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2 - 미천왕,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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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상왕 상부의 추격에 도망다니던 을불은 숙신의 땅에 도착한다. 

안국군 달가는 숙신을 점령했지만, 숙신족(말갈족)으로 하여금 그땅에 계속 살게끔 하고, 달가 자신도 숙신에서 숙신족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보냈다. 을불이 존경하는 안국군의 땅이자 그의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이기도 한 숙신. 그러나 숙신족들의 삶도 고구려 백성들 만큼이나 어려웠다.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을불은 숙신을 위해 그가 어렵게 구해온 철을 내놓아 백성들의 농기구를 만드는데 써달라 한다.

 

  삼국지에서 최고의 무력을 자랑하는 장수는 여포이다. 초한지에서는 항우가 역발산 기개세라는 칭호를 들을만큼 맹장이었다. 그렇다면 소설 고구려 최고의 맹장은 선비족의 족장인 모용외일것이다. 죽을 뻔한 위기를 딛고 겨우 목숨을 건진지 1년만에 다시 부상해서 자신을 그렇게 만든이를 복수하고, 고구려와 진나라를 위협할 만큼 빠르게 일어선 모용외. 그를 구해준 은인이자 사랑하는 여인인 아영은 고구려 출신의 지략을 겸비한 아름다운 여인이다. 모용외는 낙랑의 최비에 의해 감금된 아영을 구하기 위해 낙랑으로 처들어 가는데.

2권의 묘미는 이 두세력, 최비와 모용외의 지력과 무력의 싸움에 있다. 용맹스런 모용외와 그의 외팔이 장수 도환의 무력, 모용외의 모사 원목중걸과 최비, 그리고 아영의 지력 싸움이 흥미롭다.

 


  점차 숙신의 민심을 얻어가는 을불은 무술대회를 인연으로 우애를 나누게 된 여노와 숙신의 족장 아달휼의 가세로 작게나마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그 소식을 들은 상부는 고구려의 변방을 지키고 있는 백전백승의 명장 고노자에게 일만의 군사를 보내 을불을 치게한다. 천오백정도의 병력만 가지고 있는 을불은 고민한다.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다소 무모하기까지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삼국지를 보면 다양한 리더들이 등장한다. 뛰어난 지략을 갖추고 있고, 리더쉽도 갖추었으며 신하들의 말도 귀담아 들을줄 알고 인재를 사랑하여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능력으로 사람을 기용했던 완벽한 인간형 조조. 그시대 인물이라고 보기엔 너무 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이며 실용적인 사고를 하던 조조다. 연의에서는 간악하고 교활하게 등장하지만, 나관중의 의도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반면에 자신의 능력은 별볼일 없지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고, 부하를 인덕과 정성으로 대하며 무엇보다 백성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리더인 유비. 명문집안의 자손으로 강남을 기반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인덕과 지모등을 골고루 갖춘 손권등이 역시 삼국지의 대표적인 리더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을불을 삼국지의 리더들과 비교하자면 누구와 가까울까? 정사를 제외한 연의와 소설의 관점에서만 이야기 해보자.

 

  실제로도 남의집 머슴살이에 소금장수를 전전했던 을불은 핍박받는 백성들과 무너져 가는 고구려를 바로잡기 위해 왕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데, 그의 세력은 너무나 미약하기만 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인자한 을불. 무모하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성품은 유비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된다. 이 둘은 어떻게 보면 어리석다고 생각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왕이 될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비가 조조의 추격에 달아나면서도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피신한 일은 함께 떠난 사람들과 유비를 위기로 몰아넣었지만, 반대로 민심은

조조보다 유비에게 더 쏠리게 되었으며, 덕분에 유비는 잘 도망갈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백성들을 방패막으로 이용하고도 욕을 먹기는 커녕 민심을 얻었던 것이다. 또 유장을 암살하려는 방통을 저지한 일은 시간도 훨씬 오래걸리고 방통이라는 큰 신하를 잃게 되는 등의 많은 출혈이 있었지만, 촉의 흡수 이후에도 민심을 잃지 않는 효과를 가져 오기도 했다.

