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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반쪽사 -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2023년 3월
평점 :

과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과학자들을 떠올려보면 중동이나 아시아보다는 유럽의 과학자들이 떠오를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뉴턴, 에디슨, 테슬라 같은. 나는 흔히 근대과학이 유럽에서 태동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믿음이었다.
과학의 반쪽사에서는 이런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아즈텍의 궁전과 오스만제국의 천문대, 인도의 연구소와 중국의 대학에 이르기까지 근대과학의 발전이 어떻게 전 세계 다양한 문화 사이의 사상적 교환에 근본적으로 의존했고, 세계사가 근대과학을 어떤 방식으로 형성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역사책에 없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였다.
16세기 이전에는 과학지식이 거의 고대 문헌에서만 발견된다고 여겨졌고, 관찰을 하거나 실험을 수행하는 방식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중세 사상가들과 중세 유럽의 대학생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작가의 저작을 읽고 암송하며 토론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이런 방식이 깨진 건 유럽 탐험가가 신대륙을 탐험하면서부터였다. 막상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마주친 동식물과 사람들은 고대의 저작 어디에서도 묘사되지 않았던 것이다.
스페인은 신대륙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고 짐승처럼 취급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원주민이 유럽인과 별 다를 것 없는 사람임을 주장하며 원주민의 권리를 지켰던 스페인 사람도 있었고, 정복자 남성과 원주민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들은 유럽인의 매도에 대항해 아즈텍 문화를 열정적으로 옹호했다. 가르실라소는 잉카인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잉카의 왕실 이야기도 기록으로 남겼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식물에 대한 지혜는 유럽의 여러 방면에도 영향을 미쳤다. 콜라 너트는 서 아프리카에서 이웃이나 손님에게 호의로 제공하는 용도 뿐 아니라 퀴퀴한 물을 상큼하게 만들고 위를 진정시키는데도 효과가 있었다. 콜라 너트는 이후 코카콜라의 원재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또 심한 열과 다리 염증으로 치료를 포기한 유럽 의사가 아프리카 노예가 알려준 식물을 통해 완전히 회복하기도 했으며, 농장의 노예 여성들은 공작꽃의 씨앗을 낙태하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노예의 강제노동으로 창출된 부는 이후 예술과 건축부터 항구, 공장건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다. 서인도 제도와 남아메리카의 식물에 대한 지식은 많은 부분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의존했고, 그렇게 발견한 자연사 지식들은 제국의 무역산업과도 분리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약용식물에 대한 지식은 노예제도에 대한 저항의 일부가 되기도 했기에 식민지 당국에서는 아프리카인들이 약용식물을 다루지 못하도록 하는 식민지법이 통과되었다.
새로이 무언가가 발견되고 발명되었다 한들 그건 전 세계 국가의 지식이 모아져 생겨난 것들이었다. 유럽에서도 분명 수많은 과학적 발전을 이룩한 건 맞겠지만, 근대 과학의 발전은 유럽 뿐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등 수많은 나라의 지식이 발판이 되어 이룩한 것이었다. 서구중심의 과학사에서 벗어나 진짜 역사를 살펴보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