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연금술 - 절대 무너지지 않는 부에 관한 위대한 통찰
데이브 램지 지음, 고영훈 옮김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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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26살에 40억 원 가치의 자산을 소유하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더구나 거의 40년 전에 4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산. 다만 돈이 움직이는 방법을 체득하여 찬찬히 쌓아올린 '유산'이 아니라 대부분을 대출받아 만든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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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램지는 그렇게 3년 만에 파산했다. 아내, 막 태어난 아이와 함께 길거리로 떠밀리게 되었다. 큰 돈을 저머쥐었지만 돈을 제대로 관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였다. 일확천금의 기회는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그는 다행히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하며 마흔이 되기 전 또 다시 엄청난 부를 얻었다. 다만 이번에는 차곡차곡 쌓인 돈에 대한 지혜와 함께였다. 때문에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올드패션'이다. 구식이라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류의 시작부터 전해져 내려왔을 오래되고 반복되는, 그러나 지키기 어려운 진리와도 같다는 것이다.


<돈의 연금술>은 주식투자를 통해 단 기간에 수백 억 원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는다. 부는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루에도 수백 권씩 쏟아지는 자산 증식과 관련된 책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오늘날은 그런 종류의 책이 너무나 많아 램지의 책은 되려 낯설게 느껴질 지경이다. 대신 숱한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돈에 대한 허영심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돈의 속성을 밝히고, 구식이지만 견실히 돈을 대할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틀린 말은 거의 없다. 특정한 자산 증식 방법을 단기간에 속성으로 배워 누구나 꿈꾸던 부를 얻을 수 있다면 세상에 앓는 소리는 사라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이나 강연 등에 담긴 이야기를 곱씹어 보지도 않고 '결과'로서의 부에만 집중한다. 그 과정에는 고통스러운 인고의 시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은 생각하지 않는다. 어렵게 벌고 더 어렵게 쓰며, 돈에 대해 오만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태도는 당연함에도 더욱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30년째 미국의 각종 서점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 책이 '마인드 셋'과 같은 것들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구절이 많다. '돈에 대한 계획', '부채에 대한 관리', '자산 공부' 등 당장 오늘부터 한 걸음씩 실행해야 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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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수준이 있는 것만 같다. 이 모임에 나갈 때는 명품 가방 정도는 들어야 할 것 같고, 이 정도는 버니까 이 정도 차는 타야 할 것 같다. 개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은 스스로의 것이다. 다만 많은 부자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를 지니고도 남을 의식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그들보다 가지고 있는 자산도, 벌어들이는 수익도 적지만 부자들보다도 부유한 것처럼 굴며 살아가겠다면 말릴 수는 없다. 다만 '척'이 아닌 진정한 부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그나마 잘 산다는 나라 중 경제 문맹률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그래도 최근 들어 돈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사는 게 퍽퍽해서일까. 돈 공부는 평생 함께 해야 할 오랜 숙원 사업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흔들리는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이 탄탄한 자산과 돈에 대한 지혜이다. 차분히 부를 쌓고 비상금을 마련하고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돈 공부를 눈 감는 그날까지 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30년이나 된 책을 구닥다리 설교라 말한다. 다행히도 개인의 취향에는 맞기에 듣기 싫어도 꾹 참으며 그 설교를 들었다. 그리고 돈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부지런히, 그리고 평생토록.


