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작은 새
다테노 히로시 지음, 나카노 마미 그림, 마루 옮김 / 요요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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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따뜻하고날씨 좋은 어느날
목련 나무 작은 가지들을 예쁘게 묶어 정리하는 일을 하는 고양이에게
작은 새가 날아와 가지를 조금 나누어달라 부탁을 한다.
부탁을 하는 작은 새가 꽤나 난처해보여 고양이는 자기에게 중요한 가지를 나누어 준다.
이후 둘은 서로 자신에게 없는 것을 니누어 채워가며 더욱 친한 사이가 된다.

세밀하게 그린 그림이 매우매우 곱다! 파란 고양이 눈과 작은 새의 파란 날개 그리고 푸른빛 도는 꽃 선물이 어찌나 맑고 따뜻하고 예쁜지 모르겠다.

함께 살아가는 건 이런 모습이어야지... 친구란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거지.. 하고 배우게 되는 고운 그림책!! 고마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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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퓨마의 나날들 -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명체가 나눈 사랑과 교감, 치유의 기록
로라 콜먼 지음, 박초월 옮김 / 푸른숲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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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퓨마의 나날들

 

1. 술술 읽힌다. 나이를 먹고 돋보기를 써야 책을 볼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전처럼 책을 못 읽는다. 덕분에 읽는 책의 수가 현저히 줄었다. 관심 있는 책을 만나도 끝까지 읽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한데 이 책은 꽤나 두꺼워 내용이 많은데도 술술 읽혀 한창? 때처럼 읽을 수 있어 매우 만족했다. 퓨마 와이라와 저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서로 마음을 맞춰 가는가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완독! 저자의 흡입력 있는 이야기 솜씨 덕분에 오랜만에 읽는 재미를 듬뿍 느끼고 감사하다!

 

(56) 나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우리는 애완동물 밀매에서 구조된 야생동물을 돌보고 있어요. 원숭이, , 돼지, , 고양이……

고양이요?” 고양이라고? 개도 있을까? 조금은 기운이 난다. 하지만 밖을 아무리 둘러봐도, 스페인어로 뭔지 까먹었지만, 오직 원숭이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깨에 밝은 색 새를 올려놓고 있다. 새끼 아나콘다 같은 걸 목에 두른 소년이 지나가자 나는 흠칫한다.

네 총 열여섯 마리예요. 재규어와 오실롯 그리고 류마도 있죠.” 나는 말없이 밀라를 쳐다본다. 그렇다, 집고양이가 아니었다.

암컷 퓨마를 돌보게 될 거예요.”

퓨마요?”

 

아직 퓨마 와이라를 만나기 전이다. 원숭이가 흔하고 큰 새나 아나콘다 새끼를 몸에 붙이고 있는 사람들과 퓨마나 재규어를 고양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이 눈에 그려지고 어리둥절했을 법한 저자의 심정이 느껴져 크크 웃음이 난다.

 

 

(108) “팔을 안으로 넣어.”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쉰다. 나를 달래며 잠재우던 소리를 다시 들으려고 애쓴다. 다시금 두꺼비의 노래, 큰부리새의 재잘거림, 딱따구리 부리의 육중한 두드림이 내게 밀려오는 것을 느낀다. 무거운 공기가 손 위로 내려앉는다. 두려움에 이를 꽉 문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한쪽 팔을 문 틈새로 슬쩍 집어넣는다. 와이라는 여전히 미동도 않는다.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친 연극배우의 얼굴처럼 눈가에 극적인 검은 줄무늬가 나 있다. 나는 가까스로 손을 떨지 않고 있을 뿐이다. 와이라의 귀가 미세하게 뒤로 젖혀진다.

와이라가 처음으로 나를 핥는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를 핥고 있어!” 목소리를 낮춰 감탄한다.‘

 

와이라를 만나며 긴장감에 차서 일어난 행동, 느낌, 감각 묘사가 실감나 마치 내손을 와이라가 핥은 듯하다. ! 얼마나 떨리고 기뻤을까!

 

 

(118) “파라 미, 로스 아니말레스 레스 카타도스 손 코모 라스 세보야스(나한테는 구조된 동물이 양파처럼 느껴져요).”

