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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평점 :
계절이 가을로 들어서면서 산책길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 무성하고 열렬했던 초록은 색색의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서늘한 공기는 높고 청명한 하늘처럼 맑은 숨을 쉬게 한다. 산책을 하면서 헤세의 시선과 그가 느낀 자연의 경이를 나 역시 더욱 감탄하며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문장 한 줄 한 줄은 곱게 꿰어놓은 구슬처럼 매끄럽고 눈부셔 황홀감이 들 정도다. 단순한 자연의 한 장면이 그의 문장을 통과하면 생명과 시간, 인간의 삶까지 품은 하나의 명징한 세계가 된다.
자연을 묘사하는 헤세의 언어는 경이로울 정도다. 그의 문장 속에서 꽃은 그저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음을 누리고 늙어가며, 때로는 꿈꾸고 지치기도 한다. 자연에 인간의 감정과 생애를 겹쳐놓는 의인화적 표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은 어느새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살아가는 친밀한 존재가 된다. 피어나고 시들며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유한한 생애를 발견하면서도, 그 덧없음마저 삶의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유년 시절의 헤세에게 세상은 이해해야 할 현실이기 이전에 발견해야 할 신비에 가까웠다. 작은 것에도 호기심을 느끼고, 아무런 목적 없이 놀고 상상하며 세계와 가까이 지냈던 시간. 어른이 된 헤세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그 감각을 잃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시대가 요구하는 삶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기보다 여행하고 읽고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 곁에 머물렀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 사이에는 긴 시간이 놓여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 그 거리가 놀라울 만큼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이 더 유용하고 성공적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동안 자연과 인간, 타인과의 친밀함이나 예술과 사색, 목적 없이 누리는 삶의 유희는 너무도 쉽게 뒤로 밀려난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이 오히려 삶에서 가장 먼저 생략되곤 한다는 사실은 그의 시대에도 지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아무런 효용이 없어도 아름다운 것 앞에 오래 머물고, 익숙한 풍경에서도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여전히 세상을 신비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 어쩌면 그는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잊어가는 그 순수한 감각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헤세에게 자연은 그런 마음을 되찾게 해주는 오랜 친구였다. 매일 함께 거닐며 계절과 시간,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생애의 동반자처럼 그의 문장 곳곳에는 자연을 향한 다정함이 배어 있다. 세월이 흘러도 꽃과 구름과 나비 앞에서 다시 놀라워할 수 있었던 사람. 그의 글을 읽고 가을의 산책길을 걷다 보니 나 역시 조금 더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게 된다. 늘 곁에 있어 익숙해진 것들이 실은 얼마나 많은 경이를 품고 있었는지, 그의 시선을 빌려 바라본 자연은 가장 소중한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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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moonchusa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