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언제나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크고 절실한 기적인지도 알게 한다. 이토록 슬프고 잔혹한 소설은 왜 존재해야 할까. 『양철북』을 쓴 귄터 그라스는 전쟁 소설을 왜 쓰느냐는 질문에 그저 슬픔을 이겨내는 데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했다.반전(反戰) 소설의 대가인 레마르크는 실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독자의 눈앞에 전쟁터를 펼쳐 보인다.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는 한복판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존엄을 선택할 수 있고, 사랑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토록 깊고 무거운 이야기가 그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게 다가온다.우리는 어쩌면 많은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의 첫 페이지부터 이 이야기의 결말이 결코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짐작을 하면서도 내내 주인공의 평안을 바라게 된다. 평안이란 무엇일까. 주인공 그래버에게 평안은 이런 것이다. 엘리자베스와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밤을 무사히 서로의 품에서 잠드는 일.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특별할 것 없는 일들이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는 기적처럼 느껴진다. 잔혹함이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레마르크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어 과장을 전혀 느낄수 없음에도 감정적으로는 깊이가 느껴진다. 인간의 잔혹함과 무관하게 지속되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속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적인 태도와 존엄의 미학은 레마르크가 이룩한 문학적 성취처럼 느껴진다.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어떤 순간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유한하기 때문에 더욱 절실해질 수 있다는 것. 우리가 가진 것은 영원하지도, 당연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그 유한한 순간 안에서 더 큰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어쩌면 이토록 잔혹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바로 그런 감각이 아닐까. 문학적 경험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순간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실은 얼마나 크고 경이로우며 아름다운 기적인지를. #사랑할때와죽을때 #에리히마리아레마르크 #민음사세계문학전집 #고전문학 #소설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