* 본 리뷰는 다산북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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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티 Rome City - The Illustrated Story of Rome
이상록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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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의 죽음 이후 로마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네로 황제는 지중해 연안을 지배하는 자였기에 그의 방탕하고 쾌락적이며 폭력적인 행동은 좌시될 수 없었다. 개인이었다면 그저 별난 사람 정도로 넘어갔을테지만. 네로의 폭정은 이후 등장할 5현제 시대를 보다 극적으로 만들었다. 그 첫 번째 주자인 네르바는 그의 뒤를 이을 4명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게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의 후계자를 현명하게 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추앙받을만 했다. 네르바의 뒤를 이은 트라야누스가 로마를 아우구스투스 때처럼 황금이 흘러넘치는 시대로 이끌어 때문이다. 훌륭한 입법가이자 전략가였고 장군이었다. 로마가 비로소 진정한 '제국'이 되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첫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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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서 말한 모든 인물들은 결국 허무한 재가 되어 사라졌다. 저자가 '메멘토 모리'를 장의 첫머리에 내세운 이유이다. 포룸로마룸에 존재했던 수많은 개선문 중 오늘날 겨우 3개만이 남아있다. 약 천 년 전 로마에 즐거움과 고통을 안겨준 많은 이들이 개선문의 형태로 안치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결국 개선문으로서 로마의 심장부에 묻히는 것 또한 삶의 유한성을 강조하며 그런 개선문이 하나 둘 스러지는 것은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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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당신의 삶이 한층 풍부해질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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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 -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최인철 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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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에서의 대행진 이후 반세기, 아니 이미 200년 전 링컨의 위대한 연설과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피부색은 미국을 가르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였다.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던 인종 간의 갈등, 정확히는 특정 인종을 향한 특정한 마음은 계속 조금씩 불거져 나오고 있었고 마침내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행동을 표출시켰다. 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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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M이 미국 사회를 물들였던 것은 미국에 만연한 혐오의 감정과 더불어 어쩌면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필연적으로 숨어 있는 비틀린 시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신호였다. 왜냐하면, '미국'이라는 국가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백인'의 '흑인'에 대한 시선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라 칭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면, BLM 운동의 주체 그 자신들이었다. 다분히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질되어 가는 시위의 한 가운데에서 흑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대상인 '백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노란색'을 혐오했다. 그리고 곧이어 발발한 코로나 시대 속에서 중국인을 위시한 동양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혐오와 폭력은 마침내 도를 넘어섰다. '혐오'를 받는 대상조차 '혐오'를 쏟아낼 대상을 끝없이 찾는 '혐오스러운' 혐오의 사슬. 인류 최악의 모순이자 본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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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 영단어를 익힐 때쯤이면 누구나 알게 되는 그 가벼운 단어. 우리의 교과서 속에서 그 단어는 얼마나 가볍고 낭랑하게 쓰였던가. 영어를 썩 잘하지 못해 문맥과 행간 속에서 '헤이트'가 얼마나 파괴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껴본 적은 없건만 hate가 '혐오'로 의역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마음에 근원적인 '혐오감'이 드는 듯하다. 그리고 오늘, '헤이트'로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동시에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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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는 '혐오의 시대'가 된 혐오 만연의 대한민국, 나아가 혐오주의의 세계를 심리학적으로 면밀히 분석한다. '프레임' 등으로 이름을 알린 최인철 교수 등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분야에서 저명한 다수의 학자가 진심으로 우리 시대의 혐오를 진단한다.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반 유대주의, 인종주의의 극치였던 '아리아인'들과 아우슈비츠, 그 이름에 혐오를 품은 아파르트헤이트, 그리고 오늘날 익명성을 든든하게 방패로 삼은 인터넷 속 '대 혐오 시대'에 이르기까지. '혐오'를 그토록 증오하면서 어째서 인간은 혐오를 떼어내지 못할까. 혐오는 역사는 참담할 정도로 '장구'하며 심지어 시대에 맞게 탈을 바꿔 증식하고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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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은 혐오를 낳는 대표적인 가족이자 괴물이다. 집단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은 과도한 수준에 다다를 경우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내 혐오라는 변질된 감정이 되어 이제껏 존재했던 수많은 참사를 낳았다. 