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때부터 삼국지의 시대까지,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중에 한나라 500년의 기틀을 마련한 유방과, 삼국지의 조조를 중점으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력, 무력, 매력까지 모두 갖춘 조조는 왜 중국을 통일하지 못했으며 별볼일 없는 인물인 유방은 통일을 이루었을까?
그것은 경쟁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조는 뛰어났지만 제갈량이란 모사를둔 유비와 주유, 육손등의 인재를 둔 손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의 세력이 가장 컸지만 이들을 쉽게 제압할수 없었던 이유는 우선 두 나라가 전략적으로 힘을 모았으며, 뛰어난 인재들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유방은 한명의 라이벌밖에 없었다. 게다가 항우는 군주로서의 자질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다.
세력이 강했던 항우는 그를 피하기만 했던 유방에게 패한다. 항우는 항상 유방을 우습게 보았으며 유방은 항우에게 깍듯했다. 그러나 결국 항우는 유방에게 패해 죽음을 맞이한다.
항우는 힘이 장사였으며 혼자서도 밀리고 있는 전쟁의 판도를 바꿀수 있는 맹장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사람을 아끼는 사람이기도 했다. 세력도 훨씬 강성했다. 많은 것을 갖춘 항우가 패한 결정적 이유는?
그것은 그가 모사 범증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증은 뛰어난 모사로서 항우에게 말했지만 그러나 항우는 듣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다. 그리고 항우는 너무나 오만했다. 뛰어난 사람, 힘이 뛰어나거나 돈이 많거나 외모가 출중한 사람에게 흔히 볼수 있는 오만함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평민출신의 힘없는 유방 정도는 그냥 놔두어도 좋을 존재이다. 유방은 항우를 두려워 하며 자진해서 성을 반납하고 촉으로 유배비슷한 것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계략을 써서 벗어난후 다시 대치하게 된다. 그리고 전세를 뒤집게 되는 것이다.
유방은 반대로 왜 통일을 할수 있었나? 그것은 그가 한초삼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전략의 장량, 군수물자 보급과 정치에 뛰어난 소하, 그리고 전투에 뛰어난 한신. 세인물이 있었기에 유방은 생전에 통일을 이루는 대업을 이룰수 있었던 것이다.
조조가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생전에 통일하지 못했던 것이 한나라의 신하로 만족했다고 보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영웅은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그것을 이용할 뿐이다.
야심이 있는 인물이라고 해도 똑똑한 인물은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 그리고 대의명분이란 것을 내세운다. 미국도 끊임없이 대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 않는가? 그 명분이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베트남침공전에 자작극을 벌이기도 했던 것이다.
명분은 여론을 반영한다. 유방도 유비도 조조도 손권도 그 명분을,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명분을 잘 생각했기에 민심을 얻을수 있었다. 조조가 헌제를 옹립했던것도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헌제를 함부러 한다는 비방을 듣더라도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명분이 서면 뭐라고 할사람이 없다. 그것은 현대도 마찬가지다.
한나라에 대한 충성심? 그시대에는 물론 그런것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조조는 식자층이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인물이며 야심가며 영웅이다. 역사를 알고 전략을 안다. 그런 충성심 따위는 지배층이 아래층에게 강요하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매한 민중은, 그리고 신하는 그것이 옳다고 교육받고 살아왔고 믿었기 때문에 그것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것을 부정하면 자기와 자신의 부모가 살아온 세월을 통채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에서도 빨간 모자를 쓴 전우회 노인들의 답답한 행태와 우왁스런 고집을 보면 알수 있다. 보수적인 관념이 얼마나 바뀌지 않고 뿌리 깊은 것인지.
천자로 떠받드는 황제와 그 뿌리 한고조 유방은 평민 출신에 지나지 않는다. 통일을 한 큰 업적이 있기 때문에 그를 떠받드는 것이고 한나라의 명맥이 수백년동안 유지되어 왔기에 받드는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수백년 선조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조조같이 걸출한 인물이,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 그런 진실을 간파하지 못할리 없으며 시대에 맞춰 처세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평화의 시대에서는 충신이 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니 그리 될것이고, 난세에는 세력을 키우는 영웅이 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니 그렇게 한 것이다. 그것을 꿰뚫어본 허자장이 조조를 일컬어 ’치세(태평시대)의 영웅이요 난세의 간웅이라’ 고 말한 것이다.
조조의 능력을 흠모한 나머지 그가 반역할 생각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 견해로는 아니라고 본다. 그 사실과 조조의 능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금의 관점에서 그런 사실로서 조조를 간웅이라거나 평가 절하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그시대 한나라사람이나 그런 조조를 반역자라거나 나쁜인간으로 보면 될일아닌가? 조조의 능력이나 인간됨, 부하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했으며 뛰어난 능력을 지닌 그 인물됨 자체로만 평가하면 되는 것이지 중국인, 그것도 옛시대 한나라 중국인의 관점으로 황제에게 반역한 나쁜 인물로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 아닌가?
그런 관점이라면 태조 이성계는 조조보다 더한 간웅이며 반역자다. 그러나 그는 위인전에 실리는 인물아닌가? 김춘추나 김유신도 마찬가지다. 그럴 의도는 없었겠지만 통일신라라고 부르는 후기신라 이후에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사대가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의 위상이 덜어졌다. 그러나 그들을 우리는 반역자라 부르지 않는다.
삼국지 화자의 관점( 촉한 정통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단순한 것이다. 그것은 저자 나관중의 관점일뿐이다. 그 관점에 독자까지 좌지우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삼국지를 읽는다면 이문열은 원전을 훼손해가며 조조를 중심으로 삼국지를 따로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에 좌지우지 되는 것은 단순한 주입식 독서일뿐이다. ’그렇다고 그래서 그런것이다’ ’왜냐면 그렇다고 하니까’ 는것과 다를바 없다. 독서량의 많고 적음보다 독서로 인한 사고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내 의견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견해를 가지고 읽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아니면 도같은 단순한 이분법식 결론을 내리는 독서를 할 시대는 지났으며 지나야만 한다.
조조는 단지 천하가 평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비와 손권이 아직 평정되기 전이기 때문에 황제에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두나라의 반발이 클것이고 그들도 황제에 오를 것이기 때문에 조조만이 가지고 있는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그것을 보면 조비는 아버지만 못한 인물이라고 할수 있다. 조비가 황제에 오르자 유비와 손권이 차례로 명분을 내세우며 황제에 올랐고, 전국통일이 결과적으로 훨씬 오래걸렸다. 아니 아예 하지 못했다. 그 원인중 하나는 위나라만의 이점이었던 명분이 같아졌기 때문이다.
유비도 마찬가지다. 만일 유비가 천하통일을 했고 헌제가 살아있었다면 헌제를 황제로 계속 추대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유비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어느 누가 천하를 평정하고 난후에 전의 왕을 추대하는 멍청한 짓을 하겠는가?
조조 VS 유비 또는 제갈량 VS 사마의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지겨운 이분법 논리는 그만두자. 이미 한세기 전의 패러다임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생각해놓은 견해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것을 토대로 다르게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 즐거운 독서법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