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원제는 진주인데, 한글 번역본은 진주의 여행이라고 좀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네요.
글없는 그림책이어서 그랬나봅니다.
원서에서도 그런 지 모르겠지만, 한글 번역본 표지는 가공처리가 호~ 멋집니다.
반짝이는 진주가 '어서~ 날 펼쳐 읽어주세요~' 하고 유혹하거든요~
책 뒤편에 나와 있는 작가 소개를 보면,
미술 공부하다 만난 친구 사이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계시다네요.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 작품을 계속해서 내고 계신다 하고.
글없는 이 책을 보면서, 저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어요.
우선, 진주의 위치가 끊임없이 변해요.
진주 중에 가장 높이 평가된다는 천연진주는
바다 깊은 곳 조개 속에서 부터 한 소년에게로 옮겨져 땅 위로 가게 되고,
소년에게서 소녀에게,
소녀의 악세사리통에서 까치에게로,
바다 위 배, 그것도 돛 위 까치 둥지로 옮겨가고
고양이에 의해 둥지에서 배 밑 바닥으로
고양이 주인인 선장에 의해 육지 보석 가게로
왕궁에서 박물관으로
하수구에서 강으로
비버에게서 연어 뱃속으로
어느 가정집 식탁 음식으로
메이플 시럽 병 속으로
비행기 타고 다시~
위치 변화 정말 스펙타클 하지요.
위와 아래, 바다와 육지, 배, 자동차, 비행기 같은 물리적 위치 변화 뿐 아니라
프랑스령 섬 중 하나인 것 같은 곳, 영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로 옮겨다니기도 하고,
섬에 사는 이름 모를 소년, 소녀에게 있기도 하고
나라에서 제일 높으신 여왕님의 머리 위에 있기도 하는 등
소유주의 신분의 변화도 겪고,
사람에게로만 옮겨가는 것이 아닌 까치, 고양이, 비버, 연어 같은 존재에게로도
옮겨 다닙니다.
보는 내내
이 그림책이 담지 못한 진주의 여행이 훨씬 많을거다는 짐작을 하게 해줍니다.
마지막 이후의 위치는 또 어디로 가게 될지도 궁금해지고 말이죠.
책에서는 시간의 변화도 느껴집니다.
처음 진주를 발견한 소년과 메이플 시럽병에서 진주를 찾은 할아버지가 동일인물로
여기도록 여러 장치들을 심어놓으셨구요,
한 아이가 왕관을 보고, 자란 후에 어떤 사람이 되는 지도 보여주고요,
비버의 댐이 무너지고,
숲의 나무가 무너진 후에 공장이 세워졌고...
그 후에 여자아이가 새총 알이 된 진주로 공장 유리창을 깨뜨리는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죠.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조개 안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진주로 형성되듯이,
오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도록 그리고 계세요.
책에서는 진주의 가치도 변해요.
진주의 가치는 사랑이 되었다가, 수집품이 되기도 하고,
장난감이 되었다가, 돈벌이 수단이 되기도 하고
신분을 드러내주는 표시가 되기도 하고, 잡기 놀이 시 술래의 눈가리개 대용이 되기도 하고
등등
어느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그 물건의 가치는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이 진주가 찾아온다면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까요?
또 변하는 것은 진주가 여행하는 자연환경이에요.
눈을 뗄 수 없을만큼 황홀한 바닷 속 풍경과 쨍한 색감의 섬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자연환경 이야기가 슬쩍 끼어들어있지요.
생활 폐수가 비버의 서식까지 흘러오고,
비버의 댐이 사라지고,
산에 나무들이 잘리고 태워진 후 공장이 들어서는 등...말이지요.
이렇게 변화하는 것들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요.
사람의 마음이지요.
세 명의 마음을 좀 따라가 보려고 하는 데..
첫째는 진주를 처음 발견한 소년의 마음이에요. 그 마음은 사랑이구요.
나이가 들어서 메이플시럽통에서 진주를 발견한 할아버지가 바로 그 옛날 소년이었다는
설정이 있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오랜 시간 진주를 보면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프다는 생각을 하는 것에 변함이 없으니까요.
둘째 진주박힌 왕관을 갖고 싶어 하는 남자의 마음이에요. 그 마음은 욕심인 것 같아요.
아장 아장 걷던 아기때부터 왕관에 혹한 남자는 성장해서도 그 마음이 바뀌지 않았어요.
하지만, 왕관을 갖고 싶다는 삐뚤어진 욕심이 도둑질을 하는 것으로 이어져요.
미수에 그치긴 했어도 붙잡히면 감옥에 가겠지요. ㅜㅜ
셋째는 자연을 사랑하는 여자아이의 마음이에요.
앞선 삽화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자아이가 사는 곳은
비버들이 살던 곳이었고, 댐이 무너지고, 숲이 파괴되고 공장이 들어선 곳인 모양입니다.
아빠가 강에서 잡은 연어로 요리를 해주었을 때, 진주를 발견한 여자아이는
뒤도 안돌아보고 달려나가요.
뭘 하나 했더니, 새총으로 진주를 총알삼아 공장 유리창을 깨뜨리죠.
자연을 파괴하는 주범인 공장에 데미지를 입히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지요.
두번째, 세번째의 마음은...보는 내내 제 마음이 아파옵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니 뒷 표지가 눈에 들어와요.
진주의 여정을 따라 왔던 탓일까요?
밤하늘에 떠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진주처럼 보이네요.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하늘의 진주로.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조금 더 늘어나서 아직은 아름다움이 유지되길~
우리의 아이들이 예쁘고 아름다운 자연을 좀 더 누리게 되길~
바래봅니다.
이상 진주와 함께 했던 여행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