올바른 사용 

5. 종교와 반(反)종교 

3부. 성경The Bible

4부. 삼위일체The Trinity

1. 하나님 

2. 그리스도 

3. 성령과 천사 

5부. 죄Sin

1. 악 

2. 자아 

3. 교만 

6부. 그리스도인의 헌신The Christian Commitment

1. 다른 길들 

2. 기독교의 본질 

3. 구원 

4. 삶으로 실천하는 기독교 

7부. 지옥과 천국Hell and Heaven

1. 지옥 

2. 고통과 쾌락 

3. 천국 

8부. 사랑과 성(性)Love and Sex

1. 애정과 우정 

2. 사랑 

3. 성(性) 

9부. 자연Nature

1. 자연의 실재 

2. 자연과 초자연 

3.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 

4. 자연, 신화, 유비 

10부. 탈기독교 세상The Post-Christian World

1. 현대 사조 

2. 유물론, 결정론, 객관적 가치 

3. 교육과 종교 

4. 예술

#생각나는 문장들

이 책을 리뷰하면서 잠깐의 고민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 저자의 책은 요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저작을 '창조'라 칭함은 내가 보기에 완전히 어불성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재료를 재배열할 뿐이에요. 정말 새로운 창조란 우리에게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새로운 원색, 제3의 성, 4차원,....우리가 재조합하는 재료가 하나님의 작품이라서 그 안에 이미 그분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료에 담긴 하나님의 의미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만든 작품의 의미조차도 결코 다 알 수 없으며, 어쩌면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가 최고의 참뜻일지도 모릅니다......엄격한 의미의 창조가 정말 가능하다면 어느새 우리는 일종의 지옥을 창조하지 않겠습니까? 

31p. Letters(서한집) 1943,2,20

- 창조라는 것에 관하여 깊은 생각을 준다. 정말 그렇다 인간의 창조는 지옥을 창조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싶다. 결국은 욕망하는 것을 창조에 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창조를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심했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다.....지하실에 쥐가 있을 경우 불시에 쳐들어가면 쥐를 볼 공산이 크다. 그러나 갑자기 문을 연다고해서 쥐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쥐가 숨을 겨를이 없어진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누가 갑자기 도발한다고 해서 내가 성질부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성질부리는 사람임이 드러날 뿐이다.

33. <순전한 기독교>4부 7장

- 뜨끔하게하며 번쩍이게 하는 문장이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선한 모습을 사회적 관계속에서 나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고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의심들을 '잠재울' 뿐이다. 

- 우리 인간의 모습을 여실 없이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모든 의무는 신성하기에 모든 의무를 수행할 우리의 책임도 절대적이다. 우리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할 의무가 있으며, 거주지가 위험한 해안가라면 행여 누가 물에 빠질 경우에 대비해 어쩌면 인명 구조법을 배워야 할 의무도 있다.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상대를 살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일 수 있다. 그러나 인명구조에 헌신하여 완전히 거기에만 매달린다면(다른 것은 일절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이 수영을 배울 때까지 사람으ㄹ서 해야하는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우긴다면)이는 편집증이다.

요약하자면 물에 빠진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목숨을 버릴 만한 의무는 되지만 삶의 목적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다...... 나라나 정당이나 계층의 한시적 권익을 위해 무조건 헌신하는 사람은 가장 명백한 하나님의 소유인 자기 자신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주권'과 '문화, 정치, 기타 무엇의 권리 주장' 사이에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주권은 무한하고 만고불변하여 우리는 거기에 저항하거나 순응할 수 있을 뿐 중도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기독교는 인간의 일상생활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도 배제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현직에 충실하라고 말했고, 이교도가 베푸는 잔치까지 포함해 그리스도인도 만찬회에 가도 된다고 전제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초라한 자연적 활동도 하나님께 드리면 그분이 다 받아주시지만, 아무리고상한 일도 그분께 드리지 않으면 다 악해진다. 기독교는 그저 자연적 삶을 새로운 삶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소재를 초자연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새로운 질서다.

93<영광의 무제> "전시의 학문"

-기독교적 삶에 관한 중요한 말인것 같다. 사람들은 정답을 원하지만, 사실 어느정도의 정답은 우리는 알고 있으며 다만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느냐, 드리지 않느냐의 문제에 있는것 같다.

상대가 자신을 믿어달라고 할 때, 당신은 믿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믿겠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증거가 있으면 믿고 말 것도 없다.

233<세상의 마지막 방> 2장

- 요즘 내가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말이다. 루이스의 말이 뼈를 찌르며 시원하게 한다.