을불이 고노자의 공격에 맞서지 않은 것은, 워낙 열세에 있기도 했지만 고노자의 병사들도 모두 고구려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을 희생해서까지 왕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숙신족을 위해 어렵게 구한 철을 내놓은 일이나, 원목중걸의 침략에 대응한 방식은 무모하고 대책없어 보이기 까지 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 융통성 없고 자신의 이득을 따지지 않는 성품 때문에 유비와 을불은 여러 부하들과 백성들의 민심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유비의 경우 진정 백성을 생각한다기 보다 전략적인 측면히 다분해 보이긴 하지만.

짚신 장수 출신 유비와 소금장수 출신 을불은 출신이 미천하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리더들 보다 백성들을 이해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대했고, 지지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을불은 성격에 있어서는 유비와 다르다. 안국군과 소청의 아버지 양운거에게 무예를 배워 상당한 무력을 갖추었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무모하고 충동적인 성격을 지니기도 했다. 은근한 고집과 무모함도 지니고 있어 우유부단한 유비와는 다르다.

   을불의 라이벌이 되리라 생각되는 모용외와 최비, 그리고 을불과 인연지어진 여인 소청과 아영의 이야기가 계속될 3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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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 존 가트맨.최성애 박사의
존 가트맨.최성애.조벽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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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위한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비싼 장난감 자동차나 명품 바비 인형을 사주는 것일까? 아니면 용돈을 많이 주거나 앞으로 아이에게 물려줄 재산을 마련해 두는 것일까?

 

저자는 아이에게 줄수 있는 최고의 선물로 올바른 감정을 선물하는 것을 제안한다. TV를 보면 가끔 버릇 없는 아이들이 노인을 폭행한다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그걸보면 우리는 버릇 없는 아이라고 손가락질 하게 되거나 세상이 말세라며 우리때는~ 씨리즈로 시작되는 한탄과 비교를 늘어놓게 된다. 또는 저 아이는 원래 저런 아이라거나 교육을 못받았다거나 천성이 좋지 못한 열등생 정도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 아이들은 왜 그렇게 된것일까? 일일히 하나 하나 그런 아이의 사정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궁금해 하지도 않을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이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조금의 유전적인 요소를 물려 받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 어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사랑과 감정을 받고 자라나고 배운다. 스승에게 대드는 요즘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엄했던 체벌형태와 비리, 학생 차별이 없었다고 말할수 있는가를 먼저 이야기 해봐야 하는 것이다. 보통 아이의 버릇이 없는 것을 부모를 탓하기도 하는데,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사는 부모들을 대신해서 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의 교육태도도 점검해 봐야 할것이다. 

 


 

  초등학교때부터 공부엔 통 관심이 없었던 소위 말하는 공부못하는 놈이었던 내가 처음 기억나는 체벌은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 그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말썽도 잘 피웠던 학생이지만 그때 분명했던 것은 누굴 때리거나 큰 말썽을 피운것이 아니라 담임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것으로 기억난다. 뭐가 되었던 난 그때 선생님에게 주먹으로 여러차례 배를 가격 당했다. 이십몇년 넘게 지난 오래전 일이지만 뇌리에 박혀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건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니 어떻게 어른이, 그것도 선생이라는 사람이  초등학생을 주먹으로 때릴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9살짜리를 때리면서 대단한 싸움꾼 나셨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것은 아닐테고.

학창시절동안 선생님들에게 많이 맞았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많이 때린 것은 깡패도 아니요 선배들도 아니요 친구들도 아닌 바로 선생님이었다. 말썽꾸러기였기 때문이었지만 선생님에게 심하게 대들거나 건방진 말이나 반항적인 행동을 한적은 없었다. 아무 죄도 없는데 오해를 받아 맞은적도 있고 단체기합이랍시고 군대식으로 맞기도 했다.(실제 군생활동안에도 이런 체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선생님이 때리는 이유는 주로 숙제나 성적이다. 특히 반평균이 많이 안나왔을때는 엄청 때려댄다. 자신의 평가와 관련된, 월급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아이들의 장래나 교육보다는 자신의 이득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든다.