밀라는 나를 바라보며 말뜻을 이해했는지 확인한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안절부절못할 뿐이다. 밀라는 한숨을 쉬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천천히 말한다. 구조된 동물은 양파와 같다. 불안의 껍질을 힘겹게 한 끼를 벗겨내면 예기치 못한 다른 껍질이 나오고,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껍질이 그 아래에 숨어 있다. 우리 모두는 이곳 동물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기에, 전부 제각기 엉망이고 망가져 있기에, 우리 또한 양파나 다름없다.

이 에소 에스 로 케 아세 엘 파르케밀라가 미소를 머금는다. “바로 그게 파르케가 하는 일이죠. 그렇지 않나요? 우리의 껍질을 벗겨내는 것.” 그가 나의 가슴팍을 툭툭 두드리고 말을 이어간다. “당신과 나 말이에요. 한 꺼풀씩, 한 꺼풀씩. 그러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돌보는 동물들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죠. 카다디아, 매일매일. 훈토스, 함께. 함께하는 거예요. 포르 에소 메 애나모레 데 에스테 루가르. 그래서 제가 이곳을 좋아하는 거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결코 알 수 없어요.”

 

(123) 잠든 줄 알았던 밀라가 불쑥 고개를 돌린다.

꼬모 에스타 미아모르 와이라(내 사랑 와이라는 어때요)?” 밀라의 목소리는 은하수를 스쳐 지나가는 별똥별처럼 고요하다. 오늘은 달이 뜨지 않았다. 덕분에 별이 더욱 밝게 빛난다. “라 세보야(양파 말이에요).”

나는 돌아누워서 밀라를 마주본다.

잉크레이블레(놀라워요).” 나도 속삭이면서 이야기하는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카미나모스 이 에스(같이 걷는데)......” 나는 고개를 젓는다. 무슨 느낌인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와이라와 함께 걸으면 그에게서 스며 나오는 야생의 기운이 나까지 휘감는다. 뻣뻣한 고무 옷을 입은 지 워낙 오래되어 입었다는 것조차 잊었다가, 이제야 빠져나와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제야 팔다리를 제대로 움직이는 기분이다. 과거에는 몰랐던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숨을 쉴 수 있다. 언제라도 툭 끊어질 듯한 팽팽한 밧줄 위에 올라선 기분이다. 이건 선물이다. 밀라와 와이라가 준 선물. 그 누구보다 와이라가 준 선물.

 

 

보호하는 동물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밀라의 이야기는 정글 속 개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생추어리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징검다리를 놓는 말 같다.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하나씩 천천히 알아가는 일.. 긴말 없이 날이 갈수록 밀라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말하는 저자의 방식이 참 담백하다. 새삼 찾아가는 생생하고 팽팽한 감각을 느끼고 고마워하는 마음도 참 이쁘고.

 

2. 생추어리를 간접 체험했다. 볼리비아 최초의 생추어리인 암부에아리에서 야생동물보호에 힘을 쏟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스러웠다. 1달 정도 머무는 단기 자원봉사자부터 여러 달 혹은 여러 해 머무는 장기 자원봉사자 그리고 현지인 스태프들은 정글 안 캠프에서 지내는데 열과 습기로 숨이 차는 날씨와 좁은 공간에서 동물과 곤충이 함께하는 숙식, 푸세식 화장실, 과로와 온갖 위험을 견뎌야 한다. 전에 겪지 않았던 새로움을 맞아 안 쓰던 감각을 꺼내 써야 한다. 재미있는 건 사람들이 곧 적응하고 자신이 돌보는 동물과 깊은 사랑에 빠지며 생추어리를 벗어났다가도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는 점이다.

