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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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영화 '캐롤'과 '리플리'다. 이 두 영화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이기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 지금 봐도 어색함이 없어서 1921년 태어난 작가의 소설이 원작일 거라곤 생각을 못했었다.



레이디스는 그녀가 명성을 얻기 전, 초기 소설 16편을 발굴해 묶은 소설집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9살때부터 병적도벽, 정신분열증 같은 인간의 어두운 심리에 관심을 갖고 프로이트나 칼 메닝거의 저서를 읽었다고 한다. 평생 소재가 고갈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작을 하고, 수많은 영화의 원작을 쓰고, 서스펜스의 대가라고도 불렸던 작가의 초기 소설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 읽어보게 되었다.



16편의 짧은 소설들은 분위기가 제각각이었다. 어떤 소설은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고, 어떤 소설은 미묘한 긴장감이 기저에 깔려있어 시종일관 주인공이 잘못될 까 불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거미인 소설도 있었고, 사람의 미묘한 심리를 포착해 그려낸 소설도 있었다.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은 시종일관 아이가 언제 진실을 깨닫게 될까 궁금해하며 읽었다. 폐쇄된 수녀원을 배경으로 했기에 어떤 어두운 이야기가 펼쳐질까 했지만 나름 반전이 있었다.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에서는 새로운 도시에서 적응하려는 가족의 마음을 알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팠다. 거짓말은 사랑을 밑바닥에 깔고 있기도 하는 법이니까. 



<엄청나게 친절한 남자>는 범죄가 일어나는 건 아닌가 불안감과 불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엄마에 대한 미묘한 양가감정을 떠올리게 만든달까. 나는 개인적으로 <시드니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다. 거미가 주인공인 것도 독특했고,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스토리가 너무 어둡지 않으면서도 기억에 남는 소설이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소설의 스토리가 긴박하게 이어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조마조마하진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의 내면을 잘 관찰하지 않는 이상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미묘한 심리를 표현한 모습이 왜 그녀가 심리소설의 대가라는 건지 짐작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파헤치고, 행동과 속마음이 다른 사람의 모습을 너무나 잘 그려낸 소설들이다.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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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 - 한산·명량·노량 해전지와 함께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도서출판 여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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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아무리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순신은 알고 있지 않을까.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가 되었고, 명량해전에서 13척의 배로 일본 함선 133척을 물리친 건 역사적으로도 유례없는 전투라고 들었다. 선조의 질투로 제대로 공을 인정받지도 못했던 상황에서도 끝까지 나라를 수호하다 돌아가신 분으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손꼽히는 위인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1592년 1월 1일부터 난중일기를 썼다. '쉽게보는 난중일기 완역본'은 난중일기 교감본과 교주본을 토대로 어려운 한문 용어를 한글로 쉽게 풀어 쓴 것이다.


난중일기는 타인이 기록한 역사서가 아니라 직접 전쟁을 지휘한 장군의 일기이기 때문에 이순신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형제애, 아들에 대한 애정, 첩에 대한 얘기 같은 개인사도 가감없이 담겨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해전을 치른 장소나 어머니가 생전에 머물던 곳, 업무를 보던 곳 등등 관련 유적지의 사진도 들어있어 일기를 읽으면서 해당 장소를 좀더 생생히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이순신은 징비록을 쓴 유성룡과도 친분이 있었다고 하는데, 계사 일기에는 이순신이 유성룡에게 보낸 편지도 들어있다. 최근에는 이순신 장군의 최후가 담긴 유성룡의 달력을 일본에서 환수했다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비통함에 눈물이 엉겨 피가 되건마는, 하늘은 어찌 아득하기만 하고 내 사정을 살펴주지 못하는 가. 어찌하여 어서 죽지 못하는가.



난중일기를 보다보면 어머니의 생신에 찾아뵙지 못하는 것을 가슴아파 하고, 어머니가 평안하다는 소식에 마음을 놓는 등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백의종군 하던 중에 어머니의 부음을 듣게되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유년 8월 3일 선조는 이순신에게 삼도수군통제사의 복직 교서를 내린다.