- 하나님에 관하여 믿음을 가지고 서로를 향하여 믿고 그 믿음을 가지고 산다면서 정작 평가는 시작되고 그 평가에는 확실한 증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증거 속에는 한 사람이 쏟았던 마음과 시간은 고스란히 사라진다. 왜냐하면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교회들의 문제는 건물과 조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과 똑같이 증거를 요구하며 정작 자신들이 불리할때는 믿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은것은 정말 서막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루이스의 문장들을 읽고 실존을 깊숙히 찌르는 문장속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기독교와 그리스도와 자신에 대하여 깊숙이 알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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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마음을 안아드립니다 - 크리스천 정신과 의사들의 마음 치료 안내서
마음여행 지음 / 두란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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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 시대를 블루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코로나가 다가오면서 그만큼 우울증을 가지는 사람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도 피할 수 없다. 특히 요즘에서는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젊은 층에서도 특별히 더 많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현실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도 피해갈 수 없다. 더더욱이 목회자들도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실수를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가 되지만 말씀으로만 기도로만 얻는 기도와 우리가 실질적인 방법으로 치료받아야할 치료는 구분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분명 세상의 치료 기술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일텐데 말이다.

또한 현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회복을 필요로 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냥 정신적 치료를 넘어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하면 복음으로 승화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노력들을 믿음이 없다고 여기거나, 그 사람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들이 많았다.

그런의미에서 이 책은 그리스도인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병리적으로 치료를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을 믿음과 상충된다고 느꼈던 부분들을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정신질병의 원인인 마음에 대해서 파악하게 하고, 무의식을 바라보게하고, 원인과 치료의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 질병의 종류는 크게 정신증과 중독, 조울증, 우울, 불안, 불면증, 신체적 고통과 마음의 치료도, 노인들에게는 치매까지도 다루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에서 어떻게 복음 안에서 치료가 가능한지 말해놓았는데, 우리가 원하는 우리의 모든 것을 완케하게 하는 가이드라인을 찾을 수 있다. 이것 많으로도 여기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는 사람들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죄로 인해 마음은 무지한 상태가 되었다."

"무의식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 하나님으로 해결되지 못한 인간이 혼자 처리할 수 없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자구책이 무의식이다."

- 죄로인한 고통을 정신적 관점에서 바라본 해석들이다. 이러한 해석들이 신선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떻게 표현되는가는 정말 중요한것 같다.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정신질병들을 긍휼하게 바라봐줄수 있고 이 가운데에서 오히려 무의식을 넘어계신, 무지한 우리의 상태를 하나님한테 올려드릴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의로움을 덧입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죄와 공존하는 상태임을 우리는 자각할 수 있다.

그리고 무의식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희노애락과 고난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일반은총을 열어놓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기억과 고통도 내 의식 생각 능력밖의 상황을 경험하고 사고를 확장하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는 끊임 없이 성장하고 자신의 경계를 허물어햐 하는 존재임이 틀림 없다. 어두움은 빛 가운데 체계화가 진행되는 것이니까.

또한 사역을 하다가 내가 연약해서, 사역을 하다가 관계에 상처를 입고, 사랑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는 경우를 가지고 답답함으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국 죄를 동반하고 있는 인간존재와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그러한 인간관계에 얽혀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사실 하나님이 주신 상처가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서 상처를 받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런말이 생각 난다. "사람은 사랑해야 할 존재이지, 의지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의지한 다는 것은 리더의 자리로 선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리더는 오직 한 분이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의 사역 분야에는 상담을 포함하고 있다. 무의식으로 뛰어들기 원하는 우리의 자아속에서 회피하고, 다른 남탓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나의 자아속에서 기도와 그리스도교의 공동체의 결핍의 고백은 어둠속에서 빛속으로 꺼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무의식을 말씀으로 내면화 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고 제자훈련, 치유기도, 성령의 대한 의식이 우리를 성숙 시켜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주문을 외고 살기도 한다. 이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우리는 하나님을 태어날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오로지 경험속에서만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오염된 삶에서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어렴풋이 알던 하나님에게 원망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알기에는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을 뛰어넘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그렇다면 2천년전에 일어났던 십자가의 사건과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우리의 인식행위를 뛰어넘는 의미를 가진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험하지 않은 확신과 자기 합리화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살아간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우리의 인식론적 전환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신뢰를 향하여 나의 의심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뢰는 나의 의심을 품어줄 것이다. 이것이 기도이다. 이것이 전인격적인 과정인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기도 또한 증명과 이해를 하려는 기도로 점철되어져 가지만 정말 기도의 본질은 개인 마다 다르며 논리와 이성을 뛰어넘어서는 진실과 진리의 사랑을 경험이 목표인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다.그리고 그것이 경험되어져야 한다.

자신의 의심에 사로잡혀 감정안에서 매인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길 바라는 책이다. 목회자든 평신도든 그 누구든..!

#두피플 #우울한마음을안아드립니다. #두란노 #마음여행 #우울증 #기도 #정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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