코로나19는 집단 간의 유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다른 집단과의 교류를 최대한 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집단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키워야만 했다. 2019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증오 범죄는 집단적인 관점에서 상당히 설명된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기득권 층은 지역, 성별, 직업 등 다양한 집단적 요인을 통해 세상을 갈음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타 집단을 향한 혐오의 감정이 시도 때도 없이 세상을 스민다. 성장하고 있는 세대는? 본인 또한 어느새 탑재된 '혐오감'을 스스로 깨닫고 놀란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혐오는 인간의 사회적인 특성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세력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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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한에 가까운 자유를 쥐여줬더니 무제한에 가까운 도덕적 위기에 봉착했다. 인터넷은 바야흐로 대 혐오 시대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발이 맞는 세력과 함께 혐오의 감정을 마음껏 쏟아낸다. 무엇이 혐오감을 증폭시키는 것일까? 정말 모든 이의 마음속엔 '선한 천사'보다 '시기의 악마'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단 말인가. 인터넷 시대에 맞춰 새 단장을 한 '혐오'를 전문가들은 상당히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익명성 뒤에서 당당히 증오의 감정을 조장하는 혐오는 현시대의 학자들이 반드시 연구해야 할 대상이며 또한 수많은 개인이 함께 고민해 봐야 할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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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M이라는 거대한 운동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모순성을 공개한 흑인들을 보며 오래도록 분노했다. 그러나 퍼뜩 다른 생각에 잠겼다. 우리 또한 혐오의 대상이 될 때와 혐오를 할 때의 모습이 다르지 않던가. 적어도 수차례, 길거리에 마주친 먼 나라에서 온 낯선 이들을 '묘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다. 혐오하는 것은 쉽기에. 혐오를 혐오한다는 것은 대상자로서의 불쾌감을 뜻하는 말이었던가. 온갖 모순으로 가득 찬 '혐오'의 고리. 인간 도덕의 본질을 시험하는 혐오는 그렇기에 깊고 넓게 그리고 진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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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혐오하는 인간이 혐오스러운 지금, <헤이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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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티 Rome City - The Illustrated Story of Rome
이상록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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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가 무참히 살해당한 뒤 아주 잠시동안 로마는 고요했다. 폭풍전야였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엔 여동생의 손자인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삼는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고작 18살밖에 되지 않은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부독재관이었던 레피두스, 부관이었던 안토니우스에게 풋내기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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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권력자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잠시간 연합하기로 한다. 훗날 제2 삼두동맹이라 불리는 관계였다. 허나 카이사르가 겪은 비극을 통해 냉정해져야 함을 깨달은 옥타비아누스는 차차 자신의 세력을 키워갔다. 결국 안토니우스는 유명한 로맨스 이야기처럼 클레오파트라의 곁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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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가 된다.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위대한 그 이름을 얻기 위해 냉정하고 매섭게 몰아붙였던 옥타비아누스였지만 카이사르의 자애로움 또한 본받았다. 약 40년 간 로마를 다스리며 아우구스투스는 '팍스 로마나'라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한다. 풍요로운 땅, 강건한 군사력, 빈틈없는 정치 체계를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덕분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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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 왜 금융은 우리의 경제와 삶을 망치는 악당이 되었나
니컬러스 섁슨 지음, 김진원 옮김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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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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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극복을 위해 3조 달러가 넘는 통화를 찍어내는 미국.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자본이 몰려 있는 미국은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미국의 상위 0.01%의 부자들은 하위 50%가 지닌 모든 재산보다도 많은 자산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는 실리콘밸리의 성공 신화를 뜬 세계적인 창업주처럼 막대한 양의 주식을 보유한 자본가도 있지만, 가만히 앉아서 돈으로 돈을 버는 자본가도 존재한다. 보통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흐름의 자본을 통해 눈에 보이지도, 실재하지도 않는 자본을 만드는 자들. 이른바 '금융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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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엑슨모빌 등 초거대 정유사의 전신이 된 '스탠더드 오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석유왕 록펠러의 휘황찬란한 유산이다. 