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시간 하늘의 시간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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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난 여전히 작년의 그 어느날을 살고 있다.

매일 똑같은 일상들로 어제와 같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그리 다르지 않을 내일을 기대하며살고 있다. 

이상하게도 분명 난 1월 1일을 지나며 새로움

을 기대하고 다짐했음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나의 일상에 허탈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조정민 목사님의 글은 이미 전에 다른 책을 통해서도 많이 공감하고, 은혜를 받았기에 기대 품고 읽게 되었다.


땅의 시간과 하늘의 시간...


이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난 그동안 시간을 건져내지 못하고 그저 흘려보내고만 살았음을 고백하게 되었다.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시간을 사용했으며,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것일까?

 나름 열심히 크리스천으로써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은 내가 온전히 구별하지 못한채 

이도 저도 아닌 뜻뜨미즈근한 상태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특히 ‘안식’에 대한 저자의 글 속에서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안식’을 누리며 살았는지 되돌아 보게 되었다. 

그저 율법적으로 안식을 이해하며, 주일날 교회가는 것으로, 예배드리는 것으로 난 안식을 누렸다 생각했던것 같다. 

그렇기에 난 되려 주일날이 더 지치고,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안식일 규정에 묶여서 안식의 참된 본질을 놓쳐버린것 아닙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규정을 기억하느라 바쁩니다. -p75


 

이게 바로 나에게 하는 말처럼 내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그렇다 나는 안식을 참된 본질을 놓치고 있었던것 같다.


 

안식일은 일곱째 날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행사긴 모든 것이 온전히 이루어졌고, 

하나님께서 완전히 성취하신 것을 우리가 함께 누리고 동참한다는데 그 본질적인 뜻이 있습니다. -p75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삶의 태도가 안식입니다. -p73


 

내가 누려야할 안식은 바로 이런것이었다. 

그렇기에 일주일에 한번 주일날 교회가는 것이 안식이 아니라

 매일같이 내 삶속에서 이해되고, 인정되고, 감격되어 누려지는 안식이어야 했다.

 매일같이 하니님이 내 삶의 주인임을 인정하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디자인 되어져감을 고백하는 삶...

 

그로 말미암아 더 이상 내 시간은 끝이나고 하나님의 시간이 되는 것...그것을 저자는 구원이라 말하고 있다.

 세상이 말하는 시간은 언제나 바쁘고 분주하여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가야하는지 분별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하늘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신앙이란 삶의 패러다임을 공간 중심의 지각에서 시간 중심의 인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우리는 엉뚱한 짓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p125


 

하나님의 시간과 때를 알면서 사는 것, 이러한 분명한 목적이 세워지면 우리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나는 지금 어떠한 시간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며 

내 삶의 우선순위를 되새겨 보는 귀한시간을 가질 수있어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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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만든 사람 -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다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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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 대해서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음의 조상'이라는 수식어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믿음의 사람으로서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인물이다. 

그렇게 그는 그저 나에게 성경속 인물 중 한명이며 전설에서나 나올법한 완벽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 강준민 목사님의 저서 [믿음이 만든 사람]을 읽으면서 아브라함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고, 

그가 처음부터 완벽한 믿음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가 이렇게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로 불리워질 수 있게 된 것일까?



 

1. 우상숭배자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부모는 우상숭배자였다. (수24:2) 

책에서는 명백히 죄인일 수 밖에 없는 그를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았다고 한다. 

그 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려하는 의인들이 많았을터인데 왜 굳이 우상숭배하는 그를 선택하셨을까? 

성경에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상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고전1:26~29)


결국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심으로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게끔 하시려는 것이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약한자였으며 미련한 자였다.

그런 그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며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하였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롬4:18-22)


 

그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였을까? 착한일을 많이 했을까? 

아니면 하루아침에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일까?



 

2. 부분적인 순종에서 완전한 순종으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역시 아브라함은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이었어'

가라 하시는 말씀에 순종해서 자기의 살던 곳을 바로 떠날 수 있는 믿음에 대해 감탄을 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살던 곳 '갈대아우르'를 떠나긴 했으나 완전히 떠나지 못했다. 

그의 고향은 떠났으나 친척과 아비를 떠나지 못했다. 

조카인 롯을 데리고 갔으며 아비인 데라도 함께 데리고 떠났다. 

'내가 네게 보여 준 땅'도 아리고 '내게 네게 보여 줄 땅' 즉 그곳이 어딘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본토를 떠나는 믿음은 좋았으나 두려운 마음에 그의 가족들을 함께 데리고 떠난 것이다.

 결국 그것이 발목을 잡아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나안으로 가지 못하고 하란이란 곳에서 15년이란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그러던 그가 어렵게 얻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그를 죽이려 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창22:3)


 

자신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아들 이삭을 어찌 그렇게 바칠 수 있었을까?


