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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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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중산층이었던 조지오웰 자신이 의지적 선택이 아닌 돈이 떨어졌거나 실직을 한 불가피한 상황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결과로 접시닦이와 부랑자 생활이라는 최하층민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자전적 소설이어서 최하층민들의 삶의 정황들이 더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책의 전반부는 주인공이 프랑스 파리의 빈민굴에서 여관생활을 하며 목격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생활을 보면 ‘가난의 도를 넘어선 가난?’이라는 삶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돈이 떨어져 의.식.주.에 대한 해결이 전혀 안 되는 상황에서 끼니를 굶고, 옷가지와 궁핍한 물건들을 전당 잡히고, 파리 빈민굴의 고질적으로 지저분한 여관의 방세를 지불하기 위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각할 여유마저 허용되지 않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의 접시닦이 생활을 겪는 사연을 다루고 있다.

그러한 임금이 형편없고 환경도 열악한 접시닦이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않아 주인공은 낙관주의적인 보리스라는 친구와 일자리를 찾아 헤메게 되고 결국 호텔의 접시닦이로 고용되어 하루 열 네시간 일하게 되지만 그의 궁핍한 생활은 전보다 나을게 없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호텔 식당의 온갖 화려함을 누리는 식당과 주방사이 문 하나 차이에
불과 몇 자 떨어진 식기실과 지하굴의 주방의 모습은 상상하지 못하게 혐오스럽도록 불결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텔의 모든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그들의 첫째 의무는 시간엄수였기 때문에 더럽게 함으로써 시간을 절약했다.
대체적으로 음식 값을 비싸게 치를수록 그 음식과 함께 먹는 땀과 침도 많아진다.
시간엄수와 세렴 됨을 위해 좋은 음식을 희생하므로 그 불결은 생득적이다.
호텔 종업원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것이 먹으라고 만드는 것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접시닦이의 경우는 미래의 전망을 주지않고, 강렬하게 피로하게 하며, 또한 동시에 기술이나 종교성도 갖지 않는 낮은 신분의 일이지만 그것은 천역자의 자부심, 즉 어떤 양의 일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겠다.

노예적이고 기술이 없는 그 일은 딱 살아있을 만큼을 보수로 받고, 생각한 만한 여가가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에 덫에 걸려든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수입에 의하여 그리고 오직 수입에 의해서만 구분됨에도.. 문제는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들, 자유적인 견해를 가진 것으로 예상될 만한 바로 그런 사람들이 결코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땅이 접시닦이의 편을 들어야하는 교육 받은 사람들은 접시닦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그 결과로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묵인하고 있다.
즉, 그들의 처우개선에 노력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자유에 위협이 된다고 상상하고 현재의 상태대로 유지하기를 선호한다고 꼬집고 있다.




책의 후반부는 런던의 싸구려 간이숙박소와 부랑자 생활 체험을 묘사하면서 사회 최하층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전달하고, 더 나아가 폭력적이고 기생충 같은 존재라는 부랑자에 대한 일반의 생각이 사실과는 다른 편견이며
부랑인도 일하기를 원하는 영국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중산층의 인식 변화가 절실함을 역설하고 있다.

부랑인은 일하거나 씻기를 싫어하고 구걸하고 혐오스럽고 위험한 존재라는 관념..
부랑인이 부랑하도록 강제하는 법률 즉, 부랑자 구호소가 하룻밤만 재워주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부랑인이 계속 다른 구역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는 법률 상황속에서 부랑하든지 굶어 죽든지 해야 하므로 부랑인이 된다.

