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원으로 사는 삶 - 나의 작은 혁명 이야기, 2022년 한겨레 '올해의 책'
박정미 지음 / 들녘 / 2022년 10월
평점 :

사실 이 책을 집어들기 전까지 생각이 많았다. 내가 진짜 소비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나? 난 비누도 있어야 하고, 물도 많이 마셔서 깨끗한 물도 필요하고, 소스를 좋아해서 다양한 양념도 필요하고, 매해 혹시 모르니까 기생충 약도 잘 챙겨먹어야 하는데?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연속에서 필요한 걸 얻으며 살던 사람들도 결국 최소한의 생활비는 벌면서 살던데 0원으로 산다고? 처음 든 생각은 불가능하다는 거였고, 두번째 든 생각은 어차피 실천하기 힘들 거 같은데 이걸 읽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거였다.
2014.10-2016.10까지 2년간 진행한 0원살기 프로젝트는 사실 아주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답에서 시작됐다.
돈을 벌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지?
돈을 쓰지 않으면 되잖아!
워킹 홀리데이로 런던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저자는 어느날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통장에 있는 300만원은 고작 두달 방값을 내기에도 빠듯했고, 우울함에 빠져서 생각을 거듭하다... 숨만 쉬고 있어도 시간은 흘러가고, 시간과 함께 돈도 흘러간다는 것에 오싹함을 느낀다.
그녀는 스스로의 인생과 시간, 존재가 돈을 벌기 위해 쓰이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간 돈으로 해결하던 것들을 돈을 쓰지 않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고, 친구의 조언으로 우핑에 대해 알게 된다.
WWOOF
유기농가에서 노동과 숙식을 교환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다. 그렇게 유기농 농장 '올드 채플 팜' 부터 친환경 공동체 '팅커스 버블', '롤 포 더 소울' 까지 많은 곳을 거치며 0원으로 먹을것, 잘곳을 해결했다. 올드 채플 팜에서는 오로지 농장에서 얻어지는 것으로만 먹거리를 마련했기에 텃밭돌보기는 생존 그 자체였다.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며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쓰고 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온몸이 찝찝한데도 따뜻한 물을 쓰려면 3시간 부터 불을 지펴 물을 데워야 하고, 핸드폰 충전은 당연히 어렵고, 직접 기르지 않는 설탕은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그녀는 런던으로 돌아와 도시에서도 0원 살기를 이어가는데 스킵 다이빙에도 도전하게 된다. 스킵이라 불리는 거대한 쓰레기통에 다이빙해 먹을거리나 유용한 물건을 줍는 행위다. 하지만 이건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행위는 거지나 하는 행동이었고, 그 행위 자체보다도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보는 사람들의 멸시, 경멸의 눈빛, 바로 이것이 먹거리 사냥에 실패하게 만들었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의 오해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씌운 체면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그녀는 끝내 포기하지 않고 동료와 함께 다시 도전했고, 후엔 전문 스킵다이버로 거듭났다. 런던 음식점의 쓰레기 배출 현황을 완벽히 마스터하고, 몇몇 가게와는 기부 거래도 맺는다. 도시는 낭비로 가득했고 그녀는 자립 생존의 열쇠를 여기서 찾게 된다.
결과적으로 읽기 전 고민했던 게 무색하게 나는 '0원으로 사는 삶'에 푹 빠졌다. 나는 내가 책과 만났을 때 타이밍도 꽤 중요하다고 보는 편이다. 책과 내가 서로서로 통할 수 있는 타이밍. 아무리 좋은 책도 읽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면 소용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전에 읽었을 땐 진짜 별로였는데 몇년 지나서 다시 읽어보니 왜 이런 책을 그런식으로 혹평했을까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 딱 알맞은 때에 와준 것 같아 기쁘다. 요즘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 내는게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침대가에 두고 자기전에 몇장씩이라도 재독해야지.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