이제 사람들은 록펠러를 검은 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였던 인물 중 하나로 기억하지만, 록펠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경쟁 업체를 제거하기 위해 갱단 100여 명을 동원하여 송유관을 폭파시키거나 방금 가설된 송유관을 통째로 들어내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록펠러는 그야말로 '악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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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군가 말한다. 록펠러보다도 무서운 사람이 바로 금융왕 'J.P 모건'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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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가 '금융'의 시대로 접어든 순간부터 비상하고 영악한 두뇌로 자본을 굴릴 수 있는 자들은 금융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대영제국 시대가 끝난 직후의 런던이나 뉴욕의 월스트리트 같은 곳 말이다. 오죽하면 경제에 밝은 청년들이 일찍부터 금융회사를 선택해서 오늘날 영국 총리에 자격이 없는 자들이 오른다고 화를 낼 지경이다. 돈이 굴러가는 원리에 밝지 않은 대다수의 시민들 머리 꼭대기에서 자본을 만질 수 있는 자들은 막대한 돈을 벌었다. 동시에 지독한 냄새가 날 정도로 부패해갔다. 덕분에 금융이 발달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빠진다고 말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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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의 원제는 'The financial curse'이다. '금융의 저주'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원제는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간결하고 두려운 문장이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 위해 더 많은 부패를 감당하는 자들. 월스트리트는 자본을 세탁하기 위해 파나마라는 하나의 국가를 세운 셈이나 다름없고, 투명성이 떨어지는 몇몇 국가의 수장들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금과 국채 등으로 들어오는 돈을 자신의 계좌에 집어넣고 있다. 다시 한번, 보통의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금융' 파이프라인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왕립국제연구소와 조세정의 네트워크에 몸담고 있는 저자는 '조세 회피'와 '재정'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런 그의 눈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돈의 검은 흐름이 폭발할 듯 걱정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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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를 4,000개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물론 그중에 '실재'하는 회사는 100여 개도 되지 않는다. 엄연히 존재하는 회사를 100개씩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 대단해 보일 수 있지만 그중 대다수는 파산 직전이거나 곧 매각을 앞두고 있다. '실재'하지 않는 회사들은 회계상으로, 장부상으로 유령처럼 존재한다. 놀라운 것은 시민들이 기차 티켓 수수료 등으로 지불한 아주 작은 돈이 덩치만 거대한 이 수상한 회사의 자회사로 흘러들어가 이리저리 소속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샌가 수천 배로 불어 '유령'의 이익으로 산정된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례는 완벽하게 분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수백 가닥의 지배 구조를 통해 추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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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베네수엘라, 필리핀 등의 국가에서 대통령을 하면 막대한 자산을 모을 수 있다. 영국의 은행들이 알게 모르게 그들의 계좌를 든든히 배불려 주기 때문이다. 1985년 마거릿 대처는 실제로 멕시코 대통령에게 시티 오브 런던이 그를 반겨줄 것이라 공공연하게 얘기했다. '금융'이라는 이름을 단 괴물의 심연에서 서슴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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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돈을 세탁하거나, 성매매를 알선하여 국부 펀드 고객들의 환심을 사거나, '사기'에 가까운 행위를 조장하는 등의 속성만이 금융 시스템의 문제는 아니다. 저자는 금융 경제를 만드는 비용이 금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훨씬 크며, 비용의 대부분이 무지한 일반인들에게 부과된다고 말한다. 1990년부터 2023년까지 금융 경제가 성장하며 미국이 치를 비용을 환산하면 최대 23조 달러에 달한다. 금융 시스템이 미국 경제에 가져다주는 편익을 빼더라도 가구당 1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의 자본주의는 완연히 '금융 경제'로 넘어오게 되었다. 모회사와 자회사, 자회사의 자회사 3개의 회사만 있으면 1달러도 채 안 되는 돈을 옮겨가며 몇십 배로 불릴 수 있다. 파나마 등 조세 회피를 위해 조성된 '천국'에서는 몇천 배로도 불어날 수 있다. 이런 놀라운 마법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금융'의 힘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금융'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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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고, 서로 간의 신뢰로 단지 숫자일 뿐인 가치 체계를 받아들인 것이 인간이 이토록 발전한 가장 큰 속성이라 했다. 실재하지 않는 돈으로 실재하지 않는 더 큰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 금융 시스템에 대해 지니고 있는 생각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금융은 '인간의 본성'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금융과 관련된 정의를 찾기 위해 수십 연간 일해온 저자는 '금융' 뒤에 가려진 흑역사, 저주를 낱낱이 고발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거부감보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금융의 진짜 민낯은 무엇일까. 현대의 부를 가능케한 역사 속에서 금융의 미래를 꿰뚫어 봐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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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금융 시스템의 저주, <부의 흑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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