 

(71) ...“새끼일 때 어미와 헤어졌어요.” 마침내 말문을 연 제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다. 몇 번이고, 수도 없이 되풀이한 이야기라는 듯이. 나 같은 봉사자들을 얼마나 많이 가르쳐야 했을까. “사냥꾼들이 어미를 총으로 쏘고 와이라를 도시로 몰래 들여왔을 거예요. 암시장에서 팔아넘기려고요. 한 거리 예술가가 와이라를 사와서 작은 상자에 가둬놓고 시끄럽고 더러운 곳에 방치했어요. 그 다음에 재주를 부리도록 시켰죠. 그 어린아이를요. 이건 정말 ......” 제인이 이를 악무는 모습이 또렷이 보인다. “야생에서 살았더라면 두 살이 될 때까지 어미와 지냈을 거예요. 그런데 사슬에 묶여서 채찍질을 당하고 영양실조에도 시달렸죠.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은 전혀 배우지 못했어요. 자라서 난폭해진 뒤에야 이곳에 버려졌어요. 태어난 지 열 달쯤 됐을 때예요.”

나는 제인을 바라본다. 목이 메인 목소리로 묻는다. “지금은 몇 살이죠?”

이제 거의 네 살이네요.”

긴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곰곰이 생각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올리려 애써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늘 본 퓨마가 어릴 적 작은 상자에 갇혀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뿐이다. 예전에 동물원에 간 적이 있지만, 이런 걸 걱정해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걱정이 된다. 구역질이 난다. 제인이 한숨을 쉬며 뒤돌아 나를 쳐다본다.

 

 

예전에 사람이 사람을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했다는 사실을 담은 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동물원이란 곳에 동물을 가두고 관람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괴이한가 싶은데 부끄럽지만 그런 감각을 지니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78) “그땐 여기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네가 카를로스와 후안 카를로스가 이땅을 사고 숙소를 지었죠. 그 사람들이 이 모든 걸 일궈냈어요. 1990년대에 거미원숭이 두 마리, 꼬리감는원숭이 두 마리, 다람쥐원숭이 한 마리를 구조하면서 코차밤바 인근 운무림에서 첫 번째 파르케를 운영하기 시작했죠. 볼리비아에 만들어진 최초의 야생동물 생추어리예요. 2002년에 땅을 매입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고요. 그땐 봉사자도 별로 없었어요. 그리고 로페스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선글라스를 끼고 서성이는 애거든요.....”

 

 

세상에는 참 옳은 일,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나 고마운지. 보호해야 할 동물들이 없었다면 좋았지만 그들의 처지를 아파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서 힘쓴 사람이 있어 고맙다. 그들이 뿌린 씨앗이 아주아주 큰 나무로 자라기를 기도한다.

 

 

(79) “루피는 초창기에 온 고양이였어요. 루피와 로페스는 같이 자랐어요. 판치타와 함께 자유롭게 거닐었죠. 방사장을 지을 돈이 생기기 전 이야기예요. 모두가 그저 동물을 구조하고 그 애들에게 행복한 삶을 주려 했던 것 아니겠어요?” 그는 행복한 삶이란 단어를 힘주어 말하면서 휴지 양동이를 나의 면전에 대고 흔들어댄다. “상상해봐요!” 보비는 호들갑스럽게 한숨을 쉬며 벽에 등을 기댄다. “새끼 재규어, 도벽이 있는 돼지, 열한 살짜리 아이. 그들이 친구가 되었다고요.”

 

(101) “혹시 이거......” 나와 마찬가지로 마체테 임무를 부여받은 패디가 느닷없이 내 팔를 가리킨다.

, 미친! 떼줘!”

하지만 패디 역시 자기 옷을 털며 꽥 소리를 지르느라 바쁘다.

그냥 진드기야.” 새미가 한 남자와 함께 우리 옆을 지나간다. 남자는 네덜란드 출신인데, 음담패설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새미가 더티 더치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나는 위팔 깊숙이 박힌 것을 쳐다보며 묻는다. “어떡해?”

비틀어서 잡아당겨새미는 남자와 함께 옮기던 마른나무 한쪽을 내려좋고 아래팔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는다. “이제 건기가 시작되고 있어. 진드기가 엄청 많을 때야. 말벌만 한 말파리도 있고, 새만 한 말벌도 있지. 여기서는 연중 어느 때라도 운 좋길 바라면 안 돼. 매일 밤마다 스스로 체크해야 해.”