 

  우리나라의 체벌은 세계197개국 중에서 학교에서 체벌을 허용하는 89개국 중의 하나이며, OECD국가에서 가정과 학교에서 체벌을 허용하는 7개국 중의 하나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수위는 엄하고 통제된 사회인 이슬람 국가등과 비교해도 특별히 심하다고 한다. 하기야 군인이 폭력을 앞세워 구테타를 일으켜 대통령에 오르고, 그 독재자 대통령을 아직까지 그리워하며 그 딸을 지지하는 나라가 아닌가? 나라의 우두머리가 그러하니 군대식 교육이 팽배할 수 밖에.

중요한 것은 이런 체벌이 유발하는 나비효과에 있다. 초등학교 2학년때 담임에게 주먹으로 가격당하고 눈물을 흘린뒤, 학창시절 내내 선생들이 원하는 공부나 성적과는 전혀 연관을 짓지 못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맞으면 맞을수록 그런 폭력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던 오기가 생긴것일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못한 나머지 쓰레기라는, 사회에 나가도 아무 쓸모 없을거라는 친절한 예언들을 수없이 많이 들은 나는 스승님들의 말씀에 따라 아무 희망도 가지지 않고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비하하며 그렇게 쓸모없이 살아왔다.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배워도 난 잘할수 없는 놈이었다. 꿈을 가질 자격도 하고 싶은게 있어도 잘할수 없는 놈이었다. 스승님의 말씀처럼 학력도 없고 머리도 나쁜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항상 마음속엔 뭔가 억눌린 감정이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거나 건드리면 폭발하듯이 화를 내곤 했다. 그런 내 자신을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머리는 그만하라는데 통제가 되질 않았다. 그런 스스로가 두려워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을 할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남들이 못났다고 하는 아들을 아껴주고 인정해준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은 많이 침착한 성격이 되었다. 큰 사고를 치기전에 멈출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 였다.

한 사람의 교사가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고 가르치려면 힘든것은 알겠지만, 또한 골치도 많이 아프겠지만 그렇게 폭력과 폭언과 저주에 가까운 말까지 퍼부을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교사는 일반 직장인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달의 안정적인 월급을 위해 교사를 하는 사람, 깡패처럼 학생을 패고 여학생을 성희롱 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저주하는 교사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감정을 코칭하는 것도 좋지만 그전에 교사들의 감정 코칭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좋은 교사들도 많다는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른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데 사실 이책은 교사와 학생의 감정에 대한 책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코칭하는 책이다. 아직 부모가 되지 못했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닌것 같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거나 무엇인가를 물을때 어떻게 이야기 해야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맞는 것일까 생각하는 부모가 많을 것이다. 자신의 처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부모는 별로 없울지도 모른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혼부터 내는 부모도 있고, 잘 가르쳐 주는 부모도 있고, 잘 혼내지 않는 부모도 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들이 많아 도대체 어떤 말을 따라야 할지 갈피를 못잡아 그때 그때 감정에 따라 비슷한 상황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내 아이는 도대체 왜 이렇게 생겨 먹었나? 내 아이는 누굴 닮아 이럴까? 내아이는 왜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질까? 내아이는 왜 이렇게 뭐든지 늦게 배우는 걸까? 같은, 자신의 아이를 보이는 머리나 재능으로 재단하고 결론지어 버리는 부모들일것이다. 어린 아이를 탓하고 를 내고 기를 죽인다. 그러나 알아야 할것은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부모 자신이라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이들을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하며 혼을 내거나, 누군가와 비교하여 실망을 하고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원인이 아이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원인은 부모에게 있음을 알아야 할것이다. 부모가 제대로 감정을 코치하는법, 아이를 사랑하는,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끔 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의 감정 코칭을 잘하는 법은 그 방법을 제대로 알고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 방법을 알아도 그대로 하기가 쉽지 않을것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짜증을 내고 싶거나 화를 내고 싶은 경우도 많이 생길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 부모가 먼저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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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명연설
에드워드 험프리 지음, 홍선영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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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앞에 선다는 것은 참 어려운일 같다. 명연설로 유명한 링컨도 처음 연설을 할때, 무척 떨려하고 두려워 했다고 한다. 한두사람에게도 말을 잘하기 어려운 법인데 수많은 사람들은 오죽 어려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에게 강연을 하거나 연설을 하는 사람들을 볼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것 자체도 어려운 일일텐데 그 연설이 명연설로 길이 남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세상의 많은 연중 명연설로 남는 연설 41편을 담은 이책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인들의 연설을 담고 있다. 간디, 마틴루터킹, 윈스턴 처칠, 케네디, 간디, 아인슈타인, 닉슨, 만델라, 오바마등.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연설도 나온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좀 거슬리긴 했다) 
 



