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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습게 봤겠지만
베라 쿠리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평점 :
끔찍해야 할 사이코패스들이 깜찍하게 보이기 시작할 때쯤이면 이미 이 소설에 단단히 빠져 출구를 찾을 수 없다.
사이코패스인 대학생 클로이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죽이기 위해 치밀한 복수를 준비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이야기인데, 하필 클로이가 참여하고 있는 사이코패스 연구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 하나둘 살해되기 시작한다. 사이코패스가 사이코패스를 죽이는 범인을 쫓고, 그 와중에 자신의 살인 계획까지 완수해야 한다니.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이야기는 갈수록 더 대담하고 영리해진다.
곳곳에 던져놓은 단서와 복선이 촘촘하게 맞물리면서 한번 잡은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등장인물이 더해질수록 자연스럽게 독자의 머릿속에도 용의자 목록이 만들어진다. 한 명을 의심했다가 지우고, 다른 한 명을 추가하고, 믿었던 인물을 다시 의심한다. 추리를 시작할 만하면 새로운 단서가 나타나고, 답을 알아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다시 판이 뒤집히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치밀하고 어두울 법한 스릴러 한가운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생동감이 있다는 데 있다. 캠퍼스를 돌아다니고, 연애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학생들의 일상은 뜻밖에도 하이틴 로맨스를 보는 것처럼 발랄하다. 개성 넘치고 매력적인 인물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모두가 조금씩 이상하고 수상한데도 정이 간다. 거침없고 솔직한 클로이의 속마음과 대화에서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살인과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웃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느 순간 이 위험한 아이들의 다음 대화가 기다려진다.
우리는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잔혹한 범죄와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한다. 뉴스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면 범인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쉽게 그 말을 꺼낸다. 하지만 인간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분류되는 존재가 아니다. 타인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학습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사이코패스가 아니면서 잔인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진짜 위험한 인간은 누구일까?
클로이의 복수는 사회를 향한 문제의식으로도 확장된다.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남자를 법정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처단하려는 클로이의 복수에는 여성 대상 범죄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추궁하는 세상을 향한 클로이의 거침없는 목소리는 통쾌하면서도 그 부조리를 날카롭게 찌른다.
같은 행동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 사람의 시선에 머물지 않고 등장인물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여러 시선을 겹쳐 보게 한다.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던 경계는 흐려지고, 확신했던 판단마저 잠시 유보하게 된다. 결국 한 사람을 특정한 틀 안에 가두어 바라보던 우리의 편견까지 돌아보게 한다.
『나를 우습게 봤겠지만』은 범인을 맞히는 재미가 있는 영리한 스릴러이자,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유쾌한 캠퍼스물이며,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야기다. 범죄와 사이코패스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 얽힌 인간의 복잡한 면면을 놓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분명 연쇄살인범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범인보다 이 깜찍한 사이코패스들의 안위가 더 걱정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제대로 당했다. 나도 그들을 우습게 봤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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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munhakdongne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