 

 

벌레를 정말 무서워하고 싫어라 하는 나로서는 우리나라 내 주변에서 만나는 벌레보다 수십 배 덩치가 큰 벌레를 만나면 놀라 까무라치지 않을까 싶은데... 도시에 살던 저자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 적응하고 나중에는 저자의 살 속에 벌레가 알을 낳아 길러 애벌레를 파내는 에피소드도 나왔는데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를 않고 거부감에 눈앞에 장면을 떠올리는 상상도 잘 안 된다.

 

(136) “정말 멋져요.”

그래.” 엄마가 조용히 웃는다. “무언가에 대해 그렇게 긍정적으로 말하다니 반가운 일이구나.”

한쪽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다. “정말 놀랍지만 또 힘든 곳이에요. 매일 다치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웃게 되고요.” 둘 다 한참 말이 없다. 충격을 받아서 울음을 참고 계신 걸까. “고양이가 있는데요. 사람을 무는 원숭이도 있고요.” 나는 서둘러 말을 잇는다. 다시금 얼굴을 거울에 기댄다. 울음이 터질 것 같다. 내가 사귄 친구들을 어떻게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들은 정말 나의 친구들인데. 사소한 것 하나라도 설명할 수 없다면 아예 아무것도 설명하고 싶지 않다. “돌아가면 다 말씀드릴게요. .”

 

(153) 정글이 톰에게 가져간 대가는 불 보듯 뻔하다. 해리와 마찬가지로, 홀쭉해진 볼은 수척하고 갈비뼈 아래가 우묵히 파였으며 눈 밑에 그늘이 졌다. 그래도 럴마나 힘들든 항상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몇 안 되는 장기 봉사자다. 밀라가 어떤 작업을 요청하건, 아무리 터무니 없더라도 거절하는 걸 못 봤다. 한밤중에 오실롯에게 생유산균을 주러 밀라와 함께 정글 깊숙이 들어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새미도 마찬가지다.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밖으로 나간다. 햇살을 충분히 쬐지 않아 비타민이 부족한 탓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코코가 날마다 자기 털을 고르는 것처럼 언젠가 새미의 머리카락을 한 움쿰 뽑아내는 것을 보았다. 정작 새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적어도 이가 꼬일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고 하면서. 하지만 햇살이 얼굴을 비추자, 살결마다 깊이 배어든 피로가 드러난다. 새미의 플란넬 셔츠는 땀에 흠뻑 젖었다. 진흙과 시멘트가 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었다. 주로 탄수화물만 먹은 탓에 배가 부어올랐다. 사람은 이곳에서 생존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이곳에 있다. 사마가 정글을 빼앗긴 것만큼이나 분명하게 어떻게든 정글과 연결되어 있다.

 

(168) 모두들 머리카락이 엉망이고, 모두들 썩은 내가 난다. 동물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 내가 외모를 신경 써야 하나? 머릿속에서 계속 웅얼거리던 사회적 불안은 이제 사라졌다. 나는 오로지 감정에 따라 웃는다. 머릿속이 고요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장운동이 정상이 되었다! 빨래는 하지 않는다. 매일 똑같이 입는 옷에 코를 들이대고 찌든 곰팡내를 기억하기로 다짐한다.

 

(173) “쿠이가 세 번이야.”

무슨 뜻인데?” 숨죽여 귀를 기울인다. 전화기도 라디오도 없는 상황에서 봉사자들이 외치는 쿠이는 유일한 소통 수단이다. 한 번은 조용히 해’, 두 번은 길을 잃었어’, 세 번은......

비상사태

우리는 둘 다 뛰기 시작한다.

도로에 나가자마자, 기묘한 느낌의 하늘을 등진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들은 흡연 오두막 옆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풍긴다. 밀라와 로페스가 이제 막 오토바이에서 내린 참이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 이마에는 짙은 재의 반점이 번졌다.

아이 푸에고(불이에요). 아이 푸에고 엔 라 몬타냐(산에 불이 났어요).’ 밀라의 목소리가 매섭다.

연기다. 정체를 알아차리자마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여러 차례 발생하는 화재이야기가 나오는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얼마 전 아마존의 숲을 함부로 베어 마치 발라낸 생선 가시 모양으로 수없이 많은 길이 난 위성사진을 봤는데 돈 앞에 힘을 못 쓰는 어리석은 인간의 자화상에 마음이 쓰리다. 인간이 저지르는 죄가 너무 크고 무겁다.