 

  명연설은 연설당시 바로 좋은 평가를 받은 연설도 있는가 하면, 그당시에는 별 반응이 없다가 후에 명연설로 평가 받은 경우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듣기에는 그냥 쉽게 말하는 것 같지만 이들은 짧은 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그러기에 명연설로 남을 수 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닐것이다. 거기에 더해 진심과 열정을 더해야 비로소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게 되는 것이다.

명연설은 역사와 관련이 있다.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기에 그럴것이다다. 하나의 연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역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마틴 루터킹 주니어는 '나는 산 정상에 올랐습니다'라는 연설을 마친 다음날 암살되버린 일도 있었다.

 

시대에 따라 지금의 기준이나 타국의 입장에서 보면 명연설이라고 보기 힘든 연설도 포함되어 있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한 연설도 있고, 자국의 입장에서 타국을 비난 하고 자국만 정의로운듯 이야기한 연설도 눈에 띤다. 자국 국민들을 위한 연설이니 그렇겠지만 심한것은 이런 연설들을 우리 나라에서 번역까지 해가며 명연설이라고 할 필요가 있었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인디언 비하 발언이 들어간 연설이나 특정 인종이나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을 담은 연설도 있어 거슬렸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감동적이고 훌륭한 연설이 더 많이 있다. 연설 당시의 역사나 정세를 파악한뒤 읽으면 더 재미있을 듯하다. 내 지식이 짧아 그런 예는 몇편 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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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 - 미천왕, 도망자 을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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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라는 단어를 보면 왠지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릴적 수업시간에 배운 역사는 주로 좁은 나라안에서 집안 싸움만 하다가 침입을 당하는 것만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고구려는 달랐었다. 현재는 작아진 땅떵어리 그마저 두동강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넓고 강한 나라 중국에도 밀리지 않았던 고구려는 어린 내게 웅장하고 넓고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기에 그 단어만 접하면 그런 기분이 드는가 보다. 한국사의 자존심이라고 할정도로 강대국이었던 고구려. 우리 고구려를 오랑캐라고 부르던 중국인들은 이제 고구려를 지네 역사란다.  1950년 중공군이 강제로 점령한 티벳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역사도 중국에 편입해서 한반도까지 집어 삼키려는 욕심을 보이는 중국.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물론리가 반성해야 것은 중국의 삼국시대 촉나라 오호대장의 이름, 조조의 친위대장, 손권휘하의 모사 이름은 알아도 고구려 장수의 이름은 잘 모른다는것이다.

 

비록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지만 삼국지라는 역사소설이 있기에 우리가 유비, 조조, 손권의 이름을 아는 것이지 삼국지연의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알지는 못할것이다. 우리도 우리 역사에 대한 소설이 있지만 그다지 많은 작품은 없다. 작가 김진명은 처녀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쓴후부터 고구려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17년이라는 긴 준비기간을 거쳐 소설로 나온 고구려. 13권의 분량으로 발간 된다고 하니 앞으로가 기대된다.