 

 

3.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그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던듯 하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 했을 때 

혼자 떠나지 못하고 가족을 데리고 갔을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하란에서 15년을 머무르고 있었을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두 번이나 자신의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 속이며 위험한 상황 속에서 벗어나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하고, 죄를 지었던 그가 담대한 사람으로 변화했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창14:13-14)

 

 

연합국가를 상대로 318명의 사병으로 전쟁을 한다는것이 무모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믿음으로 담대해질 수 있었다.

 

 

'우리 힘으로 다 할 수 있을 때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도움받기 원한다면 우리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믿음의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p 131'


 

'세상에서는 우리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이 성공의 장애물이지만 하나님께는 쓰임받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p 131'

 

 

또한 이삭을 바치라한 하나님의 명령에도 담대히 순종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담대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믿음의 사람이 될수있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오랜시간을 지내오면 여러 사건들을 거치면서 

하나님앞에 훈련되어지고 연단되어지며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바로 여기서 나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의 변화되기 전의 모습이 바로 지금의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마음을 두며, 물질에 마음을 두며 우상 숭배하는 나의 모습. 

세상에서는 보잘것없는 나의 연약함 속에서 일하신 주님을 기대한다.


비록 지금은 부분적인 순종으로 나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믿음이지만 

끊임없는 주님의 사랑으로 완전한 순종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한다.


두려움으로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것을 기대한다.


 

이 모든게 나의 노력으로도 아니요. 열심히 아닌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변화될 것임을 믿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상숭배자였던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살인자였던 모세를 영적지도자로, 

창기였던 기생 라합을 믿음의 영웅으로, 노예로 끌려갔던 요셉을 국무총리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훌륭한 사도가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p. 413


 

그 은혜가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나타날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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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대로도 좋다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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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느려도 좋다’에 이은 이규현 목사님의 두 번째 글 묶음 ‘그대, 그대로도 좋다’

처음 책을 선택 할 때도 제목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참 좋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제목에서부터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자신의 글을 숙성된 글이라기보다 덜 익은 이른 열매같은 느낌이라 말하는 저자.

그러한 겸손함에서 책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 더 다정해진다.

 

 

총 5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짧은 주제에 따른 저자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으며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고,

단어선택을 하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을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들이다. 

저자의 말처럼 어찌보면 완전히 숙성되었다기 보다 살짝은 덜 익은 이른 열매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열매가 주는 풋풋함과 싱그러움이 오히려 읽는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매 순간을 새롭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내는 원천이다.

어제와 오늘을 빨리 결별시켜야 한다.” p92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처음에 가졌던 열정은 시들해지고, 오늘이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같은 지루한 일상이 되어버릴 때. 

다시금 역동적인 삶을 원한다면 우리는 매 순간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매 순간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 그래서 어제와 오늘을 결별시킨다는 것...

 

 

생각해보면 어제와 오늘은 180도 다른 삶이다.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생명체는 어제보다 더 나이가 들었으며 나를 스치는 사람들, 

내가 접하는 풍경 또한 어제와 100%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매일 똑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

오늘을 기대함이 어제와 똑같고, 그 똑같은 기대감으로 인해 바뀌는 주변 것들을 보지 못하고 내가 기대한것만 보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했다. 

“현실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 p93

 

  

어제의 나를 결별하면 나는 오늘 새사람이 된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새롭고, 내가 접하는 모든 환경이 새로우니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즐거워질것만 같다.

 

  

“소유하면 누릴 것이라는 거짓 메시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p129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누릴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가질 수록 누리는 기쁨보다 소유함로 인한 걱정과 두려움이 더 커진다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더 빠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주변을 둘러보면 가진 사람들의 얼굴보다 소유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얼굴이 더 밝고 편안해 보임을 느낄 수 있다.

 

  

“욕망을 내려놓은 마음은 세상을 다 받아들일 만큼 넓어진다. 

집착하던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면 여유로움이 찾아온다.” p129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마음, 여유로움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세상이 더 따뜻해질 것만 같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저자가 던지는 한마디에 내가 꿈꾸는 세상을 상상하며 행복해지는 순간을 맞볼 수 있었다.

 

덜 익은 감을 바라보며 그 감이 곧 내게 줄 달콤함을 상상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기에 저자의 글은 ‘덜 익은 이른 열매’ 같은 느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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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전도 - 행복한 의사 전도왕 이병욱의
이병욱 지음 / 두란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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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늘 마음 한구석에 부담감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믿는 자로써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전함으로 그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해야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내가 너무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이 늘 저의 마음가운데 있었지요.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저의 성격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전도는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며 전도하기에 적합한 성격은 따로 있다 생각해버렸습니다. 저의 직무유기를 이렇게 합리화시키고 있었던것이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작가의 여러 전도 경험을 통해 전도는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 택시, 횡단보도, 식당 등 그곳이 어디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환자, 친구, 군인들, 식당 종업원 그게 누구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영혼구원을 향한 간절함만 있다면 전도는 내가 만나는 누구라도, 내 발걸음이 닿는 어디라고 문제될게 없었습니다.