 

3. 아름답다. 훼손이 심해 안타깝고 한편으로 본래 그러하듯 장엄한 자연, 보호소에 모인 상처받은 동물, 영혼을 바쳐 동물을 보호하며 교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이 책이 참 따뜻하고 아름답다. 특히 책의 표지에서 표지를 보는 나와 눈을 맞추는 퓨마 와이라와 저자의 관계가 그렇다. 그들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고 깊어지고 변화하는 이야기가!

 

 

(111) 와이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인을 올려다본다. 와이라가 약간 사팔눈이란 걸 방금 처음 알았다 제인의 주근깨 코를 핥으려 하는 중이다. 와이라의 몸짓에는 오로지 다정함과 애정만이 감돈다. 제인은 방긋 웃고, 끙끙거리며 다리를 옮겨 와이라의 머리를 허벅지 안쪽에 누인다. 무릎 위에 퓨마가 있는데도 두려워하기는커녕 무덤덤하다. 와이라는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더니 제인의 무릎에 턱을 괸다.

바로 지금이야.” 제인이 와이라의 목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지금이 와이라가 너를 믿는 법을 제대로 배울 때야.”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옅은 푸른색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내가 거꾸로 뒤집힌 것만 같다. 위가 아닌 아래에 있어야 할 바다에 구름이 흰 조각배가 되어 떠다닌다. 나는 완전히 잘못된 길을 맞닥뜨렸다. 앵무새가 크게 소리친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와이라에게 가까이 앉는 것은 나의 모든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다. 와이라의 이빨이 내 손가락의 반만 하다는 것을, 나를 보고 이빨을 드러낸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건 제인이 없었다면 하지도 않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인은 와이라를 믿고 있다. 좀 이상한 방식이긴 하지만, 나는 제인을 믿기 시작했다.

 

(140) 고양이들은 주로 봉사자들과 헤엄을 치며 시간을 보낸다. 야생에서도 헤엄을 칠 것이다. 물속을 응시하는 와이라를 보면 이따금 그가 용기를 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이해한다. 허세 부리기, 하악거리기, 으르렁대기. 전부 그의 대처 방식이다. 미소 짓기와 괜찮은 척하기가 나의 대처 방식인 것처럼. 내가 나뭇가지를 밟자 와이라가 1미터가량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제 그림자조차 무서워하는 퓨마다. 야생을 두려워하는 퓨마.

 

(141) 털이 한 올 한 올 선명하다. 이제 알겠다. 와이라의 털은 회색도 흰색도 아니고 황갈색도 은색도 아니라는 것을. 와이라의 색깔은 그 모든 것이다. 몸을 가로지르며 서로 다른 색상들이 나타난다. 빛의 변화에 따라 색상이 바뀌는 듯한 인상을 준다.

 

(142) “저기, 와이라?”

와이라의 귀가 살짝 움직인다. 다일한 생물체와 같은 정글의 웅성거림이 자동차 경보음처럼 이상하게도 위안이 된다. 와이라의 눈이 나와 마주친다. 호박색 줄 한 가닥이 눈동자를 둘러싼다.

어젯밤에 항공편을 바꿨어. 남아 있기로 했거든.”

와이라가 나의 팔을 밀어내고 한 바퀴 구르더니 배를 깔고 엎드려 두 앞발을 포갠다. 석호를 바라보는 와이라의 꼬리 끝이 내 장화를 건드린다. 우리 둘은 머리 위로 드리운 바나나나무 그늘을 함께 나누고 있다. 와이라는 저 아래 반짝이는 수면을 응시한다.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실망감이 차오른다. 앞발에 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지만, 귀의 각도를 보아하니 아직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다.

...... 내 말 듣고 있니?”

와이라가 잠든 척을 한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괜찮을까? 남아 있어도.”

