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 위기의 순간, 나라를 살린
신동준 지음 / 북클래스(아시아경제지식센터)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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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서양에 뒤쳐진 동양이지만 오래전엔 동양이 서양보다 훨씬 발전한 시기가 있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전 서양은 인도와 중국, 아라비아권을 비롯한 동양국가들과 적자무역을 해야했다. 동양에는 서양에서 필요로 한 물건들이 그다지 많질 않았으나 서양에서는 동양의 향신료등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한것은 콜럼버스로 대표되는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일것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불시착 한것도 동양의 진귀한 물품들을 구하기 위한 새로운 무역항로를 개척하기 위한것이다. 문명이 존재하고 사람이 살고있는 타국에 불시착한 사건을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점철시켰으나 사실 어리바리하게 항해해서 엉뚱한 곳으로 갔을 뿐이다. 서양인들의 죄악을 스리슬쩍 무마시키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명분을 위해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영웅이어야 하는 것이다. 콜럼버스는 죽을때까지 아메리카대륙을 인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서양인의 만들어진 관점에서 발견일 수도 있다고 쳐도 우리나라에서까지 발견이라고 칭하고 위인전에 수록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동양이라는 개념은 원래 중국 송나라에 생겨난 개념이지만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라고 내세운 명분때문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상사적 관점에서 볼 때 자산의 리더십이 보여준 가장 큰 의미는 정치와 도덕을 분리한 데 있다. 이는 서양에서 마키아벨리가 16세기 사상 최초로 정치를 도덕에서 분리함으로서 근대정치학의 아버지, 또는 근대사상의 시조로 불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성리학의 등장을 계기로 동양은 서양이 신학에서 철학을 떠어내고 다시 철학에서 과학을 분리하는 과정을 밟고 있을 때 정반대의 길로 나아갔다. 영국의 과학자 조셉 니담이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동양이 서양에 결정적으로 뒤떨어지게 된 이유를 성리학의 출현에서 찾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동양의 처지에서는 세기사적인 재앙에 해당한다.  - 86p중에서 

 

 

 

  춘추전국시대의 자산은 마키아벨리 훨씬 이전에 이미 정치와 도덕을 분리한 과학적인 사상을 정립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공자도 자산을 닮기 원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앞에서 책내용과 별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자산의 이야기를 가장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다툼을 벌였던 5백년간의 춘추전국시대라 일컫는 기간동안 중국은 크게 혼란했으나 그만큼 큰 발전도 있었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하지만 이 시대는 대단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중국의 전성기는 역시 춘추전국시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냥 몸집만 잔뜩 부풀린 욕심많은 돼지같다.

 

  자산을 포함 8명의 뛰어난 2인자들을 다루고 있는 이책은 삼국지를 읽는것처럼 재미있다. 상앙은 진나라를 변방의 제후국에서 최강국으로 발전 시켜놓았다. 상앙이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진시황도 전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와신상담'의 고사로 유명한 오나라 합려와 부차, 월나라 구천도 각각 오자서와 범리라는 출중한 신하를 두었기 때문에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손자병법의 저자이고 손빈병법의 저자 손빈의 조상으로 알려진 손무는 실존인물일까? 저자는 우리가 익히 들어 사실로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에 의문을 던짐으로 책의 재미를 더한다. 간간히 춘추전국시대와 현시대와 비교해 놓은 부분도 무척 흥미로웠다. 중국고전을 좋아하거나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은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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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달력 - 마야 문명 최대의 수수께끼에 얽힌 진실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박병화 옮김 / 열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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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종말이 올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얼마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내가 종말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것은 TV프로 서프라이즈때문이었다. 그 프로를 보고 있자니 정말로 2012년에 종말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여러 주장중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이 마야인의 달력에 관한 내용이었다. 또한 경기불황등을 예측하는 웹봇이 2012년 12월 21일 이후의 분석을 거부하고 있다고 하여 종말론에 대한 의구심을 더했다. 이 방송이후 인터넷에선 종말론을 굳게 믿으며 불안에 떠는 누리꾼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유행처럼 쏟아져 나온 종말론과 관련된 책과 영화들도 전세계적 관심을 증명했다.