 

 

 

특히 전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참 바르고, 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술해서 생명을 살려 놓아도 조금 더 살다 갈 뿐입니다. 

그러나 전도하면 그 영혼이 영원히 삽니다. 

그러기에 저는 매 순간 하나님의 심정을 눈물의 기도와 전도로써 전합니다. p37


 

의사는 돌보고(care) 하나님은 치유(cure)하십니다. p 123

의사는 주님의 회복의 역사에 수종 드는자일 뿐입니다. p126

 

 

 

남들이 다 부러워하고 우러러 보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그것에 우쭐대고 자만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은 주님의 도구일 뿐임을 고백하는 그의 모습에서 참된 종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도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전도에 힘쓰지만 거두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신 것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3:6)

 

 

 

그동안 전도를 할 때 가장 꺼려지는 것이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 열심히 전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자가 변하지 않았을 때 실망하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더욱 용기내기를 주저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글을 보면서 그동안 제가 전도를 제 힘으로 하려고 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주님임에도 불구하고 씨를 뿌렸음에도 자라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두려워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때를 기억한다면 지금 당장 결과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낙심하지는 않겠지요. 그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길러야겠습니다.

 

 

 

 

전도는 테크닉이 아닙니다. 전도는 내 삶의 고백이요, 예배요, 주님을 향한 눈물과 절규입니다. p231

 

 

 

저자의 글에서처럼 요즘 너나할것 없이 많은 교회에서 전도축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연예인을 섭외하기도 하고, 유명 ccm 가수를 초빙하기도 하고, 여러 경제, 건강 박사들을 모셔와 강연을 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러한 행사들을 보면서 복음에서 멀어져 너무 테크닉 위주로 흘러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저 수적인 부흥을 위해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현혹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진정한 전도는 저자의 글처럼 내 삶의 고백이 담겨있고,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고, 주님을 향한 눈물과 절규가 담겨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아도, 시선을 끌지 않아도 깊이가 있는, 

마음이 담겨있는 전도가 진정으로 상대의 영혼을 움직이는 전도가 될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도전받은 것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제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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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애 기도애 -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기도 큐티 - 창세기 편
김현미 지음 / 두란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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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그냥 읽어내려가다보면 어느새 눈은 성경을 읽으면서 머릿속엔 다른 생각으로 가득차있는 경험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방금 읽은 구절인데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지 않아 읽었던 구절을 반복하기 일쑤였지요. 

그러니 성경 읽기가 즐거울리 있나요.

 

하지만 큐티식으로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말씀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가슴깊이 와닿는지 깨닫게 되면서 큐티식 말씀묵상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영양가 높은 음식을 조금씩 조금씩 꼭꼭 씹어 내 영혼에 영양을 듬뿍 전달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이번에 접하게 된 이 책은 온누리교회에서 중보기도 팀을 인도해 온 기도 사역자이며, 

전국 각지의 교회에서 기도와 묵상을 훈련하는 사역을 하고 계신 김현미 목사님의 저서입니다.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말씀 묵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반드시 함께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이냐 기도냐 어느 한군데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이 잘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마음을 비추면 기도가 됩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삶이 변합니다”

 

  

표지에 써 있는 이 글귀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기본 핵심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것을 중심으로 21일 창세기 큐티가 펼쳐집니다.

 

물론 다른 큐티집을 통해 많이 접했던 본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3~15)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왜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살려두실까? 

정말 하나님은 죄인임에도 가인을 사랑하시나보다. 라는 1차원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가인이 회개하길 기다리는 주님의 사랑하심도 있지만 

가인을 죽임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도 숨겨져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자기의 형상(아담)을 닮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저자는 이 구절을 통해 죄로 인해 불완전해진 형상이 대물림되었음을 깨닫고 가슴을 쳤다고 합니다. 

참 많이 읽은 구절임에도 왜 저는 이러한 깨달음이 없었을까요.

 

  

또한 롯은 아브람을 떠나지 않고 한길을 갔어야 했다(p121)는 구절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가축의 먹이 때문에 목자들은 걸핏하면 싸워대는 가운데 아브람이 각자의 길을 가자고 제안하고, 

게다가 땅 선택 우선권가지 주어진 마당에 ‘아닙니다. 저는 그래도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란 말을 어찌 할 수 있었을까? 

설사 그렇게 따라갔다 한들 분쟁이 그칠 수 있었을까?

  

 

이런 저런 묵상 끝에 롯은 자기의 소유를 모두 내려놓고 아브람을 따랐어야 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내가 가진 것 다 가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가려니 어려울 것 같고, 힘들것 같아 돌아서지만 

내 소유를 다 내려놓으면 걱정없이 아브람을 따라 주님의 길을 나설 수 있었겠지요.

  

 

이처럼 이 책을 통해 점점 저만의 고민과 묵상이 더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묵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놓고 깊이 기도하고, 그것을 제 삶에 적용시킬 때 온전한 말씀이 되는 것이겠지요.

  

 

 

책 뒤편에는 실제적인 기도큐티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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