 



 

 

   조조의 모사였던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은 진나라를 건국하고 중국을 통일한 이후, 고구려에서는 서천왕이 서거하고 그의 아들 상부가 왕위에 오른다. 봉상왕 상부는 성격이 포악하고 잔인하며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군주이다. 상부는 서천왕의 동생이자 자신의 숙부인 달가를 눈엣 가시로 여기는데, 진나라는 교활하게도 사자를 보내 일부러 상부를 무시하고 달가에게 태왕을 칭한다. 실력자 달가를 제거하고 고구려에 분열을 일으키려는 교활한 책략인 것이다.

 달가의 수하 창조리는 달가를 역모죄로 고발하고 상부의 심복이 되어 요직을 차지하게 되는데….

상부의 동생 돌고는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돌고의 아들 을불마저 죽이려 들지만, 을불은 이미 없어진 후였다.

 

 

  왕이된 소금장수라는 동화책이 있는데, 그 왕이된 소금 장수가 바로 을불이다. 을불은 실제로 신분을 숨기고 남의집 머슴살이를 하고,  소금장수를 하는등 갖은 고초를 겪다가 우여곡절 끝에 고구려의 15대 왕이 되는데 그가 바로 미천왕이다. 소설은 미천왕 을불의 설화를 토대로 도망자 신세가 되어 떠도는 을불을 중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떠돌이 신세지만 을불은 무협을

을불을 보니 19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군주가된 중국의 진문공 중이가 생각난다. 원래라면 진문공을 보고 을불이 기억나야 되는 것이 순서일텐데 그만큼 고구려의 역사에 무관심 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다가오는 천년은 김진명의 <고구려>를 먼저 읽게 될것이다 라는, 다분히 삼국지를 겨냥하고 의식한 듯한 거창한 문구처럼,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만 정말 그럴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될일이다. 출판사에서 그걸 내세운다고 해서 아 그렇구나 하며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가갈 만한 독자는 아무도 없기에 이런 문구는 왠지 도움이 안될듯하다. 삼국지와 비교를 하려고 하지만 둘의 스타일은 매우 다르다.

 

삼국지가 만만치 않은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하나가 오랜 세월동안에 여러사람에 의해 가다듬어져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나관중이 지은이로 되어 있지만 그 혼자 지은것은 당연히 아니고 모종강등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지금의 삼국지가 된것이다. 한 작가의 힘으로는 삼국지를 능가하는 대작이 되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김진명 작가의 뜻은 사실 삼국지와 겨루어 보겠다라는 의도라기 보다 삼국지도 좋지만 우리 역사를 먼저 알고 먼저 관심을 가진 연유에 삼국지를 읽었으면 좋겠다는, 즉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알고 삼국지등을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음으로서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어, 고구려에 대해 적어도 삼국지이상만큼은 알게 되어야 힘이 생기고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교활한 음모를 막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시대배경등의 묘사가 약간 아쉬웠던 1권이지만 소설적 재미도 있고 구성도 잘짜여져, 현대적인 맛과 고전적인 맛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역사소설은 고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스타일도 나쁘지 않다. 

 

  간도 처럼 중국에 속해 있지만 누구의 땅인지 불분명한, 고구려가 반드시 되찾아야할 목표로 삼고 있는 땅 낙랑. 을불이 신분을 숨기고 낙랑에 있을때, 그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는 낙랑의 무예총위 양운거와 그의 딸 소청, 양운거가 아들처럼 키우다 시피한 방정균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마지막 부분에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 김용의 소설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모용씨의 성을 가진 선비족의 우두머리 모용외의 등장도 앞으로를 기대하게 한다.

 

13권이나 된다는데 왠지 전개가 빨리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미천왕외에 다른 왕들의 이야기도 넣기 위함인가?

