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사과
박솔뫼 외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상 수상작품집이라서일까. 무엇보다 작가마다 가진 고유한 글쓰기 방식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문장의 길이와 호흡, 장면을 전환하는 방식, 인물을 바라보는 거리, 이야기를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까지 모두 새로웠다. 처음에는 이질적일 만큼 어색하게 읽히던 문장에 점점 흥미를 느끼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결국 그 방식에 설득당하는 경험이 신선했다.

특히 대상 수상작인 박솔뫼의 「사과」가 인상 깊었다. 문장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듯 긴 호흡으로 이어지고, 충분히 큰 사건이라 할 만한 일조차 전조나 강조 없이 문장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놓인다. 장면과 사건 역시 예고 없이 툭 전환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흐트러진다는 느낌이 없다. 오히려 그 무심한 듯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의 기억과 생각이 실제로 움직이는 방식에 가까운 리듬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중요하다고 미리 표시해 주지 않기에 독자가 스스로 문장 속에 놓인 것들의 무게를 발견하게 되는 점도 좋았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한 여성 화자의 이야기 안에 생각보다 묵직한 것들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 개인의 삶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까지. 작가는 그것을 쉬이 결론 내리지 않는다. 평범한 삶의 장면들 사이에 그저 조용히 놓아두었고, 그래서 읽고 난 뒤 더 많은 생각이 남았다. 짧은 소설 안에 인간과 관계와 사회를 바라보는 깊은 시선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우수작들에서도 각각의 고유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읽어온 완결되고 매끄러운, 어쩐지 잘 정제된 글들과는 조금 다른 날것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거칠거나 미완성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쉽게 다듬어 하나의 모양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되는 개성과 생생함에 가까웠다. 어떤 작품은 문장으로, 어떤 작품은 인물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또 어떤 작품은 예상하지 못한 상상의 이야기로 자신의 세계를 드러냈다.

여섯 편 모두 그 안에는 작가마다 분명하고 견고한 세계가 있었다. 실험적인 문장과 리듬을 따라가다가 어느새 이야기의 다음을 궁금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소설이 끝난 뒤에는 이야기 자체가 지닌 힘에 대해 오래 곱씹게 되었다.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삶의 순간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가. 좋은 소설은 반드시 답을 주지 않아도 이렇게 많은 질문을 남길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특히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꽤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잘 쓰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좋은 문장의 모양을 닮아가는 것만이 글쓰기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가 분명하다면 문장의 호흡도, 이야기의 구조도, 삶을 포착하는 방식도 얼마든지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형화된 틀 안에서 얼마나 매끄럽게 쓰느냐보다 무엇을 바라보고, 그것을 얼마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느냐인지도 모르겠다.

여섯 명의 작가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어느 누구의 문장도 다른 누구의 문장과 같지 않은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그 차이를 한 권 안에서 연이어 만나는 일은 무척 신선했다.

익숙한 문장 밖으로 독자를 이끌며 이렇게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 조금 낯설어도 그 낯섦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하나의 견고한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 역시 결국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에 닿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좋은 글의 모양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수상작들을 읽고 나니 오히려 좋은 글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2026 #이효석문학상
#단편소설 #서평 #북스타그램

*도서증정 @vook_da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침묵 ㅣ 지식산문 O 10
존 비게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리가 사라진 자리, 고요하고 평온한 순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무는 시간. 침묵은 그저 말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침묵은 너무도 다채로운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의미까지 동시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돈을 지불해서라도 얻고 싶은 평온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소음 때문에 누릴 수 없는 사치가 되기도 한다. 권력을 가진 자는 상대를 침묵시킴으로써 자신의 힘을 행사하고, 반대로 약자는 침묵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도 있다. 말하지 않는다는 동일한 행위가 어느 순간에는 억압의 결과가 되고, 다른 순간에는 저항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침묵의 의미는 침묵 그 자체보다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 침묵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침묵이라고 믿었던 순간에도 완전한 침묵은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극도로 조용한 공간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몸이 내는 소리가 선명해지고, 소리 내지 않고 책을 읽을 때조차 우리의 뇌는 문장을 일종의 소리로 받아들인다. 겉으로는 아무 소리도 없는 독서의 순간에 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가장 깊숙이 듣고 있는 셈이다. 침묵하려 할수록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역설은 무척 인상적이다.