 

  초반은 달력과 시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과 서양저자의 책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조선의 이야기까지 거론하고 있다(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1년 365일 24시간의 달력은 16세기 말,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달력 개혁을 통해 탄생했기에 그레고리우스력이라고 불리운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사실 오차가 존재하는 불완전한 달력이다(전세계적으로 통용된것은 200년정도밖에 안된다).  3,323년 후면 실제 태양력과 하루의 오차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그 이전에 사용되던 율리우스력의 128년에 비하면 크게 발전한 것이긴 하지만. 

오래전엔 통치 권력 의 마음대로 달력을 정하는등 각기 국가마다 다른 달력을 사용했고, 심지어는 한 국가에서 지역마다 날짜가 다른 현상까지 일어났다. 그레고리우스력도 달력을 개혁함으로서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속셈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종교적 관점에서 달력을 생각하지 않고 영향력도 없다. 타 종교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로서 자신들 고유의 달력을 쓰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레고리력을 쓰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인 영향이 아닌, 널리 쓰이는 달력이기 때문일 뿐이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러시아와, 프랑스, 유엔등지에서 달력개혁을 시도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간것도 세계인들이 그레고리우스력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마야 왕국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120페이지가 되서야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달력과 시간의 역사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 놀라면서도 지루한 느낌도 들었다. 그 어떤 문명보다도 시간에 집착한 마야인들은 다른 문명들과는 상대도 안될정도로 뛰어난 시간감각과 역법을 가지고 있었다.

마야인들이 관측하다가 말았다는 13.0.0.0.0일은 2012년 12월 21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종말론을 부정한다. 그것을 다른 방식대로 계산하면 아직도 2000년이나 더 남았으며 현세적이었던 마야인들과 종말은 어울리지도 않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종말론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누구나 아는 유명한 말을 떠올리며 말이다. 

 

   호기심 많은 독자의 관심을 끌곤 하는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이책에 실망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책의 가치는 알려지지 않은 마야문명과 달력의 역사등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종말론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마야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한다. 다만 마야의 달력만을 이야기한 논픽션 미스터리가 아닌 인류의 시간과 달력에 관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이라는 것을 알아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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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꿈꿔라 - 용기 있는 어른 김수환 추기경이 청소년들에게 남긴 메시지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12
김원석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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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믿는 종교도 없고 천주교는 더더욱 모른다. 군대 종교행사에서 초코파이를 얻어먹기 위해서나, 연대장의 지시에 따라 강제적으로 참석한것 외에는 없으며 엎드려 자다 다들 기립하는 바람에 당황한 기억밖에 없다. 추기경이 무엇인지도 다빈치 코드를 읽다가 알았을 정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그를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를 좋아한다.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서 비난 비평을 하는 사람을 아직까지(이유없이 악플이 달리곤 하는 인터넷에서 조차)보지 못했다. 그러기에 어떤분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존경할 만한, 양심적이고 훌륭한 삶을 살아가신 분이라고 다들 말하지만 자세히 물어보면 대답을 못했다. 그래서 그토록 존경받는 이분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이책을 찾게 되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에 충분한 책임을 지고 있는 선한 얼굴이다. 종교 지도자라고 해서 다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가 하면 결코 아니다. 요즘 논란이 되고있는 모목사의 얼굴을 보면 웃음속에 탐욕과 오만이 비춘다.

들판에서 낮은곳에 임하셔서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던 예수의 모습과는 반대되는, 건물을 크게 세우고 떵떵거리며 돈냄새를 풍기는데 모든 목적이 있는것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양심에 손을 얹고 냉정하게 바라봤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적그리스도가 그들이 아니라고 말할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몇대째 기독교 집안에 수두룩한 목회자 친척을 두고 있는 나는 그 뒤에 감춰진 탐욕을 잘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은 다르다. 그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때 오직 인상만 봤을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고 책을 읽고 나자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낮은 곳에 임해서 사랑을 전했던 예수의 행동과 닮아있는지 아닌지보다 교파니 교리니 하는 따위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할말이 없다. 역사를 잘 살펴보면 지금의 천주교는 물론 예수교 또한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것이다. 내가 옳다 정통이다를 따지기 전에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는지를 보는게 더 중요한 것이 당연하다.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의 권유로 인해 신부가 되었지만 원래는 장사를 하고 싶었던 세계최연소 추기경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 추기경은 로마 교황이 선정하는, 교황다음가는 최고 성직이다. 막연히 부자가 되고 싶었고 방황도 많이 한지라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 종교를 떠난 조언을 하고 있다. 권위를 내세우고 건물을 크게 세우는 교회가 아닌, 세상에 봉사하는 세상속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던 그는 군부독재에 신음하고 있는 서민들과 함께 싸워나간 참된 지도자였다. 또한 자신들의 종교에서 자신들만이 진리라며 고집부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와도 소통했다. 또한명의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였던 법정스님과의 교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종교를 위해 편을 가르고 단절하는 것이 아닌 세상을 위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두분의 인연은 그야말로 참 아름다움이다. 2009년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애통해 하던 법정스님의 글에는 그런 아름다운 진심이 담겨있다. 예수의 참 가르침이 들어있다.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며

