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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극장으로 읽다
이대환 지음 / 시공사 / 2026년 8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오페라를 음악이 아닌 ‘공간’을 통해 바라보게 되었다. 그 공간을 따라가다 보니 뜻밖에도 유럽의 역사와 문화, 인간의 욕망과 예술을 향한 애정까지 하나의 다채로운 흐름 안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연극에서 출발해 음악과 연기, 무대와 건축이 결합된 종합예술로 발전한 오페라는 수백 년 동안 유럽 사회의 변화와 함께해왔다. 오페라 극장은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는 장소가 아니라 한 시대의 권력과 욕망, 기술과 미학이 교차하고 수많은 사람의 예술을 향한 열망이 켜켜이 쌓여온 공간이다. 정치와 종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전쟁과 화재로 사라졌다가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했다. 한 시대의 취향과 가치관까지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 축적되어온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사라진 극장을 다시 세우기 위해 귀족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까지 나섰다는 사실이다. 먹고사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예술을 위해 많은 사람이 시간과 돈을 내어놓았다는 것은 그들에게 오페라가 단순한 유흥이나 사치 이상의 의미였음을 보여준다. 한 도시가 자신이 사랑해온 예술과 공간을 지켜내려 했다는 사실에서 예술이 공동체의 기억이자 정체성이 될 수도 있음을 느꼈다.
책에 등장하는 유럽의 10대 오페라 하우스를 따라가다 보면 건축 역시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극장의 장식과 조각에는 신화와 종교, 당대의 문화적 상징이 숨어 있고, 객석의 배치에는 그 시대의 계급과 사회적 관계가 드러난다. 벽과 천장, 좌석과 내장재, 공간의 형태까지도 성악가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어떻게 반사하고 흡수해 객석에 전달할 것인지 세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귀에 들리는 아름다움이 하나의 건축 안에서 동시에 설계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페라 극장 자체가 이미 하나의 거대한 종합예술처럼 느껴진다.
오페라 극장의 역사만으로도 왕과 귀족, 시민과 후원자, 작곡가와 예술가들이 만나고 충돌하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오페라만으로도 수백 년에 걸친 인간의 욕망과 권력, 사랑과 허영, 예술을 향한 열망과 시대의 변화까지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이제는 화면 하나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서 열리는 공연도 볼 수 있고, 기술은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점점 더 정교하게 허문다. 인공지능은 음악과 이미지, 목소리까지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오페라와 연극처럼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에는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얼마 전 친구의 연극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배우가 바로 눈앞에서 숨 쉬고 움직이고, 같은 공간의 관객들이 동시에 웃고 긴장하며 침묵하는 순간에는 화면으로 옮겨지지 않는 생생함이 있다. 오페라 역시 성악가의 몸에서 나온 목소리가 극장의 벽과 천장을 울리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배우의 움직임, 무대와 조명, 그날의 관객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 아무리 같은 작품을 같은 사람들이 공연한다 해도 완전히 똑같은 공연은 다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날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경험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것이 오페라 극장이라는 공간이 수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오페라는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예술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그곳에 존재함으로써 경험하는 예술이고, 극장은 그 경험을 담아내는 그릇인 동시에 인간이 오랫동안 예술을 사랑해온 흔적이 축적된 장소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아름다움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들인 시간과 욕망, 기술과 기억이 공존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오래된 극장과 도시의 공간들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가능하다면 언젠가 아름다운 극장의 객석에 앉아 오페라 한 편을 보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화면으로 보고 기술로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일수록 그곳에 직접 존재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은 더욱 귀해진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극장을 짓고, 잃고, 다시 세우며 지켜온 것은 어쩌면 바로 그런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오페라, 극장으로 읽다』는 오페라와 건축을 넘어, 인간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예술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지켜왔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탁월한 교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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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sigongsa_books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