예술에서 침묵이 작동하는 방식 역시 흥미롭다. 음악에서 음과 음 사이의 멈춤이 다음 소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그림 앞에서 언어가 물러난 자리에는 감각과 감정이 들어선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이 있다. 침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말과 소리가 차지하던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올 공간을 만드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붙잡고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생각을 끊임없이 뻗어나가게 한다는 데 있다. 음악과 문학, 경제와 계급, 권력과 폭력, 과학과 신체, 독서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이야기는 ‘침묵’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점을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한 가지 주제를 이토록 다양한 층위로 뒤집고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개념 하나가 얼마나 많은 질문을 품고 있는지 발견하게 하는 것. 그것이 『침묵』이 주는 가장 큰 지적 즐거움이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침묵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침묵은 소리가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미처 듣지 못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비밀스러운 순간인지도 모른다.

#침묵 #지식산문 #복복서가 #인문에세이 #책추천

*도서증정 @bokbokseoga_publishing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슈퍼리치가 세상을 구한다는 헛소리,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을 숭배하는가
달리아 나미앙 지음, 조민영 옮김 / 원더박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설국열차’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는 열차의 바닥을 열어젖히는 순간이다. 화려하고 안락한 객실 아래,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비좁고 뜨거운 공간에서 한 아이가 기계의 부품처럼 혹사당하고 있다. 열차는 쉼 없이 작동하고 있었고 승객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 세계를 움직이는 데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바닥이 열리기 전까지 보이지 않았다.

이 책은 우리가 안락하게 앉아 있는 세계의 바닥을 열어젖힌다.

우리는 식민주의와 노예제를 잔혹했던 과거로 기억하며 오늘날의 세계는 훨씬 문명화되었다고 믿는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어느 시대보다 편리하고 풍요로워졌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지구 반대편에서 만들어진 물건조차 클릭 몇 번이면 집 앞까지 도착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그 시대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가.

물론 오늘날을 과거의 노예제나 식민지배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유한 국가와 기업의 풍요를 위해 다른 누군가의 노동과 토지, 자원과 환경이 희생되는 구조가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착취는 국경과 복잡한 공급망 너머로 이동해 우리의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를 쇠사슬로 묶지 않아도 극단적인 빈곤은 값싼 노동력을 만들어내고, 군대를 보내 영토를 점령하지 않아도 자본은 토지와 자원을 차지할 수 있다.

그 구조의 정점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단순히 누군가가 부자라는 사실이 아니다. 막대한 부는 정치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계가 나아갈 방향까지 결정하는 권력이 된다.

더 기묘한 것은 그 경제구조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 이제는 그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할 구원자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기후위기도, 빈곤도, 식량문제도 그들의 투자와 혁신과 자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그들에게 문제의 원인을 묻기보다 해결책을 기대한다.

21세기 자본주의 아래 인간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안락함을 누린다. 기술의 성취와 소비의 풍요는 더 나은 세계가 계속해서 도래하고 있다는 희망을 심는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하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며 살아간다고 철썩같이 믿는다.

그러나 바로 그 안락함 때문에 세계의 다른 면을 외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값싼 옷은 누가 만들었는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광물은 어디에서 채굴되는지, 우리가 버린 폐기물은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좀처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세계가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열차의 승객에게 기관실의 사정까지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는지, 어떻게 다른 나라의 자원을 빼앗으면서 그것을 문명화라고 믿었는지 의아해한다. 하지만 미래의 사람들 역시 우리에게 묻지 않을까.