                                       법정

 

우리 안의 벽

우리 밖의 벽

그 벽을 그토록

허물고 싶어하던 당신

 

다시 태어난다면

추기경이 아닌

평신도가 되고 싶다던 당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 땅엔 아직도

싸움과 폭력,

미움이 가득 차 있건만

 

봄이 오는 이 대지에

속삭이는 당신의 귓속말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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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1881 함께 읽는 교양 10
마티아스 루 지음, 박아르마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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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와 축구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라니. 다소 엉뚱한 이 조합은 잘 생각해 보면 조합을 이룰 수 있다. 철학은 인생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고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대표격이다. 그리고 축구경기는 인생과 닮아있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가 축구화를 신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책은 축구라는 재미있는 놀이에 철학을 대입하여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vs이탈리아전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특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이런식으로도 철학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니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모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만 그리 쉬이 읽히진 않는다. 쉬이 읽힐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책이었다. 때론 저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같은 문장을 여러번 읽어가며 구렁이 담넘어가듯 겨우 이해(겨우 해 했다고 조금이라도 납득이 가는것)를 해가며 읽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알랭드 보통의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보통의 책처럼 신선하고 색다른 공감을 얻을수 있으며 조금더 골치아프다.

 





 

  전반 7분에 지단이 페널트킥을 성공시킨다. 골기퍼를 교묘하게 속이고 공 아래로 발을 밀어 넣어 툭 차 올리는 슛. 공은 골대 윗부분을 맞고 다시 골대밖으로 튀어나왔지만 라인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온것이어서 골로 인정되었다. 작가는 그 대담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순간의 골을 76년 유로컵에서 안토닌 파넨카가 기록한 축구역사에 남을 골 이야기로 넘어가며 '자유'를 이야기한다. '어떻게 이 이야기에서 자유라는 주제가 나올 수 있나?'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온다. 저자의 다소 엉뚱하지만 잘 맞아 떨어지는 솜씨는 지단의 패널트킥과 자유를 훌륭하게 연결시킨다.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그걸 간략하게 설명하기는 골치도 아프고 그럴 실력도 안되니 있는 그대로 책의 설명을 베껴야 하는데 그러자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겠다. --

 

 역시 이 경기의 화제는 단연 지단이었다. 2006년 당시 우리의 아쉬운? 16강 탈락을 뒤로하며 외면하던 월드컵. 그러나 결승전은 그래도 봐줘야지 하면서 봤던 경기는 지단때문에 즐거웠고 지단때문에 놀라웠다. 지단의 절묘한 패널트킥과 연장전에서의 그 유명한 박치기사건 때문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퇴장은 물론 징계까지 받았고 자신의 화려한 명성에 오점을 남기고 은퇴를 하게 되었다. 마테라치가 지단의 동생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는 것이 박치기의 이유였다. 심판들중 다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는데 저자는 이것을 정의와 법이라는 주제로 문제삼는다. 역시 엉뚱한 이야기지만 읽다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책은 축구에 관한 철학이야기로 오인될 소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 축구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긴 했지만 단지 축구를 통한 철학이야기, 인생이야기이다. 축구경기 도중 일어나는 사건들을 콕 집어 집요한 철학적 질문으로 답을 구해나가는 과정에서 철학의 재미를 축구의 재미와 더불어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즐거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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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The Power
론다 번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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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다번의 책 시크릿은 자기계발서 열풍을 불고왔다. 비슷한 성격의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대놓고 시크릿이란 단어를 집어넣은 여러 유사품?이 쏟아지듯 출간되었다. 