새벽 2시 경에 꿈을 꾸니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다. 막내 아들 면을 붙잡고 안은 형상이 있는 듯하다가 깨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의 꿈에 대한 내용도 꽤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이순신은 이 꿈을 꾼 날 셋째 아들 면의 전사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되어 셋째 아들의 전사 소식까지 들은 이순신은 일기에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 하다고 적었고, 5일 뒤에는 코피를 한 되 남짓 흘렸다고 하니 얼마나 비통한 심정이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순신 관련 드라마나 영화를 본 게 없어서 이순신 장군의 관련 이야기로는 난중일기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되었는데 일기를 읽고 보니 영화에도 관심이 생겨 나중에 명량을 한번 볼까 싶다. 난중일기를 처음 접하는 만큼 '쉽게보는 난중일기 완역본'을 골랐지만, 더 방대한 자료가 담긴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도 있으니 난중일기를 읽어보려 한다면 끌리는 걸로 고르면 될 것 같다.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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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 - 부의 절대 법칙을 탄생시킨 유럽의 결정적 순간 29,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이강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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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에서는 예술작품을 통해 지금의 유럽 경제를 탄생시킨 결정적 순간 29가지를 보여준다. 경제를 중심으로 유럽에 부를 가져다 준 재화와 유럽 경제의 전환점이 된 사건들이다. 결정적 재화와 사건들은 일종의 표지판처럼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경제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발전하고 성장해 왔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지중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게 올리브 오일이다. 아테네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많지 않았고, 자연재해와 과한 소작료로 노예가 되는 이들이 많았다. 이때 솔론은 식량난을 타개하려 올리브를 제외한 농산품의 수출을 막았고, 이로 인해 올리브 관련 산업도 호황을 맞이한다. 그 돈으로 아테네는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었다. 만약 올리브가 없었다면 농사짓기 척박한 땅에서 과연 아테네가 그만큼 발전할 수 있었을까?

소금은 사람에게 필수 식재료다. 예전에 봤던 다큐멘터리에서는 원시림의 원주민들도 적게나마 소금을 모아 염분을 충당했다. 과거 로마에서는 소금을 급료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같은 양의 금과 교환될 만큼 비싸고 귀했다. 로마는 이 소금을 이용해 부를 쌓을 수 있었고,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었던 소금길을 통해 훗날 주변국가로 진출하면서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지금은 딱 굴 제철이다. 우리나라에서야 굴이 그렇게 비싼 식재료가 아니라지만, 해외에서는 굴 몇점에 몇 만원씩 하는 걸 보고 놀란 적 있다. 심지어 그닥 신선해 보이지도 않던 굴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굴에 대한 유럽인의 사랑은 로마시대 때부터 유명했는데, 굴이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만큼 유럽의 경제 중심지가 움직일 때마다 주요 굴 소비 지역도 달라졌다. 유럽에서 굴은 귀족이나 부르주아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굴 먹는 사람을 주제로 그림을 그릴 때 다양한 계층이 등장했는데, 이는 당시 네덜란드의 국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에 코로나를 겪으면서 인간의 무력함을 참 많이 느꼈다. 전염병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느꼈달까. 나름 의학이 꽤 많이 발달한 지금도 그러한데 과거 유럽에서 전염병이 한번 번지면 정말이지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인류 최악의 전염병인 페스트는 크게 세번에 걸쳐 유행했는데 그 중에서도 두번째 대유행때 가장 많은 사상자가 속출했다. 당시 유럽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죽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사망률이다. 당시 페스트로 인해 인구수가 줄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졌고,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면서 빈부의 격차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페스트라는 끔찍한 재앙 덕분에 노동력의 가치가 높아지는 결과가 일어난 것이다.