가난의 악폐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는데 있다기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람을 썩게 한다는데 있다.
더불어 부랑인 생활의 큰 악폐는 강요된 게으름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지루하고 생기없는 부랑인에게 자존심 있는 인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웰은 하층민이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역설하며
궁극적으로는 계층적 차이가 개인의 본질적 차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반추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997년 IMF 이후 우리는 대규모 감원과 대량 실업 사태, 때론 자살과 가족의 해체, 노숙자 양산, 비정규직 근로자 확대, 청년 실업률 증가 등 고용불안과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중산층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책이 발표되었던 당시의 시기와 나라는 달라도 가난에 관한 사회적 현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돈과 빽?이 없으면 점점 살아 남기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도태되어 우리의 누군가가
가난한 밑바닥생활과 부랑인의 모습을 할 지 모르는 일이고, 장담하지 못하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무전유죄 인 듯이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가난한 것을 별개인양 차별되고, 불가피하게 사회적 약자로 전락해 버린 그들을 죄악시하지 않는 인식변화와 사회적인 처우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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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 일제 강점기 연예인이 된 기생 이야기
신현규 지음 / 어문학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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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그 동안 ‘기생’하면 우선 남자들에게 술 따르는 직업을 가진 여성라는 이미지가 박혀서
솔직히 기생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내가 여자여서 봉건적인 남성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전유물로 생각되어 단어조차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도 학교 교과서에 기생 출신인 논개와 황진이 등이 나왔을 때도 그저 의로운 정신과 재주가 많은 여성쯤으로 생각되었지 그것으로 ‘기생’에 대한 이미지를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기생의 가무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그것이 남정네들의 유흥을 돋구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져 예술이라는 생각을 갖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이처럼 기생을 폄하하고 비하의 대상으로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던 우리들에게
이책은 일제 강점기 권번 기생의 활약상을 일깨워주며 근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중요한 문화 매개체로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음을 재조명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기생은 권번에 소속된 기생을 말하는데, 권번은 기생을 관리하는 업무 대행사로 마치 오늘날의 연예 전속 기획사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권번 기생의 경우 일제에 의해 궁중 관기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권번기생으로 흘러들어 온 경우가 많았으며, 기생조합과 권번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전통 공연 예술의 춤사위를 계승하여 한국무용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춤의 토대였다고 할 수 있다.

권번 기생은 귀빈이 방문하면 문화사절단으로서의 공연을 펼치기도 하고,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중심축의 역할을 하기도 하여 현재의 연예인처럼 방송, 음악, 영화, CF, 행사도우미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데 현재의 연예인의 활동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여 놀랍다.

이 당시 대중들은 기생에 대한 호감과 배척이라는 이율 배반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적인 면에서는 기생이 오늘날의 연예인처럼 현대적인 대중문화의 스타로서 대우 받았던 듯 보인다.

한마디로 그 당시 권번기생은 지적능력을 갖춘 종합예술인의 모습이라고 보이는데
그 배경에는 그 당시 상류사회 남성과 교류하며, 지식을 쌓고 재능을 펼쳐보이며 선진적 조류를 받아들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재기발랄한 신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또한 권번 기생은 나름의 절개와 지조, 덕망 까지 갖춘 신여성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하고(강명화), 지아비에게 지극한 성실함으로 사상 기생이 되기도 하고(현계옥), 돈을모아 항일 독립운동에 나서기도 하고, 다양한 자선행사와 모금운동을 펼치는 등 사회 노동운동가로서의 활동을 보여 천한 기생의 모습이 아닌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
여성의 지위향상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볼 수 있겠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 근대문화의 흐름 속에서 신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리드하며 앞에 나섰던 권번 기생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가요계, 방송계, 광고계, 미술계, 영화계, 연극계 등의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우리가 몰랐던 권번 기생들의 삶의 모습과 활약에서 그저 한낱 ‘기생’으로 싸잡아 폄하하였던 점을 반성하며, 우리나라가 근대를 거치면서 권번 기생들이 다양하고 귀중한 무형 자신을 물려주었던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묻히지 않고 재조명되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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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보다는 너의 꿈을 남겨라 -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다음 세대에게 남긴 창조와 도전의 메시지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7
박은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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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누군가가 성공한 이에 대해서 가볍게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으로 청소년이 읽기에 딱 적당한 수준으로 가볍게 씌여진 책이다.

어찌 됐든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그 것을 어떻게 취하느냐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성인인 나는 내가 즐겨먹는 식품과, 내가 입는 의류와, 내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제품들의 근원을 마련해준 이병철이라는 기업가에 대한 고마움을 기본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책을 접했으며 그러한 마음을 갖고 이책에 대한 서평보다는 내 나름대로 그분에 대한 생각을 유추해 볼까 한다.

# 이병철의 사업가로서의 결단력..
이병철은 천석꾼 부자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27세까지 학교 졸업장 하나 따내지 않고 뭐하나 변변하게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 둬 버린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졸업장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테고 학벌은 훗날 자신의 배경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기회를 허락해준 부모에게 도리도 아닐 뿐더러 주변 사람들에 대한 눈총과 체면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은 아랑곳 없었던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었던 그의 용기?가 평범한 사람과는 남달랐던 결단력으로 생각된다.

어쩜 그는 사회적인 인습을 따라가기 보다는 자기답게 살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우물쭈물하거나 우유부단이 아닌 요즘 말로 쿨한 성격이었을 듯 싶다.

그의 이런 성향이 훗날 사업가로서의 결단력으로 이어졌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업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과 깨달음이 들면 신속하게 접을 수 있는 순발력과 결단력 있게 행동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실패에도 좌절과 지나간 것에 연연해 하지 않고 새롭게 재기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이 있었다.

