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 - 그림 한 장에 담긴 자기 치유 심리학
단 카츠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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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멀쩡하던 사람을 잔뜩 겁먹어 움츠리게 만든다. 정신이 아득해지게 만들어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게 한다. 판단력을 얼려버려서 마치 한참 지능이 낮은 종의 동물인듯 행동하도록 몰아간다. 당장 죽을 위험에 처하기라도 한듯 초조감, 공포감을 한껏 불러 일으키는데 가라앉혀 보려는 시도는 힘을 쓰지 못하기 쉽다. 말도 안 통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막는다. 삶을 외면하고 도망하게 한다. 녀석과는 도무지 대화가 안 되고 아무때고 무시로 나타나 내 기운을 쏙빼고 괴롭힌다. 끈적이처럼 내게 들러붙은 녀석은 멀지 않은 곳 내 머릿속에 있다. 녀석은... 녀석은.. 도.. 도.. 도마뱀... 이다.

두뇌의 가장 안쪽에 있는 뇌의 편도체라는 기관은 공포를 느낄 때 신체 반응을 주관한다. 편도체는 생김새도 그렇고 도마뱀 같은 파충류의 뇌와 많이 닮아서 '파충류의 뇌'라고도 불린다. 목숨이 달린 위기상황에서 도망치라고 경고해 인류의 종족 보존을 도왔다. 한데 원시시대가 아닌 현대인들은 생명이 좌우되는 위험한 상황에 좀처럼 놓이지도 않고, 평소 같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일 앞에도 잘못 작동할 때가 있다. 그렇게 오작동하게 되는 일이 늘면 우리 삶은 질이 낮아지게 마련인데 문제는 편도체가 파충류의 뇌라 불리는 데서 짐작하는 것처럼 논리적인 설명이나 이성적인 설득이 잘 안 통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편도체를 말리려면 색다른 전략을 써서 다가가야 한다. 바로 은유를 담은 그림을 눈 앞에 뙇!

이 책에는 모두 서른 두 점의 그림이 들었는데 펜으로 선묘하고 수채물감으로 채색했다. 편도체에 지배를 받는 원시 뇌의 눈을 뜨게 만든다. 세련미가 있거나 예쁘고 뽀샤시한 그림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사는 도마뱀의 눈을 끌고 그의 준동을 가라앉힐 만한 힘이 있겠다 싶은 것이 살다가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장면을 뽑기 장인처럼 솜씨있게 건져 올려 그려 놓았다. 스웨덴의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라는 저자는 '일러스트로 표현한 은유'가 상담기법에서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졌다고 믿는데 실제 상담 장면에서 효과가 컸던 그림을 고르고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의 도움까지 얹어 책에 담았다. 불안과 걱정에 맘 붙일 곳 없는 독자가 제 사정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전과 다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남부럽지 않게' 머릿속 도마뱀의 기습에 시달리는 나이기에 이 책에 어떤 은유가 어떻게 그려졌을까 궁금했다. 심리학 서적들이 전하는 조언은 요약하면 대체로 피하지 말고 마주보기, 그냥 하기 이런 것들이었는데 이 책은 어떤가 읽고 보니 역시 메시지의 맥락은 비슷했다. 하지만 도마뱀에 휘둘리는 상태를 비유하는 그림들이 함께 제시되고 지루한 설명은 적어서 먼길을 지름길로 질러 가는 느낌이다. '촌철살인'이나 '정곡을 찌르다'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예리한 그림도 있고, 아흑! 내가 이랬구나! 하면서 살짝쿵 뿅망치로 머리를 맞아 주의를 환기하는 기분이 드는 그림도 있다. 설명보다 은유가 쉽다는 내 머릿속 도마뱀이 암약할 때 잘 듣는 약이 될지 가까이 두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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