  시크릿은 나에게도 특별한 책이다. 책이라곤 일년에 한권도 읽지 않던 내게 독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준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책을 계기로 여러 자기계발서들을 읽게 되었고 다른 분야의 책들도 읽게 된 것이다. 책에서 이야기 하는 대로 매우 큰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작은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책 파워는 론다번의 두번째 책인데, 전작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이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마음이 바로서야 개인의 삶이 수양된다. 개인의 삶이 수양되어야 가정이 바로 잡힌다. 가정이 바로 잡힌 후에야 나라를 다스린다. 나라를 다스린 후에야 천하를 평정한다 [공자]

 

  마음이 없는 진정한 천재란 없다. 뛰어난 이해력이나 지능만으로는 천재가 되지 못한다. 사랑 사랑 사랑 이것이야 말로 천재의 영혼이다. [니콜라우스 요세프 폰 야킨-네덜란드의 과학자]

 

  책에서는 중간중간에 유명한 사람들의 명언을 인용하며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은 열정과 의욕, 행복, 건강등 모든 긍정적인 것의 힘이라고 한다. 우울, 불안, 의심등으로 대표되는 부정적인 것들 역시 사랑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사랑의 부족이다.

 

  긍정적으로 사는것. 말은 쉽지만 행동은 쉽지 않다. 이책이 말하는 방식대로라면 쉽지 않다고 말하고 믿기 때문에 쉽지 않은것일지도 모른다. 시크릿이나 이책이나 읽고 있을때는 무척 힘이 나고 감동이 다가온다. 그러나 책을 덮고 시간이 지나면 그 감동은 작아지고 다시 오랜 생활방식은 자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신경질적인 성격이 다시 드러나고 화를 내고 욕을 하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짜증을 내고 미워하고 비난하게 된다.

 

 

  믿음은 아직 당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에 대한 보상은 당신이 믿은 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이 믿는 대로 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잘 드러난다. 난 기억력이 좋지않아라, 건망증이 심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렇다. 어릴때부터 자신에게 안되는 것들이 참 많았던 나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반면에 자신있어 하는 것들은 곧잘 해내었다. 그것을 오로지 '재능'이란 이름으로 원래 그런것 쯤으로 치부했던것 같다.

잘 생각해보면 무엇을 잘 해낼때는 그것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잘 해낼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못할때는 못할거 같은 생각과 함께 하기 싫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을 처음 접했을 때 잘 되지 않으면 원래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버리기 일수였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고 살다보니 어느 분야든 그럭저럭 해내는 것은 있어도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없이 살아왔다. 자신을 스스로 믿지 않으며 노력이라는 것을 몰랐던 삶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특별히 나오지 않지만 그렇다고 노력하지 말란 말도 없다. 독자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쉽게 쓰인 이책은 복잡한 세상에서 무엇을 하게 하는 힘은 쉬우면서 항상 기억할 수 있는 간단한 삶의 지침을 위한 것일거다. 쉽고 확실한 큰 목표가 있고 그것이 바로서야 그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도 서는 것일테니. 재미있는 게임을 할때는 지겨운지도 힘들지도 모르고 하게 된다. 사실 게임을 하는 것도 상당한 힘이 들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신이 그것에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열정이나 의욕을 가지면 그 노력이라는 것이 노력인지도 모르고 게임하듯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놈의 열정이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런 열정과 의욕을 어떻게 불러일으킬까? 그것은 사랑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해야 하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에 사랑을 쏟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랑의 힘이 내 내면에 있어야 하는데 내 내면에 사랑이 있으려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책뿐만 아니라 성경이나 명상록등에 이런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이야기는 이런 맥락과 일치한다. 나 또한 살아오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 회사에 대한 불만, 연인에 대한 불만을 가지며 그 원인이 모두 내 밖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보면 내면의 문제일뿐이다.

  책에서는 중복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결국 사랑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베푸는 것, 평화, 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열심히 이야기 하고 있는 이책은 결국 자신을 위해서라도 남을 위하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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