특히 여러 좌절 끝에 힘들여 일으킨 그의 꿈의 비료공장을  정치적인 압박?으로 인한 사카린 비리사건으로 이어졌을 때, 오기를 부릴 법도 한데 자신의 것이 아니다 란 생각이 들었을 때 과감히 어렵게 일군 비료공장을 통째로 나라에 바치는(헌납)  쉽지 않은 결단력을 보인다.
아니다 싶을 때는 한치의 미련도 없이 물러 설 줄 아는 그의 속전속결 결단력이 있었다.

# 이병철 회장의 최고를 향한 도전력..
이병철은 사업을 할 때 항상 최고가 되기를 꿈꾸고 도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행보를 보면 초창기 마산 최고의 정미소를 시작으로 일본을 뛰어넘을 제일제당, 수입원단을 겨냥한 제일모직, 세계 최대 규모의 비료공장을 비롯해 첨단 반도체 사업까지..

다 알다시피 어떤 일을 임할 때 그냥 기본만 하자.. 또는 중간정도만 하면 되지.. 속된 말로 안전 빵으로.. 계획을 세울 때보다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게 되면 몇 배 더 어렵고 그만큼 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럼에도 이병철은 안정보다는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한 꿈으로 사업을 일궈냈고 그런 열정과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 세계가 알아주는 기업을 만들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 이병철의 기업가로서의  인재관리 능력.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믿어주고 신뢰하고 인정해주는 상대방에게 실망을 주거나 의리를 저버리기 어렵다.
하물며 남들보다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을 때는 그런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베스트를 다하게 마련이다.
사업을 함에 있어 사람을 중요시했던  이병철은  그러한 점을 회사직원들에게 심어주었던 것 같다.

사실 이병철 회장이 일선에 있을 때 절대 노조는 허락할 수 없다.. 그대신 다른 기업보다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피력했던 걸로 안다.
아마도 기업가로서 10년 후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이회장의 경우 외국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노조로 인하여 기업이 곤혹을 당한다는 것을 내다 봤을 것이다..
그런 그의 사업가로서의 인재관리 능력의 일환이 삼성이 현재까지 '무노조'로 이어져온 근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이병철 회장의 기업가로서 추진력..
반도체 산업이 전무후무하던 시절 참모진은 물론 주위 모든 사람이 반대함에도 무릅쓰고
그는 그는 자신의 사업가적인 감과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밀어 부치는 추진력이 돋보인다.
흔한 말로 모든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할 때 혼자 라고 하기 어렵다.
편하고 안정된 길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좋아했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생각과 꿈에는 그 어떤 위험과 반대도 물리치고 추진하여 그 꿈을 이뤄내는 것을 보면 앞을 바라보고 돌진하는 추진력도 대단한 그의 정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반도체산업 추진은 다음세대에 대한민국이 세계 일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꿈의 초석을 남기려는 그의 순수한 애국심도 깃들여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추진력 있고 소신 있는 행동이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음 하게 만들었던 장본인 것이다.



이상 기업가의 롤모델로 선정된 이병철 회장을 기업가적인 면에서 나름대로 생각을 유추해보며 정리해 보았는데, 개인적으로 성인인 나는 그의 가족애에 대한 생각도 궁금했다.
사업가로서의 사업에 열중하며 종횡무진 했던 그는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어떤 부모였는지, 어떤 아버지 상으로서 비춰졌는지와
 초기 <삼성>을 일궈내고 그 후임자로 그 당시로는 흔치 않았을 장남이 아닌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에게 물려준 그의 선택과 배경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다뤄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암튼 얼마 전 이병철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눈물을 보이는 이건희 회장의 기사가 담긴 사진을 보면서,
모쪼록 그가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삼성'이란 기업을 일으키며 보여줬던 기업가 정신과  초심을 잊지말고계승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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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이야기 - 방송인을 꿈꾸는 세계 청소년의 롤모델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6
주디 L. 해즈데이 지음, 권오열 옮김 / 명진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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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나는 TV채널을 돌리다 AFKN에서 한 토크쇼 프로그램에 시선을 멈추었다.
그 토크쇼의 진행자는 오리지널 흑인여성인데다 출연자를 인터뷰하는 상황이 마치 이전부터 친숙하게 알고지내는 지인과 편하게 공감을 나누는 모습이었고 방청객마저도 친목모임인듯 하나 된 분위기로 소통하는 토크쇼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전의 미국의 유명 토크쇼들이 적당한 쇼맨쉽과 유머를 곁들인 프로그램과는 차별화가 느껴졌고 틀에 박히고 각본에 짜여진 방송이 아닌 자연스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토크쇼로 느껴졌다.
그 후에도 나는 여러 번 그 토크쇼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프라 윈프리 쇼였다.
이렇게 내가 느꼈던 감정과 같이 그녀의 토크쇼를 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감을 느꼈을 터...
그녀는 최고 방송인의 자리에 우뚝 서있다. 