시대의 눈이 되어준 화가들의 그림을 파헤쳐 유럽의 경제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람은 이미지로 더 잘 기억한다고 하는데 그림 덕분에 해당 역사적 사건을 더 잘 기억할 수 있었고, 저자가 어렵지 않게 잘 풀어냈기에 역사를 잘 모르는 이들도 충분히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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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원으로 사는 삶 - 나의 작은 혁명 이야기, 2022년 한겨레 '올해의 책'
박정미 지음 / 들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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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너무나 멋진 책을 만나서 기쁘다. 제목만 보고 읽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했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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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원으로 사는 삶 - 나의 작은 혁명 이야기, 2022년 한겨레 '올해의 책'
박정미 지음 / 들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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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집어들기 전까지 생각이 많았다. 내가 진짜 소비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나? 난 비누도 있어야 하고, 물도 많이 마셔서 깨끗한 물도 필요하고, 소스를 좋아해서 다양한 양념도 필요하고, 매해 혹시 모르니까 기생충 약도 잘 챙겨먹어야 하는데?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연속에서 필요한 걸 얻으며 살던 사람들도 결국 최소한의 생활비는 벌면서 살던데 0원으로 산다고? 처음 든 생각은 불가능하다는 거였고, 두번째 든 생각은 어차피 실천하기 힘들 거 같은데 이걸 읽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거였다.


​2014.10-2016.10까지 2년간 진행한 0원살기 프로젝트는 사실 아주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답에서 시작됐다.



돈을 벌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지?


돈을 쓰지 않으면 되잖아!



워킹 홀리데이로 런던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저자는 어느날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통장에 있는 300만원은 고작 두달 방값을 내기에도 빠듯했고, 우울함에 빠져서 생각을 거듭하다... 숨만 쉬고 있어도 시간은 흘러가고, 시간과 함께 돈도 흘러간다는 것에 오싹함을 느낀다. 


그녀는 스스로의 인생과 시간, 존재가 돈을 벌기 위해 쓰이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간 돈으로 해결하던 것들을 돈을 쓰지 않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고, 친구의 조언으로 우핑에 대해 알게 된다.



WWOOF


유기농가에서 노동과 숙식을 교환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다. 그렇게 유기농 농장 '올드 채플 팜' 부터 친환경 공동체 '팅커스 버블', '롤 포 더 소울' 까지 많은 곳을 거치며 0원으로 먹을것, 잘곳을 해결했다. 올드 채플 팜에서는 오로지 농장에서 얻어지는 것으로만 먹거리를 마련했기에 텃밭돌보기는 생존 그 자체였다.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며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쓰고 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온몸이 찝찝한데도 따뜻한 물을 쓰려면 3시간 부터 불을 지펴 물을 데워야 하고, 핸드폰 충전은 당연히 어렵고, 직접 기르지 않는 설탕은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그녀는 런던으로 돌아와 도시에서도 0원 살기를 이어가는데 스킵 다이빙에도 도전하게 된다. 스킵이라 불리는 거대한 쓰레기통에 다이빙해 먹을거리나 유용한 물건을 줍는 행위다. 하지만 이건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행위는 거지나 하는 행동이었고, 그 행위 자체보다도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보는 사람들의 멸시, 경멸의 눈빛, 바로 이것이 먹거리 사냥에 실패하게 만들었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의 오해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씌운 체면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그녀는 끝내 포기하지 않고 동료와 함께 다시 도전했고, 후엔 전문 스킵다이버로 거듭났다. 런던 음식점의 쓰레기 배출 현황을 완벽히 마스터하고, 몇몇 가게와는 기부 거래도 맺는다. 도시는 낭비로 가득했고 그녀는 자립 생존의 열쇠를 여기서 찾게 된다.




결과적으로 읽기 전 고민했던 게 무색하게 나는 '0원으로 사는 삶'에 푹 빠졌다. 나는 내가 책과 만났을 때 타이밍도 꽤 중요하다고 보는 편이다. 책과 내가 서로서로 통할 수 있는 타이밍. 아무리 좋은 책도 읽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면 소용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전에 읽었을 땐 진짜 별로였는데 몇년 지나서 다시 읽어보니 왜 이런 책을 그런식으로 혹평했을까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 딱 알맞은 때에 와준 것 같아 기쁘다. 요즘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 내는게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침대가에 두고 자기전에 몇장씩이라도 재독해야지.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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