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만히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빠가 칼을 높이 들었다 내리면 닭은 단번에 두 도막으로 갈라졌다. 아빠는 말없이 닭만 잘랐다. - P17

"나중에 아빠처럼 닭을 자르고 살아도 말이지…… 나라 이름이 바뀔 때는 잘 알아 둬."
"네."
"그리고…. 똑똑한 친구를 한 명은 꼭 사귀어라. 아빠는 ‘나린다‘가 맞는지 내린다‘가 맞는지 물어볼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내 친구들은 죄다 무식해서 말이지..." - P18

엄마는 아이들이 어느 학교를 다니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곧가까운 학교로 전학시킬 거라고 했다. 엄마가 아이들이 몇이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넷이라고 했다. 엄마가 너무 많이 낳았다고 했다. 아저씨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엄마가 그 말을 하제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31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고리 달린 샤프를 못 사서 속상하고, 동생이 똥 휴지를 갖고 다닌다고 놀림받아서 속상하고, 나는 이렇게 돈이 없고 속상한데 엄마는 소주 사 먹어서 화가 나고…… 주머니 속에 천원은 그대로 있는데, 나는 꼭 천 원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 P47

그래도 나는 대놓고 싫어하는 눈치를 보일 수가 없었어. 일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착한 어린이 상을 탔거든. 아이들이투표해서 뽑아 준 거였지. 내가 그 상을 타고 싶어서 착하게 군건 아니었어. 하지만 그 상을 탄 다음부턴 착한 어린이답게 행동하고 싶었어. 애들은 수택이를 보리 방구라고 놀리고 가까이오는 것도 싫어했지만, 막상 짝을 바꾸겠다고 하면 나를 좋지않게 볼 것만 같았어.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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