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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부이치치의 허그(HUG) - 한계를 껴안다
닉 부이치치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0년 10월
평점 :

난 TV를 잘 안본다. 멀리사는 친한 친구집에 놀러갔을때(글마가 틀어놔서), 밥상에서 밥먹을때, 축구할때, 아부지 하고 뉴스가끔 볼때빼곤 안본다. 마지막으로 본 드라마가 미안하다 사랑한다였으니.(그것도 다운받아서) 보고 싶은것은 가끔 다운을 받아보기도 하는데 격투기 같은것들. 인기있는 버라이어티는 안보는 편이다. 보면 그냥 멍하게 보게 되는데 보고 나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과 할일을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니까. 안그래도 가끔 멍해질때가 있는데 일부로 멍해지는 시간을 갖기 싫다는것?. 좀 보다보면 식상함을 느끼는것?
"어제 TV에서 뭐뭐뭐 봤어?"
"아니."
"그럼 뭐뭐뭐는?"
"아니"
"그럼 뭐시기 뭐시기는?"
"아니, 난 티비안바."
'오빠는 티비도 안봐? 촌스러. 그럼 뭐햐?'
뭐 이런말을 자주 듣는다.
그럴때면 난 '니가 그건 알아서 뭐할라꼬?' 말하고 그냥 웃지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뭐 굳이 할필요 없는데 닉부이치치의 책을 보고, 내가 이양반을 어디서 봤드라 생각해보니 그게 TV였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길다)
언제 어디서 무슨프로 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사람이니까 기억난다. 첫인상은
팔다리가 없구나. 얼굴은 잘생겼네. 인상좋네 정도.
장애를 가진 사람은 많고 훌륭한 사람도 많이 보았으니. 호킹박사도 있고 오체불만족쓴 일본 사람도 봐서 그런가 별로 놀랍지 않았다. 오버하는 것을 안좋아 하(지만 가끔 오버하지만)는 성격이기도 하고.
설문조사 같은걸 해본게 아니니까 정확한건 아니지만, 내가 지켜본 장애인들을 대했을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몇가지로 나눠 보면 대략 이렇더라.
1. 지나간후 무시하는 반응을 보이며 비웃는듯한 표정을 짓거나 웃거나 하는 人.
2. 혐오감의 표정을 보이거나 피해가는 人.
3. 동정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혹시 그런 말이 주위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주위에 알리려고 노력하는 듯, 평소보다 조금 높은 톤과 성량으로 '어머 어떡캐~~' 라며 안구에 촉촉한 물기를 발산 하는등의 반응을 보이는 人.
4. 인상을 쓰며 계속 처다보는 人.
5. 도와주려거나 도움이 되려고 하는 人.
6. 관심없는 人.
또 있을껀데 여기까지가 내한계다. 더있다면 스스로 추가해 보시길~~
그리고 속으론(저런 사람도 잘 사는데)하고 위안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토대로 동정의 눈빛을 보이며 감동적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5번의 경우 장애우들의 반응은 필요 없다며 거칠게 반응한다거나 고맙다고 말한다거나이다.
사람들은 다른사람과 자신의 환경을 비교한다. 그리고 그게 적극적이든 아니든 자신에게 대입시킨다. 이것도 대략 몇가지 반응을 보인다.
1. 돈많은 집에 태어난 자식을 부러워 하거나 난 왜 그렇게 못타고 났는지 한탄한다.
2.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자신이 판단되는 사람)을 보거나 심하면 일부러 찾기라도 해서 자신의 위안을 찾는다.
3.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깔보며 자만심을 느낀다.
4. 딴사람 신경안쓴다.(또는 애써 안쓰는 척 한다.)
난 어떤 생각이냐고? 전자의 경우는 6번이나 가끔5번. 후자의 경우는 2번이었다.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때문에 필요로 하면 돕지만 상황봐서 행동해왔다. (그래, 사실 내생각 아무도 안물어봤다… 단지 관심받고 싶…)
사람들은 닉부이치치를 보며 그의 꾸미지 않은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며 위안을 찾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닉부이치치도 그걸 잘 알고 있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대인배이다. 나같으면…아니 나같지 않으니 내가 어떻게 감히 말하리오? 그만두자.(그럼 뭐하로 굳이 쓸까 난?)
당연히 닉부이치치와 그의 가족들은 엄청나게 고난을 받았으며 그걸 극복하는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자기가 믿는 신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해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으며 노력해왔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상대적으로 어려운 신체 환경을 극복했으며 인생을 활기차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것이다. 그리고 좌절하는 사람에게 자기를 낮춰가며 당신도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환경탓 같은것은 접어두고 있다.
이사람이 자기의 신체적 환경을 극복했다는 것도 물론 멋지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거나 동정의 시선을 보낼지도 모르는데도 자신을 알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하는 그 용기가 멋지고 부럽다.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비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 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닉부이치치를 전혀 동정하고 싶지 않다. 정상으로 태어났으면 하고 안타까워 하고 싶지도 않다.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 위안을 얻는 것도 안하려고(그러나 가끔 그러게 된다)노력하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신체적으로 못한 사람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하는 것은 성미에 안맞는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알지 못하는 그사람의 환경에 대해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값싼 동정이요, 주제넘는 행동이며 자신이 더 낫다는 전제하에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값싼 동정은 가만히 있거나 상처나 피해를 입히는 것보다 낫다. 말그대로 조금 더 쌀뿐이라고 생각한다.)
도움을 필요하는 장애인들은 물론 적극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그들을 비웃거나 깔보거나 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들을 돕지 않는법이다. 그사람들의 일생에 도움이 안될바에는 비웃지는 말아야 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때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그사람에게 피해가 된다면.
그렇게 하려면 그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보지 말았으면 한다. 그들도 그냥 사람일 뿐이다. 그냥 다른사람보다 불편한 사람일 뿐이다.
그 불편함에 대해 해결해 주거나 책임지지 않을 거면 최소한 주둥이는 닥쳐야 한다. 손가락을 거둬야 한다. 그렇지 못할때 그 사람은 타인해게 해가 주는 행동을 하는 죄인이다.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이에 해당된다. 똑같은 사람간에 차별은 지양해야 한다. 그걸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면 의식했을때 바꿔야 하는 것이다.
이책은 종교적(기독교) 성향이 있는 책이다. 출판사도 기독교 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두란노이다. 그러나 종교에 관계없이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혹자는 닉부이치치가 모든것을 하느님이 주신것이라고 할때 거슬림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래도 닉부이치치 개인의 신념이고 그에게 기둥이 되어 준것도 사실이니 믿는데로 쓰고 싶은데로 쓴것이다. 다르다고 해서 거슬리게 볼 필요는 없으며 그걸 강요하는 책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