이번에는 와이라가 한가롭게 옆으로 누워 땅바닥 위에 볼을 댄다. 코에 복잡한 무늬의 점이 찍혀 있다.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쩐 일인지 눈이 화끈거린다. 괜찮다. 오이라는 석호의 하고많은 장소 가운데 나의 곁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와이라는 나와 같은 말을 쓰지 않아도 생각을 밝힐 줄 안다. 괜찮다고, 나는 괜찮은 것 같다고 와이라가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고마워, 공주님.” 나는 코를 훌쩍이며, 별것 아니 일로 야단법석 떨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와이라는 별꼴이라는 듯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켜 저 멀리 걸어간다.

 

(198) 어쩌면 몇 주간 케이지에 홀로 있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어쩌면 통제력을 잃어서 그랬을지도, 열기와 불과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와이라의 본능이 물로 뛰어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와이라가 너무도 두려워하던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다. 수년간 이곳에 머물며 호숫가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으면서도 하지 못했던 일. 와이라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목이 메여 침을 삼키기가 어렵다. 보이는 것은 오직 물방울과 석호 진흙이 튀고 햇살에 갈색을 띤 와이라의 뒤통수와 반들반들한 회색 귀 끝, 휙휙 움직이며 물을 가르는 꼬리 끝의 짙은 털 뭉치가 전부다. 와이라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전부 부풀어 오른다. 뜻밖에 나를 완전히 때려눕히는 그 모든 감정들. 나는 여지없이 망가진다. 몸이 부서지고 마음도 산산조각 난다. 이게 사랑일까? 모르겠다. 확실한 건,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옮기다 보니 시간이 늦었다. 아름다운 와이라와 로라 콜먼의 기록은 직접 만나는 것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맛있다는 음식이 과연 그러한가 알아보려면 직접 내입으로 먹어보는 것이 확실한 방법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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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양승권 지음 / 페이퍼로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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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내가 지닌 관심을 따라 이 책 [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를 손에 들었다. 내가 이해를 했는지 말았는지는 논외로 니체나 장자의 책을 읽으면 그때마다 공감해 좋았고, 어쩌다 방송 등 강의를 들어도 만족했기 때문에 호감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보니 제목 한 번 잘 지었구나 싶다. 매 챕터에 니체와 장자가 한 말 가운데 서로 뜻이 닿는 말을 이렇게 말했다 하고 나란히 놓아 그에 대한 해설을 붙였는데 인용한 니체와 장자의 말이나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나 한결같이 길지 않고 어렵지 않게 다가왔다. 두 사람이 모두 은유와 시적인 표현을 즐겨 썼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호모 파티엔스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 알았는데 삶의 고통을 느끼며 사는 동물인 인간이라는 뜻이라 한다. 살면서 고통을 느낄 때 고통이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디딤돌이라 여길 수 있도록 돕는 말을 하는 니체와 장자를 만날 수 있었다. 예컨대 질병이 인식을 낚는 낚시바늘이라고, 약한 본성이 진보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스스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떠올리라 말하는 니체 그리고 몸이 불편하게 태어났지만 여느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지리소 이야기와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늘진 어두운 곳에 머물면 된다는 이야기, 천하보다 내 몸을 귀하게 여기는 자라야 천하를 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장자를


속뜻이나 깊이를 좀더 깨우치자면 이 책에서 읽은 말이 든 본디 책을 찾아 찬찬히 읽어야 하지만 그 규모나 무게를 헤아릴 수 없어서 호감은 있지만 니체와 장자에 접근하기 겁나는 사람에게 이거 봐. 괜찮다니까?’라고 안심하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책이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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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 - 그림 한 장에 담긴 자기 치유 심리학
단 카츠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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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멀쩡하던 사람을 잔뜩 겁먹어 움츠리게 만든다. 정신이 아득해지게 만들어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게 한다. 판단력을 얼려버려서 마치 한참 지능이 낮은 종의 동물인듯 행동하도록 몰아간다. 당장 죽을 위험에 처하기라도 한듯 초조감, 공포감을 한껏 불러 일으키는데 가라앉혀 보려는 시도는 힘을 쓰지 못하기 쉽다. 말도 안 통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막는다. 삶을 외면하고 도망하게 한다. 녀석과는 도무지 대화가 안 되고 아무때고 무시로 나타나 내 기운을 쏙빼고 괴롭힌다. 끈적이처럼 내게 들러붙은 녀석은 멀지 않은 곳 내 머릿속에 있다. 녀석은... 녀석은.. 도.. 도.. 도마뱀... 이다.