 사실 난 그녀의 삶의 일대기를 알기 전에는‘흑인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쇼를 방송하는 것을 보면 미국이란 나라는 인간의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나라구나..’라는 생각도 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내 기우였음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녀가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기까지는 깊은 상처와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위한 오뚝이같은 인생역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녀의 지금의 눈부신 성공이 더욱 대단해 보인다.

오프라는 지금의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기에 사생아로 태어났고, 백인친구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성폭행 성적학대를 당하는 등 희망이 보이지 않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게 된다.
더욱이 무지하고 아이에게 무관심하고 먹고 사는데 만 급급한 어머니 밑에서 그녀의 영특한 잠재력은 사장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오프라는 자포자기하여 탈선하기도 하는 청소년기를 거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오프라는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엄격하지만 삶의 원칙과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분명한 사람으로 오프라에게 그 진심이 전달된다.

그녀의 아버지는‘지금부터 네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노력하는가에 따라 네 미래가 결정되는 거야‘세상에서 일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러려면 실력을 쌓아야 해라는 충고로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게된다.
그녀에게 진정성으로 대한 아버지를 보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 후 자신감을 회복한 오프라는 자신이 꿈꾸는 인생을 살기위해 달려가고 뛰어난 말솜씨와 영특함을 살려 방송이라는 세계에 발을 딛고 도약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방송인의 자질을 인정받아 자신이 꿈꾸던 뉴스 앵커자리까지 올라가지만 그녀는 자질시 논란에 휩싸이는 실패도 경험한다.
그러나 그녀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해야하는 뉴스앵커보다는 사람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중요시했기에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빛을 발한다.

결국 오프라는 소탈하고 친밀한 태도와 타인에게 공감을 유발하는 진심어린 방송으로 그녀의 이름을 내건 '오프라 윈프리 쇼'로 꿈꾸던 성공을 이룩하였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100인 중 한사람으로 선정되어있다.

상처와 시련이 있는 사람 중에는 평생 자신의 상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상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미성숙된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들은 사람을 대할 때 올곧게 보려하지 않고 마음이 꼬여 괜한 빈정거림, 비아냥 하거나 시기 질투 뭐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대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즐겁지가 않게 된다.
그러나 오프라는 자신의 상처가 다른 사람을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해와 공감의 거울이 되었고 상대방과의 소통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넓어져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능력으로 발전한 점이 괄목할 만하다.

그리고 끝없이 앞만보고 달려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주변사람을 돌보지 않는(못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프라는 자신의 주변의 지인들의 노고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성공을 나눌 줄 아는 큰 아량을 지녔다.
그것은 아마 그녀가 하루 동안 5가지의 감사 일기를 적는다는‘감사의 지혜’정신이 실천하고 있기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그녀의 감사의 지혜로 그녀가 이룬 성공과 부를 많은 다양한 자선사업과 기부 등으로 나누며 자신의 행복을 더욱 키워가고 있는 듯 보인다. 
 

책에서 오프라는‘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설계해보기'를 권하고 있다.
어찌보면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꾸기를 포기하거나 꿈꾸지 않고 그냥 현실에 순응하면서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꿈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재미없게 살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큰 꿈을 가지고 그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인생이 재미있어질 뿐만 아니라 그 꿈도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행복해집니다..’

그렇다. 우리도 오프라처럼 각자 자신만의 꿈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5년후..10년 후.. 또는 그 이후의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그려보고.. 그 밑그림에 색깔을 어떻게 완성시키는가는 각자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내가 그린 꿈에 차근차근 색깔을 채색하듯 실력을(노력을) 쌓아가다 보면 지금보다는 더 나의 꿈에 근접하게 되거나 어느새 꿈이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설사 내가 원한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꿈을 이루려는 생각과 행동의 과정과 순간들로 인해 우리의 삶은 더욱 충만하게 될테니까...)