어떻게 한 사람이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부를 축적하는 동안 다른 곳에서는 사람들이 먹을 것과 깨끗한 물을 구하지 못하는 세계를 정상이라고 생각했을까. 어떻게 지구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그것을 발전이라고 불렀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 구조에서 가장 많은 부와 권력을 얻은 사람들에게 다시 그 문제의 해결을 기대했을까.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질문하지 않게 된 것들을 다시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 자선과 기후위기, 식량과 에너지, 노동과 소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실제 사례와 함께 낱낱이 보여준다.

그 연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의 바닥이 열린다.

그 아래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풍요가 다른 누군가의 빈곤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 우리가 누리는 세계의 비용이 언제나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워진다.

설국열차 속 승객들은 바닥이 열리기 전까지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한 번 바닥이 열리고 그 아이를 보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보지 못했던 것과 보고도 외면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바닥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그 안을 들여다본 뒤에도 여전히 이 열차가 아무 문제 없이 잘 달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슈퍼리치가세상을구한다는헛소리그런데우리는왜그들을숭배하는가
#사회비평 #책추천 #책스타그램

*도서증정 @wonderbox_pub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나를 우습게 봤겠지만
베라 쿠리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끔찍해야 할 사이코패스들이 깜찍하게 보이기 시작할 때쯤이면 이미 이 소설에 단단히 빠져 출구를 찾을 수 없다.

사이코패스인 대학생 클로이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죽이기 위해 치밀한 복수를 준비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이야기인데, 하필 클로이가 참여하고 있는 사이코패스 연구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 하나둘 살해되기 시작한다. 사이코패스가 사이코패스를 죽이는 범인을 쫓고, 그 와중에 자신의 살인 계획까지 완수해야 한다니.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이야기는 갈수록 더 대담하고 영리해진다.

곳곳에 던져놓은 단서와 복선이 촘촘하게 맞물리면서 한번 잡은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등장인물이 더해질수록 자연스럽게 독자의 머릿속에도 용의자 목록이 만들어진다. 한 명을 의심했다가 지우고, 다른 한 명을 추가하고, 믿었던 인물을 다시 의심한다. 추리를 시작할 만하면 새로운 단서가 나타나고, 답을 알아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다시 판이 뒤집히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치밀하고 어두울 법한 스릴러 한가운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생동감이 있다는 데 있다. 캠퍼스를 돌아다니고, 연애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학생들의 일상은 뜻밖에도 하이틴 로맨스를 보는 것처럼 발랄하다. 개성 넘치고 매력적인 인물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모두가 조금씩 이상하고 수상한데도 정이 간다. 거침없고 솔직한 클로이의 속마음과 대화에서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살인과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웃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느 순간 이 위험한 아이들의 다음 대화가 기다려진다.

우리는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잔혹한 범죄와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한다. 뉴스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면 범인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쉽게 그 말을 꺼낸다. 하지만 인간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분류되는 존재가 아니다. 타인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학습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사이코패스가 아니면서 잔인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진짜 위험한 인간은 누구일까?

클로이의 복수는 사회를 향한 문제의식으로도 확장된다.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남자를 법정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처단하려는 클로이의 복수에는 여성 대상 범죄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추궁하는 세상을 향한 클로이의 거침없는 목소리는 통쾌하면서도 그 부조리를 날카롭게 찌른다.

같은 행동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 사람의 시선에 머물지 않고 등장인물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여러 시선을 겹쳐 보게 한다.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던 경계는 흐려지고, 확신했던 판단마저 잠시 유보하게 된다. 결국 한 사람을 특정한 틀 안에 가두어 바라보던 우리의 편견까지 돌아보게 한다.

『나를 우습게 봤겠지만』은 범인을 맞히는 재미가 있는 영리한 스릴러이자,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유쾌한 캠퍼스물이며,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야기다. 범죄와 사이코패스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 얽힌 인간의 복잡한 면면을 놓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분명 연쇄살인범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범인보다 이 깜찍한 사이코패스들의 안위가 더 걱정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제대로 당했다. 나도 그들을 우습게 봤을지 모른다.