두뇌의 가장 안쪽에 있는 뇌의 편도체라는 기관은 공포를 느낄 때 신체 반응을 주관한다. 편도체는 생김새도 그렇고 도마뱀 같은 파충류의 뇌와 많이 닮아서 '파충류의 뇌'라고도 불린다. 목숨이 달린 위기상황에서 도망치라고 경고해 인류의 종족 보존을 도왔다. 한데 원시시대가 아닌 현대인들은 생명이 좌우되는 위험한 상황에 좀처럼 놓이지도 않고, 평소 같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일 앞에도 잘못 작동할 때가 있다. 그렇게 오작동하게 되는 일이 늘면 우리 삶은 질이 낮아지게 마련인데 문제는 편도체가 파충류의 뇌라 불리는 데서 짐작하는 것처럼 논리적인 설명이나 이성적인 설득이 잘 안 통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편도체를 말리려면 색다른 전략을 써서 다가가야 한다. 바로 은유를 담은 그림을 눈 앞에 뙇!

이 책에는 모두 서른 두 점의 그림이 들었는데 펜으로 선묘하고 수채물감으로 채색했다. 편도체에 지배를 받는 원시 뇌의 눈을 뜨게 만든다. 세련미가 있거나 예쁘고 뽀샤시한 그림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사는 도마뱀의 눈을 끌고 그의 준동을 가라앉힐 만한 힘이 있겠다 싶은 것이 살다가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장면을 뽑기 장인처럼 솜씨있게 건져 올려 그려 놓았다. 스웨덴의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라는 저자는 '일러스트로 표현한 은유'가 상담기법에서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졌다고 믿는데 실제 상담 장면에서 효과가 컸던 그림을 고르고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의 도움까지 얹어 책에 담았다. 불안과 걱정에 맘 붙일 곳 없는 독자가 제 사정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전과 다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남부럽지 않게' 머릿속 도마뱀의 기습에 시달리는 나이기에 이 책에 어떤 은유가 어떻게 그려졌을까 궁금했다. 심리학 서적들이 전하는 조언은 요약하면 대체로 피하지 말고 마주보기, 그냥 하기 이런 것들이었는데 이 책은 어떤가 읽고 보니 역시 메시지의 맥락은 비슷했다. 하지만 도마뱀에 휘둘리는 상태를 비유하는 그림들이 함께 제시되고 지루한 설명은 적어서 먼길을 지름길로 질러 가는 느낌이다. '촌철살인'이나 '정곡을 찌르다'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예리한 그림도 있고, 아흑! 내가 이랬구나! 하면서 살짝쿵 뿅망치로 머리를 맞아 주의를 환기하는 기분이 드는 그림도 있다. 설명보다 은유가 쉽다는 내 머릿속 도마뱀이 암약할 때 잘 듣는 약이 될지 가까이 두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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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인사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1
전윤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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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인사

 

그 바닷가에서 당신은

버스를 탔겠지

싸우다 지친 여름이 푸르스름한 새벽

내가 잠든 사이

분홍 가방 들고

 

동해와 설악산 사이

외줄기 길은 길기도 해

다시는 만날 수 없었네

 

자고나면 귀에서 모래가 나오고

버스만 타면 멀미를 했지

아무리 토해도 멈추지 않고

정신없이 끌려가던 날들

 

가는 사람은 가는 사정이 있고

남는 사람은 남는 형편이 있네

더이상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 나이

 

잘 가 엄마

아지랑이 하늘하늘 오르는  봄

이제야 미움 없이

인사를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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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없이 보낸다는 인사말 '잘 가 엄마'

담담한 인사가 오열보다 더 뭉클하다.

 

화자처럼 감정의 소용돌이 없이

미웠던 사람에게  고이 인사를 하게되려면

얼만큼 더 가야할까?

 

편안한 말투로

기다림과 쓸쓸함, 의문과 소망, 관찰과 사유

기억과 기록, 사랑과 풍자, 여기와 저너머를

이야기하는 시집이다.

 

시를 잘 모르지만 그리워하는

나는 이 시집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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