을불이 신분을 숨기고 식객생활을 하다 무술대회에 나가는 과정이 사실 좀 생뚱맞았다. 무술대회에 우승하면 그 부상으로 작은 기반을 세울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것이나, 결승에 진출해서 신분이 노출될까봐 도망가는 것(그게 상부의 갑작스러운 등장때문이었다 하더라도)이 앞뒤가 좀 맞지 않는 듯하다. 무술대회에 우승하면 왕을 만나게 되거나 자신이 아는 얼굴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당연히 많을 텐데 똑똑한 을불이 그걸 예상하지 못했을리 없다. 을불은 이 대회에서 행적이 노출되어 더욱더 쫓기게 되는 신세가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를 도와줄 사람들을 알게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승에서 맞붙은 여노, 그리고 그와 맺게 되는 우정의 과정등의 서술도 갑작스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부분들이 좀더 자세하게 서술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무튼 김진명의 고구려를 계기로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한 질좋은 대하역사소설들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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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마음 주지마라 - 다 지난 후에 깨달은 한 가지
웨인 W. 다이어 지음, 정경옥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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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시간을 때우며 사는 사람의 특징은 의욕이 없는 무력한 모습, 귀차니즘, 소모적인 생활이라고 본다.
술을 좋아해서 매일 술로 인생을 보내는 사람의 목적은 오직 그날 퇴근해서 마시는 술이다. 다음날 회사에 가면 피곤해 빌빌 거리며 시계만 쳐다보며 끝날 시간만 기다리지만 시간은 매우 더디 간다. 일하는 시간은 때워야할, 빨리 지나가야할 시간이기에 일이 제대로 될리가 없고, 몸이 피곤하니 계속 짜증만 난다.  퇴근을 하면 또다시 매일 만나는 술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피곤했고 지루했던 하루,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일과 상사와 직원들에 대한 험담을 잔뜩 늘어놓기 마련이다.

희귀한 알콜 중독자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회사에서 이런 사람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술을 마시면 인간관계가 돈독해 지고 친밀해 지지만, 과하면 사람들이 피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할수 있는 사실은 삶의 목표,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무료한 삶이기에 술로 풀고 달래가며 위안을 삼는 것이다.

 

 

  삶에서 의미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큰 차이가 없을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된다. 삶에 아무 의미, 목표도 없던 사람이 목표가 생기게 되면 일단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잘 할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고, 어렵지는 않을지, 실패하지는 않을지, 남의 비웃음을 사지는 않을지 하는 등의 온갖 잡생각들이 머리에 자동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하기로 마음 먹으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은 달라진다. 목표가 생기는 순간 눈빛부터 생활패턴까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먹는 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의미'라는 녀석을 우리는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밥을 먹을때나 잠을 잘때, 누군가를 좋아할때나 연애를 할때도 의미가 있기에 즐겁게 자발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에 있어서는 참 적용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고 끝없이 이야기 하는 저자. 그 영적인 것이 종교적 이라는 생각이 들어 거부감이 들었지만 꼭 그런 이야기에만 국한된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부담이 덜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말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군중속에 살아가야 할지 모르나,  그들이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먹는 것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서도 안된다. 때로는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야 할때가 있다. 자신만의 고집으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주관도 생각도 없이 다른 사람이 한다는 이유로 무심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볼수 있다.  다수가 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수의 군중심리는 악의적인 선동에 의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더 많다.

날이 갈수록 더해가는 것 같다. 요즘엔 왕따라는 것이 생겨서 다들 하는 것에 동조를 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고 누구 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동조 하지 않으면 다르게 보는 것이다. 난 그럴 경우에 차라리 왕따를 선택하는 쪽이지만 많은 사람은 왕따쪽에 서길 주저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왕따를 시키는 사회가 되간다.

그러나 알아야 할것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다. 다른 사람을 따라 행동했다가 잘 되지 않으면 탓을 하곤 하는데 따라하기로 선택한 것은 자신이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변명이나 질책은 결국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변명을 하나 만들어 스스로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것뿐.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진정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과 선택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건 아니다고 할지라도 그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결국 승리를 하게 되고 그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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