#나를우습게봤겠지만 #소설추천 #스릴러소설 #책추천 #책스타그램

*도서증정 @munhakdongne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완전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완전한 구원』의 윌리엄 하딩은 서른두 살이다. 두 아이의 아빠이고,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성공한 배우이며, 유명 가수와 결혼했다. 겉으로만 보면 이미 어른이 된 지 오래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삶은 조금도 완성되어 있지 않다. 욕망하고 질투하고 허영을 부리고 잘못된 선택을 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받는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는 어느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직업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어느 정도 사회적인 자리를 얻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막상 그 나이에 도착하면 알게 된다. 삶에는 그런 완성의 순간이 없다는 것을. 서른두 살에도, 마흔두 살에도, 어쩌면 예순두 살에도 인간은 여전히 처음 겪는 일 앞에서 휘청이고 자신의 욕망에 당황하며 어제의 잘못을 오늘 바로잡으려 애쓰는 존재일 것이다.

윌리엄은 그 모든 것을 숨길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쉴 새 없이 말한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 무너진 결혼, 배우로서의 욕망과 허영,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동료 배우들과 나눈 대화, 성적인 욕망과 삶에 대한 두려움까지.

『완전한 구원』을 읽으며 나는 에단 호크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냈다고 느꼈다.

예술가에게 어떤 길이 있다면 결국 그것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내는 데 있지 않을까. 에단 호크는 오랫동안 배우로 살아온 사람이기에 자신만이 볼 수 있었던 순간들을 알고 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두려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자신을 망가뜨리는 순간, 박수와 혹평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존심, 다른 사람을 연기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기묘한 경험. 그가 살아오며 조금 더 세심하게 바라보고 조금 더 오래 생각했을 순간들의 합이 이 소설 안에 있다.

모두가 자신을 안다고 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아마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숨통을 조이는 지옥인지, 반대로 얼마나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희열인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연애와 결혼, 실패와 욕망을 이야기하고, 한 번의 잘못으로 한 인간 전체를 설명하려 들 때 그 안에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을 지키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까.

그래서 윌리엄의 끝없는 말은 때때로 변명처럼 보이면서도 내게는 진실한 외침처럼 들렸다.

나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한 사람이라고.

나는 때때로 실패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사람은 아니라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무대에 서는 일을 사랑하고, 허영에 휘둘리면서도 진실해지고 싶어 한다고. 당신과 마찬가지로 매번 흔들리고 실수하면서도 그것을 바로잡고 오늘보다 아주 조금 나아진 내일을 기대하는 한 사람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제목에 있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몹시 좋았다. 구원은 주인공이 자신의 위치를 견뎌낼 때 조금씩 일어나고, 아버지가 용서를 구할 때 일어나고, 사람들이 서툰 방식으로나마 서로를 사랑할 때 일어난다. 누군가 자신의 허영과 비겁함을 인정할 때도, 무대 위에서 단 한순간이라도 완전히 진실해지려고 애쓸 때도 일어난다. 그렇게 각자가 자기 자신으로 진실을 말하는 순간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사람 역시 구원받는 기분이 든다. 세상을 모조리 바꾸지 않아도, 지나간 시간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아도, 어떤 것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에단 호크는 배우로서도 작가로서도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내가 그를 좋아한 이유도 아마 그것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이 맡은 인물을 치열하게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이 소설에서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쓰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때 『비포 선라이즈』를 보며 낯선 도시에서 누군가와 밤새 이야기하는 낭만을 상상하게 했던 배우가 이제는 삶이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흔들리며 살아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또다시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인다.

책의 소개에는 이 책을 향한 찬사가 적혀 있다. 나 역시 그 문장을 그대로 빌리는 것이 이 책에 가장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세는 필요치 않다.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문학적 찬사를 받는 데에는.”

#완전한구원 #에단호크 #소설추천 #책스타그램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