이 책에서 오프라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그녀가 단지 방송 분야에서 눈부신 성공을 통해 부와 명예를 걸머진 점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이 늘 쭉 뻗은 고속도로.. 늘 화창한 봄날은 아닐 것이다.
크던 작던 나름대로의 위기와 고비, 시련이 있을 때 어떻게 그 것을 극복하고 나아갈 것인가..
꿈을 계획하고 감사의 지혜로 최선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인생의 원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덧)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소중히 생각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했던 오프라의 모습에서 나는 팝송 한 구절이 떠오른다.
Learning to love yourself is the greatest love of 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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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이야기 - 투자가를 꿈꾸는 세계 청소년의 롤모델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4
앤 재닛 존슨 지음, 권오열 옮김 / 명진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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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워런버핏 이야기>

이 책은 2008년 <포브지>선정 세계 최고의 부자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에 선 인물인 워런버핏의 삶의 정신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부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버핏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과 목표(백만장자, 세계제일의 부자..)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자신이 정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인내하고 실천하였다는 점이 귀감 할 만하다. 
 

투자가로서의 버핏의 모습은 마치 예술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이 자신만의 예술 창작품을 만들 듯이 자신의 소신과 원칙으로 투자라는 캔버스에 부의 예술작품을 창조해낸 듯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부를 이룬 그의 정신이 열정적이면서 순수하여 아름답게 느껴진다. 

또한 그는 목표(부자)를 이루고 나서도 자신만을 위해 호위 호식하는 부자의 모습이 아닌
이전과 변함없이 소박하고 겸손한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자신이 이룩한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며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모두를 비롯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워런버핏의 투자가로서의 부를 이루는 과정을 보면,
여섯 살 때 어린 버핏은 할아버지 식료품가게에서 놀며 ‘장사’라는 행위에서 이윤이 만드는 것을 깨닫고 껌을 파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장사를 실천으로 옮기며 돈을 버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버핏은 어머니보다 주식중개인이었던 아버지를 더 따랐고 평생에 걸쳐 가장 존경하고 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아버지의 주식관련 책들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사무실을 방문하며 버핏은 주식에 눈을 뜨게 되고 ‘서른다섯에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부자의 꿈을 갖고 실제 열한살에 주식투자에 도 발을 들여 놓는다.

부자의 꿈을 계획한 퍼핏은 타고난 숫자와 확률계산의 재능과 열정으로 신문배달, 핀볼게임기 사업과 주식투자 등의 돈벌이에도 그만의 기지를 발휘하여 성공을 거두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모은 재신이 6000달러나 되었다.

대학진학보다 돈을 벌고 싶어하던 버핏은 아버지의 완강한 권유로 고향 와튼 스쿨에 진학하였지만 체질에 맞지 않음을 느껴 고향 오마하의 네브레스카 대학에 편입해 스무살에 조기졸업을 거쳐 공부에 눈을 뜬 버핏은 <증권분석>을 쓴 벤자민 그레이엄이 교수로 있는 컬럼비아 대학원에 입학한다.

그레이엄의 수제자로서 그는 거장에게 가치투자의 기본에 대해 배웠고, 그레이엄은 버핏이 부의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세가지의 중요한 자산인 재능, 집중력, 열정을 갖추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전과목 A+를 받고 우수한 성적으로 컬럼비아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버핏은 세상 밖으로 나와 기업의 겉모습과 수치자료에 의존하지 않는 ‘숨은보석’을 찾아내는 ‘가치투자’와 여러군데 나누어서 하는 ‘분산투자’를 원칙으로 본격적인 전문 투자가로서의 일생을 살게 된다.

고향을 좋아했던 버핏은 스물여섯 살이 되던해 오마하에서 ‘버핏 투자조합’ 설립을 시작하였고 평생의 사업파트너 찰리 멍거를 만남으로 더 좋은 투자 성적을 거둔다.

버핏은 서른 두 살에 백마장자의 꿈을 이루게 되고, 섬유회사였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사들여 산문 발행업에서 캔디 제조와 자동차 보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에 지분을 갖고 있는 거대한 투자기업으로 변모시김으로써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다른 투자자들과 다르게 약세시장을 ‘숨은 보석’을 찾아 매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던 버핏은 즐겨마셨던 코카콜라 주식이 저평가되었을 때 매입하여 8배의 가치상승으로 세계 최고부자의 등극하는데 한몫을 하기도 했다.

1991년 빌 게이츠를 만나 스물다섯의 나이를 극복한 깊은 우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2006년 자신의 재산을 빌게이츠가 운영하는 ‘빌&메이츠 재단’에 기부하여 진정한 부자로서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돈의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그 일을 하루하루 열심히 달려온 사람, 버핏은 ‘부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지력, 창의력 그리고 인내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뜻’이라고 일깨우고 있다.

더불어 그 싸움에서 승리한 열정과 성공을 세상에 돌려주고 멋진 나눔을 실천하는 워런버핏의 삶을 통해 진정한 부자의 모습을 깨닫게하고 우리 모두에게 흐믓함을 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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